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심리학자들은 어릴 적 양육환경을 중요시한다. 그러한 이유는 과거의 경험을 통해 현재의 자신을 잘 이해하기 위함이다. 자신에 대한 이해의 과정이 필요한 이유는 지금 현재의 삶을 변화시키고 성장시키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결국 과거의 이해는 지금 현재 자신이 겪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고 앞으로 겪을지 모르는 문제를 예방하기 위함이다.
사람들은 당황하면 말이 많아진다. 자신이 처한 어려움의 핵심을 말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자꾸만 주변을 맴도는 이야기를 한다. 문제의 본질은 건드리지 않은 채 문제가 왜 생겨났는지, 생길 수밖에 없었음을 변호하고자 애를 쓰는데 시간을 낭비한다. 이야기의 양은 많아지는데 절대적인 포인트가 없기 때문에 쉽게 지치고 지루하다. 지루하다는데 그치면 그나마 다행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절대 변화된 모습을 마주할 수 없다는 것이다. 변화는 온데간데없고 변론만 늘게 되는 격이다.
과거에 자신이 어떤 사람이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즐겨하는 사람을 '꼰대'라고 부르기도 한다. 과거에는 능력 있는 사람이었고, 잘 나가는 사람이었고, 인정받는 대단했던 사람이었음을 알리기 위해 애쓰는 모습을 보면 '그래서 어쩌라고'라는 심통스런 마음이 든다. 그런 마음이 든다는 건 '지금 현재의 당신은 과거의 당신 하고는 사뭇 다르네요'라고 말해주고 싶은 충동이 올라올 때이다.
그래서 지금 당신은 어떤데요?
지금 자신의 모습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과거에 붙잡혀 사는 사람을 보면서 어떤 생각이 드는가. 겉으로는 '대단한 일을 하셨네요'라며 추임새를 넣어줄 수는 있다. 하지만 지금 현재의 상황은 관심 없고 과거에 머물고 있는 모습은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추임새로 채워진 대화는 아무런 감동을 주지 못하기에 서둘러 대화는 마무리된다.
문제의 원인을 찾는다는 건 해결의 실마리를 찾기 위함이다. 원인이 무엇인지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그래서 지금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로 넘어와야 한다. 넘어오지 못하고 원인에만 머무르게 되면 정착 지금 힘써야 할 에너지를 원인 파악하는 데 모두 소진하게 될 뿐이다. 지금의 문제가 자신의 삶 전반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구석구석 알아보고 지금 현재 작은 것이라도 변화시킬 수 있는 무언가가 있는지 관심을 가져야 한다. 사람들이 변명을 통해 얻게 되는 것이 무엇일까?
첫째, 두려움 때문이다. 지금의 내 모습을 제대로 바라보기가 두렵기 때문이다. 자신이 정말 형편없는 사람일까 봐, 부족한 사람일까 봐, 버림받을 까 봐 두려운 것이다. 그러나 '실은 내가 나를 보는 게 두려워'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자신도 자신 스스로를 잘 모르기 때문에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둘째, 변화에 대한 회피 반응이다. 변화라는 건 시도하지 않았던 그 무언가를 시도해보는 도전의 시작점이다. 시작은 환영하지만 그 이후가 걱정이다. 안 쓰던 근육을 사용한다는 건 그리 신나는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당장은 고통스럽고, 찢어질듯한 아픔을 감내해야 할지도 모른다. 또는 미처 알지 못했던 모습을 발견하게 됨으로써 자신이 감당할 수 없게 될까 봐 알고 싶지 않을 수 있다.
