PALAS DE REI ~ ARZUA, 33th Day
일요일이다. 휴일에는 대부분의 상점이 문을 닫는다고 하여 항상 미리 음식을 준비 했었지만 실제로 대부분의 바에서는 일요일에도 정상 영업을 했다. 굳이 주말이라고 음식을 더 준비해 놓을 필요는 없다. 더군다나 오늘은 마침 멜리데(Melide)를 지난다. 이곳은 음식이 맛있기로 유명한 스페인에서도 뿔뽀(pulpo)라고하는 문어요리가 가장 맛있다는 곳이다. 문어는 쉽게 먹을 수 없는 음식이기도 하고, 유명하다는 스페인의 뿔뽀 맛도 궁금하여 통조림을 종류별로 구입하여 맛본 적도 있었다. 그냥 조금 질긴 단순한 문어 맛이었다. 이 음식이 이정도로 유명해질 수 있다는 것이 이상했고 꼭 한번 그 유명하다는 맛이 어떤 것인지 느껴 보고 싶었다.
멜리데에 들어서니 거리 가득 남대문 시장처럼 장이 서있었고 물품의 종류별로 파트도 나뉘어 있었다. 손수레 가득 가방과 잡화류가 널려있던 거리를 지나자 직접 만든 시골 빵을 파는 손수레도 보이고, 초리죠와 과일들을 모아놓은 파트도 보인다. 시장 안쪽으로는 성당이 있었는데 마침 예배가 끝나는 시간이어서 사람들로 웅성거린다. 난 일행과 함께 길 옆 바에 잠시 들렀다. 메뉴와 분위기를 보더니 팻 일행은 그곳에서 점심을 먹겠다고 한다. 하지만 뿔뽀는 길을 따라 조금만 더 올라가면 전문집이 따로 있다고 한다. 일행들은 이곳에서 평소처럼 빵으로 식사를 하겠다고 하여 식사 후 다시 만나기로 하고 혼자 뿔뽀집을 찾아 나섰다. 어차피 지나가는 길 옆이니 주문해 먹고 있으면 엇비슷한 시간에 만날 수 있을 것 같았다.
혼자 길을 따라 오르다 보니 사람들이 많이 앉아 있는 넓은 뿔뽀집이 나타났다. 꽤 넓은 거리에 진입할 때부터 여러 뿔뽀 전문 요리집이 보였지만, 이곳이 그 동안 봤던 곳 중 제일 커 보였다. 좁은 입구의 오른쪽으로 나무로 만든 카운터와 낮은 벽이 있고 그 뒤로 커다란 쇠통의 팔팔 끓는 물에 커다란 문어를 통째로 삶았다. 다 삶아진 문어는 다리부터 꺼내 한입거리로 송송 잘라내기 시작한다. 그 조각 위에 입자가 단단하고 작은 소금과 올리브 오일, 파우더처럼 고운 고춧가루를 뿌려서 바게트 빵과 함께 내는 음식이었다.
음식 나오는 과정을 직접 보고 있자니 구미가 당긴다. 동양에서도 충분히 찾을 수 있는 그런 음식이었다. 난 그 식당 안쪽의 한자리를 잡고 앉아 뿔뽀 한접시와 음료수를 주문했다. 주문이 많이 밀려있어서 기다리는 시간이 필요했지만 식당 내부 전체에서 생기를 느낄 수 있어서 좋다. 마침내 접시에 담겨 나온 뿔뽀 요리는 쫄깃함과 동시에 약간 맵고 짠 맛이 골고루 느껴지면서 깔끔한, 계속 손이 가는 중독성이 있는 감칠맛을 내고 있었고, 통조림 뿔뽀처럼 질기지도 않았으며 한국에 돌아가서도 꼭 다시 만들어 먹고 싶은 담백함이 있었다.
한 접시 가득 준비된 음식을 막 입에넣기 시작했을 때 팻 일행이 가게 앞을 지나간다. 가게 내부에 손님들이 워낙 많다 보니 주문한 요리가 늦게 나온 탓이다. 난 일행들을 큰소리로 불러서 하나씩 입에 넣어 주었다. 다들 썩 좋아하는 눈치는 아니었지만 호기심에 하나씩, 둘씩 입에 넣는다. 하지만 그게 다였다. 하는 수 없이 음식을 다 먹은 후 바로 뒤따라 가기로 했다.
