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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초별하 Jun 22. 2023

공자님 잠옷 속에 숨겨진 보화

(도와 양생이란 무슨 관계로 작용할까)


  칼럼을 읽었다. 제목이 ‘공자님의 잠옷’이다. 뜨거운 정치 경제 이야기로 지면을 달군 신문을 읽어 내려가다 발견한 생뚱맞은 기사였다. 순간 뇌수를 찔린 듯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게 뭐지? 한눈에 호기심이 꽂혀 몰입하게 되었다. 머릿속에 스치는 상념들은 온통 잠옷을 상상하는 나래로 뒤덮여졌다. 

  얼마 전 문예창작 수업에서 들었던, ‘글은 제목이 중요하다’라는 말이 스쳐갔다. 그것은 처음 만나는 사람과 얼굴을 대면하는 격이 같기 때문일 것이다. 요즘 이슈가 되는 암울한 경제면을 유심히 살펴보던 일은 어느새 뒷전으로 사라지고 오로지 공자의 이야기에 온정신이 쏠렸다. 무슨 이야기가 전개될까 호기심 잔뜩 품어가며 천천히 읽었다. 단어 한자 토씨 하나까지 유심히 챙겨 보았으니까.    


 왜 이렇게 나는 이 말에 유독 예민하게 반응하며 깊은 관심을 두는지 생각해 보았다. 양생(養生)과 잠옷은 인간의 기본생활로 미루어 짐작할 수 있지만, 공자의 잠옷이란 얼마나 생소한 이야기인가. 범부들과 별개의 존재처럼 추앙받는 거룩한 성인의 삶은 마치 다른 세계가 펼쳐졌을 거라고 여겼던 것일까. 


  이것은 논어 ‘향당’편에 씌었다고 했다. ‘공자님은 주무실 때 반드시 잠옷을 입으셨다’고 한다. 또한 거기에는 성현의 자질구레한 일상 삶의 에피소드가 미주알고주알 나열되어 있다고 소개했다. 이를테면 더울 때는 얇은 베옷을 입었는데 꼭 속옷을 갖추어 입었으며 반드시 제철에 나오는 재료를 이용해 음식을 드셨다는 것들이다. 이것이 ‘군자의 도이고 양생이라는 걸 깨닫게 되었다’고 피력했다.


  도와 양생이란 무슨 관계로 작용할까. 도(道)란 ‘마땅히 지켜야 할 이치이며 양생이란 병에 걸리지 않고 건강하게 오래 살도록 몸 관리를 잘함’으로 사전적 용어는 설명했다. 아하, 결국 기본기에 충실하라는 말과 같은 맥락으로 이해했다. 잠옷에 색안경을 끼고 의아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상상했던 좁은 소견의 나는 뒤통수를 맞은 듯 스스로 움찔했다. 도(道)를 거창하게 생각했는데 의미를 음미해 보니 일상의 규범을 잘 지키는 것이었다. 인간다운 도리를 성실하게 수행하면 그뿐 아니겠는가. 물론 공자처럼 성인으로 도달하기까지 실천은 언어도단 일 테지만.


   학창시절 배운 공자의 논어의 한 소절이 생각났다. 학이시습지불역열호(學而時習之不亦說乎). 짧지만 깊은 울림을 주는 아포리즘이었다. 그는 인간의 도를 위해 끊임없이 공부하고 정진했기에 오랜 세월이 지나도 우리의 사표로 그의 사상을 추종하고 있지 않던가. 인간의 의식주는 세대마다 다르게 전수해오겠지만 삶의 본질은 예나 지금이나 대동소이하리란 생각에 머물자, 보통사람이 실천하기 어려운 일상의 도를 몸소 사신 성인의 삶이 존경스러웠다. 수신하기 위해 얼마나 치열한 삶을 살았을까.


  글을 따라 읽으니 도와 양생은 수면과 연결되었음을 알게 되었다. 숙면이 얼마나 중요하기에 현대인의 중요 생활 이슈로 들어내 기사화하며 글을 썼을까. 구전으로 내려오는 얘기가 지금도 진리처럼 전승되어오고 있으니 잠의 무게를 실감해본다.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잠의 중요성에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그토록 중요하게 여기는 숙면, 지금은 농경사회 시절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바뀌었다. 문화가 발달하면서 삶의 질이 천지개벽 되었으니 갈수록 지구촌은 환경파괴로 이상고온 현상에 시달리고, 그 여파로 요즘 밤은 열섬현상이 이어지며 숙면을 방해하고 있다. 또한 온종일 실시간 방송도 송출되고 게다가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는 더욱 불면의 밤을 부추기면서 우리의 수면습관을 무자비하게 짓밟고 있지 않은가

  언젠가 현대인들은 피로 사회를 살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 그래서인지 주변 사람들을 만날 때면 불면증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잠이 보약 중 보약이라는데. 그러고 보니 나도 가끔 잠자는 시간을 놓치다 보면 잠 못 이루는 밤을 보냈다. 고역 중 고통의 시간이었다. 이때는 어떤 일도 하지 못한 채 정신을 꽁꽁 묶어놓는지 머릿속은 하얘지기만 했다. 멍 때리는 시간으로 도를 역행하는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이리라.




  이제는 수면습관을 의도적으로 챙기려 한다. 숙면은 밤의 도를 실천하는 평범한 진리라는 사실을 알았으니. 도는 멀리 있지 않았다. 낮엔 열심히 일하고 밤엔 잠을 잘 자면서 자연 리듬의 궤도 따라 살면 그뿐임을.

  며칠 전 노 교수님 수업을 들었는데 피곤해하셨다. 밤잠을 설쳤기 때문이란다. 잠은 모든 사람이 안고 가야 할 도(道)란 것을 새삼 떠올렸다. 일찍이 공자는 우리에게 잠을 통해서 양생의 도(道)를 가르쳐 주셨다. 세월이 흐르고 역사가 바뀌어도 자연 흐름은 거슬러갈 수 없듯, 도는 순리대로 살아가는 삶의 방편의 작용이었다. 성현의 말이 귓가에 쟁쟁 큰 울림으로 다가왔으며 이번 기회에 논어의 ‘향당’ 편을 읽어보면서 성현의 참 가르침을 따라야겠다. 

  수 천 년 시간이 지나도 고전의 비밀은 언제나 새로운 지혜로 다가오며 우리의 삶 깊숙이 다가와서 삶의 교훈을 풀어준다. 공자님 잠옷 속에 양생의 보화가 감춰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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