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유를 많이 묻는 사람이다. 아닌가? 많이 물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사람이었던가? 갑자기 이유라는 단어를 쓰기가 부담스워지기 시작하니가 구차한 변명이 마구 쏟아진다. 어제도 나는 이유를 물었다.
'무슨 일 때문에 그러세요?'
'그때 어땠는데요?'
'그래서 어떻게 반응하셨어요?'
'그때 무슨 느낌이 들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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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다지도 묻는 게 많았을까 싶지만 이놈의 고질병이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다. 상담시간이 끝나고 혼자서 시간을 보낼 때는 '이유가 뭐 필요해 그냥 그렇다면 그런 거지.... 왜 이유를 물었을까? 그 사람이 힘들면 힘든 거지'라는 생각 속에 자책 아닌 자책을 하게 된다. 좀 더 친절하게 표현해 주자면 반성? 좀 더 친절하게 표현해주면 성찰? 쯤 될 것 같다.
지인들은 나를 아낀다는 이유로 내 영역을 침범하는 경우가 많다. 경고음이 울리지만 의식하지 못하는듯 싶다. 마음의 온도는 벌써 끓기 시작하고 내 눈에 힘이 들어가기 시작하는데도 전혀 눈치채지 못한다. 경고음이 울렸음을 표현해주지만 그래도 알아듣지 못한다. 그렇게 말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을 해도 아랑곳하지 않고 말한다면 이젠 관계를 끝낼 준비를 한다. 다시 말하지만 '준비'를 한다는 말이지 끝낸다는 말은 아니다. 나는 자주 관계를 끝내기 위해 보따리를 쌌다가 풀었다가 보따리 싸기 풀기 놀이를 한다. 내 상상 속에서만 하는데 누가 알랴마는 이처럼 나를 침범하는 경우 힘들어진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다. 이리도 잘 아는 내가 상담을 할 때는 잠시 망각하는 경우가 있다. 내게 힘들다고 표현을 하면 분석하느라 바쁘고, 화가 난다고 하면 그 이면에 뭐가 있을까 하며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는 경우도 많다. 상대방의 힘듦이 이해가 안 되면 이해해보려고 이것저것 질문을 하게 되는데 나의 이해가 굳이 필요치 않을 때조차 그런 행동을 하는 것을 삼가야 한다.
그녀가 아프다면 아픈 것이다. 그가 힘들다면 힘든 것이다. 그녀가 화가 난다면 화가 날만하니까 화나는 것이다. 그냥 그런 것이다.
가끔은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일지라도 이해할 수 없음을 알아차려야 한다. 그리고 받아들여야 한다. 내가 모든 것을 다 이해할 수는 없을 뿐이고 그래야 할 이유도 없는 것이다.
그냥 내가 힘들다고 하면
'아... 그래 한 꽂이 네가 힘들구나'
그냥 내가 서운하다고 하면
'아... 미처 몰랐어 너의 입장에서는 서운할만하지'
그냥 내가 화난다고 하면
'아... 그래 그럴 수 있지. 화나 날 수 있지. 화 나도 돼.'
그냥 내가 그렇다고 하면
'그래 그래도 돼'라고 해주는 이가 곁에 있으면 좋겠다.
훈계 사절!
충고 사절!
평가 사절!
조언 사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