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는 아이답게' '나는 나답게'
부모화(Parental child)는 지인이 박사학위 논문으로 쓴 주제이기도 하고 개인적으로 부모화의 주인공이기도 해서 관심 있는 주제이다. 부모화라는 글자를 적어놓고 나서 한참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단어의 의미가 주는 느낌이 결코 가볍지 않기 때문이다. 지인이 건넨 논문은 질적 논문이었는데 사례로 제시된 인물들의 모습이 바로 내 모습이기도 했기에 단숨에 읽어 내려갔다. 공장에서 찍어내는 벽돌처럼 주인공들의 삶은 너무나도 닮아 있었다. 그래서 더 가슴이 아팠던 기억이 있다.
부모화라는 단어의 출현은 Boszormenyi-Nagy의 가족치료 이론에 등장하면서부터다. 부모화의 뜻은 자녀가 성장기의 과정임에도 불구하고 부모와 자녀의 역할이 바뀌어 자녀가 부모의 역할을 떠맡아하는 현상을 말한다. 부모화의 유형에는 가족 내 물리적 책임자 역할을 하는 물리적 부모화, 가족들의 정서적인 안정을 제공하는 역할의 정서적 부모 화가 있다. 부모와 자녀가 관계를 맺는 과정에서 서로의 역할을 주고받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과정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러한 역할 순환이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장기적으로 지속되는 경우 아이는 지나친 책임감에 시달릴 수 있다. 지나친 책임감은 '아이로서의 아이다움'을 앗아가고 대인관계의 폭을 협소하게 하여 다 야한 사람들과 다양한 경험을 하는데에 소극적이 될 수 있다. 왜냐하면 부 모화 된 아이는 다른 사람에게 버림받거나 거절당할까 봐 두려워하며 자신이 원하는 욕구보다 다른 사람의 욕구를 채우느라 지나치게 타인 중심의 관계를 맺게 되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을 신경 쓰고 다른 사람을 기쁘게 해 주고 만족시키는 관계를 지속한다는 것은 상당히 에너지가 소진된다.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돌보는 일에 익숙한 부모화 된 아이가 문제가 있거나 결핍이 있는 사람에 대한 온정은 건강한 마음이라고 보기 어렵다. 과한 책임감으로 인해 일그러져 있는 타인에 대한 관심은 병리적 의존 현상을 일으킬 수도 있기 때문에 조심해야 한다. 이들의 마음을 좀 더 들여다보자면 타인을 돌보는 역할을 함으로써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고 타인을 통제하고 싶은 욕구가 있다. 타인을 배려하는 마음이 인정받지 못하거나 배신당할 경우 심한 분노가 치밀어 오를 수 있으며 세상에 대한 적대감이 유발되기도 한다.
부모화 된 아이에게 나타나는 다른 하나는 완벽주의다. 이러한 완벽주의 성향은 타인과의 친밀한 관계를 맺는데 방해물이 된다. 완벽주의는 흠이 없는 상태를 지향하고 과도하게 높은 수준의 기준을 정해놓기 때문에 기준에 미달이 되는 경우 매우 비판적일 수 있다. 자기 자신에게 과도한 완벽성을 요구하는 경우는 자기 지향 완벽주의, 다른 사람에 대한 완벽성 요구는 타인 지향 완벽주의, 다른 사람들이 자신에게 완벽하게 처신하기를 요구한다고 믿는 사회적 완벽주의가 있다. 이러한 성향을 가진 부모화 아이는 '내가 완벽하지 않으면, 내가 제대로 해내지 않으면, 내가 착한 사람이 되지 않으면... 나를 거부할 거야'라는 두려움으로 인해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다른 사람과 공유하지 않게 된다. 이러한 사람은 타인이 자신에게 작은 충고를 할 때도 지나치게 방어적인 자세를 취하며 진실한 관계를 형성하는 데 어려움이 된다.
어릴 때부터 부모화의 경험에 익숙한 아이는 집안에서도 열심히 뭔가를 해내기 위한 노력에 집착하고 사회적 인정을 얻기 위해 과도하게 애쓰게 된다. 일반적으로 자녀는 부모의 지지와 돌봄을 받으며 성장한다. 그러나 부모가 부모로서의 기능이 소진되고 고갈되었을 경우 오히려 자녀로부터 돌봄을 요구하게 된다. 이러한 요구가 타당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어린 자녀는 부모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부모역할을 수행하게 되는데 이러한 역할은 어른이 된 이후에도 영향을 미친다. 예를 들어 부모화 역할을 하며 성장한 사람이 결혼했을 때 '보이지 않는 충성심 (Invisible Loyalty)'을 갖게 될 수 있는데 '보이지 않는 충성심'은 배우자의 역할이나 각자 자신의 부모님을 대하는 태도, 배우자의 부모님을 대하는 태도에도 상당 부분 영향을 미치게 된다. '보이지 않는 충성심'은 다시 말해서 역기능적인 대인관계 패턴을 반복하려 하는 바람직하지 못한 유대감으로 해석할 수 있다.
