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 쓰는 재즈 히스토리] Kind of blue

11부 화성에서 다시 선법으로

by 푸른책

화성에서 다시 선법으로

쿨은 재즈를 정리해 주었다. 소리는 배치되었고, 즉흥은 관리되었으며, 음악은 더 많은 자리로 이동할 수 있는 조건을 얻었다. 그러나 정리는 늘 다른 질문을 부른다. 정리된 세계에서는 무엇이 가능해지는가, 그리고 무엇이 불가능해지는가. 쿨이 하나의 태도로 굳어지는 순간, 재즈는 뜻밖의 한계를 만난다. 말이 너무 단정해졌고, 길은 너무 분명해졌다. 어디로 가야 하는지는 알겠는데, 그곳에 오래 머무를 수는 없다는 감각이 생긴다.



문제는 음색도 아니었고 속도도 아니었다. 더 뜨겁게, 더 차갑게 같은 선택지로는 더 이상 해결되지 않았다. 문제는 바닥이었다. 즉흥이 발을 딛고 서 있는 땅, 음악이 앞으로 나아갈 때마다 밟아야 하는 조건 자체가 점점 복잡해졌다는 감각이다. 재즈가 오랫동안 기대어 왔던 방식은 ‘이동’에 강했다. 다음으로 넘어가고, 또 다음으로 넘어가며, 작은 긴장들을 연쇄적으로 해결해 나가는 방식. 그 움직임이 재즈를 고급스럽게 만들었고, 재즈를 진지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 움직임은 동시에 재즈를 숨 가쁘게 만들었다. 말이 이어질수록, 숨은 더 가빠졌다.



그래서 모달 재즈는 ‘더 어려운 음악’으로 탄생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반대다. 재즈는 한 번 더 과감해진다. 더 밀어붙이는 대신, 더 단순해지기로 결정한다. 복잡한 이동을 줄이고, 그 대신 머무를 수 있는 땅을 만든다. 이때 “화성에서 다시 선법으로”라는 말은 시대착오적 구호가 아니라, 재즈가 자신을 살리기 위해 내린 현실적인 판단이 된다. 이동을 위한 규칙을 줄이고, 머무름을 위한 조건을 남기는 것. 즉흥이 어디로 가도 무너지지 않는 최소한의 바닥을 확보하는 것. 모달은 그 바닥을 마련하려는 시도였다.



이 선택의 중심에 다시 한 번 마일스 데이비스가 있다. 그는 늘 새로운 음을 발명한 사람이기보다, 음악이 발을 딛는 조건을 바꾼 사람이었다. 비밥이 도시가 되고, 쿨이 그 도시의 질서를 만들었다면, 모달은 그 도시의 지반 공사에 가깝다. 재즈가 더 멀리 가기 위해서는, 먼저 오래 서 있을 땅이 필요했다. 마일스는 그 땅을 찾았다기보다, 그 땅을 만들기로 결심한 사람이다.



그 결심이 단번에 내려진 것은 아니었다. 어떤 변화는 한 장의 음반으로 정리되지만, 실제로는 수많은 밤과 공연, 실패와 불만이 앞에 누적되어 있다. 음악가들은 점점 더 많은 음을 알아야 했고, 점점 더 빠르게 반응해야 했으며, 점점 더 완벽한 ‘움직임’을 요구받았다. 그 결과 재즈는 눈부시게 정교해졌지만, 동시에 어떤 연주자들에게는 숨이 막히는 세계가 되어갔다. 복잡함이 예술의 증거가 되는 순간, 단순함은 오히려 용기를 필요로 한다. 모달 재즈가 품고 있는 첫 번째 미학은 바로 그 용기다.



여기서 중요한 인물이 빌 에반스다. 빌 에반스는 소리를 크게 만들기보다, 소리 사이의 공간을 크게 만든 사람이다. 그의 피아노는 박자를 지배하지 않고, 박자 안에 숨어 있는 시간을 넓힌다. 그는 ‘진행’보다 ‘머무름’에 능한 음악가였다. 어쩌면 모달 재즈가 필요로 했던 것은 새로운 규칙이 아니라, 시간을 대하는 새로운 감각이었다. 빌 에반스의 연주는 그 감각을 이미 가지고 있었다. 음이 어디로 가는지를 묻기보다, 음이 지금 어디에 있는지를 오래 바라보게 만드는 힘. 모달이 태어나는 순간, 재즈는 그 힘을 필요로 했다.



또 한 사람, 이름은 자주 등장하지만 그 의미는 종종 오해되는 인물이 있다. 조지 러셀. 그의 이름은 대개 이론의 자리에서 호출된다. 그러나 이 연재에서 중요한 것은 개념의 설명이 아니라, 변화가 왜 필요했는가다. 조지 러셀은 재즈에게 ‘다른 길이 가능하다’는 상상력을 제공한 인물이다. 즉흥이 더 이상 이동의 기술에만 갇혀 있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 소리가 하나의 길을 따라 달리지 않고도 오래 머물 수 있다는 생각. 그 가능성은 누군가의 머릿속에서만 존재할 때는 아무 의미가 없지만, 마일스 같은 사람이 그것을 실제의 음악으로 옮길 때 비로소 역사적 사건이 된다.



그리고 마침내, 이 모든 감각이 한 자리에 모여 기록된 것이 Kind of Blue다. 이 음반을 ‘모달 재즈의 시작’이라고 말하는 것은 쉽다. 하지만 더 정확한 표현은 이것일 것이다. 이 음반은 재즈가 처음으로 ‘움직이는 법’이 아니라 ‘머무르는 법’을 정식으로 채택한 순간이다. 여기에는 대단한 설명이 필요하지 않다. 듣는 사람은 곧바로 알게 된다. 음악이 서두르지 않는다는 것, 그러나 느슨하지도 않다는 것. 소리가 적어졌는데, 세계가 더 넓어졌다는 것.



모달 재즈는 자유를 늘린 것이 아니다. 오히려 자유가 오래 남을 수 있도록 조건을 바꾼 것이다. 이동의 규칙이 줄어든 자리에, 선택의 무게가 생긴다. 이제 연주자는 다음으로 넘어가는 솜씨로 자신을 증명하지 않는다. 대신 한 자리에 머물며, 그 안에서 무엇을 끌어낼 수 있는지를 보여줘야 한다. 이것은 쉬워진 것이 아니라, 다른 종류의 어려움이다. 빠른 지능의 경쟁에서, 깊은 감각의 경쟁으로 옮겨간다.



그리고 이 변화는 곧 재즈의 다음 문제를 낳는다. 머무를 수 있게 된 음악은, 그 머무름을 어디까지 밀 수 있는가. 한 장소에 오래 서 있는 소리는, 결국 어떤 진실을 드러내게 되는가. 모달의 세계에서 재즈는 다시 한 번 자신을 시험하게 된다. 이번에는 속도가 아니라 시간으로, 기술이 아니라 감각으로.



다음 글에서는, 모달이 열어젖힌 이 긴 시간 속에서 재즈가 어떤 방향으로 갈라지기 시작하는지를 따라가려 한다. 어떤 이들은 더 깊이 들어가고, 어떤 이들은 더 크게 확장하며, 또 어떤 이들은 전혀 다른 소리를 향해 움직인다. 재즈는 이제 스타일이 아니라 시간으로 자신을 말하기 시작한다.



— 〈새로 쓰는 재즈 히스토리〉 12부에서 계속

keyword
작가의 이전글[새로 쓰는 재즈 히스토리] Bobcit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