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른 종류의 대화
고등학교 1학년 때 담임 선생님은, 소위 말하는 괴짜에 가까운 분이었다.
이상한 말을 하거나 기행을 일삼는다는 뜻은 아니었다. 다만 어딘가 기이한 구석이 있었다. 말투나 표정보다는 몸을 쓰는 방식에서 그런 느낌이 더 강했다. 소풍 날이면 대개 선생님들은 아이들을 한데 모아 놓고 기념사진을 찍어 주거나, 김밥을 먹는 아이들 곁을 어슬렁거리며 잘 지내는지 살피는 법인데, 그 선생님은 그러는 쪽이 아니었다. 카메라를 들고 오기는 했지만 그것은 학급의 소풍을 기록하기 위한 기계라기보다, 본인의 출사를 위해 챙겨 온 장비에 가까워 보였다. 전문가나 쓸 법한 카메라를 손에 쥐고 몸을 약간 구부정하게 낮춘 채 파인더를 들여다보던 모습이 아직도 남아 있다. 구도라도 잡는 듯 허리를 꺾고, 사람들이 잘 보지 않는 방향으로 렌즈를 들이대며 셔터를 누르던 자세는 어린 눈에 보아도 분명 이상했다. 그날의 소풍은 과천에 있는 미술관이었다. 미술관의 넓은 마당과 조금 높은 하늘, 그리고 어디까지가 소풍이고 어디부터가 그 선생님의 개인적인 시간인지 알 수 없는 장면이 희미한 사진처럼 아직 기억 속에 남아 있다.
이상한 것은, 그렇게 괴짜처럼 보이던 그 선생님을 다른 과목 선생님들은 늘 훌륭한 분이라고 말했다는 점이다. 가끔 다른 선생님이 교실에 들어와 잡담처럼 말을 꺼내다가도 담임 이야기가 나오면, 너희 담임 선생님은 정말 대단한 분이라고, 배울 것이 많은 분이라고, 그런 식의 말을 몇 번이나 들었던 것 같다. 어린 학생이던 나는 그 말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다. 내 눈에 보이는 것은 늘 약간 비껴 있는 사람, 우리를 바라보면서도 어딘가 다른 데를 같이 보고 있는 사람, 가까이 있는데도 쉽게 설명되지 않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누군가에게 훌륭하다는 말은 보통 친절하거나 열정적이거나, 적어도 알아보기 쉽게 모범적인 사람에게 붙는 줄 알았는데, 그 선생님은 그런 종류와는 거리가 있어 보였다. 그래서 나는 어쩌면 다른 선생님들의 찬사와 내가 보는 인상 사이의 간극을, 선생님이라는 세계가 본래 그런 것이라고 생각하며 넘겼는지도 모르겠다.
고등학교에 입학할 때의 나는, 적어도 겉으로는 기대를 받을 만한 학생이었다. 성적도 나쁘지 않았고, 집에서는 물론이고 학교에서도 어느 정도는 잘할 것이라는 전망을 나에게 걸고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그런 기대라는 것은 대개 내가 그것을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인가와는 별개로 주어진다. 나는 들어갈 때의 성적만큼 오래 버티지 못했다. 고등학교 1학년의 시간은 생각보다 빠르게 흘렀고, 처음의 반짝이던 숫자들은 점점 나를 설명해 주지 못하는 것이 되었다. 선생님과 부모님의 기대가 천천히 실망으로 바뀌는 과정이란, 대개 큰 사건으로 찾아오지 않는다. 오히려 별일 아닌 하루들 속에서 조용히 스며든다. 질문을 받았을 때의 표정 하나, 생활기록부를 적는 듯한 시선 하나, 성적표를 건네받는 공기의 무게 같은 것들 속에서 사람은 자기가 어떤 학생으로 읽히고 있는지를 어렴풋이 알게 된다. 나 역시 그 선생님이 점점 나를 더 이상 애쓰지 않는 학생, 처음의 가능성을 스스로 허비하는 쪽으로 기울어 가는 학생으로 보고 있다고 느꼈다. 정말 그랬는지는 지금도 확언할 수 없지만, 당시의 나는 그렇게 받아들였다. 어쩌면 우리는 실제보다도, 타인의 시선이 우리를 어떻게 규정하고 있을지를 상상하면서 더 깊이 상처받는지도 모른다.
