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소원을 적은 쪽지를 드릴게요

결정장애

by 한꽂쌤

두 아들이 앞다투어 내게 말은 한다.


아들 1: 엄마, 나 선택 장애야

아들 2: 엄마, 나도 선택 장애야


이 무슨 말인고,,,,, 서로 선택 장애라며 내게 어필한다. 어째서 선택 장애라고 생각하는지 물으니


아들 1: 편의점에 가서 뭔가 먹을 것을 고르는데 뭘 골라야 할지 모르겠어

아들 2: 엄마, 나도 그래, 이것도 먹고 싶고 저것도 먹고 싶어. 그래서 선택 장애야


편의점에서 누군가가 '먹을 것을 사 줄 테니 먹고 싶은 걸 골라봐'라고 하는데도 고르지 못하는 두 아들은 선택 장애인가? 그 계기로 나는 선택 장애라는 단어를 여러 번 생각해 보았다.


자신이 뭔가에 대해 선택해야 하는데 갈피를 잡지 못하고 어정쩡한 상태로 있을 때 선택 장애, 결정장애라는 단어를 쉽게 붙이는 듯하다. 인간은 무언가를 결정해야 하는 순간이 오면 겁부터 나는 게 사실이다. 가뜩이나 요즘은 정보의 홍수시대 아닌가? 이 많은 정보 속에서 도대체 뭘 선택하라는 건지 도통 알 수 없을 지경이다. 선택지가 많다는 이야기는 선택할 수 없는 경우의 수도 늘어나게 마련인 것이다. 무엇을 선택하기까지의 과정 속에는 불안감이 공존한다. 이런 경우 많은 사람들은 주변에 도움을 청한다. 자신보다 더 유능한 사람을 찾거나 연배가 높은 사람에게 조언을 구하기도 하고 더 많은 정보를 얻어 현명한 선택을 하기 위한 노력을 한다. 그러한 방법은 장단점이 있다. 큰돈을 투자해야 하는 경우, 진로를 결정해야 하는 경우, 배우자를 결정해야 하는 경우, 집을 사야 하는 경우, 자녀교육을 하는 경우 등 타인의 조언을 무조건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다가는 난감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자신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기술을 갈고닦아야 하는 좋은 방법은 자신이 관심 가는 영역과 삶에 대한 목표, 동기 등에 있어서 기대하는 바에 대한 기준을 명확히 세우는 것이다. 막연하게 상상만 하거나 애매모호한 태도는 아무런 결과도 가져다주지 않는다.


상담과 수다가 다른 이유는 뚜렷한 목표를 세우고 두 사람이 함께 대화를 이어가는 과정이라는 점이다. 목표를 세우지 않고 대화만 이어간다면 친한 이웃과 편하게 나누는 수다 정도의 기능만 있을 뿐이다. 목표가 정확지 않는 이유는 내비게이션에 오류가 생긴 것과도 같다. 내비게이션이 목적지를 가리키고 있지 않다면 더 이상 그 기능은 상실되었기에 폐기 처분해야 한다. 목표를 세우기 위해서는 동기가 뚜렷해야 할 필요가 있다. 자신이 원하는 바를 꼭 이루고자 하는 동기 말이다. 무기력한 사람들은 좀처럼 동기를 만들어내지 못한다. 간혹 상상이나 환상을 통해 자신의 욕구를 드러내지만 현실 속에서 이루어질리는 만무하다. 결국 환상적 욕구는 허상일 뿐이어서 공허감만 남긴다.


갈등을 일으키기를 유난히 싫어하는 사람이 있다. 갈등을 좋아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냐만은 갈등이 생길 조짐만 보여도 지나치게 예민해지기도 한다. 이들은 타인과의 관계 시 극도로 자신의 생각을 오픈하지 않는다. 늘 상대방의 마음이 어떤지 살피고 자신 때문에 기분 나빠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인다. 이런 사람 덕분에 다른 사람들은 아주 편한 시간을 보내겠지만 정작 본인은 탈진되고 만다. 이들이 추구하는 것은 다른 사람들과 두루두루 잘 지내는 것이다. 가능하다면 모든 사람들이 트러블 생기지 않고, 자신을 미워하지 않고 좋아하는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다. 이들은 외부의 그 누구와도 갈등 없이 지내기에 많은 에너지를 사용하기 때문에 집에 돌아오면 심한 피로감이 몰려온다고 고백한다.


