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 JEAN PIED DE PORT~RONCESVALLES, 2nd
아침이다. 눈도 잘 떠지지 않는다. 어제 예상치 못하고 당한 고통에 몸이 보복이라도 하듯, 밤새도록 다리의 근육 하나하나가 소리를 지르며 고통을 호소했다. 몸을 어떻게 할 수가 없다. 벌써 7시가 넘었는데 이곳의 체크아웃은 8시까지다. 이미 많은 침대가 비어있었다. 몸 여기저기를 주무르며 달랜 후에야 어제보다 더 아픈 발바닥으로 바닥에 닿을 수 있었다. 쇠로 된 2층 침대의 사다리는 아침이 되자 발바닥을 둘로 가르는 고통을 느끼기에 충분하도록 차갑고 단단했으며, 발의 근육들은 어제보다 더욱 단단히 굳어 있었다.
평소 출근 시 몸에 밴 습관처럼 모든 일을 빠르게 끝마칠 수 있는 숙소 내 최단 거리를 계산해 본다. 숙소, 화장실, 빨래까지의 거리와 그 장소들을 모두 거칠 수 있는 가장 짧은 동선을 찾아 식사, 화장실, 빨래 걷기 등 20분 만에 차례차례 모든 과정을 끝냈다. 하지만 처음으로 시도하는 까미노에서의 짐 꾸리기는 결국 내 발목을 잡았고 8시가 다 되어서야 출발이 가능했다.
점심으로 먹을 샌드위치 하나를 사 들고, 자욱하게 깔려있던 주변 안개를 모두 흡수해 버린 듯한 빨래를 걷어 배낭 위에 걸쳤다. 아직 해가 떠 있지 않은 시간이라 안갯속에 널려있던 빨래는 축축했고, 이 상태의 옷을 배낭 안으로 넣을 수는 없었다. 한 시간 정도나 걸은 후에야 아프던 몸의 근육들이 차차 정상 컨디션을 되찾아 삐걱거리긴 했지만 제 기능을 되찾았고, 나폴레옹이 넘었다던 그 피레네 산맥의 숲길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뿌옇다. 피레네 산맥의 첫 느낌이다. 사방이 안개로 뒤덮여있지만 한편으론 조용하고 한가로웠다. 안개 너머 염소와 양의 울음소리, 방울소리가 들린다. 둔탁한 나무로부터 튕겨져 나오는 듯한 워낭소리도 간간이 섞여 있었다. 짙은 안개로 가까운 곳조차 보이지 않아 소리가 나는 쪽으로 따라가 보면 어김없이 동물들이 한가롭게 풀을 뜯고 있었다. 아무것도 경계하지 않는다. 수많은 소와 말, 양들은 길 주변 어디에서나 볼 수 있었지만 이상하게도 사람은 단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서울에서 태어나 자란 나에겐 이렇게 가까이서 동물을 대할 수 있는 기회가 없어서였는지, 가까이 지날 때마다 두려움이 느껴지곤 했다. 양 떼가 모여 길을 막고 있으면 눈치를 보며 살짝 돌아서 가기도 하고, 풀을 뜯다가 쳐다보고 있는 녀석이 있으면 눈을 마주치지 않도록 피해 가며 무리를 빠져나갔다. 그나마 2차선 도로를 따라 올라가게 돼 있어서 안개 때문에 가시거리가 채 20미터가 되지 않더라도 길을 잃지 않고 오를 수 있었다. 통계상으로 7월에 약 8만 명 이상, 8월에는 최고 12만 명 가까운 사람들이 방문한다는 길인데 이상하게도 아주 가끔씩 한 두 명의 순례자들만이 지나쳐 갈 뿐이었다.
오늘부터는 군데군데 표시돼 있는 노란 화살표를 찾아 그 방향으로 산을 넘어야 한다. 이 길의 끝까지 저 노란 화살표가 방향을 알려줄 것이라서 두 눈을 커다랗게 뜨고 화살표를 잃지 않도록 찾아가며 걸었다.
