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 종교의 길, 현실의 길

ARZUA ~ MONTE DO GOZO, 34th Day

by 이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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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혼자 32킬로미터를 걸을 예정이다. 산티아고 진입 4킬로미터 앞 몬테도고소에 들어가야 내일 새벽 산티아고 진입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어제 팻 일행과 헤어진 이후 이곳 아르주아에 자리를 잡았다. 리바디소에서 산길로 4킬로미터의 오르막길을 올라야 이곳에 진입이 가능하다. 산속에 있는 작은 마을쯤으로 생각 했지만 막상 아르주아에 들어와 보니 커다란 새 건물들이 즐비하게 서 있는 깨끗한 신도시였다. 이 커다란 도시에서도 스페인 사람들은 많이 볼 수 없었고 거리를 돌아다니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순례자들뿐이었다.

먼 거리를 걸어야 했기 때문에 새벽 5시에 일어나 숙소에서 간단히 식사를 하고 출발했다. 그런데 몸이 이상하다. 출발부터 길을 찾는 것도 어눌하고,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너무 힘들다. 이전 같았으면 중간에 걸음을 끊고 하루를 쉬었을 텐데 내일 산티아고에 들어가는 일정을 남겨두고 있는 상황이라 그렇게 할 수도 없었다. 힘들지만 별수없이 천천히라도 가보기로 한다. 설상가상으로 신도시 같은 아르주아를 빠져 나오는 길은 칠흑같이 어둡다. 달빛은 아예 보이지 않았고 어떻게 이럴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중심가를 빠져 나오자 마자 깊은 산길이었다. 한 줄 빛도 없고 울창한 숲 안으로는 안개로 시야마저 뿌옇게 흐려졌다. 정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혹시나 나처럼 조금 일찍 떠나는 사람이 있을까 해서 주변을 둘러 보지만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 하늘과의 경계도 보이지 않는 암흑가운데 길 앞쪽 허공에서 작은 불빛 두 개가 보인다. 마치 반딧불처럼 작았지만 인상을 찌푸려 가며 자세히 보니 저 멀리 앞쪽에 있음직한 산중턱쯤에서 안개 뒤로 움직이는 손전등 인 것 같았다. 도깨비 불처럼 주변으로 휘휘 젓던 그 두 빛이 일정한 방향으로 함께 움직이기 시작한다. 역시 산을 오르고 있는 사람들인 것 같다. 그 빛을 위안 삼아 앞을 똑바로 쳐다보며 산을 오르기 시작한다. 산티아고를 걷기 시작한 이후 처음으로 두려움이라는 것이 느껴진다. 이전에는 슬픔과 답답함 이외의 다른 감정들은 자리잡을 곳이 없었는데, 그런 것들이 자리를 비우고 나니 이제서야 일반적인 감정들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몸도 힘들고 앞도 보이지 않고 두려움마저 느껴지니 해가 뜰 때까지 이어진 산길이 길고 고통스럽다. 일찍 출발 했지만 바닥에 자석이라도 붙어 있는 것처럼 철컥철컥 무거운 다리로 두 시간을 넘게 걸었더니 그제서야 하늘이 밝아오며 첫 번째 마을 입구가 보인다.

다행히도 마을 입구에서 작은 바(bar)를 발견하고 음료수를 주문한 후 무너지듯 자리에 앉았다. 그런데 미처 음료수 한잔의 주문을 끝나기도 전에 뒤에서 누군가 따라 들어왔다. 며칠 전 만났던 짧은 수염 신부님이다. 원래 다른 사람들과 말도 잘 섞지 않는 성격이어서 둘만의 자리가 어색하긴 하지만, 아무도 없는 바에 이미 안면을 익힌 사람과 따로 떨어져 앉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주문한 음료수가 나오자 그는 나를 데리고 밖으로 나가 작은 테이블에 앉았다. 오늘 산티아고까지 들어갈 계획이지만, 함께 걷고 있는 학생들과 일정을 맞추기 위해 핸드폰 메시지로 의견을 조율 중이라고 한다. 난 산티아고 바로 앞 마을인 몬테도고소에서 하룻밤을 지내고 내일 4킬로미터 밖에 되지 않는 그 길을 일찍부터 걸을 생각이라고 했다. 아침에 여유 있게 들어가 오전에 인증서를 받고 정오 미사에 참석하려는 계획을 설명했다.


