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손수 비닐로 싼 교과서를 보았다. 그 순간, 오래 잊고 지내던 어떤 장면이 아주 또렷하게 되살아났다. 투명한 비닐 특유의 반질한 광택, 모서리를 접어 넣은 자리에 남는 팽팽한 긴장, 손톱 끝으로 눌러야만 겨우 자리를 잡던 접힌 선들. 그것은 단지 책을 보호하기 위한 얇은 막이 아니었다. 그 비닐에는 이상하리만치 오래된 시간의 냄새가 묻어 있었다. 새 학년이 시작되기 직전의 공기, 아직은 조금 큰 듯한 실내화, 반듯이 이름을 써넣은 준비물, 며칠은 얌전히 들여다보게 되는 새 교과서의 종이 냄새. 나는 그 모든 것이 한 장의 투명한 비닐에서 다시 걸어 나오는 것을 보았다.
어릴 적 새 학기가 되면 어머니들은 교과서를 비닐로 싸 주셨다. 문방구에서는 그 비닐을 몇 장씩 잘라 팔았다. 나중에는 교과서 겉장에 쉽게 끼울 수 있도록 만들어진 완제품도 있었지만, 내가 오래 기억하는 것은 여전히 손으로 자르고, 대고, 접고, 맞추던 방식이다. 그 일은 생각보다 손이 많이 갔다. 비닐이 너무 짧으면 책 모서리가 드러났고, 너무 길면 접힌 부분이 울었다. 조금만 성급해도 비뚤어졌고, 조금만 힘이 과해도 자국이 남았다. 그러니 그것은 단순한 포장이 아니라, 시간을 들여야만 가능한 일이었다. 누군가를 위해 자기 시간을 조용히 내어놓는 일.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내가 기억하는 것은 비닐이 아니라 그 시간을 기꺼이 내어주던 어른의 자세인지도 모르겠다.
나의 어머니는 공부에 큰 뜻이 없는 아들이라도 배움을 소중히 여기며 자라기를 바라셨던 것 같다. 어린 마음에는 그것이 잔소리로만 들릴 때가 많았다. 책상 앞에 오래 앉아 있지 못했고, 교과서보다 바깥의 소리와 운동장의 먼지에 더 쉽게 마음을 빼앗기곤 했으니, 어머니의 수고를 다 이해했을 리 없다. 그러나 지금 돌아보면, 어머니가 교과서를 싸던 손길은 성적을 올리려는 조급함보다 훨씬 느리고 깊은 종류의 바람에 가까웠다. “공부를 잘해라”라는 말보다 먼저 “배우는 일을 함부로 여기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마음. 책을 조심히 다루는 일에서부터 세상을 대하는 태도를 배우기를 바랐던 마음. 어쩌면 어머니는 아들의 의욕보다는 시간을 더 믿으셨는지도 모른다. 오늘 당장 달라지지 않더라도, 이런 손길들이 사람 속에 천천히 남는다는 것을.
새 학기 새 교실에 가면 손수 비닐을 자르고 솜씨 좋게 포장된 책을 가져온 아이들이 제법 있었다. 책마다 비닐을 씌운 방식이 조금씩 달랐다. 어떤 집은 모서리가 칼로 잰 듯 반듯했고, 어떤 집은 가장자리가 둥글고 부드러웠다. 누구네 어머니는 책 등을 유난히 정갈하게 처리했고, 누구네 아버지는 투박하지만 튼튼하게 붙여 놓았다는 것이 눈에 보이기도 했다. 어린아이들은 그런 차이를 말로 설명하지 못했지만, 묘하게 알아보았다. 책을 보면 그 집의 손길이 조금 보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교과서는 단지 학교가 나누어 준 물건이 아니었다. 집에서 한 번 더 만져지고, 한 번 더 단정해진 뒤에야 교실로 들어오는 물건이었다. 학교와 가정 사이를 건너오며 한 번 더 마음을 입는 셈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 시절의 많은 물건들은 그냥 주어지지 않았다. 연필에는 이름표를 붙였고, 실내화 주머니에는 자수를 놓거나 리본을 달았다. 도시락통에는 헝겊 주머니가 있었고, 새 공책에는 삐뚤빼뚤한 글씨로 과목명이 적혔다. 가방 손잡이가 해지면 천을 덧대었고, 옷에 단추가 떨어지면 같은 색실을 찾아 다시 달았다. 물건은 쓰고 버리는 것이기 전에 돌보고 지켜야 하는 것이었다. 아이들은 그 속에서 자랐다. 정확한 말을 배우지 못한 나이에도, 무언가가 나에게 오기까지 누군가의 손이 먼저 닿아 있었다는 사실을 몸으로 배웠다. 그것은 훈계보다 더 오래 남는 교육이었다. 사물을 함부로 대하지 않는 습관, 그리고 나를 위해 누군가 시간을 썼다는 감각 말이다.
