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의 세탁에 관한 짧은 단상

타로상담과 빨래와의 상관관계

by 루이

목욕은 영혼의 세탁이다.


일본 애니메이션 에반게리온에서 이 말을 처음 접했는데요. 실제로 일본에 이 같은 격언이나 속담 비슷한 말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약간의 폼 잡는 듯하면서도 상투적인 뉘앙스를 가진 허세 섞여 보이는 문구임에도 불구하고 왠지 마음에 남아 아직도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어떤 부분에 끌렸을까 곰곰 생각을 해보니 바로 “영혼의 세탁”이라는 단어에 마음이 움직였던 것 같습니다. 형체가 없는 영혼을 세탁한다... 그것이 과연 가능할까? 어떻게? 무슨 방법으로? 당시 이와 같은 호기심 어린 의문을 가졌던 기억이 있습니다.


처음 이 어구를 접한 이후로 강산이 세 번 변하려 할 즈음의 시간이 흘렀고 현재 저는 타로 상담을 직업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18년도부터 시작했으니 햇수로 7년째 접어들고 있습니다.

영혼의 세탁과 타로상담. (정확히는 상담이 주된 의미로 타로는 상담을 위한 수단이라는 하위개념으로 생각하시면 될 듯합니다.) 웬 뜬금포 소리인가 황당해하실 분들도 있으리라 생각됩니다만 상담이란 직업의 연차가 쌓일수록 빨래의 과정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켜켜이 쌓여가는 마음의 먼지와 때를 마음 주머니에서 꺼내 탈탈 털어 씻고 헹구고 말리는 과정을 거쳐 다시 마음이 잘 작동되도록 한다는 측면이 빨래와 닮아있지 않을까 합니다. 마음의 정화 과정을 풀어쓴 거라 표현을 해도 좋고요.


물론 이 과정은 명상과 마음 챙김이라는 스스로의 성찰을 통한 방법으로도 정화가 가능합니다만 그것은 일정시간 이상 지속적인 훈련을 통해서 가능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감정의 주인이 자신이므로 통제가 가능한 영역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스스로를 객관화해서 보는 과정을 불필요하고 불편한 것으로 여기는 경향이 강하며 설사 인지한다 하더라도 실제로 그것을 작동시키기 위해서는 의식적인 깨어남의 상태를 유지해야 하는데 그것이 속된 말로 참 오글거리고 쑥스럽기 때문에 굳이 그런 경험을 사서 하고 싶어 하지 않아 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상담을 통해서는 그 접근이 수월하게 이루어지며 거기에 타로라는 그림을 통한 이야기적인 요소가 들어가면 자신의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자연스레 받아들이고 스스로를 객관화하는 성찰의 프로세스로 이어집니다.


여기서 타로는 길흉화복을 보는 점술의 영역에 불과한데 상담의 영역으로 확대해석하는 거 아닌가 의문을 가지시는 분들도 있으실지 모르겠습니다만 길흉화복에 대한 질문 역시 답을 얻기 위한 원인 내지는 동기가 있기 마련이며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마음속 한편 켜켜이 쌓인 응어리가 무심코 툭 나오기도 하고요.


주저리주저리 서론이 길었습니다만 이 매거진은 의식의 흐름대로 두서없이 이런저런 감상을 늘어놓는 페이지가 주로 마음에 대한 이야기를 다룰 예정이고요.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이 하루 잠시라도 이런 마음의 해석 방법도 있구나 혹은 나만 이런 마음을 가진 게 아니었네 등 발견이든 동조든 어떤 형태로든 자신의 마음에 비추어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마음 챙김의 시간을 가졌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