간단한 이야기를 나누며 주문했던 음료 한잔을 마시고 일어서는데, 어라? 몸의 컨디션이 완벽하게 정상이다. 어제처럼 뛸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을까? 아침에 일어나면서부터 무겁고 힘들던 몸은 어느새 활기차게 바뀌어 있었고, 오히려 이야기를 하면서 빨리 걸어도 힘이 넘쳤다. 결국 짧은 수염 신부님과 함께 걸으며 쭈뼛쭈뼛 그간 겪은 이야기들을 꺼내기 시작했다. 이 길에서 겪은 여러 가지 기적 같은 일들, 철십자가, 팀 할아버지, 팻과의 만남부터 교훈까지. 하루 종일 둘이 걷다 보니 시간은 많았다. 아무리 무뚝뚝한 사람이라고 해도 그 많은 시간 동안 굳이 입을 다물고 있을 필요는 없지 않은가?

함께 보내는 시간이 많다 보니 결국 내 이야기를 꺼내게 됐고 신부님은 나의 입장에서 길의 의미와 내게 나타났던 일들을 풀어가며 하나 하나 마치 어린아이에게 덧셈을 가르치듯 쉽게 설명 하기 시작했다. 까미노 길은 단순한 고행의 반복을 통한 깨달음을 얻을 수 있도록 구성된 장치이며, 오랜 고행의 과정에서 마음을 내려놓고 난 후에야 함께 했던 팻 할아버지의 말이 내게 바로 깨달음으로 다가온 것이라고 간단히 정리했다. 그것으로 인해 내 삶이 변화될 수 있는 강한 사인이 될 수 있도록 이 길을 걷게 된 것 같다는 말씀이었다. 듣고 보니 내가 길을 선택한 것인지, 길이 나를 선택한 것인지는 모호해져 버렸지만 그 결과는 확실했다. 나를 변화시키기 위해서 그 길이 선택되었든, 그 길이 나를 선택해서 변화시켰든 결과적으로 지금의 나는 이전과는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강한 체력과 심장 그리고 마음속에서 끌고 다니던 짐덩어리들을 끊어버리고 가볍게 뛰어갈 준비가 되어있는 사람이 내 안에 새롭게 자리잡고 있었다.


그분은 천주교 군종교구 현광섭 신부님이다. 마치 기말고사를 대비해 시험 전날 선생님이 총 정리를 해주는 것처럼, 하루 내내 길 위에서 세세한 설명을 듣고 나니 그제서야 34일간의 여정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가며 하루하루가 이해 되기 시작한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번 여행뿐 아니라 내가 살아온 삶의 사건들 하나하나가 모두 연관성을 갖고 있었다.

놀랍고도 가슴이 시리다. 이런 삶이 실제로 존재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신비로왔다. 오늘조차도, 아침에 컨디션이 정상이었거나 어제처럼 점점 좋아져서 예정대로 걸었더라면 난 결코 이분을 만나지 못했을 것이며 이런 기회를 가질 수도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이런 말씀을 들을 수 있는 기회도 영영 갖지 못하고 단지 마음과 육체의 건강함 만을 가지고 돌아갔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이 분도 내가 지금 느끼고 있는 정도의 울림을 생각하면서 나에게 말씀을 전한 것은 아닐것이다. 하지만 그 한마디 한마디를 받아들이는 내 마음속에서는 내가 그간 걸은 길만큼이나 값진 선물이 되고 있었다. 산티아고 길에서의 마지막 날에,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내 머리와 마음속을 큰 울림으로 텅텅 울리고 지나간다. 처음에 가장 센 울림으로 한대 맞은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그 다음도 여지없이 더 세진 울림이, 도무지 익숙해 지지 않고 가차없는 공격이 나를 계속 펑펑 두드렸다. 내가 겪어온 의미 없던 모든 삶에서 실제로 1분 혹은 1초도 의미 없는 것은 없었다. 외국에서 한국인들을 만나기 싫어하도록 겪었던 일들, 유럽, 서양 국가에서의 인종차별 등 나쁜 기억들을 포함해서 모든 것들이 이 길 위의 사건들과 연결되어 있었으며, 그 모든 삶이 지금의 내 모습을 대변하고 있었다. 좋았던 것도 나빴던 것도 그 끝에는 마치 삼각뿔의 꼭지점처럼 하나로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시점을 바꿔보면 내가 살아왔던 일들을 바탕으로 지금 이 사건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지만 그 삶조차 내 의지대로 이뤄 졌던 것은 거의 없었다. 나이가 들어가며 지금이 좋지 않다고 앞으로도 항상 좋지 않은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었다. 아직 얼마 되지 않은 인생이지만 그간 현재가 좋지 않음으로 인해 새로운 기회를 맞이하게 되는 경우를 허다하게 봐 왔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오늘 이 길 위에서 뿌리고 있는 시간들은 내 삶을 다시 어디론가 가지고 갈 것이다. 궁금하다. 내가 모르는 사이에 내 삶에서 직접 계획하지 않은 직소퍼즐의 조각들이 만들어지고 나 자신도 모르게 끼워지고 있었다. 이것들은 다시 다른 커다란 퍼즐의 조각이 되어 다른 조각들과 이를 맞추고 있다. 역시 그 퍼즐의 어느 틈에도 우연은 없다. 우연이 끼어들기에는 너무도 빡빡하고 정교하다.