셋째, 습관이다. 지금의 내가 그러한 행동을 하고 있다는 사실은 어제의 내가 그러한 행동을 했기 때문이다. 내일의 내가 같은 행동을 하지 않기 위해서는 지금의 내가 용기 내어 변화를 시도해주어야 한다. 변명도 습관이다.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자동적으로 되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에게 내보이는 변명이든 나 스스로에게 하는 변명이든 변명이라는 건 결국 자신의 성장을 위한 치명적인 방해물이다. 만약, 시험을 앞둔 학생이 공부에 대한 변명을 한다면 공부를 제대로 하지 못한 이유를 댈 것이다. '갑자기 집안에 문제가 생겨서' '갑자기 급한 일이 생겨서' '몸이 안 좋아서' 등 합당해 보이는 변명은 얼마든지 많다. 그러나 정작 그 안을 들여다본다면 어떨까. '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하지 않았다'라는 말이 옳지 않을까. 이러한 숨은 진실은 언제나 마주하기 싫다. 그러나 계속 마주하지 않으면 자신도, 타인도 들여다보지 못한 채 꽁꽁 싸매여져 방치될 것이다.
자신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지 않고 미루기를 거듭하는 사람이라면 변명은 그만 내려놓고 마음속 진실과 대면해야 한다. 자신이 회피하는 이유를 제대로 찾아야 한다. 이유를 간과하고 인정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삶은, 어제처럼 오늘을 살 것이고 내일도 오늘처럼 살아질 테니까.
변명은 화려하고 예쁜 포장지와 같다. 포장지 속 물건은 별 볼 일 없는데 겉이 화려한 선물을 받게 된다면 실망하게 되듯 언젠가는 자신 스스로에게 실망하게 된다. 물론 타인은 말할 것도 없다. 변명의 수순은 이미 정해져 있다. 자신이 아무리 책임지지 않으려 해도 책임져야 하는 게 인생이다. 변명을 하게 되는 다른 이유 중 하나는 수치심이다. 수치심은 그 누구에게도 들키기 싫은 부끄러움이기 때문에 부끄럽지 않게 된다면 그 어떠한 변명이라도 데려오고 싶은 게 당연하다. 그러나 수치심은 없애야 할 감정이 아니다. 억압해야 할 감정도 아니다. 오히려 더 자주 드러내 보이고 자신과 타인에게 솔직하게 드러냄으로써 약해지는 감정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행복해지기를 원한다. 성공을 원한다. 출세를 원한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행복하지도 않은 거 같고, 성공은 저 멀리 가버린 지 오래고, 출세는 똑똑하고 배경 좋은 사람들이 하는 전유물쯤으로 생각한다.
대학 강의 중 그룹토의 시간에 한 학생이 질문을 했다.
학생: 장학금을 받아야 해서 성적을 올려야 하는데 왜 이리 잘 안 되는 건가요?
나: 장학금을 받지 않아도 살만해서이지 않을까?
학생:.......
A: 장학금을 받지 않으면 당장 학교를 다닐 수 없을 정도로 부모님의 도움을 전혀 기대할 수 없는 경우
B: 장학금을 받기 위해 공부해야지. 그러나 혹시라도 장학금을 못 받게 되면 부모님께 죄송하지만 지원을 좀 받아야겠다고 어렴풋이 생각하고 있는 경우
두 경우를 놓고 볼 때 A의 마음가짐과 B의 마음가짐은 온도부터가 다르다. 돌아갈 곳이 있는 사람과 돌아갈 곳이 없는 사람의 여행이 다르듯이 말이다. 누구나 돈 잘 벌고 잘 살고 싶다고 말은 하지만 그렇게 되기까지의 과정에 치러야 할 수고는 거절한다. 공부를 잘하기를 원하지만 사적인 시간을 줄여하는 데는 동의하지 않는다. 여행하는 삶을 꿈꾸지만 여행 가기 위해 먼저 해놓아야 할 숙제는 거부한다.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로운 삶의 무게는 기꺼이 감내해야 하는 수고로움의 값이 함께 매겨지는 것이다.
지금과는 다른 삶을 살고 싶다면 지금과는 다른 행동부터 해야 한다. 마음의 준비가 아직 안되어서 워밍업 하는 자세만 오래 취하다가는 등이 굽어서 다시 스트레칭을 해야 한다. 가끔은 만반의 준비보다는 단번의 행동이 뜻밖의 결과를 선물하기도 한다. 변명이 많고 생각이 많은 습관을 버리고 싶다면 지금 당장 바꿀 수 있는 것부터 해보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