그 시절의 나는 겉으로 보이는 것보다 훨씬 더 복잡한 마음으로 학교를 다녔다. 고등학생이라는 나이는 아직 아무것도 이룬 것이 없으면서도, 언젠가 무언가를 이룰 수 있으리라는 막연한 확신만은 크던 때다. 희망과 도전, 극복 같은 말을 진지하게 믿기도 했고, 실제로는 그렇지 못하면서도 스스로를 어떤 이야기의 주인공처럼 상상하곤 했다. 지나고 보니 그것은 젊음의 순진함이자, 동시에 젊음이 가진 중요한 능력이었던 것 같다. 사람은 대개 자신을 조금 과장해서 믿을 수 있을 때 더 멀리 간다. 실제 실천이 따르지 않으면 공상에 지나지 않겠지만, 아무 신화도 품지 못한 사람은 오래 버티기 어렵다. 돌이켜보면 나는 그 무렵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보기보다, 조금은 신화적인 존재로 보고 싶어 했던 것 같다. 지금의 부족함은 언젠가 극복될 것이고, 지금의 초라함은 훗날 이야기로 바뀔 것이며, 지금 나를 알아보지 못하는 사람들은 나중에 다른 표정으로 나를 보게 되리라는 식의 막연한 상상을 마음 한구석에 품고 있었다. 그것이 성실로 이어진 날도 있었고, 그렇지 못한 날도 많았지만, 적어도 내 안에서는 그런 허황된 불꽃이 꺼지지 않고 있었다.
고3 때였다. 그날 나는 학교 4층 도서관 열람실에서 내려오고 있었다. 무엇을 읽고 있었는지, 그날의 공기가 어땠는지, 계단에 햇빛이 비쳤는지 같은 것은 선명하지 않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손에서 떨어진 워크맨과 카세트테이프의 감촉만은 아직 남아 있다. 손바닥에 얹혀 있던 것들이 미끄러지듯 떨어지면서 계단참 바닥에 흩어졌고, 몇 개의 테이프가 이리저리 굴러갔다. 그중 하나가 하필이면 고1 때 담임 선생님 앞으로 미끄러져 갔다. 우연은 종종 그저 우연인데도, 시간이 지나면 마치 준비된 장면처럼 보인다. 그날도 그랬다. 선생님은 바닥에 떨어진 테이프 하나를 집어 들었다. 잠깐 들여다보더니 약간 갸우뚱한 표정으로 내게 물었다.
“너 이런 것도 듣냐?”
그 테이프는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3번이었다. 선생님은 꾸짖는 것도 아니고, 칭찬하는 것도 아닌, 도무지 분류하기 어려운 표정으로 그것을 내게 건네주었다. 나는 그날 그 짧은 말과 그때의 표정을 오래 기억하게 되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한마디는 아주 작은 일이었다. 누군가는 그 정도의 일을 아예 기억하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어떤 순간은 사건의 크기와 상관없이 오래 남는다. 그 말은 묘하게 다른 종류의 질문처럼 느껴졌다. 평소 학교에서 오가는 말들, 성적과 생활태도와 진학에 관한 말들, 칭찬과 꾸중과 지적의 언어들과는 전혀 다른 어조였다. 마치 선생님이 내가 학교에서 보여 주던 얼굴 말고 다른 어떤 면을, 아주 잠깐 우연히 들여다본 것 같았다.