가끔은 백화점도 아닌 동네 가게에서, 점원인지 주인인지 모를 사람이 포장지를 곱게 접어 선물을 싸 주는 모습을 보곤 했다. 그 손놀림에는 이상한 품위가 있었다. 포장지는 한 번 접힐 때마다 의미를 얻었고, 리본은 단지 묶이는 것이 아니라 모양을 갖추었다. 어떤 사람은 테이프를 거의 보이지 않게 붙였고, 어떤 사람은 가위를 미끄러뜨려 리본 끝을 우아하게 말아 올렸다. 어린 나는 그것을 작은 묘기처럼 바라보았다. 하지만 지금 생각하면 그 묘기의 핵심은 기술만이 아니었다. 그것을 건네받을 사람을 잠시 상상하는 태도, 그래서 마지막 모서리 하나까지 허투루 두지 않으려는 마음이 그 안에 있었다. 포장을 마친 뒤 자신도 모르게 지어 보이던 그 뿌듯한 표정은, 아마도 일을 잘 끝낸 만족감이면서 동시에 보이지 않는 마음 하나를 제대로 전달했다는 안도감이었을 것이다.
무엇인가를 정성스럽게 싼다는 것은, 마음을 싸는 것과도 같다. 겉을 가리는 일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바람을 형태로 만드는 일에 가깝다. 아이가 펼쳐 볼 교과서에 비닐을 씌우는 일은, 책이 더러워지지 않기를 바라는 실용적 행동일 수 있다. 그러나 거기에서 멈추지 않는다. 그 손길은 아이에게 건네는 무언의 말이 된다. 새 학기를 잘 시작했으면 좋겠다. 이 책을 오래 아끼며 보았으면 좋겠다. 배우는 일을 하찮게 여기지 않았으면 좋겠다. 실은 사람은 말보다 먼저 손으로 마음을 전할 때가 많다. 밥을 차리는 일, 옷깃을 여며 주는 일, 단추를 다시 다는 일, 구겨진 이름표를 반듯하게 붙이는 일. 사랑은 대개 거창한 선언보다 이런 사소한 정리에 더 자주 깃든다.
어린 시절의 나는 그런 마음을 곧장 읽지 못했다. 오히려 비닐을 씌운 책이 조금 촌스럽다고 느낀 적도 있었고, 시간이 지나 비닐 안쪽에 먼지가 들어가 울어 보이면 괜히 지저분하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친구들 앞에서 어머니의 정성을 곧바로 자랑스럽게 여길 만큼 성숙하지도 않았다. 아이란 원래 그렇다. 자기를 둘러싼 사랑을 대개 너무 가까이에서 받아서, 그것이 사랑인 줄 모른 채 지나간다. 공기처럼 늘 곁에 있기 때문이다. 없어질 때까지는 그 값어치를 잘 모른다. 그래서 어른이 된다는 것은 새로운 것을 많이 아는 일이기도 하지만, 오래전 이미 받았던 것을 뒤늦게 알아보는 일이기도 하다. 예전에는 당연하다고 여겼던 것들이, 실은 누구의 시간과 손길과 인내 위에 놓여 있었다는 사실을 한참 뒤에야 깨닫는 일 말이다.
