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야기2) 위스콘신에서 텍사스까지

2089km의 여정

by JA

2089km


지난 7월 위스콘신 매디슨에서 텍사스 샌안토니오까지 운전한 거리이다.


부산에서 서울까지 거리가 325km, 부산에서 평양까지는 520km,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까지는 1948km 정도 되니 러시아에서 부산 정도의 거리를 운전해 이사한 것이다.


위도로 보자면 내가 살던 위스콘신 매디슨 근처 마을 맥팔랜드는 북위 43.01도로 실제 블라디보스토크 남쪽 지방 북위와 같고, 한반도 최북단 함경북도 온성군과도 맞먹으며 샌안토니오는 북위 29.42도로 한반도 최남단인 전라남도 해남군 송지면 송호리의 북위 34도보다도 낮다.

위스콘신 매디슨에서 텍사스 샌안토니오까지


구글맵은 위스콘신 매디슨에서 텍사스 샌안토니오까지 쉬지 않고 달리면 20시간이 걸린다고 했고, 남편은 그 거리를 이틀 만에 주파하고자 했다. 그는 성능 좋은 워키토키를 사서 내게 건네더니 운전하는 내내 대답하라 오버 오버를 반복하며 내가 어디까지 오고 있나 확인했고 몇 시간마다 어느 주유소에서 쉬고 기름을 넣어야 할지 계획하고 지시했다. 각각 서로의 차를 운전해야 했기에 첫날은 10시간이 넘게 운전을 했고, 둘째 날은 도저히 못하겠다 드러누워 9시간 정도 운전을 했다. 샌안토니오까지 2시간 정도를 남긴 오스틴에서 하루 자고 다음날 가볍게 샌안토니오에 도착했다. 그리고 남편에게 말했다.


언제나 말하지만 당신은 괜찮은 부하 직원 감이지만 절대 만나고 싶지 않은 상사야.


5년 전인 2019년 처음 켄터키에 와 이듬해 위스콘신까지 9시간 운전을 해 이사를 해야 했고 4년이 지난 후 또다시 남편의 직장을 따라 텍사스로 왔다. 말이 이사지, 아시아나 유럽이라면 몇 개국을 넘나드는 대대적 이주다. 4년 전 이미 켄터키에서 위스콘신까지 9시간에 이르는 이사를 해봤기에 사실 20시간 운전이 그리 어렵게 느껴지진 않았다. 하지만 이제 막 익숙해진 공간에서 벗어나 새로운 환경에서 다시 모든 것을 시작해야 한다는 것 자체가 나에게는 스트레스였다.


남편은 결혼할 때도 레지던트였는데 결혼 10년이 지난 후에도 레지던트여서, 만년 레지던트일 줄 알았지만 드디어 레지던트를 마치고 부검의 펠로십을 시작하더니 이번 9월 모든 과정을 끝내고 10월부터 텍사스 베어 카운티에서 부검의 일을 시작한다. (부검은 나무위키에 의하면 시신을 해부하여 사인을 알아내는 법의학의 한 갈래로 한국은 부검의 펠로십은 따로 없고 병리학을 전공한 사람이 부검의를 한다고 함) 미국에 와서 레지던트와 펠로십을 마치고 어찌 보면 제대로 잡는 첫 직장이기에 축하할 일이지만 남편만을 위해 한국에서부터 이사한 것을 따지자면 결혼 첫 집부터 7번째 이사기에 이제 좀 지친다.


감사하게도 나는 이사할 때마다 좋은 사람들을 만났고, 이웃사촌 같은 심리적 가족이 되었지만 곧 그들과 헤어져야 했다. 켄터키의 렉싱턴은 미국에서 가장 처음 살게 된 곳이라 더욱 애착이 강했는데 2020년 위스콘신으로 이사 오며 그분들과 헤어져야 했다. 당시는 코로나로 학교까지 셧다운 돼 사람들 만나기도 힘든 시기였다. 그때 은정 언니가 온라인으로 같이 운동을 해보자고 해서 줌으로 만나 일주일에 두 번 운동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박혜성 사모님이 줌운동에 참여하며 요가, 줌바, 국민체조 등을 같이 연습했다. 효진이, 준기 어머님, 홍선생님, 이상임 사모님까지 몇 년간 줌으로 잠깐씩이라도 얼굴을 보며 켄터키와 심리적으로 가까운 거리를 유지할 수 있었다. 특히 박혜성 사모님, 은정 언니, 수진 언니와는 매달 철학 줌 모임을 진행하며 켄터키에 있을 때보다 더 자주 볼 수 있었던 것 같다.