식사 후 구경도 할 겸 시장을 한바퀴 돌았다. 시골장이라 그런지 나름 아기자기한 잔재미가 있었다. 시장 안에서도 노란 화살표를 찾으며 따라 가야 하는데, 노점들이 온통 벽을 가리고 있어서 결국에는 길을 잃고 말았다. 난 더이상의 화살표를 찾을 수 없어서 상인들에게 짧은 이동거리에서도 몇 차례씩 길을 물어서 가야 했다. 시장을 통과하는 중간쯤 마을 밖으로 표시돼 있는 작은 화살표를 발견하여 시장을 벗어나니 바로 좁은 산길로 접어 들었다. 시장을 빠져 나가기 직전, 마침 신선한 과일을 파는 구역을 지나게 되어 주먹만한 복숭아를 마을 슈퍼보다도 훨씬 싼값에 구입했다. 빰쁠로냐 이후 나에게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 복숭아를 비닐에 소중하게 담아서 멍들지 않도록 허리띠에 묶고 부지런히 일행을 따라갔다.
낯익은 뒷모습이 보인다. 절뚝절뚝 힘들어 보이는 걸음걸이와 삐쩍 마른 몸에 넓은 챙의 모자, 뒤에서 봐도 영락없는 팀 할아버지다. 반가운 마음에 얼른 뛰어가 인사를 했다. 내가 갑자기 뒤에서 튀어나오니, 잠시 놀라는 듯 주춤했지만 얼굴에 다시 미소를 머금고 걷기 시작한다. 그 먼 길을 오는 중 몇 번씩 만나왔어도 오늘처럼 둘만 함께 걸어보기는 처음이다. 이제는 가벼운 마음과 몸으로 누구를 만나도 따라 잡을 수 있는 체력과 친근한 마음가짐을 가지게 된 것 같았다. 이전과는 다르게 먼저 다가가 말을 거는 것이 이상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전보다도 더 섬세하게 사람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오늘 가까이서 본 팀은 평소와는 다르게 밝아 보이지 않는다. 항상 웃고, 사람들에게 힘을 주던 그는 이제서야 본인의 이야기를 띄엄띄엄 하기 시작한다. 두 달 전에 사별을 하고 그 아픔을 잊기 위해, 그리고 아내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이 길을 걷는다고 했다. 아내와 함께 이곳 저곳의 마라톤대회와 걷기대회도 참가 했었고, 이곳도 역시 함께 걷기로 했지만 갑작스런 암의 발병으로 먼저 세상을 떠났다고 했다. 그것도 두 달 전에.
난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후의 두 달이라는 시간을 어렴풋이 떠올려 봤다. 돌아보면 마치 회오리 같은 시간이었다. 언제 어떻게 지나 갔는지도 기억나지 않을, 밤인지 낮인지조차 구분할 수 없던 바로 그런 시간이었다. 그 생각과 함께 팀의 마음이 내게로 들어왔다. 그의 얼굴을 통해서, 손과 발을 통해서, 그의 걸음걸이를 통해서. 그는 온몸으로 절절한 슬픔을 이야기 하고 있었다. 지금까지 그에게서 전혀 느낄 수 없었던 감정이었다. 사람들과 함께 있거나 쉬고 있을 때는 철저히 감춰왔던 그런 감정들을, 지금은 그의 모든 것을 통해서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무방비상태의 그는 어떤 말을 해도 위로가 될 수 없는, 마치 목에 밧줄을 걸고 외줄을 타고 있는 사람 같았다.
난 지난 철십자가에서 받은 감동과 내려놓음을 전하며, 팀도 이 길을 통해 많은 것을 얻고 마음의 평안을 얻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누가 봐도 다시 어설픈 위로였다. 그는 고개만 끄떡일 뿐 앞을 보고 걸으며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그 얼굴과 눈빛은 더 깊어진 슬픔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사실 둘째 날 피레네 산맥을 넘을 때 만났던 백발의 똑딱이 카메라맨은 바로 이분, 팀 할아버지였다. 한국으로 돌아온 후 우연히 녹화한 영상을 보다가 알게 됐지만, 막상 걸을 때는 ‘저렇게 힘든 나이에도 걷는데..’라고 생각하며 그 존재자체가 모두에게 큰 힘이 되었었다. 중간중간 마을을 지날 때마다 잠깐씩 만나 인사하고, 항상 이 길을 걷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웃음과 용기를 주던 팀. 오늘은 많이 슬프고 외로워 보인다.
