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도피 '이타주의'

상호의존성/공동 의존증(Co-dependency)

by 한꽂쌤

어릴 때부터 나는 '준비된' 사람이었다. 어떤 준비라고 해야 적절한 표현일까 생각해보니 '출동준비'정도가 괜찮을 듯싶다. 소방관도 아니고 경찰관도 아니고 웬 출동인가 하겠지만 나는 누군가가 나를 찾으면 언제든 '오케이'를 외치며 나가는 데 신이 나있던 사람이었다. 장기적으로도, 단기적으로도 다른 사람이 나를 곁에 두었다면 손해는 보지 않았을 것이라 확신한다. 형제가 많았지만 아버지가 1년 동안 병상에 계실 때 다니던 직장을 바로 관두고 보살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오랫동안 친정어머니를 챙기느라 바빴다. 결혼을 하기 위한 남편의 조건은 친정집에 잘할 사람을 가장 크게 보고 저울질했던 생각이 난다. 그때는 상담을 공부하기 전이라 내가 내 삶에 무슨 짓을 하는지 전혀 모른 채 아주 신명 나게 살았다. 그렇게 가족들, 형제들에게 나의 에너지를 쏟아낼 때면 기쁘기까지 했다. 아마 나는 그들에게 '필요한 존재'로 여겨지는 걸 지독히 원했던 모양이다.


상담 공부를 시작하면서 대학원을 다니기 시작했고 집단상담이니 수련이니..... 여러 가지 마음 돌봄 시간을 갖게 되면서 동료들이 나를 이상하게 여겼다.


'왜 그렇게 까지 하는데?'


나는 동료들이 한입 모아 말하는 소리를 듣기 싫었다.


'왜 당연한 걸 가지고 비난하는데?'


그 후로도 정신 못 차리고 남 챙겨주느라 바빴다. 자녀가 태어나고 내 할 일도 많은데 정말 어떻게 그렇게 식구들 일에 쫓아다녔나 싶다. 그게 옳다고 믿었고 그래야 한다고 믿었다. 그 믿음이 깨지는데 몇십 년이 흘렀지만 깨지는 순간을 경험했고 비로소 나 자신이 모습을 드러냈다. 아직도 나는 그 순간을 기억한다. 그때의 슬픔, 슬픔과 함께 온 벅찬 감동이었다. 슬픔은 그동안의 나를 향한 미안함이고 감동과 기쁨은 새로운 나를 발견함에 있어서 밀려오는 감정이었다. 실컷 울다가 실컷 웃었다. 며칠을 그렇게 보내고 나서 나는 달라졌다. 좀 더 홀가분해지고 가족들 일에 연연하지 않아도 마음이 무겁지 않았다. 지속적으로 도움이 필요했던 언니와 거리를 두었고 쉽게 도움을 요청했던 식구들에게도 담백하게 말할 수 있었다. 내게도 거절할 권리가 있다는 건 아주 축복받는 행위란 걸 충분히 알았기 때문이다.


상호의존성[相互依存性]은 상대가 되는 이쪽과 저쪽 모두가 서로에게 의지하여 존재하는 성질이라고 개념 정리가 되어 있다. 특히 공동 의존증(Co-dependency)의 경우 어떤 문제에 있어서 불편감을 갖고 있지만 참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것이다. 이는 자신이 감당할 수준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참고 인내함으로 희생이나 헌신을 도맡아 하며 문제를 짊어지려 한다. 지나친 이타주의, 자기희생을 통해 자신의 삶의 목표로부터 멀어져 가는 경우 조심해야 한다. 겉보기에는 다른 사람을 위해 헌신하는 희생적인 사람이지만 결국에는 자신의 삶이 뒷전으로 밀려나 있고 피폐해져 있을 때 비로소 후회하게 될 수 있다. 작은 교훈을 통해 알아차리고 균형 있는 관계로 돌아오면 다행스러운 일이지만 나처럼 오랜 시간 동안 눈 닫고 귀 닫고 살다가 나중에 알아차리게 되는 경우는 그 후유증이 클 수 있다. 그러니 지금부터라도 살펴보면 좋겠다.


워킹맘인 A 씨는 얼마 전 회사를 관두었다. 그동안 육아와 직장을 병행하게 되면서 몸이 아프고 스트레스도 심해서 의욕상실이 있던 차였다. 휴직기간에는 오롯이 자신과 자녀들만 돌보기로 마음먹었다. 휴직 후 시간의 여유가 생겨서 좋았고 어린 자녀들도 엄마가 집에 있으니 좋아하는 것 같아 흡족했다. A씨네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는 친정어머님이 살고 계시는데 장녀인 A 씨는 친정어머님이 신경이 쓰인다. 육아휴직의 목적이 자신과 자녀 돌봄이었으나 점점 친정집에 할애하는 시간이 늘어가기 때문이다. 친정어머님이 병원 가실 때 태워드리고 가까운 곳에 가야 할 일이 있으면 모셔다 드리고, 소소한 집안 행정업무도 척척 해내곤 했다. 처음엔 '이 정도면 뭐 해드리지'라는 생각으로 시작했지만 점점 지쳐가기 시작했다. '내가 이렇게 바쁘려면 육아휴직을 왜 했나'싶었다. 그러나 이내 '쉰 김에 친정집 좀 도와드리는 거지 뭐. 내가 못된 생각을 했네'라고 마음을 위로했다. 그러나 며칠 못 가서 다시 몸은 지쳤고 마음도 지쳐가는 자신을 보게 되었다.