줌 철학 수다 모임 (박혜성 사모님, 나, 배은정 언니, 김수진 언니)



그렇게 줌으로 나마 그 끈을 잡고 있었다면 위스콘신 매디슨 친구들은 그런 것이 없어 아쉽다. 위스콘신에서 만난 친구 메이는 내가 간다고 본인 집에 모든 테니스 멤버를 초대해 굿바이 파티를 해줄 정도로 고마운 친구지만 이사 오고 나서 서로 바빠 아주 가끔씩 안부를 주고받는다. 이사할 때 짐 정리를 도와주던 골프 멤버 언니들, 테니스 멤버 언니들 도움만 받고 헤어진 것 같아 죄송하고 감사하다. 매주 목요일 같이하던 기도모임을 빙자한 점심만찬 모임도 그립다.


이사 와서 남편은 짐 정리 하나 못하고 펠로십을 하고 있는 인디애나폴리스로 돌아갔고 나 홀로 모든 집 정리를 시작했다. 아이 학교 수업 신청 및 조율, 잔디 관리, 1년에 한두 번 하는 나무 관리, 해충 관리, 에어덕트 교체 등등 일은 끝이 없었고 이 모든 것을 하는 와중에 샌안토니오에서 알게 된 은아 언니, 미카 언니의 도움을 받아 하나씩 천천히 처리해가고 있다. 하루는 자동차가 고장 나고 하루는 에어컨이 고장 난다. 하루는 바퀴벌레가 나오고 또 하루는 도마뱀이 나온다. 그저께는 말벌 둥지를 제거했는데, 어제는 뒷마당에 전갈이 나타나 줄행랑을 쳤다. 40도가 넘는 날이 계속되고 비가 오지 않아도 일주일에 스프링클러를 한 번만 틀어야 한다고 했다. 그렇지 않으면 경고가 오고 물이 끊길 수도 있다는 것을 이제는 알게 됐다. 텍사스 샌안토니오 사람들은 한국에서 가장 난도가 높다는 부산 시내처럼 운전한다는 것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텍사스에서는 가장 젠틀하게 운전하는 편이라는 것도 알게 됐다. 테니스 수업도 시작하고, 이사하느라 못하던 요가도 다시 시작하며 모든 것이 ‘정상화’되어가고 있는 기분이다. 텍사스에 오며 인생의 새로운 챕터를 시작하는 기분도 들었다. 켄터키 친구들과 계속하던 줌운동도 잠시 쉬기로 했다. 아이가 중학교 마지막 학년인 8학년을 시작하며 등하교 시간이 달라지기도 했고, 현재 나의 집과 생활에 좀 더 집중해 보는 연습을 하고 싶어졌다. 언제나 하는 고민이지만 나는 무엇을 하고 싶은지 앞으로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좀 더 진지하게 알아가 보고 싶다.


헤어짐은 언제나 아쉬움과 안타까움, 가슴 아련한 무언가를 남긴다. 그렇지만 그 속에는 그리움에 더해 다음에 다시 만나 느끼게 될 기쁨과 흥분을 담고 있다. 그에 비해 새로운 만남은 설레고, 기다려지고, 가볍고, 즐겁다. 그 만남이 반복되고 진지해지면 책임감과 익숙함이 생활의 안정감을 가져다준다. 이 모든 인연에 감사하고 소중함을 느끼며 텍사스에서 만나게 될 새로운 인연을 막연한 기대와 함께 기다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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