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 쓰는 재즈 히스토리] 개와 늑대의 시간

12부 허물을 벗기 시작한, 이름 없는 음악들

by 푸른책

모달은 어떤 음악의 이름이기 이전에 하나의 징후였다. 그것은 새로운 규칙을 제시했다기보다, 이전의 규칙이 더 이상 모든 것을 감당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드러냈다. 화성의 이동이 느려지고, 머무를 수 있는 시간이 길어졌을 때 재즈는 비로소 자기 자신을 둘러싼 세계를 다시 보게 된다. 그리고 그 세계는 단순하지 않았다. 하나의 방향으로 설명될 수 없었고, 하나의 목소리로 대표될 수도 없었다.



전쟁이 끝난 뒤의 세계는 겉으로 보기에는 정돈되어 있었다. 도시는 다시 세워졌고, 산업은 돌아갔으며, 사람들은 이전보다 더 많은 물건과 정보를 손에 넣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 풍요는 곧바로 확신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설명은 늘어났고, 선택지는 많아졌으며, 사람들은 더 자주 머뭇거리게 된다. 무엇이 옳은지보다는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가 더 중요해진다. 이 변화는 조용했고, 그래서 더 깊게 스며들었다.



재즈는 이런 공기를 예민하게 느끼는 음악이었다. 애초에 재즈는 완성된 체계가 아니라, 상황에 반응하며 만들어지는 언어였다. 그 언어는 늘 즉석에서 조정되었고, 연주자들의 선택 위에 서 있었다. 하지만 이 시점 이후, 그 선택의 무게가 달라진다. 이전에는 다음으로 넘어가는 솜씨가 중요했다면, 이제는 그 자리에 남아 있는 태도가 중요해진다. 얼마나 빠르게 움직이는가가 아니라, 어떤 방식으로 버티는가의 문제로 옮겨간다.



사람들이 음악을 대하는 방식도 달라지고 있었다. 재즈는 더 이상 특정한 밤, 특정한 장소에서만 울리는 소리가 아니었다. 소리는 남겨졌고, 반복되었으며, 언제든 다시 불려올 수 있었다. 음악은 순간의 사건이 아니라 기록이 된다. 이 변화는 연주자에게 자유를 주는 동시에, 묘한 불안을 남긴다. 즉각적인 반응이 사라진 자리에서, 음악은 혼자 남는다. 누군가의 몸짓이나 환호에 기대지 않고도 스스로 서 있어야 하는 상태. 이때 어떤 음악은 더 큰 소리로 자신을 주장하고, 어떤 음악은 오히려 말수를 줄인다.



청중 역시 하나의 얼굴을 잃는다. 이전에는 연주자가 비교적 분명한 상대를 떠올릴 수 있었다면, 이제는 그렇지 않다. 누가 듣고 있는지, 왜 듣고 있는지 확신할 수 없다. 음악은 더 많은 자리로 퍼지지만, 그만큼 관계는 느슨해진다. 이 느슨함은 어떤 이들에게는 해방이었고, 어떤 이들에게는 위기였다. 하나의 방식으로 모두를 만족시킬 수 없다는 사실은, 음악가들에게 선택을 요구한다.



이 선택의 순간에 재즈는 갈라지기 시작한다. 그러나 그 갈라짐은 갑작스러운 폭발이 아니었다. 그것은 오랫동안 쌓여 온 압력이 표면으로 드러난 결과였다. 같은 조건 위에서 서로 다른 결정을 내린 사람들, 같은 질문에 서로 다른 방식으로 답한 음악들. 중요한 것은 이 선택들이 서로를 부정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들은 단지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세계를 감당하려 했을 뿐이다.



어떤 음악은 더 직접적인 언어를 선택한다. 설명을 줄이고, 감정을 앞세우며, 소리를 통해 지금 이 순간을 밀어붙인다. 이 음악은 때로 거칠고, 때로 불안정하지만, 그만큼 즉각적이다. 말은 정제되지 않았고, 그래서 더 날것에 가깝다. 다른 음악은 반대로 형식을 붙잡는다. 소리를 배열하고, 구조를 시험하며, 음악이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는지를 탐색한다. 이 음악은 거리두기를 통해 세계를 바라보고, 그 거리에서 새로운 미학을 만든다.

또 다른 음악은 아예 방향을 바꾼다. 더 빠르게, 더 크게 가는 대신, 다른 리듬과 다른 시간의 감각을 받아들인다. 이 선택은 도피가 아니라 이동에 가깝다. 이전의 긴장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다른 태양 아래로 자리를 옮기는 것이다. 여기서 재즈는 처음으로 자신이 중심이 아닐 수도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인다. 주도권을 내려놓고, 대화의 한쪽으로 들어간다.



이 모든 움직임은 서로 충돌하기도 하고, 때로는 스쳐 지나간다. 그러나 그 충돌과 교차는 재즈를 약하게 만들지 않는다. 오히려 세계를 넓힌다. 하나의 중심이 사라진 자리에는 여러 개의 중심이 생긴다. 어떤 중심은 오래 남고, 어떤 중심은 잠시 빛나다 사라진다. 하지만 그 생멸의 과정 자체가 재즈의 일부가 된다. 이제 재즈는 완성되어야 할 무엇이 아니라, 계속해서 선택해야 할 무엇이 된다.



이 지점에서 재즈의 역사는 직선이 아니라 지형이 된다. 하나의 길이 아니라 여러 개의 길, 하나의 속도가 아니라 다양한 리듬. 어떤 길은 급하고, 어떤 길은 완만하며, 어떤 길은 서로 합류하고, 어떤 길은 끝내 만나지 않는다. 그러나 이 모든 길은 같은 곳에서 출발했다. 이전의 방식이 더 이상 충분하지 않다는 감각, 하나의 답으로는 세계를 설명할 수 없다는 체감에서.



이 분화는 혼란처럼 보일 수도 있다. 정리되지 않았고, 이름 붙이기 어려우며, 때로는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나 혼란은 항상 풍요의 다른 얼굴이다. 하나의 언어만 허용되는 세계보다, 여러 언어가 동시에 울리는 세계가 더 복잡하고, 더 살아 있다. 재즈는 이 시점 이후 그 복잡함을 감수하기로 선택한다. 단순해지는 대신 넓어지기를, 안전해지는 대신 위험해지기를 택한다.



강을 떠올려 보면 이해가 쉽다. 상류의 물길은 빠르고 또렷하다. 방향은 분명하고, 흐름은 단정하다. 그러나 하류로 갈수록 강은 넓어지고, 수량은 많아지며, 그 안에서 살아가는 생명은 다양해진다. 물길은 더 이상 하나가 아니고, 흐름은 느려지며, 대신 더 많은 것을 품는다. 재즈 역시 그 하류로 들어서고 있었다. 갈라졌기 때문에 사라지지 않았고, 넓어졌기 때문에 살아남았다.



이제부터 이어질 이야기들은 이 갈라진 물길들을 하나씩 따라가는 여정이 될 것이다. 어떤 흐름은 가장 큰 소리로 시대와 맞섰고, 어떤 흐름은 가장 먼 세계와 손을 잡았으며, 또 어떤 흐름은 가장 조용한 방식으로 음악의 태도를 바꾸었다. 이 모든 이야기는 재즈가 하나로 남지 않기로 결정한 그 순간에서 시작된다.



— 〈새로 쓰는 재즈 히스토리〉 13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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