최근 내가 본 그 교과서는 그래서 단순한 교과서가 아니었다. 누군가 여전히 손으로 자르고 맞추고 접어서 비닐을 씌운 책이라는 사실이 내 마음을 오래 붙들었다. 여전히 그렇게 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 아직도 새 학기를 맞는 아이의 책에 몇 분, 몇십 분의 시간을 기꺼이 들이는 어른이 있다는 것. 그것은 오래된 풍경의 재현이면서 동시에, 세상이 완전히 달라진 것만은 아니라는 조용한 증거처럼 느껴졌다. 우리는 점점 더 빠르고 편한 방식에 익숙해졌다. 포장은 이미 완성된 채 오고, 책은 전자기기 안으로 들어가며, 많은 일들이 손을 거치지 않고도 처리된다. 그것이 나쁘다는 말은 아니다. 다만 편리함이 정성을 대신할 수는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빠르게 전달되는 것과 깊게 전해지는 것은 서로 다른 문제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사람은 자신이 받은 방식대로 마음을 기억하는지도 모른다. 누군가는 따뜻한 밥 한 그릇으로, 누군가는 늦은 밤 현관 불빛으로, 누군가는 다림질된 셔츠의 주름 없는 소매로 사랑을 기억한다. 내게는 한동안 그것이 잘 떠오르지 않았는데, 최근 손수 비닐로 싼 교과서 한 권이 오래 잠들어 있던 기억을 깨웠다. 그러고 보니 내 어린 시절에도 그런 방식으로 전해진 마음이 많았다. 크기가 맞지 않는 체육복 바지를 접어 박음질해 두던 손, 우산 끝이 망가지면 새로 묶어 주던 실, 공책 첫 장에 이름을 또박또박 적어 주던 글씨. 삶은 그렇게 거창하지 않은 수고들로 우리를 키운다. 우리는 대개 그것을 다 지나온 뒤에야 안다.
이제는 나도 누군가의 새 출발을 지켜보는 나이가 되었다. 아이들이 새 교실로 들어가고, 새 책을 받고, 자기보다 조금 큰 시간 앞에 서는 모습을 볼 때면 문득 마음이 조용해진다. 배움이라는 것은 결국 많은 내용을 아는 일에만 있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나의 책을 어떻게 펼치는가, 하나의 물건을 어떻게 다루는가, 나를 위해 준비된 것을 어떤 마음으로 받는가 하는 데에도 배움은 있다. 그래서 누군가 교과서를 비닐로 싸는 일은 사소해 보여도 결코 사소하지 않다. 그것은 “공부해라”보다 먼저 “배움은 귀한 것이다”라고 말하는 방식이다. 손끝으로 가르치는 예의이고, 침묵으로 건네는 가치다.
나는 이제야 조금 알 것도 같다. 어머니가 싸 주신 것은 교과서만이 아니었다. 그 안에 담길 시간까지 함께 싸 주신 것이었다. 쉽게 해지지 말라고, 함부로 다루어지지 말라고, 시작하는 마음이 오래가기를 바라는 뜻으로 책의 겉을 감싸 주셨던 것이다. 그러니 그 투명한 비닐은 차가운 막이 아니라, 오래전 어머니가 건네신 가장 조용한 체온 같은 것이었다. 말로는 다 전해지지 않는 바람들이 그렇게 얇고 반짝이는 모양을 하고 내 곁에 와 있었던 것이다.
최근 손수 비닐로 싼 교과서를 보며 나는 오래 전의 새 학기를 다시 만났다. 그리고 조금 늦었지만, 그때 내 곁에 있었던 마음의 정체를 알아보았다. 무엇인가를 정성껏 싼다는 것은 단지 겉을 보호하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쉽게 상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을 싸는 일이고, 오래 귀하게 남기를 바라는 소망을 싸는 일이다. 결국 사람은 그렇게 서로를 감싸며 살아간다. 비닐로, 천으로, 포장지로, 때로는 아무 말 없는 손길로. 그러니 오래전 교과서 위의 투명한 비닐은 단순한 학용품이 아니라, 한 아이의 새 계절을 향해 어머니가 조용히 입혀 준 마음의 겉장이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