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넓고 깊은 사유)
천상천하유아독존이란 말이 생각났다. 개인의 존재는 내가 없으면 무용지물이니 그 존재감은 얼마나 숭고한가! 살아있는 생명은 유기체들의 총아다. 그중, 작은 미물에 불과한 나를 떠올리면 한없이 작아졌다가 우주의 질서 따라 태어난 나를 의식하면 유아독존이란 말은 어마어마한 무게로 다가온다. 그러니 한 생명이란 더없이 귀중하고, 그 개체들이 서로 공존하며 살아간다는 것은 얼마나 특별한 일일까.
그래서인지 인연이란 말을 좋아하고 자주 떠올린다. 모음으로 발음되는 단어의 어감이 혀를 스치며 부드럽게 목구멍을 타고 내려가 포근히 가슴에 안착하는 느낌이다. 주변 모든 것들과 만남들, 수많은 세월, 내가 나라고 명명하며 살아왔던 실존의 시간들. 그것은 우주의 신비로 피어난 소중한 인연의 합작품일 것이다. 한 송이 꽃을 피우기 위해서도 대지, 물, 바람, 햇빛 등 우주의 도움으로 새 생명을 키워내는 것 아닌가. 뭇 살아있는 존재들과 나와의 만남이 우주의 섭리처럼 각별하게 느껴져 내가 살아가는 세상이 아름답고 한없이 고마울 따름이다. 함께 한다는 것은 큰 축복 중 축복이다.
요즘 다문화 가정들을 주변에서 많이 보고 만난다. 그들을 볼 때마다 나를 둘러싼 환경이 저절로 머리에 스친다. 수십억 지구촌 식구들 중 한국에서 태어났고, 황인종으로, 누군가의 부모에 의해서, 지금까지 살아왔던 나의 뿌리가 떠오르면서. 저마다 인연 따라 규정되어진 삶을 살아가는 세상, 각양각색대로 구성원 틀을 형성해가고 있구나. 마치 수십억 유전인자가 제각각 타고난 운명을 숙명으로 당연히 받아들이듯. 하늘이 계획해서 점지해준 걸까. 가끔씩 모래알보다 작은 나를 떠올리며 공상에 잠겨본다. 조건 따라 살아가는 사람들 모습 속에 아등바등 대는 내 모습이 있었다. 마치 작은 나비 한 마리의 날갯짓처럼.
산골에서 농부의 딸로 태어났다. 한동안은 오지에서 태어난 것을 못마땅하게 여겨 ‘하필이면’을 곱씹으면서 원망하듯 보냈다. 번듯한 건물 하나 없이 낡은 초가지붕만 드문드문 있었고 사방은 온통 산과 평야가 끝없이 펼쳐져 있었으니까. 매일 만나는 것이 이러다보니 지겹기까지 했다. 다른 세상이 그리웠고 저 너머에는 아지랑이 꿈틀대듯 뭔가 손에 잡힐 것만 같았다. 기회가 되면 무지개 꿈을 찾아 어서 탈출하고 싶었다. 그저 물리적인 시간만 흘러가고 있었으니. 어떻게 하면 다른 삶을 살 수 있을지 한 생각만 집착하며 살았다. 새로운 세상을 동경하면서.
간절한 바람이 닿아서일까. 드디어 어린 시절 보냈던 고향을 등지고 서울로 왔다. 낯선 곳, 이질적인 문화에서 받은 충격으로 한동안 당황했다. 사람들도 나와는 다른 차원으로 느껴졌고 우선 외양만 봐도 내 차림새는 촌뜨기처럼 어색했다. 또 저들의 말씨는 어찌나 세련되어 보이던지. 도둑이 제 발 저리듯 스스로 위축되었다. 혼자서 짓고 부수는 생각으로 한동안 살았다. 마음이 잔뜩 움츠러들어서인지 몸 적응도 쉽지 않았다. 환경이 사고지배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한참 후에야 깨달았고 세월 따라 서서히 적응해갔다. 이 또한 내 존재를 살피면서 나를 찾아가는 여정이었다. 보는 만큼 아는 만큼 성장하고 성숙해가는 과정으로.
