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예술은 장(場)에서 피어난다 — 하이든·클림트·듀크 엘링턴
역사를 들여다보면,
문화가 꽃피우는 곳에는 언제나 장이 먼저 있었다.
사람들이 모이고, 감정이 움트고, 새로운 것이 태어나기 위한 공간.
장은 단순한 장소가 아니라,
그곳을 지키는 한 사람의 태도와 품격에서 시작되는 보이지 않는 기류다.
하이든, 클림트, 듀크 엘링턴.
서로 다른 시대를 살았지만,
이 세 사람은 공통적으로 시대가 머무는 장을 열어젖힌 인물들이었다.
18세기 오스트리아의 궁정은 규율로 가득한 공간이었다.
하지만 하이든은 그 안에서 자유에 가까운 장을 만들었다.
그가 남긴 교향곡 94번 ‘Surprise’의 유머,
혹은 현악 4중주 Op.33의 생기 넘치는 리듬은
그가 음악가들에게 어떤 분위기를 주었는지 잘 보여준다.
틀리면 헐뜯지 않고,
불안해하는 연주자에게 눈을 찡긋하며
“괜찮아, 다시 해보자”라는 무언의 격려를 건네던 사람.
그 품격 있는 태도가 바로 그의 장이었다.
모차르트가 하이든에게
“아버지처럼 사랑합니다”라고 고백하며 악보를 헌정한 것도 그 때문이다.
모차르트의 하이든 세트(Op.10) 현악 4중주는
하이든의 질서 위에서 천재가 춤추는 듯한 작품이다.
하이든의 장은 궁정이라는 폐쇄적 공간을
창조성과 따뜻함이 흐르는 음악의 집으로 바꾸어 놓았다.
그 장에서 고전주의는 비로소 꽃을 피웠다.
20세기 초 빈은 혼란과 혁신이 공존하던 도시였다.
클림트는 그 혼란 위에 황금의 장을 펼쳤다.
그의 대표작 〈유디트 I〉, 〈키스〉는
화려함과 절제가 동시에 살아 있는 세계다.
곡선의 흐름과 금박의 떨림, 인간 몸의 관능성이
서로 아름답게 긴장한다.
클림트의 실제 스튜디오는
늘 젊은 예술가들과 모델들로 북적였다고 한다.
그는 긴 시간 포즈를 취한 모델에게
초콜릿을 건네며 고맙다고 속삭였고,
그 조용한 다정함이
사람들을 그의 공간에 머무르게 했다.
에곤 쉴레가 포트폴리오를 들고 찾아왔을 때도
클림트는 잠시 보고 말한다.
“당신은 멀리 갈 사람입니다.”
그 한 문장으로 쉴레는 빈 미술계의 중심으로 들어왔다.
쉴레의 〈포옹〉, 〈자화상〉에서 느껴지는 날 선 감정과 절규는
클림트의 황금이 깔아놓은 장이 없었다면
그토록 빠르게 태어날 수 없었을 것이다.
클림트가 만든 장은
‘아름다움’이라는 오래된 틀을
감각의 혁명으로 바꾼 한 시대의 무대였다.
뉴욕의 밤, 재즈 클럽은 자유롭지만 혼란스러운 장소였다.
그러나 엘링턴은 그 공간에
전혀 다른 종류의 품격의 장을 만들었다.
그의 음악 〈Mood Indigo〉,
혹은 크리스마스 모음곡을 재즈화한 〈Nutcracker Suite〉를 들으면
그 품격의 결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엘링턴은 밴드원 한 명 한 명의 손을 잡고
“Tonight was beautiful, man.”
이라고 속삭이곤 했다.
그 말로 평생 엘링턴 곁을 떠나지 않은 연주자도 있었다.
젊은 빌리 스트레이혼이
〈Take the A Train〉 악보를 들고 찾아왔을 때,
엘링턴은 그것을 곧바로
오케스트라의 새로운 문을 여는 열쇠로 삼았다.
그 장에서 스트레이혼은
〈Lush Life〉와 같은 서정적인 명작을 남겼고,
재즈는 ‘고급예술’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엘링턴의 장은
혼란스럽던 도시의 음악을
절제된 품격과 우아함으로 이끄는
보이지 않는 손이었다.
하이든–모차르트,
클림트–쉴레,
엘링턴–스트레이혼.
세 시대의 예술은
한 명의 천재가 아니라
장을 열어준 대가 + 그 장을 건넌 젊은 천재
이 두 힘이 만나면서 비로소 완성되었다.
예술은 재능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예술은 장의 공기에서 시작된다.
따뜻한 장,
품격의 장,
자유의 장.
하이든의 음악, 클림트의 황금, 엘링턴의 재즈는
그 장이 얼마나 아름다울 수 있는지를
역사 속에 증명해주고 있다.
오늘 우리가 감탄하는 수많은 작품들은
결국 누군가가 조용히 펼쳐놓은
한 세계의 장(場) 위에서 자라난 꽃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