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도구

by 한꽂쌤

마음의 도구


인간은 도구를 활용할 줄 아는 동물이라고 말한다. 가끔 우스갯소리로 ‘도구 좀 활용해’라는 말을 건네는 경우가 있다. 도구를 활용하는 이유는 어떤 일을 함에 있어서 효율적이고 빠르게 처리할 수 있는 장점이 있기 때문이다. 도구를 활용하면 굳이 애쓰지 않아도 일이 수월하게 풀릴 수 있다는 데 매력적이다. 인공지능 시대인 시대에 사는 우리들의 많은 문제들을 인공지능이라는 도구에 맡기며 도약적인 일처리 효과를 경험하고 있다. 사람보다 기계에 의지함으로써 기계와의 관계에 익숙한 사람들은 인간의 마음과 감정의 도구는 멀어지고 있다. 기계를 이해하고 배우고 업그레이드하는 데에는 익숙하지만 마음을 탐색하고 성장시키는 데에는 인색하다. 마음으로 연결되기 위한 과정은 쉽지만은 않기에 도망치거나 모르쇠로 방관하는 태도를 학습하기도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점점 기술과 기계에 대한 의존은 높아지지만 사람과의 관계는 어색하기까지 하다.

오래전 스마트폰이 보급되기 시작할 무렵, 지인과 이런 대화를 한 적이 있다.


“아마 먼 훗날에는 사람과 사람이 서로 마주 앉으면 어떻게 대화를 해야 하는지 교육을 통해 알려주어야 하는 시대가 올지도 모르겠어”


그러나 이제 과거에 나누었던 대화가 현실이 되었다. 온라인에서는 소통에 관한 전문가들이 유명세를 타고 있고 수많은 TV 채널에서는 부모 자녀관계, 연인관계, 부부관계에 대한 소통 문제를 앞다투어 다루어 시청률을 쏠쏠히 올리고 있다. 왜일까? 바로 내게 당면한 문제, 내 가족의 문제, 내 지인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제는 넋 놓고 먼 나라 이야기처럼 불구경할 수만은 없는 일이 되었기 때문이다. 어디 그뿐이랴. 전화보다는 카카오톡이나 SNS 커뮤니티 공간을 통해 서로의 안부를 묻고 정보를 공유하는 것이 흔한 일상이 되었다. 누가 어딜 가고 무엇을 먹고, 무엇을 입는지, 누구와 만나서 무얼 하는지가 왜 이렇게 중요해졌을까?


최근 1년여간 만났던 다수의 청소년들의 경우 특이점이 있었다. 몇 년 전과는 판이하게 다른 모습이었는데 눈 맞춤이 전혀 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한두 명이면 그러려니 하고 넘어갈 수 도 있지만 대부분의 학생들이 상담자인 나를 바로 보지 못하고 다른 곳을 보거나 고개를 숙이고 있는 모습을 보였다. 눈 맞춤은 상담 장면에서 아주 중요한 비언어적 반응으로 관찰되는데 눈 맞춤이 어려운 경우의 원인을 다양하게 가늠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눈 맞춤이 잘 안 되는 내담자를 만나게 되면


- ‘상담 동기가 낮을 수도 있겠다.’

- ‘이 상황이 어색한가 보다.’

- ‘뭔가 자신감이 없을 수도 있겠다.’

- ‘불안함이 있을 수도 있겠다.’


.....등 다양한 가설을 세워볼 수도 있겠지만 지금은 그러한 가설은 통하지 않는 시대가 되었다. 전반적 시대의 흐름 자체가 그러하기 때문이다. 사람과 사람이 대면할 수 있는 기회가 박탈당하고, 화상, 음성, 가상공간 안에서의 관계가 익숙해졌기 때문이다. 요즘은 화상상담도 늘어가고 있는 추세이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상담의 방법도 달라지고 있다. 처음에는 대변이 당연하다고 여겼지만 지금은 화상상담도 이상하지는 않다. 다만 상대방의 디테일한 얼굴 표정, 몸의 옴 직임을 읽을 수 없다는 점이 아쉽다. 내담자 입장에서는 환영하는 분도 많다. 접근성도 용이하고 화상에서 상담자를 보고 이야기를 하니 훨씬 마음이 편안한 상태에서 상담에 임할 수 있었다는 의견도 있다.


‘대면이었다면 상담을 신청하지 않았을 거예요.’


화상상담 영역이 커지는 현실의 장단점이 있겠지만 어쨌거나 사람과 사람의 대면기회는 적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디지털 환경은 인간의 정서를 메마르게 한다. 리처드 왓슨은 그의 책 ‘인공지능 시대가 두려운 사람들에게’라는 책에서 애플, 구글 등의 세계의 선두그룹의 임원진 자녀가 다니는 학교 수업이 100% 아날로그 방식으로 진행된다고 소개되고 있다. 지금 이 순간 우리 주변의 다양한 도구들을 살펴보라. 마음의 온도가 느껴지는가?