이즈음 직장과 결혼으로 내 삶의 전환기가 시작되었다. 단순하게 살아왔던 시골 정서에서 벗어나 도시 물결에 서서히 동화되어갔으니까. 모든 것은 시간이 말해주는 걸까. 삶은 거센 물살처럼 빠르게 흘러갔다. 나를 들여다볼 여유 없이 자식을 키우며 직장 다니느라 바둥대며 안간힘을 다해 살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몸이 서서히 지쳐가면서 마음도 허전했고 공허감이 엄습했다. 틈만 나면 나를 의식하기 시작했으니까. 이것이 내가 바라던 삶이었는가. 반복된 일상으로 보내는 하루 시간에 의심을 품으면서. 다람쥐 쳇바퀴 돌듯 크로노스 시간으로 흘러가는 것이 아닌가. 시골에서 탈피할 때처럼 스멀스멀 변신을 하고 싶었다. 새가 알을 깨고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가듯.
그동안 물리적으로 보냈던 세월들을 떠올려보았다. 나는 누구인가. 지금껏 무엇을 위해 매진해 왔는가. 이젠 자식들도 보금자리를 찾아 떠나 빈 둥지가 되었다. 이제야말로 진정 나를 찾는 값진 시간으로 보내야 한다. 그동안 무수한 시행착오의 경험들을 값진 교훈으로 여기면서. 살아온 날들보다 살아갈 시간도 짧지 않은가. 유아독존의 진정한 모습을 내 삶으로 끌어들여 대입해보았다. 유한한 인생을 그려보며.
어느 날 내 행동을 지켜보다가 깜짝 놀랐다. 변덕쟁이가 나란걸 알았으니까. 그토록 싫어하고 다시는 돌아가지 않을 시골을 그리워하고 있지 않은가. 나이 들어서일까. 하기야 수구지심(首丘之心)으로 여우도 죽을 땐 고향을 바라보고 그리워한다는데 나도 모르게 언젠가부터 서서히 향수가 발동되어 고향을 찾아가고 있었다. 초가지붕이 슬라브 지붕으로 바뀌었고 마을 길과 고향 인심도 많이 변했지만 변하지 않은 것은 자연이었다. 내 나이보다 많이 살아온 우리 집 배나무와 살구나무는 고목으로 버티면서 고향을 지키고 있었다. 순간 가슴이 뭉클했다. 이제야 찾아 왔냐고 나를 원망하듯 바라보는 것 같았다. 살구꽃과 배꽃은 온 마을을 춘심으로 설레게 해주었고 살구가 익을 때면 새벽마다 바구니 들고 땅에 떨어진 노란 열매를 주웠던 일이 스쳐갔다. 그것들은 내 어릴 적 시골 정서의 밑절미 되어서인지 나이가 들수록 그리움으로 사무치고 있었다.
지난 시간들을 뒤돌아보며 삶의 좌표를 떠올려보았다. 지금이야말로 홀로서기를 시도하며 나답게 살아야 할 시간이었다. 삶은 순간들의 총체이니 매 순간을 충실하게 보내야 함을 재인식하면서 말이다. 어제 하루들이 머리에 스쳐갔다. 독서를 했고, 지인들과의 살가운 통화로 교감을 나눴고, 인문학 강의를 들었다. 배움은 죽을 때까지 절실하게 필요하구나. 요즘 날이 갈수록 새록새록 피부에 와 닿았다. 공공기관에서 평생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그곳에 의식이 깨어있는 사람이 몰리는 이유도 같은 맥락이리라.
일상의 하루들, 나의 시야를 넓고 깊게 확장하며 살아가는 일에 매진해야겠다. 이 길이 내가 찾고자 하는 진정한 여정이기에. 오늘은 흔하디흔한 문자 하나 오지 않았다. 이런 날도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나에게 더욱 집중할 수 있는 사유의 시간이 주어진 기회로 받아들였다. 거울에 비친 또 한 사람, 내 모습을 바라보면서 나를 찾아가는 여정을 떠올렸으니까.
붉은 해가 서산으로 기울어간다. 붉게 물든 낙조를 보니 가슴이 충만함으로 벅차오르며 탄성이 절로 나왔다. 고운 노을은 잠깐이면 사라진다. 내 삶 역시 저 노을과 같을 것이다. 아름다운 황혼을 보고 감탄하며 이별을 떠올리듯 나도 저렇게 물들면서 저물어가고 싶다. 지는 해는 순간으로 사라지지만 그 여운은 오래도록 사람들 가슴에 남아있을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