생각해 보면 그 선생님은 수업 중간에 가끔 오디오 이야기를 하곤 했다. 무슨 문맥에서 그런 말이 나왔는지는 모르겠지만, 마크레빈슨 오디오가 어쩌고 하는 이야기를 얼핏 들은 기억이 있다. 반 아이들 가운데 그 말을 알아듣거나 흥미를 보이던 아이는 거의 없었던 것 같다. 나 역시 그때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자세히 알았던 것은 아니지만, 이상하게도 그 낯선 이름은 귀에 남았다. 사람이 어떤 단어를 기억하는 이유는 뜻을 이해했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때로는 그 단어를 말하던 사람의 표정, 그것을 둘러싼 분위기, 나와는 무관해 보이는 세계가 잠깐 문을 열고 지나간 느낌 때문에 오래 남기도 한다. 마크레빈슨이라는 이름은 나에게 그런 식으로 남아 있었다. 그러니 계단 위에서 라흐마니노프 3번 테이프를 들고 “너 이런 것도 듣냐”라고 묻던 그 순간은, 어쩌면 갑작스러운 일이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서로 아무 관련이 없을 것 같던 두 세계가 그날 잠깐 포개졌던 것일 뿐이다. 공부하는 학생과 오디오 이야기를 하던 선생님, 성적표 속의 나와 음악을 듣는 나, 나태한 학생이라는 인상과 다른 종류의 취향을 가진 사람이라는 인상이 아주 잠깐 한 자리에 놓였던 것이다.
그 짧은 장면은 내게 일종의 균열처럼 남았다. 선생님은 나를 어떤 학생으로 보고 있었을까. 나는 그 선생님을 어떤 사람으로만 생각하고 있었을까. 사람은 타인을 쉽게 한 가지 인상으로 정리하지만, 정작 오래 기억나는 순간은 그 정리가 깨어지는 순간들이다. 나는 그 선생님을 괴짜 같고 멀게 느껴지는 사람으로만 받아들이고 있었고, 아마 선생님도 나를 기대를 저버린 학생, 혹은 성실함이 아쉬운 학생쯤으로 여겼을지 모른다. 그런데 라흐마니노프 3번이 적힌 카세트 한 장이 그 짧은 계단 위에서 서로의 오해를 완전히 풀지는 못하더라도, 적어도 잠깐 흔들어 놓았던 것이다. 우리는 꼭 친밀한 관계에서만 서로를 새롭게 발견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거의 스쳐 지나가는 관계에서, 아주 사소한 물건 하나 때문에 상대의 다른 면을 얼핏 보게 되는 경우가 더 오래 남는다.
졸업한 뒤 학교에 다시 간 적이 있다. 성적 결과를 확인하러 갔던 날이었다. 하교 시간이 가까워져 교문 쪽으로 학생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었고, 졸업한 지 얼마 되지 않은 학교는 익숙하면서도 이미 조금 낯설었다. 교문을 오가는 학생들의 움직임을 보고 있자니, 내가 저 무리 안에 속해 있던 시간이 불과 얼마 전인데도 벌써 한참 전 일처럼 느껴졌다. 학교라는 곳은 이상해서, 안에 있을 때는 하루가 좀처럼 가지 않는데 한 발 밖으로 나오면 시간 전체가 순식간에 뒤로 물러난다. 그렇게 어정쩡하게 서 있던 순간, 나는 다시 고1 때 담임 선생님을 마주쳤다.
선생님은 내 이름을 기억하고 계셨다. 그 사실만으로도 나는 조금 놀랐다. 졸업한 녀석이 학교엔 웬일이냐고, 선생님은 정말 궁금해하는 사람처럼 물으셨다. 형식적인 안부가 아니라 진짜 이유를 듣고 싶어하는 얼굴이었다. 나는 이런저런 연유로 다시 공부를 하게 되었고, 오늘 결과를 확인하러 학교에 왔다고 말씀드렸다. 선생님은 점수가 얼마나 나왔느냐고 물으셨다. 나는 잠깐 망설이다가, 제 꿈을 이루기에 부족하지 않은 점수라고 대답했다. 그렇게 말하자 선생님은 놀란 듯한 표정을 지으시더니, 잘해보라고 말씀하셨다. 그 말은 짧았지만 묘하게 무게가 있었다. 지나친 칭찬도 아니고, 감정이 과한 격려도 아니었는데, 이상하게도 그때 나는 그 선생님 앞에서 처음으로 조금 떳떳해진 기분을 느꼈다.
