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부 프리 재즈와 아방가르드, 모든 소리가 음악이 되기까지
자유는 언제나 좋은 말처럼 들린다. 그러나 자유가 실제로 도착하는 순간은 대개 불편하다. 기준이 사라지고, 약속이 무너지고, 무엇을 붙잡아야 할지 알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1960년대의 재즈가 마주한 자유는 그런 종류였다. 그것은 해방이었지만 동시에 혼란이었고, 환희였지만 공포이기도 했다. 프리 재즈와 아방가르드는 이 자유가 만들어낸 소동의 기록이다.
비밥 이후 재즈는 이미 충분히 멀리 왔다. 음악은 사유의 대상이 되었고, 연주자는 단순한 연예인이 아니라 사고하는 존재로 받아들여지기 시작했다. 하드밥은 정체성을 붙잡았고, 모달 재즈는 구조를 최소화했다. 그러나 이 모든 선택 뒤에도 여전히 남아 있던 것이 있었다. 코드, 박자, 조성, 역할 분담. 한때 자유를 가능하게 했던 장치들이 이제는 자유를 가두는 틀처럼 느껴지기 시작한다.
질문은 단순해진다.
왜 아직도 묶여 있는가.
이 질문이 가장 급진적인 형태로 드러난 인물이 오넷 콜먼이다. 그의 음악은 기존의 재즈 언어로는 설명하기 어려웠다. 음정은 흔들렸고, 화성은 명확하지 않았으며, 연주자들은 같은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는 것처럼 들렸다. 많은 이들이 그것을 미완성, 무질서, 혹은 퇴행으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콜먼의 문제의식은 분명했다. 음악이 미리 정해진 약속을 지키느라 현재의 감각을 희생하고 있다면, 그 약속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프리 재즈는 기술의 결핍에서 나오지 않는다. 그것은 합의의 거부에서 시작된다. 즉흥은 더 이상 틀 안에서 허락된 자유가 아니다. 틀 자체를 연주 중에 다시 협상하는 과정이다. 누가 중심을 잡는지, 언제 멈추는지, 무엇이 전면으로 나오는지. 이 모든 것이 연주 중에 결정된다. 그래서 이 음악은 늘 불안정하다. 그러나 그 불안정성은 실패가 아니라, 현재에 머물고 있다는 증거다.
이 소동은 음악 내부의 문제만은 아니었다. 1960년대의 미국 사회는 이미 깊은 균열 속에 있었다. 거리에서는 평등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었고, 기존의 질서가 중립적이지 않다는 사실이 점점 분명해지고 있었다. 자유는 더 이상 추상적인 이상이 아니라, 구체적인 요구가 된다. 재즈가 질서를 의심하기 시작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음악 역시 사회와 같은 질문 앞에 서 있었기 때문이다. 누가 규칙을 만들었는가. 그 규칙은 누구를 보호해왔는가.
