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천재의 서로 다른 사랑
지난여름, 오랜만에 예술의전당을 찾았다.
한참이나 무더웠던 날, 시원한 맥주 한 잔이 절로 생각날 만큼 열기가 대단했다.
그래도 좋은 벗과 함께라면 낯선 그림의 세계도 한결 가볍게 들어설 수 있었다.
며칠 전 바로 옆 화랑에서 뭉크전을 보고 왔지만
10분 만에 나올 수밖에 없었던 아쉬움이 손가락 끝에 남아 있었다.
그래서인지 오늘의 전시가 조금 더 기대되었다.
특히 이번 전시는 피카소와 동시대를 살았던 프랑스 화가, 베르나르 뷔페의 삶을 따라가는 전시였다.
뷔페는 1928년에 태어나 1999년까지 살았고,
피카소는 1881년에 태어나 1973년까지 살았다.
나이 차이는 거의 반세기지만,
뷔페가 파리 화단에 등장하던 1940~50년대에도 피카소는 여전히 거장이었다.
전쟁이 남긴 폐허 위에서
세계는 다시 제 모습을 어떻게 그릴 것인가를 고민하던 시기.
가난과 상실, 불안이 도시의 공기처럼 떠다니던 그때
예술가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세계에 응답했다.
피카소는 기존의 형태를 부수고 다시 조립하며
파괴 속에서 새로운 세계를 발견했다.
반면 뷔페는
가늘고 긴 선으로 인간의 고독을 응시하며
세상이 놓친 감정의 결을 하나하나 붙잡았다.
같은 시대를 살았지만
세계에 반응하는 방식은 전혀 달랐다.
그 차이가 오래전부터 나를 매혹해왔다.
전시실 첫 공간에서 나는 뷔페의 자화상과 마주했다.
그 앞에서 걸음을 멈추지 않을 수 없었다.
나이가 들수록
누군가에게 조언을 들을 기회는 줄어든다.
내가 하는 말은 늘어나도
내가 듣는 말은 점점 줄어든다.
그래서 어쩌면 스스로를 바라보는 시간도 함께 사라져가는 것인지 모른다.
그런데 뷔페의 자화상은
마치 “너는 요즘 어떤 얼굴로 살아가고 있느냐”고 조용히 묻고 있었다.
그림 자체도 좋았지만
전시의 구성은 마치 한 사람의 인생을 따라 걷는 듯한 흐름을 가지고 있었다.
예상보다 훨씬 더 깊고 흥미로운 전시였다.
뷔페의 인생을 따라가다 보면
누구나 마음에 오래 남기는 장면이 하나 있다.
1961년, 파리의 패션쇼 백스테이지.
젊은 천재 뷔페는 한 여인을 보는 순간 그대로 멈추었다.
아나벨.
그 순간 그는 자신을 지켜줄 단단한 무언가를 발견한 듯했다.
아나벨 역시 그날을 떠올리며 말했다.
“저 사람과 살게 되겠구나.”
처음부터 그렇게 느꼈다고.
그날 밤 뷔페는 아나벨의 얼굴을 스무 장 넘게 그렸다.
며칠 후 그림을 본 아나벨은 조용히 말했다.
“나는 이렇게 사랑받고 있다는 걸
처음 알았어요.”
젊은 두 사람의 사랑은
전후 프랑스의 어두운 공기 속에서 서로를 붙잡는 빛처럼 보였다.
뷔페는 이후 아나벨의 얼굴을 200점 넘게 남겼다.
그에게 아나벨은 뮤즈를 넘어
삶을 지켜주는 좌표였다.
뷔페는 예민했고, 상처를 잘 받았다.
비평가들의 혹평 앞에서 며칠씩 무너져 있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아나벨은 그의 곁을 지켰다.
“사람들이 뭐라 하든,
당신의 그림이 얼마나 진실한지 나는 매일 보고 있어요.”
그 말은 뷔페의 인생을 떠받친 문장이었다.
또한 그의 예술을 가장 깊숙이 이해하고 지켜준 손길이었다.
말년에 뷔페는 파킨슨병으로 더 이상 그림을 그릴 수 없게 되었고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며칠 뒤 아나벨도 그를 따라 떠났다.
그들의 결말은 신화처럼 조용하고 아름답다.
그와 대조적으로 피카소의 삶은
끝없이 타오르고 꺼지기를 반복하는 불꽃 같았다.
도라 마르, 마리 테레즈, 프랑수아즈 질로…
연인들은 그의 창작을 자극하는 연료였지만
그만큼 상처를 남기기도 했다.
피카소에게 사랑은 새로운 화풍을 여는 열쇠였지만
누군가에게는 소진의 과정이기도 했다.
예술은 혁신이었지만
사랑은 전쟁터 같았다.
전시의 말미에 다다랐을 때,
나는 한 장의 사진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전시 소개에서는 뷔페와 아나벨의 젊은 시절 모습이라고 안내되어 있었던 사진이었다.
두 사람은 한가로운 오후를 보내듯 나란히 앉아 있었고,
서로에게 기댄 채 흐르는 시간을 가만히 즐기는 듯 보였다.
젊음이 가지는 자연스러운 친밀함,
아무 말 없이도 이어지는 호흡이 그대로 스며 있는 장면이었다.
그런데 사진의 왼편, 창문 뒤편에서는
노년의 여인이 조용히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시선은 마치 다른 시간에서 흘러온 눈빛처럼 느껴졌다.
젊은 연인의 잔잔한 모습과
오랜 세월을 통과해온 듯한 노년의 표정이
한 화면 안에서 맞닿아 있었다.
그 대비는 설명할 수 없이 마음을 흔들었다.
젊음이 아름다워서가 아니라,
그 젊음을 바라보는 시선 속에
축복인지, 회상인지, 혹은 다 지나간 시간에 대한
조용한 안도가 담겨 있는 듯했기 때문이다.
잠시 동안 나는 그 자리에서 움직일 수 없었다.
사람의 생이라는 것은
이렇듯 서로 다른 시간이 한 장면 안에 포개지며
뜻밖의 울림을 만들어내는 것일지 모른다.
사랑이 시작되는 얼굴과,
사랑을 오래 지켜본 얼굴이
한 화면에서 서로를 비추는 순간.
그 장면은 전시의 마지막을 넘어
나에게 오래 남는 질문처럼 머물렀다.
그 여름날 뷔페의 자화상 앞에서
나는 아주 오랜만에 나 자신을 바라보았다.
누군가는 혁신으로,
누군가는 사랑으로
자신의 생을 완성한다.
“당신은 요즘 어떤 얼굴로 살아가고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