그것이 그 선생님을 본 마지막이었다. 이상하게도 나는 아직 그 장면을 꽤 또렷하게 기억한다. 하교하던 학생들의 소란, 교문 근처의 공기, 선생님의 얼굴, 그리고 나 자신의 목소리까지. 아마 내가 오래 붙들고 있는 것은 그 선생님이라는 인물 그 자체만은 아닐 것이다. 그 앞에서, 한때는 내가 제대로 애쓰지 않는 학생이라고 여겼을지도 모를 그 사람 앞에서, 나는 비로소 내 이야기를 조금 자랑스럽게 말할 수 있었다. 그것은 누군가를 이겼다는 기분과는 달랐다. 더 정확히 말하면, 오래전의 나를 겨우 따라잡은 기분에 가까웠다. 언젠가 다른 표정으로 나를 보게 될 것이라고 막연히 상상하던 어린 날의 허황된 신화가, 아주 작은 방식으로나마 현실에 닿는 순간이기도 했다.
이제 와 생각하면 그 선생님과 나는 길게 이야기해 본 적도 없고, 서로를 깊이 알았다고 할 만한 관계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분은 내 기억 속에 선명하게 남아 있다. 왜일까. 아마도 어떤 사람들은 우리 삶에 오래 머물러서가 아니라, 아주 짧은 순간 우리 안의 낯선 문을 열어 보이기 때문에 남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계단 위에서 라흐마니노프 3번 테이프를 건네주던 순간, 교문 앞에서 내 이름을 기억하고 다시 공부하게 된 사연을 묻던 순간, 그 짧은 두 장면은 내게 하나의 조용한 확신이 되었다. 사람은 타인에게 이미 정리된 존재로만 남는 것이 아니라는 것. 한 번의 실패나 한 시기의 성적으로 완전히 읽히고 마는 것이 아니라는 것. 때로는 아주 뜻밖의 순간에, 아주 사소한 물건 하나를 사이에 두고도, 사람은 다시 다른 얼굴로 보일 수 있다는 것.
생각해 보면 학창시절은 성적보다도 이런 장면들로 더 오래 남는다.
누가 몇 등을 했는지, 어느 시험에서 몇 점을 받았는지는 시간이 지나면 흐릿해진다. 그러나 누군가가 내게 건넨 이상한 한마디, 나를 다시 보게 만든 짧은 표정, 내가 스스로를 조금 다르게 느끼게 된 순간은 이상하리만치 오래 남는다. 우리는 교육을 흔히 결과와 순위로만 기억하려 하지만, 정작 사람을 바꾸는 것은 그런 것이 아닐 때가 많다. 한 사람의 말투, 어떤 장면의 공기, 설명되지 않는 짧은 대화 하나가 훨씬 오래 남아 뒤늦게 작용한다. 나에게 그 담임 선생님은 그런 의미에서 오래된 질문처럼 남아 있다. 왜 그날 그 말이 그렇게 오래 남았는지, 왜 나는 그분을 떠올릴 때 늘 계단과 교문을 함께 떠올리는지, 왜 시간이 한참 지난 뒤에도 여전히 그 장면을 마음속에서 만져 보게 되는지.
아마도 그 모든 것은 결국 타인에 대한 기억이면서 동시에, 한때의 나 자신에 대한 기억이기 때문일 것이다. 괴짜 같다고만 여겼던 선생님, 나를 제대로 보지 못한다고 생각했던 어른, 설명하기 어려운 취향을 흘려 말하던 사람. 그리고 기대를 지키지 못한 학생, 자기 자신을 조금 과장해서 믿던 아이, 라흐마니노프가 적힌 테이프를 주워 들던 소년. 그 둘이 계단에서 한 번, 교문에서 한 번 마주쳤다. 길지 않은 대화였지만, 그 안에는 서로를 처음부터 새로 이해하지는 못하더라도 적어도 잠깐 다른 얼굴로 바라보는 순간이 있었다. 아마 내가 오래 기억하는 것은 바로 그것일 것이다. 누군가와 깊이 가까워진 기억이 아니라, 오히려 멀리 있던 누군가와 아주 잠깐 다른 통로로 연결되었던 기억. 설명할 수는 없지만 분명히 있었던, 다른 종류의 대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