이 흐름은 미국 민권 운동과 같은 공기를 호흡한다. 프리 재즈는 이 운동의 선전 음악이 아니었지만, 같은 시대적 압력을 받았다. 설명보다 발화가 앞서고, 정돈보다 표출이 중요해진 시대. 음악은 더 이상 아름다움만으로 자신을 정당화할 수 없었다. 지금 여기의 진실에 닿고 있는가가 더 중요한 기준이 된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한 명의 작곡가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재즈의 세계와는 다른 자리에서, 그러나 같은 질문을 가장 먼저 던졌던 인물. 아르놀트 쇤베르크다. 그는 조성 음악이 더 이상 시대의 감각을 담아낼 수 없다고 느꼈다. 특정한 음이 중심이 되고, 다른 음들이 그를 따르는 구조는 이미 현실과 어긋나 있었다. 그래서 그는 모든 음을 동등하게 다루는 방식을 모색한다. 이 선택은 많은 이들에게 혼란과 반발을 불러왔다. 음악이 더 이상 아름다움을 보장하지 않게 되었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쇤베르크가 무질서를 추구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는 오히려 질서를 다시 세우려 했다. 다만 그 질서는 더 이상 귀에 익숙한 형태가 아니었다. 재즈의 프리 재즈와 아방가르드 역시 같은 지점에 서 있다. 이 음악들은 단순히 기존의 규칙을 부수는 데서 멈추지 않는다. 그들은 묻는다. 소리가 소리를 배척하던 시대는 끝나지 않았는가. 특정한 음, 특정한 화성, 특정한 리듬만이 음악으로 인정받아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프리 재즈가 던진 질문은 결국 원초적인 소리에 대한 탐구로 이어진다. 의미가 붙기 전의 소리, 기능이 부여되기 전의 소리. 숨소리, 마찰음, 비명에 가까운 음들. 이 소리들은 이전까지 음악의 바깥에 머물러 있었다. 그러나 이 시대의 재즈는 그 경계를 지운다. 모든 소리는 잠재적으로 음악이 될 수 있다는 선언. 이것은 기술적 선택이 아니라 세계관의 전환이다.
이 탐구를 또 다른 방식으로 밀어붙인 인물이 존 콜트레인이다. 그의 후기 작업에서 재즈는 더 이상 구조를 유지하려 하지 않는다. 연주는 길어지고, 밀도는 높아지며, 소리는 거의 수행의 영역에 들어선다. 그에게 즉흥은 표현이 아니라 도달하려는 상태에 가깝다. 후기의 콜트레인 음악에서 들리는 것은 분노만도, 해방만도 아니다. 그것은 모든 약속을 끊어낸 뒤에 남는 침묵과의 대면이다.
이 음악은 듣는 이에게도 쉽지 않다. 익숙한 기대가 작동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로 그 지점에서 재즈는 이전과 전혀 다른 깊이에 도달한다. 소리는 더 이상 기능을 수행하지 않고, 그 자체로 존재한다. 의미를 설명하지 않고, 경험을 요구한다. 이때 재즈는 처음으로 음악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정면으로 마주한다.
아방가르드 재즈는 이 질문을 더욱 사유적인 방향으로 밀어붙인다. 음악은 감정의 분출이 아니라 질문의 연속이 된다. 구조는 실험의 대상이 되고, 소리는 사건이 된다. 이 음악은 청중에게 친절하지 않다. 대신 청중을 공범으로 만든다. 이해하려는 순간, 이미 참여하고 있는 상태가 된다.
이 모든 소동은 재즈를 파괴하지 않았다. 오히려 재즈는 이 과정을 통해 자신이 무엇이 아닌지를 분명히 알게 된다. 재즈는 더 이상 하나의 규칙으로 정의될 수 없고, 하나의 미학으로 정리될 수도 없다. 그것은 선택의 집합이 된다. 어떤 음악가는 질서를 끝까지 밀어붙이고, 어떤 음악가는 질서를 부수며, 또 어떤 음악가는 질서를 떠난다.
프리 재즈와 아방가르드는 재즈의 종말이 아니다. 그것은 재즈가 처음으로 자기 자신을 의심한 사건이다. 이 의심은 혼란을 낳았고, 분열을 만들었으며, 많은 청중을 멀어지게 했다. 그러나 동시에 이 의심 덕분에 재즈는 살아남는다. 질문을 멈추지 않는 음악만이, 시대가 바뀌어도 계속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소리가 소리를 배척하던 시대에서, 모든 소리를 받아들이게 된 사건. 그것이 바로 이 시기의 재즈가 남긴 가장 큰 유산이다. 자유는 고요하게 도착하지 않았다. 그것은 소동으로, 불편함으로, 이해되지 않는 소리로 나타났다. 그러나 재즈는 그 공포를 피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선택 덕분에, 재즈는 다시 한 번 다른 길을 갈 수 있게 된다.
— 〈새로 쓰는 재즈 히스토리〉 15부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