돌봄이 필요한 어린 나이에 부모화를 경험한 아이는 집안 내에서 형제를 돌보거나, 시장을 보고, 청소를 하고 세탁하는 일도 하지만 심한 경우, 돈을 벌어와야 한다거나 병든 가족을 돌봐야 하는 등 가족이 해체되지 않고 유지될 수 있도록 하는 물리적 책임감이 요구될 수 있다. 또한 부 모화 된 아이는 가족들의 위로자 역할, 정서적 지지자 역할, 가족의 갈등을 해결하고 중재하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한국사회는 특히 다른 나라에 비해 부모와 자녀 간의 융합을 당연하게 여기는 문화다. 부모-자녀 사이의 밀착력이 뛰어날수록 돈독한 가족관계로 인정받고, 가정 내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아낌없이 공유하고 도움을 주고받는 모습은 부럽기까지 하다. 이러한 문화가 자칫 잘못 기능하게 되면 부모는 자녀를 자신의 소유로 여기게 되고 동일시 대상으로 삼게 되어 힘을 행사하는 부모역할을 고집하게 된다.
부모 입장: 네가 내 자식이니까 이 정도는 해줘야지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 이 정도도 못해?
자녀 입장: 내 부모님이니까 이 정도는 내가 하는 게 당연해
부모님을 속상하게 하거나 아프게 하면 불효하는 거야
부 모화 된 아이가 어쩌면 우리들이 흔히 말하는 '착한 아이' '어른스러운 아이' '철이 일찍 든 아이' 일 수 있다. 일찍 철이 들어서 듬직하고 뭐든지 혼자서 척척박사처럼 해내는 모습이 적응적으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한 번쯤 사는 동안 중간 점검을 해보면 어떨까.
부모화 경험이 적응적으로 기능하는 경우도 있다.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끼치는 일을 지독히 싫어하기 때문에 자신의 일은 스스로 알아서 하는 사람이 된다. 이러한 사람을 사회적으로는 선망하기 때문에 타인과의 경험, 조직생활에서는 유용하게 적용된다. 부 모화 된 사람은 어느 체계에서도 잘 적응해 나갈 수밖에 없다. 그 이유는 타인의 필요를 감지하는 능력이 탁월하고 그 필요를 자신이 채워야 한다는 의지가 강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조직원을 마다할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아이는 아이의 필요가 있다. 아이가 자신의 필요를 제대에 제공받기도 전에 억압부터 배우고, 가정 내에서 돌봄을 제공하는 역할, 정서적 지지자 역할, 배우자의 역할을 긴 시간 요구받게 되면 '부모화'는 내면화된다. 가족이 균등하게 감당해야 할 역할이 한 아이에게 지나치게 요구된다면 무기력이나 과한 책임감, 완벽주의 등 부정적인 영향으로 드러난다. 자기 안에 일어나는 욕구를 억압하거나 무시하고 회피하는 데 익숙하게 되면 참된 자기 감을 형성하지 못한 채 성인이 된다. 이러한 증상은 겉으로 확연히 드러나지는 않기 때문에 자신도 모른 채 간과하기 쉽다. 이들은 섣불리 자신의 욕구를 드러내지 않는다. 자신의 욕구를 표현하게 되면 다른 사람을 힘들게 하고 관계를 망가질 수 있다는 생각에 사로잡히기 때문이다. 부모화 경험에 익숙한 사람은 많은 사람들 속에 있지만 외롭다. 부모화의 수준이 높을수록 다른 사람에게 '바람직한 역할'을 해야 한다는 과한 압박감이 있기 때문에 겉으로는 군중 안에 있지만 심리적으로는 외로운 아이로 남게 된다.
자신의 자녀가 부모 화가 되지 않게 하려면 '아이다움'을 허락하라고 말하고 싶다. 아이는 지극히 자기중심적이기 때문에 자신의 감정을 그대로 드러내는 게 당연하다. 떼쓰고, 고집부리고, 짜증 부리는 행동을 한다고 해서 '너는 왜 이렇게 엄마를 힘들게 하니' '왜 이렇게 애처럼 굴어'라고 하며 나무라지 말아야 한다. '우리 OO이가 지금 짜증이 많이 났구나' '속상하구나'라는 말로 자녀의 아이다움을 인정해주면 좋다. 아이가 자신의 욕구를 먼저 알아차리기보다 타인의 욕구를 먼저 알아차리는데 능숙하다면, 부모님의 표정에 신경 쓰고, 다른 사람의 필요를 채우는 데 민감하다면 칭찬받는 아이일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칭찬이 강화가 되어 오히려 부모화의 경험을 부추기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아이는 아이답게, 아이의 나이에 맞는 감정을 느끼는 게 당연하고 그 느낌을 표현할 수 있는 자유가 있다. 이런 욕구를 수용해줄 때 아이는 진정한 자기 감을 확립하고 자기를 드러내는 데 수치심을 갖지 않는다.
어른이 된 내가 부모화를 경험했다면 지나치게 자신을 판단하고 평가하기보다는 '지금 내 모습은 자연스러워' '이럴 때 나는 이렇게 느낄 수도 있어'라고 말해주자. 내가 가끔은 실수해도, 가끔은 부족한 듯해도, 가끔은 이기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해도 있는 그대로의 자기를 수용해주도록 하자. 다른 사람에게 '좋은 사람 되기'를 포기하고 자신에게 '좋은 사람 되기'를 해보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