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한동안 취향이 인격의 다른 이름인 줄 알았다.
내가 좋아하는 문장은 조금 더 진실하고
내가 좋아하지 않는 문장은 조금 덜 진실하다고 그런 오만을 은근히 품고 살았다.
물론 그 생각을 입 밖으로 낸 적은 없다.
사람은 대개 예의 바른 얼굴로 편견을 품는다. 나 역시 그랬다. 어떤 사진은 너무 과해 보여서 싫었고 어떤 문장은 너무 쉽게 예뻐져서 오래 믿고 싶지 않았다. 나는 그것을 취향이라고 불렀지만 지나고 보니 그 안에는 안목인 척하는 얕은 자존심도 조금 섞여 있었다.
문제는 내가 얕보던 취향이 누군가에게는 다정하게 닿는다는 데 있었다. 내가 가볍다고 여긴 문장이 누군가를 위로하고 내가 과하다고 여긴 사진이 누군가의 마음에 오래 남는다는 사실은 생각보다 사람을 민망하게 만든다. 세상이 틀렸다고 생각한 것은 아니었다. 다만 내 취향이 늘 옳을 수는 없다는 사실이, 조금 자존심 상했을 뿐이다.
돌이켜보면 그때 시험대에 오른 것은 취향이 아니라 인격이었다.
무엇을 좋아하느냐보다 내가 좋아하지 않는 것을 얼마나 성급하게 낮추는지가 사람을 더 잘 드러냈다. 나는 한동안 취향이 고상하면 사람도 조금 고상해지는 줄 알았는데 꼭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 취향은 얼마든지 세련될 수 있지만 그 취향을 쥔 마음은 놀랄 만큼 옹졸할 수도 있었다.
그래서 이제는 취향보다 인격이 조금 더 어렵다고 생각한다.
좋은 것을 알아보는 일보다 내가 잘 모르는 아름다움 앞에서 함부로 웃지 않는 일이 더 어렵다. 취향은 생각보다 쉽게 사람을 우쭐하게 만들고 인격은 생각보다 자주 그 우쭐함을 들킨다. 그래서 나는 요즘 내 문장보다 내 표정을 먼저 의심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