“지금 이 길이 영국의 시골 풍경과 많이 닮아 있어”
“네?”
“영국 외곽으로 나가면 지금 여기 풍경하고 많이 비슷해. 산도 그렇고, 나무들도.”
“아……”
자꾸 산으로 고개를 돌리는 그의 눈에는 보일 듯 말 듯한 눈물이 비친다.
“저 옆에…… 저 나무.”
“네? 그 큰 나무요?
“응. 그거 나뭇잎 좀 따줄래?”
“네. 그러죠 뭐.”
난 도랑 가까이 다가가 팀이 가리키는 나뭇잎을 꺾어 건넸다. 그는 건네받은 나뭇잎을 반으로 잘라 비비며 좋은 향기가 날꺼라고 잎의 반쪽을 건넨다. 난 그 잎을 반으로 잘라 코에 갖다 댔다. 강한 향이 코를 찔렀다. 독특했다. 유칼립투스 나무라고 한다. 한국에서는 미디어의 생활정보에서나 접했던 나무의 이름이었다. 나무에 별 관심이 없었던 난, 매스컴을 통해 이름만 알고 있던 이 밝은 회색 빛의 잎과 주변 높다란 나무들을 유심히 들여다 봤다. 높은 나무의 위쪽은 얇은 봉숭아 잎 같았지만, 아래로 내려오면서 밝은 회색 빛으로 덮인 녹색으로 바뀌고 위로 곧게 벋어 오르며 왠만한 도시 빌딩의 높이까지 수직으로 올라가 있었다. 이런 종류의 나무를 걷는 동안에 많이 봤었지만 사실 별 관심은 없었다.
난 잎을 몇 개 더 따서 부서지지 않도록 책 사이에 끼웠다. 이 잎으로 팀을 기념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건네 받은 잎은 힘들 때 바로 꺼내서 향기를 맡을 수 있도록 부서지지 않게 입고 있던 조끼 앞주머니에 조심해서 넣었다. 내게 유칼립투스와 팀 할아버지, 그 둘은 하나의 이미지로 겹쳐졌다.
다시 혼자 걷기 시작했다. 일행들이 목적지에 도착하기 전에 내 변경된 일정을 알려야 했기 때문에 평소보다 좀 더 서둘렀다. 일정을 앞당기기 위해 결정한 오늘의 목적지는 아르주아(Arzua)였다. 팻 일행이 지낼 마을인 리바디소(Ribadiso)에서 언덕으로 4킬로미터 정도 더 올라가야 만날 수 있는 신도시 같은 느낌의 도시이다. 리바디소는 고즈넉하고 아기자기한 느낌이 들고 강 바로 옆에 위치한 작은 마을이며 물놀이를 하기도 좋고 쉬기도 좋은 곳이지만 난 조금이라도 더 걸어서 마지막 날의 일정을 줄여야 했기 때문에 시간을 지체할 수 없었다.
팀을 뒤로하고 부지런히 걷다가 결국 리바디소 입구의 나무 그늘에서 쉬고 있는 팻 일행을 따라 잡았다. 그리고 시장에서 구입한 싱싱하고 커다란 복숭아 한 개씩을 전해주며 오늘 목적지 및 앞으로의 계획을 설명했다. 어차피 같은 날 산티아고에 들어가게 되는데 난 아침일찍 들어가 하루 먼저 미사를 드리는 것뿐이다. 팻 일행은 일정상 오후에 산티아고로 들어오는 것이라서, 그곳에서 다시 만나기로 하고 바로 목적지로 출발했다.
리바디소를 벗어나려는데, 택시 한 대가 마을 끝 알베르게 앞에 멈춰서고 사람 두 명과 짐 두 개가 택시에서 내려진다. 이 길을 걷는 동안 처음부터 짐을 옮겨 준다는 택시의 팻말을 수도 없이 봐왔다. 하지만 실제로 택시를 이용해서 이동하는 순례자들을 본것은 오늘이 처음이었다. 어디가 아픈 것처럼 보이지도 않는데, 아마도 개인적인 이유가 있을 것이지만 순례길에서 그런 모습의 순례자들은 납득하기 어려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