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RTOMARIN ~ PALAS DE REI, 32th Day
오늘부터는 1킬로미터마다 나타나는 표식을 확인하며 걷는다. 산티아고의100킬로미터 이전부터 1킬로미터마다 표식을 두어 얼마나 남았는지 걸으면서 확인할 수 있다. 여기서 산티아고까지는 약 97킬로미터의 거리이다.
100킬로미터가 채 남지 않은 거리이다 보니 부담도 없고 한발자국씩 걸을 때마다 오히려 다리에 힘이 들어가 당장이라도 오늘부터 밤을 새고 걷고싶은 충동을 느낀다. 집에서 100킬로미터를 무작정 걸으라고 하면 엄두조차 나지 않겠지만, 상대적으로 이곳의 순례자들에게는 얼마 남지 않은, 친구들과의 헤어짐이 가까워 안녕을 준비해야 하는 거리이다. 더군다나 목적지까지의 남은 길은 그다지 힘들지도 않은 길이었다. 도착지까지의 많은 부분에 나무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고, 하늘 전체를 가려버린 곳도 많다. 함께 자연을 감상하며, 앞으로의 헤어짐을 걱정하며 마치 산책을 하듯 걷는다. 하지만 철십자가 이후로 점점 많은 사람들이 나타나게 되어 이전과 같이 걸으면서 얻었던 평안함은 더 이상 기대할 수 없었다.
팔라스 데 레이(PALAS DE REI)에 도착해 숙소를 찾았다. 하지만 늘어난 사람들로 인해 빈 자리가 남아있지 않아 결국 둘씩 찢어져 방을 잡아야 했다. 팻과 새라가 함께 숙소를 잡고 난 클레어와 함께 길 건너 건물에 묵기로 했다.
수속을 하던 중 마침 며칠 전 만났던 신부님과 학생들이 지나간다. 우리 일행 보다 늦게 도착해서 그들에게는 더 이상 침대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내가 들어간 방은 4명이 함께 쓰는 도미토리였는데, 우리 침대 이외의 두 자리에는 스페인 자매가 이미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들은 영어를 모르고 나와 클레어는 스페인어를 모르니, 이야기를 하고 싶어도 쉽지 않았다. 결국 핸드폰에 설치해 놓은 스페인어 사전을 꺼내 들고 단어만으로 떠듬떠듬 이야기를 하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단순히 내 침대 위에서 발견한 벌레가 베드벅인지 아닌지 물어보기 위해 대화를 시작했지만, 이 길을 걷기 위해 비행기를 타고 12시간을 날아온 나에게 자연스레 관심이 모아졌으며, 클레어와 함께 프랑스 생장에서부터 시작했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더욱 놀라는 눈치다. 사실 스페인 사람들 입장에서는 단순히 길을 걷기 위해서 많은 돈과 시간을 들여 이곳까지 온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는 것 같다. 유럽에서 제주도 올레길을 걷기 위해 날아 왔다고 해도 아마 똑 같은 반응을 보일 것이다.
자매 중 한 명이 목에 걸려있는 금색 목걸이를 보여준다. 사람 이름으로 디자인 된 팬던트였다. 한쪽 팔목에는 같은 이름이 문신으로 새겨져 있었다. 본인의 이름이 아니었다. 재작년 14살 되던 해, 암으로 세상을 떠나고 만 그녀의 딸이라고 했다. 장례를 치른 후 딸의 이름을 손목 문신으로 남기고, 딸의 목걸이를 걸고 아픔을 견디다 못해 이 길을 걷고 있었다. 가슴이 아팠다. 내 아이가 태어나 ‘자식’이라는 단어의 정의를 정확히 느끼기 시작한 이후로 난 ‘사랑’의 정의를 깨달았다고 이야기 하고 다녔다. 말로는 다 설명할 수 없을 소중한 감정이었으며 아마도 그 이후로 철이 들었던 것 같다.
그녀는 이야기를 하면서 주머니를 뒤적이더니 사진 한 장을 꺼내 보인다. 예쁘게 찍힌 딸의 웃는 얼굴이 마치 옆에서 웃고있는 듯 생생하게 느껴졌다. 정적과 함께 그녀의 슬픔이 내게로 왔고 클레어도 말없이 눈물을 훔쳤다. 무슨 말이라도 해주고 싶었지만 떠오르는 말이 없었다. 그냥 그녀의 감정을 함께할 뿐이었다. 위로도 한낮 사치로 느껴 졌다. 난 철십자가 앞에서 내가 위안을 받았던 것처럼 혹시 그렇게라도 위안을 얻었는지 물었다. 그녀는 왜 그렇게 빨리 그 어린 아이가 가야 했는지 물었지만 그곳에서 아무런 대답도 들을 수 없었다고 한다. 이곳까지 와서 그 많은 길 위의 시간에서 왜 해보지 않았으랴. 참 바보 같은 질문이다. 단지 어떤말을 해 줘야 할지 몰라서 튀어나온 말이었다. 예전 나의 마음이 누군가의 말로도 위로 받을 수 없었던 것처럼 누구도 위로해 줄 수 없는 상처였고, 어쩌면 훨씬 더한 상처였을 것이다.
클레어와 함께 그들의 아픔을 우리의 아픔인 것처럼 마음속에 담으니 나의 닫혔던 마음이 열리는 것을 느낀다. 조용히 듣고있던 클레어도 이곳에서 처음으로 자신의 아픔에 대해 입을 열었다. 그녀가 가르치던 청소년들의 반 이상이 우울증으로 자살을 했다고 한다. 그녀 자신이 입양돼 키워져서 같은 아픔을 가진 아이들을 입양해 돌보고 있는 그녀였다. 함께 생활하던 아이들의 잇따른 자살은 아무리 강한 마음을 가졌던 그녀에게도 역시 씻을 수 없는 아픔이었을 것이다. 그녀의 떨리는 목소리와 눈물로 마치 자신의 자살을 경험하는 것 같은 아픔이 전해졌다.
까미노에서 언어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사람들과 공감하고, 감정을 직접적으로 함께 공유하는 것이 서로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가볍게 하고 그들과 함께 치유로 가는 길임을 난 어느 책도 아닌 바로 이 길 위에서 생생하게 느끼고 있다. 이 곳은 이렇게 상처가 있는 많은 사람들이 지나며 만나고, 공유하고, 위로하고 위로받으면서 다른 누구보다 먼저 자신을 조금씩 치유해 나가고, 그 과정에서 알게 모르게 다른 사람의 상처까지 치유해주는 기적의 길이었다. 자신이 알지 못하는 사이에도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며 의도했건 하지 않았건 간에 본인도 모르는 사이 서로를 치료해 나갔다.
앞으로 남은 일정을 생각해 본다. 책자에 소개된 마지막 날의 일정은 20킬로미터를 조금 넘도록 설계 되어있었다. 하지만 순례자를 위한 미사는 매일 낮 12시에 산티아고 대성당에서 열린다. 아침 일찍부터 부지런히 서둘러도 오후 1시는 돼야 산티아고에 도착할 것이다. 팻은 책의 일정을 따라 갈 것이라고 했다. 난 혼자서라도 내일과 모레의 일정을 조금씩 늘려서 마지막 날 여유 있게 산티아고에 진입하려는 생각으로 조금씩 일정을 당겨 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