이런 경우라면 친정어머님이 어느 정도 연세도 있으시고, 업무를 보시는데 어려움이 있기 때문에 자녀로서 도움을 드려야 하는 게 맞다. 다만 자신이 목표했던 휴식시간 확보와 자신의 건강 챙기기, 자녀들과의 친밀한 시간 보내는 목표가 뒷전으로 밀려난 셈이다. 어느 것을 우선순위로 두느냐를 고민하게 될 때 마음이 불편할 것이다. 자녀로서의 도리를 해야 하고 엄마로서의 도리도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람은 자신의 한계를 인정해야 한다. 둘 다 완벽하게 잘 해낼 수는 없다. 지금 자신에게 속한 가족의 목표를 우선시하는 게 옳다. 결국 A 씨는 친정어머니에 대한 원망감이 생겼고 '나만 해야 하나?'라는 불평이 생기기까지 했다. 거기에 하나 더 '나는 왜 이렇게 혼자만 힘든 거야'라는 자책까지 밀려왔으니 그 무게감이 상상이 안될 정도이다.


친정어머니의 부탁을 거절한다면 나쁜 자녀가 되는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부탁을 모두 들어주다가 자시의 삶이 엉망이 되고 불평 많은 자녀가 된다면 그 결과가 더 참혹할 뿐이다. 지혜로운 결정을 해야 할 타이밍이다. 적절한 선에서 정중하게 거절한다고 해서 이기적인 자녀가 아니다. 오히려 자신의 가정과 적절한 경계를 잘 지켜내는 건강한 자녀인 것이다.

이 부분에서 예방주사 한방 맞고 가자. 만약 친정어머님께 정중히 거절했을 때 '집에서 모처럼 쉴 때 엄마 좀 도와주면 안 되냐'라는 말을 듣게 되었다고 가정해보자. 이런 경우 가슴을 쓸어내릴 필요 없다. 심호흡 한번 하고 다시 정중하게 자신의 상황을 설명하고 거절하면 된다. 그리고 시간이 될 때 다시 도움을 드리면 된다.


노모를 부양하느라 결혼 적령 시기를 놓친 40대 후반 남성 B 씨가 있다. 다른 형제들도 많지만 결혼을 하지 않은 아들이어서 그런지 노모는 시골집을 정리하고 B 씨의 집에 자리를 잡았다. 처음에는 '당연히 내가 모셔야지'했지만 병든 노모는 자주 병원에 입원해야 했고 그럴 때마다 B 씨는 다니던 일용직 직장을 나갈 수가 없었다. 월급제가 아니기에 그날그날 수입으로 사는데 출근하는 일수가 줄어들다 보니 경제력 또한 점점 나빠지고 있다. 주변에서는 노모를 요양시설이나 주간보호센터에 의뢰하자고 정보를 주지만 B 씨는 차마 그렇게 할 수없어 답답하기만 하다. B 씨에게도 결혼할 기회가 있었지만 노모를 모시고 있다는 이유로 상대 여성은 얼마 안 돼서 관계를 정리하고 떠나버렸다. B 씨는 어머님을 모시게 되면서부터 직장도 연애도 잘 되지 않고 있다.


B 씨의 경우 자식 된 도리를 하느라 자신의 삶이 점점 후퇴하는 느낌이 든다고 호소한다.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B 씨는 노모를 요양시설에 의탁하면 불효자가 되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이타적인 행동이 나타나는 관계로는 '늘 보호해줄 대상'을 찾는 사람들이 있다. 자신보다 못한 이성을 만나야 오히려 편안함을 느끼는 경우, 돌봐줄 만한 것들이 있는 대상과의 관계에서 효능감을 느끼는 경우가 해당된다. 그들은 건강한 사람은 곁에 와도 알아차리지 못하고 마음에 끌림이 없다. 오히려 뭔가 어설프고, 도와주어야 할 것만 같은 사람들에게 연민을 느끼고 강한 끌림이 있다.


이런 상호의존의 관계를 끊어낸다는 건 대단한 용기, 자극이 필요하다. 누군가는 늘 담쟁이넝쿨처럼 누군가를 감고 기생하는 경우가 있다. 누군가는 늘 감긴 채로 겨우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둘 다 힘겹기는 마찬가지이다. 감고 기생하는 사람은 그 대상이 떠나갈까 봐 겁이 나고, 감긴 채 사는 사람은 내가 감기지 않으면 그 대상이 죽을까 봐 겁이 난다. 올바른 선택을 해야 하지만 쉽지 않다. 겪어내야 한다.


'내가 아니더라도 그 사람은 자신의 삶을 스스로 일궈내야 할 의무가 있다'


는 사실을 인지하길 바란다. '내가 아니면 안 되는데'라는 생각은 자신만의 착각이다. 그게 착각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을 때 너무 늦지 않았으면 한다. 내가 당당히 나를 감고 있는 넝쿨을 제거한다면 그 넝쿨은 스스로 다시 선택할 것이다. 다시 기생할 대상을 찾든, 스스로 우뚝 서든 그 대상의 몫이다. 그 몫은 상대방에게 남겨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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