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0.0KM의 의미

SANTIAGO ~ Finisterram, After Journey.

by 이작


5th_4.jpg

며칠을 산티아고에 묵는 중 하루를 잡아 버스로 땅끝마을 피네스테라에 다녀왔다. 서태수씨의 권유로 그곳까지 걸어볼까 했지만, 이미 비행기 티켓이 확정된 상태였다.


땅끝 마을에서 버스를 내려 천천히 걸어 올라갔다. 꽤 높은 곳에 박물관 같은 건물이 있고 그 바로 뒤에 바다로 내려가는 가파른 벼랑이 이 땅의 끝이라고 말하던 곳이었다. 바로 그 곳에 ‘0.0KM’라고 적혀있는 표지판이 보인다. 이미 지구가 어떻게 생겼는지 컴퓨터만 켜면 3차원으로 볼 수 있는 세상이지만, 모든 것을 이미 알고 있으면서도 정말 땅끝에 온 사람처럼 허탈했다.

땅끝마을의 벼랑끝에서 순례 시 신고 갔던 신발이나 옷가지를 불태우는 전통이 있지만, 난 아버지의 장갑 대신 착용했던 다 뚫어진 작업용 목장갑을 바위 위에 내려 놓았다. 그동안 이미 여기저기 구멍이 나 못쓰게 되어 버린 장갑이었다.

바위에 걸터앉아 한참 동안이나 바다를 내려다 봤다. 바닷물이 육지에 부딪히며 거품을 만들어 내고 있다. 조용하다. 아직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건지, 어떤 것이 맞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마음의 짐을 내려 놓고, 그 동안 어깨 위에 놓여있던, 내가 버리지 못한 세상의 미련을 지고 걸었던 길을 되돌아보면, 지금보다는 좀 더 만족하는 삶을 찾아 만들어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산티아고에 진입하던 날 순례자 사무실 앞에서 인증서를 받기 위해 줄을 서 있었다. 앞에 누더기를 입고 지친 듯이 앉아 있던 스페인 순례자에게 우리가 드디어 해냈다고, 드디어 끝이라고 축하한다고 하니, 이상하다는 눈빛으로 쳐다보며 대꾸했다.



아직 끝나지 않았어. 이제 새로운 시작이라구!


돌아보면, 산티아고에서도 한국에서 출발하는 날과 똑같이 해가 떴으며, 똑같이 밥도 먹고, 똑같이 걸었다. 하지만 난 이 길에서 혼자 간직하기에는 벅차도록 많은 것들을 얻었다. 결국 모든 문제는 내 마음속에 있었다.

산티아고에서는 그 길을 건강하게 잘 걸을 수 있도록 내가 기적이라고 부르는 일들이 수도없이 나타났다. 또한 상처받은 수 많은 사람들을 만나 대화를 통해 내 상처 난 마음을 온전히 뱉어내고 보듬어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을 걷는 순례자의 수만큼이나 많고도 다른 방식으로 경험한다. 여행은 끝났지만 아직도 내 마음은 신의 세계에서 맴돌고 있다. 이제는 다른 사람들도 생활 속의 기적들을 깨닫고, 그것들을 통해 하루 하루 ‘행복’한 삶을 만들어가길 기원할 뿐이다. 기적은 매일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으며, 단지 현실을 살아야 하는 우리의 마음이 퍽퍽하고 비우지 못해서 느끼지 못할 따름이었다.

5th_5.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