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 쓰는 재즈 히스토리] Milestone

8부|모던 재즈의 탄생

by 푸른책

비밥은 처음부터 중심을 자처하지 않았다. 오히려 비밥은 주변에서 시작되었고, 오래도록 중심으로 불리기를 거부당했다. 너무 빠르고, 너무 복잡하며, 너무 불친절하다는 이유에서였다. 춤을 출 수 없고, 따라 부르기 어렵고, 즉각적인 환호를 만들어내지도 못했다. 비밥은 늘 설명이 필요했고, 그 설명조차 음악을 듣기 전에는 잘 전달되지 않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드러난 사실은 분명해졌다. 비밥은 실패한 실험도, 일시적인 반항도 아니었다. 그것은 재즈가 더 이상 되돌아갈 수 없게 만든 기준이었다. 비밥 이후의 재즈는 이전과 같은 방식으로 연주될 수 없었고, 이전과 같은 이유로 존재할 수도 없었다. 비밥은 재즈를 바꾸기보다, 재즈가 무엇인지 다시 정의했다.

이 변화의 핵심은 소리 그 자체에 있지 않다. 비밥의 속도나 복잡함은 결과일 뿐이다. 중요한 것은 태도였다. 비밥은 연주자에게 묻는다. 지금 이 소리를 왜 선택했는가, 이 순간에 이 음을 내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리고 그 선택을 끝까지 감당할 수 있는가. 즉흥은 더 이상 흐름에 몸을 맡기는 일이 아니라, 판단의 연속이 된다. 비밥은 자유를 허락했지만, 동시에 그 자유를 책임지게 했다.



이 지점에서 재즈는 처음으로 자기 자신을 감상의 대상으로 삼는다. 이전의 재즈가 공간과 기능 속에서 존재했다면, 비밥 이후의 재즈는 듣는 행위 그 자체를 전제로 한다. 더 이상 음악은 춤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 흐르지 않고, 밤을 부드럽게 만들기 위해 머물지도 않는다. 재즈는 지금 이 소리를 끝까지 들어달라고 요구한다. 이 요구는 친절하지 않지만, 대신 진지하다.



비밥이 이런 기준을 세울 수 있었던 이유는, 그것이 개인의 기행이 아니라 집단적 합의로 굳어졌기 때문이다. 클럽에서 시작된 이 언어는 곧 음반으로 기록되었고, 평론의 대상이 되었으며, 젊은 음악가들이 반드시 통과해야 할 관문으로 자리 잡는다. 비밥은 더 이상 선택지가 아니라, 재즈를 연주하기 위해 거쳐야 할 기본 문법이 된다. 이 순간부터 재즈는 하나의 중심을 갖는다.



이 중심이 형성되는 과정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인물이 있다. 마일스 데이비스다. 그는 비밥을 발명한 사람이 아니었고, 가장 급진적인 언어를 구사한 연주자도 아니었다. 그러나 마일스는 비밥 이후의 재즈가 어떤 태도로 자신을 유지해야 하는지를 가장 정확하게 보여준 인물이다. 그는 비밥을 부정하지 않았고, 그렇다고 그 언어에 갇히지도 않았다. 대신 그는 비밥을 전제로 삼아, 그 이후를 질문했다.



마일스의 연주는 종종 덜 말하는 것처럼 들린다. 그의 소리는 과장되지 않고, 때로는 너무 적어서 불안해 보이기까지 한다. 그러나 이 결핍처럼 보이는 선택 속에는 분명한 판단이 있다. 그는 모든 것을 말하지 않아도 음악이 성립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한 음을 덜 불고, 한 박자를 늦추며, 완결을 미루는 선택. 이 태도는 재즈가 자기 자신을 어떻게 유지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에서 나온다.



이 지점에서 모던 재즈라는 개념이 형성된다. 모던 재즈는 특정한 소리나 스타일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기준의 문제다. 즉흥은 허용되지만 무책임하지 않고, 실험은 가능하지만 목적 없이 흩어지지 않는다. 연주자는 자신의 선택을 설명하지 않지만, 그 선택을 끝까지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이 기준은 명문화되지 않았지만, 이후 등장하는 모든 재즈 음악가들에게 묵시적인 전제가 된다.



모던 재즈는 개인의 음악이다. 그러나 이 개인성은 고립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더 치열한 대화를 요구한다. 각자의 소리가 명확해질수록, 그 소리들은 더 자주 부딪히고, 더 섬세한 균형을 필요로 한다. 모던 재즈는 이 균형 위에 서 있는 음악이다. 자유를 유지하기 위해 스스로를 끊임없이 점검하고, 무너지지 않기 위해 기준을 재확인한다.



이 중심이 세워졌기에, 이후의 재즈는 비로소 갈라질 수 있었다. 속도를 낮추는 선택도, 다시 몸의 리듬으로 돌아가는 선택도, 질서 자체를 의심하는 선택도 모두 이 기준을 전제로 한다. 중요한 것은, 그 어떤 선택도 비밥 이전으로 돌아가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모던 재즈는 재즈가 스스로에게 부여한 최소한의 조건이며, 이 조건을 통과하지 않은 음악은 더 이상 중심에 설 수 없게 된다.



비밥 이전의 재즈가 공동체의 합의 속에서 움직였다면, 모던 재즈는 개인의 판단 위에 서 있다. 그러나 이 판단은 독단이 아니라 윤리에 가깝다. 무엇을 말할 것인가보다, 어떻게 말할 것인가가 중요해진다. 이 음악은 더 이상 자신을 변명하지 않는다. 대신 연주를 통해 묻고,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을 소리로 남긴다.



그래서 모던 재즈의 탄생은 완성의 순간이 아니다. 그것은 약속에 가깝다. 재즈는 더 이상 장식으로 남지 않겠다는 약속, 듣는 이를 존중하되 쉽게 소비되지는 않겠다는 약속, 그리고 무엇보다 자기 언어에 대해 끝까지 책임지겠다는 약속이다. 이 약속 이후의 재즈는 다시 여러 갈래로 나뉘지만, 그 모든 길은 이 기준을 공유한다.

비밥은 재즈를 어렵게 만든 음악이 아니다. 비밥은 재즈가 더 이상 쉽게 소비되기를 거부한 순간이며, 모던 재즈는 그 거부가 제도와 관습으로 굳어진 상태다. 이 상태에서 재즈는 다시 질문할 수 있게 된다. 얼마나 멀리 갈 것인가, 얼마나 낮은 속도로 말할 수 있는가, 그리고 그 말은 누구에게 닿아야 하는가.



다음 글에서는 이 중심 위에서 등장하는 첫 번째 대답을 따라간다. 비밥의 밀도를 유지하되, 속도를 낮추고 여백을 선택한 음악. 모던 재즈의 기준을 공유하면서도, 다른 호흡으로 말하기를 선택한 사람들. 재즈는 이제 하나의 중심을 갖게 되었고, 그 중심은 곧 서로 다른 길을 만들어내기 시작한다.



— 〈새로 쓰는 재즈 히스토리〉 9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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