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마음짓기 06화

비난(非難) 말고 공감(共感)

충분한 공감이 이뤄지면 그 누구도 '탓'하지 않는다.

by 한꽂쌤


사람들은 대부분 자기 자신에 대해 '괜찮은 사람'으로 여긴다. 괜찮은 사람이 되고 싶은 마음과 괜찮은 사람으로 불리기를 바란다. '괜찮은 사람'의 함정은 남을 탓하는 것이다. 괜찮은 나가 되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보다는 더 나은 내가 되어야 한다. 이러한 나를 지켜내기 위해 나보다는 다른 사람이 잘못되었다는 무의식적인 투사가 일어난다.


투사(投射, projection)는 자신의 바람직하지 않은 감정을 타인에게 옮김으로써 자신의 자아를 무너지지 않게 보호할 수 있는 방어기제이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해버리는 순간 자신은 형편없는 사람이 되기 때문에 그러한 수치심을 경험은 것보다 차라리 타인을 비난하는 편을 택하게 된다. 누군가를 미워하게 되면 불편한 마음이 진정되는 효과가 있다. 투사는 남 탓이다. 남 탓을 좀 더 그럴듯한 이름으로 포장해서 내놓았을 뿐이다.


자아가 약한 사람들은 자기부정적 감정이 많다. 자신을 무가치하게 평가하고 별 볼 일 없는 사람임을 자처하게 되는데 이러한 감정을 느낀다는 것은 괴로운 일이다. 괴로움을 잠시 피해 갈 수 있는 방법이 비난이다. 이제 막 걸음마를 배운 아기가 모서리에 부딪혀 넘어졌다. 엄마는 아기를 끌어안으며 모서리를 야단친다. 아이는 자신의 실수로 넘어진 것뿐이지만 엄마 덕분에 모서리를 탓하며 실수의 정당성을 획득하며 잠깐의 고통으로부터 잠시 쉬어간다.


어린아이에게는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모습이지만 어른이 되면 상황은 달라진다. 어른들은 실수를 하고 나면 실수를 인정하기 싫어한다. 실수한 자신으로 인해 불쾌하게 되고 이 불쾌감을 전가할 무언가를 찾게 된다. 바로 비난이다. 비난할 거리를 찾고, 대상을 찾아 적절하게 투사하고 나면 한결 마음이 정화되는 느낌이 든다.


사람이 스트레스를 받으면 온 몸과 마음이 긴장상태가 된다. 마치 생존에 위협이라도 느끼는 상태로 착각되어 자율신경계와 스트레스 호르몬이 증가한다. 또한 쉽게 흥분하거나 불안, 초조, 걱정이 는다. 또한 사람들은 집중력과 기억력도 감소하게 되는데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스트레스가 오면 평정심을 잃게 되어 스트레스에서 벗어날 무언가를 찾게 된다. 스트레스를 줄이기 위한 다양한 방법이 있겠지만 비난이라는 방법 또한 그중 하나이다.


평소에 비난을 자주 하거나 남 탓을 통해 위안을 얻는 사람들은 일 상행 활에 있어서 안정감을 느끼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마음이 왠지 불안하고 불편하고 꺼림칙한 느낌이 많다. 비난하는 태도를 내려놓기 위해서는 그만한 노력이 필요하다.


부부갈등이 심하고 남편과의 사이가 소원한 40대 주부 F 씨가 있다. F 씨는 남편과 헤어지고 싶었지만 어린 두 아이를 놓고 이혼할 수 없었다. 어릴 때 부모님이 이혼한 이후로 방황했던 경험 때문에 적어도 자신은 가족을 꼭 지켜야 했기에 이혼만은 해서는 안된다라는 철칙을 세워놓았다. 남편에 대한 불만은 어느덧 자녀들을 향한 기대감으로 나타난다. 그녀는 자녀들을 향해 '내가 어떻게 버텼는데 이것밖에 못해'라며 나무라기 일쑤였다. 이런 말을 자주 들은 자녀들의 입장은 어떠할까. 자신들로 인해 엄마의 삶이 희생당하고 부모님의 갈등의 책임이 자신들 때문이라며 자책한다. 이런 경우 주부 F 씨는 자신의 불만과 불안을 자녀에게 투사하고 있는 것이다. 그녀가 자녀들에게 자주 하는 말은 '너희들을 사랑해서 내가 버티는 거야'라는 문장이지만 그 이면에 의도된 마음은 전혀 그렇지 않다. 자녀들은 어머니의 태도로 인해 자책감만 심해지고 자신들의 잘못이 크다는 생각이 자리 잡게 된다. 차마 어머니를 탓할 수 없는 자녀는 자책하는 방법을 선택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알고 보면 자녀의 자책도 '내 탓'으로 돌렸을 뿐 투사와 다름없다.