우리 사회는 지나치게 빠른 초성장의 시대이다. 성장보다는 성공에 집중하고 성공이 아니면 실패라는 이분법적 지론이 팽배한 시대에 살고 있다. 이런 탓인지 실패는 용납되지 않는 분위기여서일까? 제대로 된 선택이 아니라면 아예 선택지를 갖지 않으려는 심리가 증가하고 있다. 결정장애라는 과거에 비해 월등히 자주 사용하고 있다. 오히려 이러한 단어를 사용하며 재미를 느끼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한편으로는 결정장애라는 단어가 일상용어로 통용되는 만큼 매사에 선택해야 하는 순간이 많다는 반증이다.


- 나의 선택이 옳을까?

- 더 나은 선택지가 있는데 내가 지나친 건 아닐까?

이러한 질문은 실패하지 않으려는 강한 욕구가 묻어난다.


동조 실험이라는 게 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고 예측이 불가하거나 불확실한 상황에 노출되면 다른 사람과의 의견을 일치시킨 다음 그 위험부담을 줄여서 사회적 안전을 도모하는 생존전략이 있음을 밝혔다. 잘못된 선택은 불행을 야기하고 후회를 낳을 것 같은 심리와 기회비용에 따라 어떠한 선택을 할 것인가의 고민에 빠지게 된다.


아기는 3세까지는 체면이란 게 없다고 한다. 그래서 싫으면 싫은 거고 좋으면 좋은 거다. 자기표현, 자기 선택이 깔끔하다는 말이다. 그러나 아기가 자라면 자랄수록 점점 눈치가 생긴다. 주변 상황이 자기 생각만큼 안전하지 않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상황을 관찰하는 능력이 생겨남에 따라 선택하는데 시간이 걸리고 선택에 대한 의문도 짙어진다. 어른이 되면 선택지는 기하학적으로 많아지고 불확실성도 가늠할 수 없게 된다.


선택의 길이 많으면 과연 좋을까에 대해 알아보자. 선택할 준비가 되어있지 않으면 오히려 혼란을 초래하다. 선택의 길이 많다면 거기에 걸맞은 지식이나 상황판단능력도 필요하다. 결국 선택을 포기하는 사람이 늘어나는 이유이다. 결정을 내리는데 어려움이 지나치거나 미루는 상황이 반복되다가 일을 그르치거나 인간관계에 어려움이 생기지는 않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올바른 선택에 어려움을 느끼는 사람이라면 자신의 능력 향상을 위해 좀 더 애쓰길 바란다.


선택권, 결정권을 갖다는 다는 것은 자율성을 갖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누군가 옆에서 '이렇게 하세요. 저렇게 하세요'라고 잔소리를 하는 것을 지양하고 자기 스스로 주체적으로 살아갈 힘이 있고 확신이 있다는 것이다. 강요가 아닌 자유의지로 결정했을 때 심리적 안정감과 책임감이 배가 된다. '대 2병'이 생기는 이유도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고등학교 때까지 부모와 학교 시스템이 권하는 대로 공부만 하다가 막상 성적에 맞춰 대학에 합격한 이후 비로소 찾아오는 공허감이 바로 그것이다. 자신이 선택하지 않았고 고민하지 않은 결정이었기에 더더욱 대학생으로서의 삶이 만족스럽지 않게 되어 자퇴나 중도 포기자가 속출하는 이유다.


지금의 자신의 모습을 훑어보자. 지금의 내 모습은 내가 선택한 모습인지 아닌지 말이다. 내가 선택한 오늘이 내일이 될 것이다. 나의 삶이 될 것이다. 당신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삶은 선택의 연속임을 명심하자.

선택권을 타인에게 의뢰하는 자는 자신의 손에 소원쪽지를 적어서 누군가에게 주며


'제 소원을 적은 쪽지가 여기있어요. 내 인생을 대신 살아주세요'


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가지 않은 길/ 로버트 프로스트


단풍 든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습니다

몸이 하나니 두 길을 가지 못하는 것을

안타까워하며, 한참을 서서

낮은 수풀로 꺾여 내려가는 한쪽 길을

멀리 끝까지 바라다보았습니다


그리고 다른 길을 택했습니다, 똑같이 아름답고,

아마 더 걸어야 될 길이라 생각했지요

풀이 무성하고 발길을 부르는 듯했으니까요


그 길도 걷다 보면 지나간 자취가

두 길을 거의 같도록 하겠지만요

그날 아침 두 길은 똑같이 놓여 있었고

낙엽 위로는 아무런 발자국도 없었습니다


아, 나는 한쪽 길은 훗날을 위해 남겨 놓았습니다!

길이란 이어져 있어 계속 가야만 한다는 걸 알기에

다시 돌아올 수 없을 거라 여기면서요


오랜 세월이 지난 후 어디에선가

나는 한숨지으며 이야기할 것입니다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고, 나는

사람들이 적게 간 길을 택했다고


그리고 그것이 내 모든 것을 바꾸어 놓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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