내 삶 중 이 나이가 되어서야 겨우 커다란 퍼즐 한 조각이 맞춰진 것을 깨닫는다. 삶을 잘 살아내기 위해서는 삶의 기준 또한 달라져야 한다고 한다. 살기 위해 내가 임의로 선택한 삶의 방식이 생활의 전부가 돼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현실의 삶을 위한 ‘나’와 순수한 ‘나’의 공존 방법을 찾는 것이, 전체 그림을 볼 수 없는 위치에서는 최고의 방법이었다. 직업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순수한 ‘나’를 찾으려고 하다 보니 네모에 동그라미를 끼워 맞추듯 삶 자체가 삐걱거리고 있었다. 마치 동그란 삶을 잘라 오차 없는 정사각형을 만들려고 했던 것과 같아 이것은 이미 예견돼 있던 일탈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런 방식의 일탈은 또한, 오히려 고마운 것이라고 한다. 건전한 것이라고 한다. 자기가 인식하지 못하는 삶의 일탈을 타락에서 만나고 자살로 귀결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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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천주교 신자가 아니다. 교회를 다니면서도 심각하고 멋있게 열정적인 신앙생활을 해본 적도 없다. 그런 내게 내일 오전 반나절 밖에 남지 않은 이번 여행은 다시 기적을 보여 주고 있다. 조금은 더 어른이 된듯한 느낌이었다.


이 길은 이스라엘, 로마와 함께 기독교의 3대 성지 중 하나이고 마을마다 건축되어 있는 성당에는 각자의 역사를 가지고 천주교의 전통이 남아 있었다. 그런 길 위에서 이 길의 가장 대표적이고 상징적인 분을 오늘, 까미노의 마지막 날 만났다. 더군다나 군대내의 자살방지를 담당하시는 이분을 통해 이 긴 여행을 논리적이고 합리적으로 정리했다. 이건 마치 무슨 뻔한 스토리의 영화같았다. 현실에서는 일어날 수 없으나 영화에서는 너무도 뻔하게 그려지고 있는 줄거리였다. 논리를 기본으로 하는 프로그램을 업으로 하고 있는 내게도 더 이상 반박할 여지가 없도록 철저히 몸으로, 머리로, 마음으로 모든 것이 이해 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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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님은 함께 걷던 학생들과 의견을 모아 모두가 몬테도고소의 한 방에서 묵기로 했다. 몬테도고소에 도착하기 직전 신학을 전공한 안나를 만났다. 예전 나바레떼에서 만났던, 양쪽 무릎에 무릎 보호대를 하고 항상 절뚝거리며 걷다가 주변 성당에 들러서는 사진엽서만 사 모으던 그녀가 이제는 무릎 보호대도 없이 제법 빠른 걸음이었다.

이젠 누가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더라도 안심하고 믿음직한 미소를 보내 줄 수 있을 것 같다. 마치 순례자 사무실에서 악수를 청하던 그 백발 노인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