가족은 물론 주위 사람들로부터 비난을 받을 때 선별해서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과거에 비해 현재는 훨씬 삶이 복잡해지고 사람들도 다양해졌기 때문이다. 어딜 가나 걱정이고 누굴 만나도 불안한 시대가 되었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원인인 분명하면 훨씬 수월하게 끝맺음이 가능한데 이제는 원인 불가 판정을 받은 미해결 과제만 쌓여간다. 본질은 없고 비난만 남은 셈이다.


남 탓이 그저 '탓'으로 끝나게 되면 에너지만 고갈된다. 아무런 변화도 성장도 일어나지 않은 채 똑같은 '탓'이 되풀이된다. 그러니 원인을 안다고 해서 과연 비난하는 습관이 없어질 리 없다. 나름대로 원인이 파악이 되면 남 탓이든 내 탓이든 '탓'으로 마무리될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탓이 많아지면 힘이 빠지고 뭔가 하고 싶은 마음보다는 '다 귀찮다'라는 무기력에 휩쓸려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하게 된다. 당황스러운 일이나 문제가 발생했을 때 원인에 집중하다 보면 오히려 더 미궁 속에 빠지는 경우가 있다. 해결의 실마리를 찾기는커녕 원인 찾기에 에너지를 다 소진하게 되면 나중에는 자포자기 심정이 될 수 있다.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거기에 쏟을 힘을 아껴서 해결하는 데 사용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유독 감정에 날이 선 날이 있다. 별일도 아닌데 예민하게 굴고, 짜증이 폭발하기도 한다. '오늘따라 왜 그래'라는 반응을 여러 번 들은 날이거나 자꾸 누군가를 비난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면 '잠시 멈춤'하자.


지금 내 마음이 많이 불안한가?

아무리 생각해도 이유를 모르겠는데......

이렇게 다른 사람에게 '너 때문이야'라고 쏘아붙이고 싶은 내 모습은 무엇 때문에 이러는 걸까?


불안하고 짜증 나고 긴장된 감정은 알아차림을 사라진다. 알아차린다는 의미는 여기서 공감과 같다. 내 마음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감정과 생각하고 있는 것들을 구석구석 살펴봐주는 것이 공감이 아닐까? 자신 스스로 자신의 성남을 부드럽게 쓰다듬어주는 터치도 공감이다. 감정에 공감하고 사고에 공감하고 내가 지금 취하고 있는 행위에 공감하면 잔뜩 긴장하고 화나고 탓하고 싶은 마음이 온순해질 것이다. 충분한 공감이 이뤄지면 그 누구도 ''하지 않는다.



충분한 공감 이후에는 무엇을 해볼 수 있을까? 바로 행동의 시간이다. 당장 중요한 것은 '지금 - 여기'이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에 관심을 두는 것이 현명할 때이다.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할 수 있을까?

가야 하나 멈춰야 하나?

그동안은 이랬지만 내가 앞으로는 어떻게 해야 할까?


누구나 사람은 실수를 한다. 자신의 실수나 잘못을 인정하는 만큼 타인의 실수나 잘못을 인정해 줄 수 있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기 힘들어하는 경우 타인에게도 냉정한 잣대를 적용하게 되는데 그 사람 역시 그동안 중요한 타인으로부터 비난을 받아왔거나 수치심을 느끼며 살아왔을 가능성이 크다. 자아가 건강한 사람은 자신을 솔직하게 인정하는 데 두려움이 없다. 내 잘못을 흔쾌히 인정하고 받아들인다고 해서 자신의 가치가 훼손되지 않음을 알기 때문이다. 이러한 경우 자신의 실수, 실패 경험을 성장의 도구로 삼는다.



현명한 자는 자신의 분노를 사람이 아니라 문제 자체를 향해 터뜨리며,

자신의 에너지를 변명에 쏟아붓지 않고 해답에 쏟아붓는다.

- 윌리엄 아서 워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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