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 쓰는 재즈 히스토리] Bobcity

10부 쿨의 탄생

by 푸른책

쿨 재즈의 탄생을 하나의 음악적 사건으로만 이해하는 것은 이 흐름을 지나치게 단순화한다. 그것은 특정한 리듬이나 음색, 혹은 템포의 문제가 아니라, 재즈가 스스로를 다루는 방식이 달라졌다는 신호에 가까웠다. 하드밥이 다시 뜨거워지기로 한 선택이었다면, 쿨은 거리를 선택한 태도였다. 감정을 버린 것이 아니라 감정에 휘둘리지 않기로 한 결정, 즉흥을 포기한 것이 아니라 즉흥이 모든 것을 지배하지 않도록 관리하기로 한 선택이었다.



이 변화의 중심에는 마일스 데이비스가 있다. 그는 쿨 재즈의 창시자라기보다, 모던 재즈의 조건을 다시 설정한 인물에 가깝다. 마일스는 언제나 하나의 스타일에 머무르지 않았다. 그가 관심을 가졌던 것은 결과가 아니라 환경이었고, 연주보다 조건이었다. 그는 “이렇게 연주하라”고 말하지 않았다. 대신 “이렇게 연주할 수밖에 없는 자리”를 만들었다.



비밥 이후 재즈는 이미 진지한 음악이 되었다. 더 이상 춤을 위한 배경으로 머물지 않았고, 소리 자체로 감상되기를 요구했다. 그러나 진지해진 음악은 곧 새로운 문제를 낳는다. 이 음악은 어디에서, 어떤 방식으로, 누구에게 닿아야 하는가. 하드밥은 이 질문에 정체성으로 응답했다. 다시 몸으로 돌아가고, 공동체의 온도를 끌어안으며, 음악을 삶의 높이로 되돌려 놓았다. 쿨 재즈는 이 질문을 사회적 조건의 문제로 끌어올린다. 이 음악이 더 오래, 더 넓은 자리에서도 살아남기 위해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하는가를 묻는다.



마일스는 비밥의 언어를 완전히 이해하고 있었지만, 그 언어에 자신을 묶지 않았다. 빠르고 복잡한 즉흥, 끝없이 밀어붙이는 솔로가 재즈의 유일한 미래라고 믿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그 밀도가 재즈를 다시 좁은 세계로 가두고 있다고 느꼈다. 그래서 그는 음을 줄이고, 속도를 낮추며, 소리와 소리 사이에 여백을 남기기 시작한다. 이 절제는 결핍이 아니라 통제였다. 그는 재즈에 숨을 고르는 법을 가르쳤다.



이 선택을 음악적으로 가능하게 만든 인물이 길 에반스다. 길 에반스는 연주자가 아니라 설계자였다. 그의 작업에서 재즈는 즉각적인 반응의 음악에서 구조를 전제로 한 사유의 음악으로 이동한다. 즉흥은 사라지지 않지만, 더 이상 모든 것을 집어삼키지 않는다. 소리는 서로를 덮지 않고, 각자의 위치에서 기능한다. 이 구조 속에서 재즈는 처음으로 ‘전체’를 갖는다.



이 흐름 속에서 등장한 작업이 흔히 Birth of the Cool로 불린다. 그러나 이 앨범은 하나의 스타일이 태어난 사건이라기보다, 재즈가 자신을 관리하는 새로운 방식을 시험한 기록에 가깝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차가움이 아니라 거리다. 감정을 밀어내는 대신 배치하고, 즉흥을 폭발시키는 대신 조율하는 방식. 재즈는 이 시점에서 처음으로 ‘어떻게 들릴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존재할 것인가’를 고민하기 시작한다.



쿨 재즈는 종종 ‘백인의 재즈’로 오해된다. 그러나 정확히 말하면, 그것은 인종의 문제가 아니라 환경의 문제였다. 클럽의 열기뿐 아니라 콘서트홀과 대학, 비평의 언어 속에서도 재즈가 유효하기 위해 필요한 태도에 대한 실험이었다. 이 실험은 외부의 시선에 대한 복종이 아니라, 재즈 내부의 자각에서 출발했다.



이 자각의 전사는 이미 한 세대 앞에서 등장한 바 있다. 조지 거쉬윈이다. 그는 재즈 연주자가 아니었지만, 대중의 언어와 예술의 언어가 반드시 분리되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가장 먼저 음악으로 던졌다. 쿨 재즈는 이 질문을 재즈 내부에서 다시 꺼내 든다. 이번에는 번역이 아니라 조건의 문제로서.



하드밥과 쿨 재즈는 서로 반대편에 서 있지만, 서로를 부정하지 않는다. 두 음악은 같은 질문을 다른 방식으로 감당한다. 하드밥이 “우리는 누구인가”를 묻는 음악이라면, 쿨 재즈는 “우리는 어떤 태도로 존재할 것인가”를 묻는다. 하나는 뜨거워짐으로써, 다른 하나는 절제함으로써 같은 문제에 응답했다.



마일스의 위대함은 여기에 있다. 그는 어느 쪽에도 완전히 머무르지 않는다. 하드밥의 열기를 이해하면서도 그 열기에 자신을 묶지 않았고, 쿨의 절제를 실험하면서도 그것을 최종 답으로 제시하지 않았다. 그는 언제나 한 발 앞에서 조건을 바꾸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는 특정 장르의 주인이 아니라, 장르가 작동하는 방식을 바꾼 인물로 남는다.



쿨의 탄생은 재즈가 안정되었다는 신호가 아니다. 그것은 재즈가 즉흥만으로 자신을 증명하지 않아도 되는 단계에 들어섰다는 선언이다. 이제 재즈는 소리뿐 아니라 태도로 말한다. 그러나 태도가 하나의 미학으로 굳어지는 순간, 또 다른 질문이 생겨난다. 이 거리는 언제까지 유효한가. 이 절제는 누구의 삶을 말하고 있는가.



그 질문은 곧, 다른 목소리에서 다시 울리기 시작한다.



— 〈새로 쓰는 재즈 히스토리〉 11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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