앞도 잘 보이지 않는 안갯속에서 불쑥불쑥 나타나는 노란 화살표를 찾아 빨려 들어가듯 한참을 걷다 보니, 확연하게 짙은 안개가 길을 막았다. 전혀 들여다 보이지 않으니 두려움이 더욱 심해진다. 안쪽으로 들어가면 마치 두꺼운 안개가 코를 타고 들어와 숨통을 막아버릴 것 같았다. 용기가 나지 않아 들고 있던 등산 스틱으로 안쪽을 휘휘 저어 보니, 하얀 벽이 아니고 공기가 맞긴 맞는 듯했다. 신기하다. 하얀 벽처럼 도로를 가로막고 있는 안개라니. 아무리 기다려도 먼저 안갯속으로 들여보낼 수 있는 사람이 나타날 것 같지는 않았다. 결국 심호흡을 한 후 용기를 내어 흰 벽으로 발을 넣었다. 두어 발자국 만에 가시거리가 3분의 1 이하로 줄었다. 그나마 보이는 부분도 희미하다. 뒤쪽으로는 상대적으로 시야가 트여있다. 잠시 가방을 내렸다. 가방 위에 안개가 물이 되어 고여 있었고, 짙은 안개 벽은 언제쯤 끝이 나타날지 짐작조차 가지 않는다. 앞쪽으로 약 5미터 정도까지는 희미하게나마 길이 보이는데 그 끝부터는 잘 지워지지 않는 지우개로 지운 듯 희미해져 버린다. 세상이 사라지고 있었다. 희미하게 보이는 주변 10미터가량의 원을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볼 수가 없다. 눈을 뜨고 있는데도 보이지 않으니 답답하다. 난 길을 잃지 않도록 바닥의 화살표를 찾아 한걸음 한걸음 다시 점을 찍으며 발을 옮기기 시작했다.
한참을 올라가다 보니 커다랗고 노란 화살표가 바닥에 나타난다. 하지만 화살표 끝은 짓궂게도 길 밖을 가리키고 있었다. 2차선 아스팔트 도로 옆에 도랑이 보이고, 그곳을 넘으면 잔디밭으로 이어지는데 그 뒤에는 역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잠시 동안 길을 따라갈 것인지, 화살표를 따라갈 것인지 생각하다가 당연한 듯 길을 따라 걸었다. 한 달 7-8만 명이 지나간다는 길이 이렇게 뛰어넘어야 할 도랑으로 되어 있다고는 믿을 수 없었다. 주변에 아무도 없으니 물어볼 수도 없고, 요즘은 이런 화살표를 이용하여 길 주변의 상점 홍보도 한다고 하니, 길을 따라 걸으면 다른 표지판이 있지 않을까 싶었다.
채 20미터를 지나기도 전에 앞쪽 길의 안개가 구불구불 움직였다. 공포 영화에서나 보던, 화면에서 무언가가 튀어나오기 전에 나타나는 그런 움직임이었다. 두려운 마음에 그 자리에 그대로 얼어붙어서 온통 밝은 회색의 화면에서 튀어나오려는 것이 무엇인지 기다렸다. 주변 안개들이 뭉치고 뭉치더니 입체감이 생기고 그 안에서 걸음도 편치 않은 백발의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손을 잡고 천천히 걸어 나왔다. 하얀 안개가 뭉친듯한, 안개와 똑같은 색의 머리와 옷차림을 하고 천천히 다가오는 모습이 마치 서서히 뻗어오는 안개를 만나는 듯하다. 몇 시간 동안 보이지 않던 사람이, 더군다나 이 높은 곳까지 걸어 올라올 수 없을 것 같은 노부부가 안갯속을 미끄러지듯 지나치게 천천히 걸어오고 있었다. 더군다나 할아버지는 한쪽 다리마저 편치 않은 듯 지팡이를 짚고 절뚝거렸다. 흠칫 놀랐지만 다가가 말을 걸어보기로 한다.
산티아고? 산티아고?
문화적 자존심이 강한 프랑스, 게다가 이곳은 시골이다 보니 역시 영어는 통하지 않았고, 난 단지 내가 가고 있는 방향을 따라 가리키며 연신 “산티아고?”만을 반복할 뿐이다. 그제야 아니라고 손짓을 해 가며 따라오라고 한다. 결국 그 노부부를 따라 길 밖을 가리키고 있는 노란 화살표까지 되돌아갔다. 노부부는 노란 화살표를 가리키며 그쪽으로 가라고 한다. 순간 문득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바로 어제, 스스로 판단하지 않기로 한 그 결심을 나 스스로 깨고 있던 것이다. 이곳은 내 생각과 고집으로 판단할 수 있는 길이 아니었다. 화살표가 가리키는 곳이 있다면, 당연히 그곳으로 가야 했다. 의심은 나에게 아무 도움도 되지 못하고 결국 나 자신을 힘들게 만들었다. 눈앞의 사실을 보고도 믿을 수 없게 돼버린 내 안의 성벽이 더욱 견고하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노부부에게 감사하며 배낭끈을 양손으로 튼튼하게 잡고 도랑 밖을 향해 펄쩍 뛰었다.