마음에도 도구가 필요하다. 사람은 어려움이 닥치면 도구를 활용해야 한다. 내게 그 문제를 해결할만한 도구가 있는지, 아니면 다른 곳에서 도구를 빌려와야 하는지, 아니면 도구를 만들어내야 하는지에 대한 탐색이 필요하다. 내게 문제 해결의 능력이 있다고 여겨진다면 스스로 그 문제를 진단해보고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본다. 스스로 자문을 해본다든지, 시간을 갖고 사고를 한다든지, 관련된 책들을 구입하여 읽는 등 다양한 방법이 있다. 내게 해결할만한 능력이 부족하다고 여겨진다면 관련 전문가에게 찾아가서 도움을 청하면 된다. 나 스스로 도구를 만들어 낼 수 있느냐가 관건인데... 솔직히 개인적 소견으로는 누구나 개인은 자신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소양이 있다고 본다. 다만 그 방법을 잘 모른다든지, 알려고 하지 않는다든지, 찾아본 적이 없다든지 등 다양한 경험 부족으로 인한 이유 때문에 헤매고 있을 뿐이다.


우리 사회는 갈수록 생각하는 사람과 그 생각에 종속되는 편향 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누군가는 앞서서 탁월한 창의성을 발휘하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극소수의 창의성 집단의 노예로 전락된 채 근근이 삶을 연명하고 있다. 학교교육에서는 학생들에게 분리된 과목을 공부하게 한다. 과목들 마다 별개의 특성을 가지고 있고 서로 다르다는 인식을 심어주려고 작정하듯이 단과 공부의 중요성은 좀처럼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교육과목의 통합을 주장하는 목소리도 높지만 진정한 통합은 아직도 먼 나라 이야기처럼 들릴 뿐이다. 다양한 지식이 연결되고

융합되는 수업은 아직도 어색하기만 하다. 흔히 말하는 예술가들은 약속이나 한 듯이 공통된 도구를 활용한다. 이 도구는 그들의 몸 감각・시각적 이미지・추론・정서적인 느낌 등을 포함한다. 그들은 지극히 주관적 경험을 객관적으로 표출해내기 위한 자기만의 통로를 가지고 있다. 이를 통해 각자 타인의 마음 깊은 곳에 새로운 사고의 기운을 불러 넣게 된다.


모든 개인의 마음은 존중되어야 한다. 가끔 ‘제가 이렇게 생각하는 건 너무 이기적인 거 같아요. 사람들이 이런 나를 보고 뭐라고 할 거 같아요’라며 전전긍긍하는 모습을 본다. 모든 사람들이 내 마음을 이해해줄 수는 없다. 그건 환상일 뿐이다. 나를 이해해주는 사람도 있고 나를 비난하는 사람도 존재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그러한 사람들을 구분하는 게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니다. 사실은 나 자신의 이야기에 집중하기를 바란다는 말이다. 온전한 집중은 온전한 감각의 회복을 통해 알아차림 될 수 있다. 알아차림이 된다면 내가 선 자리를 제대로 바라볼 수 있다. 내가 선자리를 바라볼 수 있다면 주위를 둘러보며 자신이 나아갈 방향을 정할 수 있고, 자신 앞에 높여진 장애물도 발견하는 행운을 얻을 수 있다. 그러나 자신의 마음에 집중하지 않는다면 그러한 행운은 절대 당신의 방 문을 노크하지 않을 것이다. 무엇에 마음을 집중하느냐가 삶의 질을 결정한다. 하물며 마음의 도구를 발견하고 활용한다면 그 결과는 어떠하겠는가?


고대 인도 산스크리트어인 ‘만트라(Mantra)’의 ‘만’은 ‘마음’을 뜻하고 ‘트라’는 ‘도구’를 뜻한다고 한다. 마음 도구인 만트라의 원리는 특정한 음절, 단어, 문장을 반복하면 특별한 파동이 생기게 되는데 이 파동의 영향으로 인해 초능력처럼 놀라운 힘을 경험한다는 이치이다. 마음 주문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어떤 사람은 ‘내가 늘 이렇지 뭐’이런 만트라를 가지고 있다면 그 사람의 삶은 늘 그럴 것이다. ‘내 진짜 모습을 알면 사람들이 싫어할 거야’가 만트라인 사람은 늘 위축된 어깨로 살아가서 그 빛을 잃은 채 살아갈 것이다. 부정적인 만트라 주문보다는 긍정적 만트라 주문을 만들어보자.


‘이 정도도 훌륭해’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했으니 된 거야’

‘이대로도 충분해’


스티브 잡스(Steve Jobs)의 만트라는 ‘단순함’과 ‘집중’이었다고 한다. 단순함이 복잡함보다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모델인 미란다 커(Miranda Kerr)도 아침마다 자기만의 만트라를 외웠다고 한다.


나의 만트라는 ‘하나만 하자’이다. 머릿속에 해야 할 일이 여러 개가 쏟아지는 데 선수인 나의 극약 처방법이다. 숨을 고르고 하나씩 해내다 보면 하나가 둘 되고 둘이 셋 되어 내가 이루고자 하는 목적 지게 점점 다다를 수 있다. 마음의 도구 중 하나로 만트라를 인용하였는데 만트라는 자기 암시, 자기 주문, Self talk, 자기 최면과 같은 의미로 사용된다. 내 마음이 힘들고 지칠 때 나 외에 다른 것에 의존하기를 멈추고 자신에게 있는 마음의 도구에 귀를 기울여 보자.


내 안에 어떤 것으로 이 상황을 견뎌낼 수 있는지 생각해본다면 분명히 답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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