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 What, 이해되지 않는 사람들에 대하여

by 푸른책

고2 어느 체육 시간, 농구공이 바닥에 튀는 소리 사이로 나는 생애 두번째로 산 재즈 앨범을 품고 있었다.


So What.


도리안이니 모드니 하는 단어들이 이제야 손에 잡히기 시작한 때였다. 체육관 한쪽에 앉아 친구에게 그것을 설명하며, 새로 열린 문을 혼자 넘기기엔 벅찬 사람처럼 열을 올렸다.


대학에 와서는 또 다른 친구가 생겼다. 알토 색소폰을 연주하던 그는 음악을 두고 내기를 좋아했다. So What이 흐를 때면 솔로가 누구인지 맞혀보자고 했고, 콜트레인의 테너를 듣고도 끝까지 알토라고 우기곤 했다. 그러나 곧이어 등장하는 캐논볼 애덜리의 알토가 나오면 그는 어김없이 조용해졌다.


콜트레인은 모드의 내부를 질서 있게 걸어가고, 애덜리는 블루노트와 반음계적 흐름으로 리듬을 흔들었다. 같은 도리안 위에서도 서로 다른 문이 열렸다. 나는 그 차이를 경이롭게 느꼈지만, 그 친구는 음악이 신나지 않으면 음악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취향이 다르다는 이유로 종종 나를 비웃었다.


동아리 안에서도 잠시 그런 분위기가 있었다. 클래식은 대본 위주의 지루한 음악이라고 말하고, 모던 재즈만을 정통으로 여기며, 퓨전은 사생아 취급을 하던 시절이었다. 음악을 듣는 귀보다 음악을 나누는 선이 더 중요해진 자리였다.


그때 나는 최고참으로 조용히 말했다.


“좋은 작품은 장르를 구분하지 않아.”


술기운이 흐르던 공기 속에서 몇몇의 얼굴이 굳어가는 것이 보였다. 나는 공든 탑을 장난스레 흔든 아이처럼 보였을지도 모른다. 그들이 붙들고 있던 경계가 얼마나 좁은지, 그땐 알지 못했다.


그러나 So What이나 A Love Supreme 같은 앨범을 들으면 다른 세계가 열렸다. 몸이 먼저 반응하는 스윙과는 달랐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음악에서 춤을 추는 건 몸이 아니라 영혼이 아닐까.


현실의 나는 그대로였지만, 영혼은 다른 공간에서 조용히 움직이고 있었다. 빌리 할리데이의 절망적 목소리는 깊은 고독을 일깨웠고, 쳇 베이커의 허무한 음성은 세상의 가장 미세한 틈을 바라보게 했다.


성인이 된 뒤, 나는 한동안 담배를 태웠다. 한숨을 그대로 내쉴 수 없을 때 대신 연기를 내뿜었다. 연기 속에 실린 마음의 무게는 공기 중에서 조용히 흩어졌다. 그 누구의 감정도 건드리지 않은 채 사라지는 방식이, 그 시절의 나에게는 버틸 힘이 되었다.


살다 보면 이해되지 않는 사람을 만난다. 취향이 다르면 표정부터 굳고, 자기 기준에서 벗어나면 마음의 문을 닫아버리는 사람들. 음악이 서로 다른 세계를 잇는 다리라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나는 안다. 체육관에서 모드를 설명하던 고2의 나, 대학 시절 취향을 두고 부딪히던 나, 성인이 되어 조용히 연기를 내뿜던 나. 그 모든 시절을 지나며 나는 음악을 통해 조금씩 다른 세계로 옮겨가는 법을 배웠다.


같은 음계를 두고도
누군가는 직선으로 탐구하고,
누군가는 리듬으로 노래하고,
누군가는 아예 듣지 못한다.


중요한 건 취향의 같음이 아니라,
서로의 다름을 흥미롭게 바라볼 수 있는 마음이다.


오늘도 마일스의 첫 음이 들리면 나는 고2의 체육관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조용히 생각한다.


음악은 다름을 통해 완성되고,
사람도 그렇다면 얼마나 좋을까.

keyword
작가의 이전글푸른책의 음악노트 (18) 대가의 중력장(重力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