발이 땅에 닿는 시간이 생각보다 무척 오래 걸렸다. 도랑을 뛰어넘는 순간 앞으로 발을 뻗어 나가며 등뒤에서 잡아당기던 배낭의 무게중심이 앞쪽으로 천천히 이동해 오는 것이 느껴졌다. 처음엔 내 의지로 뛰었지만 점차 배낭의 무게로 앞으로 밀려 나갔다. 그 짧은 시간 동안 발목이 이 무게를 견딜 수 있을지 걱정을 하게 됐다. 짙은 안개로 흐려진 시야를 통해 내려다본 바닥은 뿌연 공포를 느끼기에 충분했으며, 이 두려움이란 놈은 항상 보이지 않는 곳에서 시작돼 내 안에서 증폭됐다.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걱정할 때 특히 두려움은 기하급수적으로 커지지만 대부분의 것들은 시작과 동시에 사라져 버린다.
발이 살짝 닿기 시작했다. 푹신하다. 공기로 가득 찬 마른풀의 느낌이 좋다. 두발이 땅에 닿고 배낭의 무게가 몸을 통해 발로 전해졌다. 잠시였지만 내가 느꼈던 시간은, 시간과 공간의 장막을 뚫고 한참을 날아온 것처럼 느껴졌다.
이곳부터는 딱히 길이라고 불릴만한 곳이 없었다. 그나마 희미하게 보이는 약간의 공간에서 흐릿하게 풀과 나무가 보였고, 양의 울음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내 발조차도 흐린 안개로 덮여 있어서 깨끗하게 보이지 않는다. 공간이 사라져 버린 무(無)로부터 들려오는 양의 울음소리와 방울소리가 신비스럽다.
짙은 안갯속을 한참 걸으니 머리부터 발끝까지 축축했고, 짐은 더 무거워지고 배낭에 고인 습기는 물이 되어 흘렀다. 배낭에 걸쳐 놓은 빨래는 마치 물에서 바로 꺼낸 듯 축축했고 시커먼 민달팽이들은 안갯속 여기저기에서 날개도 없이 미끄러지듯 헤엄치며 움직였다. 등산 스틱보다 두 배는 굵은 민달팽이들은 마치 태평양 바닷가 여기저기 널려있던 검은 해삼을 닮았는데 마치 이 새롭고 신비로운 세계를 대표하는 생명체처럼 보인다.
피레네 산맥 위쪽으로 올라갈수록 나무와 풀의 종류도 빠르게 변했다. 난 단지 걷고 있는데 병렬로 늘어선 시간이 양쪽에서 빠르게, 혹은 느리게 지나가는 느낌이다. 걷는 동안에 이끼 가득한 고목들이 안갯속에서 잠시 나타났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어린 시절 들어왔던 백설공주, 헨젤과 그레텔 같은 신비스러운 동화들이 사실일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들며 정신이 몽롱해지는 순간, 나무들이 빠르게 다가오며 방금 곁을 지나간 순례자가 갑자기 사라져 버렸다. 아, 이곳은 정말로 환상의 세계인가? 신들의 세계인가? 그토록 목을 죄여 왔던 현실에서의 시간은 수평으로 진행하는 다른 공간의 시간이 되어 버렸다. 모든 것이 신비롭고 이상하다. 시간과 공간이 뒤틀리며 다른 시공간으로 튕겨져 나와 걷고 있는 것 같았다. 걷는 중간중간에 어디선가 소와 말들의 방울소리가 들려와 잠깐씩 내가 살아있다는 것을 일깨워 줄 뿐이다. 헤엄을 치고 있는 것인지, 걷고 있는 것인지, 가만히 있는데 미끄러지는 것인지조차 구분이 가지 않는다.
노란 화살표와 방울소리, 그것이 유일하게 감각할 수 있는 것이고, 알아야만 하는 것이었다. 허우적거리며 삶을 살아도 앞으로 걷고 있었으며, 배낭은 현실에서 가져온 떼어낼 수 없는 처절한 실상의 잔존 같았다. 그것이 몸을 뒤로, 아래로 당기고 조금 빨리 가려고 하면 움직이는 방향으로 더욱 밀어내기 시작한다. 내 의지대로 걷는다기 보다 배낭의 무게가 쏠리는 곳으로 몸이 쏠리고, 움직이고,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이것은 욕심으로 인해 끝내는 버릴 수 없는 삶의 무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