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짓기 위한 잔소리
집에 있는 밥통이 말썽이다. AS를 몇 번 받았지만 여전히 마음에 드는 밥을 내놓지 않는다. 기능 버튼은 많은데 그렇게 많은 기능은 감히 원하지도 않는다. 다만 남들이 먹는 수준만큼의 밥만 우리 가족들에게 제공해주면 좋겠다. 어떤 날은 질퍽해서 탈이고 어떤 날은 너무 밥이 살아있어서 탈이라 가족들의 불만이 쌓여간다. 아마 조만간 밥통을 없애버리게 될 것 같은 예감이 들지만 반대하는 파가 있어서 결정은 보류 중이다. 과거에 비해 기능도 많아진 밥통이지만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 보니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 '밥 짓기가 뭐 그렇게 어려운 일이라고 이렇게 애를 먹이니'라며 하소연한들 소용없는 일이다. 밥통 나름대로 뭔가 조건이 안 맞는가 보다.
밥을 짓는데도 지켜주어야 할 조건이 있다. 무게감이 있는 쌀, 물의 양, 불 조절 등 쌀이 밥이 되려면 기본적으로 제공되어야 하는 조건이다. 씨앗을 심어 싹이 나려면 조건이 있다. 햇빛, 적절한 온도, 물이 필요하다. 이처럼 결정체로 모습을 드러내기 위해서는 선행되는 조건들이 있다. 그 결정체가 되기 위해, 그 결정체만이 필요로 되는 조건이 맞춰줘야 한다. 하물며 마음은 어떨까?
마음이 제대로 지어지려면? 마음에 햇볕이 비친다면 얼어있던 땅이 녹듯 녹아내릴 수 있다. 마음이 지어지기 위한 적절한 온도는 무엇일까? 마음이 온전히 보존되기 위한 안전한 환경이 될 것이다. 그 환경은 자기 자신, 주변 환경이 안전하다면 더할 나위 없겠다. 그다음 적절한 물은 마음의 입장에서는 무엇에 해당할까? 마른땅이 촉촉해지고 수분의 힘을 받아 씨앗의 단단한 껍질이 말랑말랑해질 수 있는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마음이 말랑말랑해지려면 잘 스며드는 그 무엇이 될 것이다. 수월하게 스며들기 위해서는 지나치게 거칠거나 딱딱해서는 안된다. 부드러운 질감과 스며듦이 가능할만한 여유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
마음이 제대로 지어지기 위해서 조건이 있지만 그 조건을 무시한 채 완성된 마음을 욕심부리는 경우가 많다.
'왜 내 인생은 이모양이지?'
'왜 나는 되는 일이 없지?'
'왜 사람들은 이다지도 상처를 주지?
자시의 마음을 잘 지어내기 위해서는 스스로 재료를 잘 찾아 나서야 한다. 내 마음의 기초석부터 엉성하게 쌓게 되면 다른 벽돌을 그 위해 올린다 한들 다시 무너지고 말 것이다. 마음 한번 먹었다고 해서 마음먹은 대로 되는 게 인생은 아니다.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것쯤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한번 먹은 다짐이 당장의 결과를 내놓지는 않는다. 변화는 끊임없는 시도로 탄생한다. 잘 되는 날도 있고 망치는 날도 있는 법이다.
마음을 담아 요리를 하고
마음을 담아 집을 짓고
마음을 담아 옷을 만들고
마음을 담아 소중한 이에게 선물을 하고
마음을 담아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음악을 만들고.....
지금 글을 쓰고 있는 작업도 '마음을 담았느냐'라고 물으면 기꺼이 '그렇다'라고 답을 할 것이다. 마음을 담았다는 말은 어떤 의미일까?
'해가 저물면 사람들은 집 나간 개나 닭은 찾을 줄 알아도 자기의 마음을 찾을 줄 모른다'
- 맹자 -
마음을 어딘가에 두고서는 다시 제자리로 가져오지 못한 못한 모습을 빗댄 말인 듯하다. 그렇다면 사람은 마음을 어디에 두고 사는 걸까. 재물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면 돈 버는데 마음을 쏟을 것이고, 권력을 얻고자 하는 자는 권력을 얻는 데에 온 마음을 다할 것이다. 자신이 원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 애쓰는 사람은 마땅히 머물러야 할 마음의 자리를 잊은 채 말이다. 열심히 목적을 가지고 전력 질주하는 열정적인 자세를 탓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러한 애씀의 이면에 진정한 자신으로서의 마음을 상실했다면 그저 공허함만 가져오는 결과가 될 것이다.
마음이 제대로 지어지기 위한 재료는 나에게 있다. 내 마음이 자리 잡고 뿌리를 내리고 싹을 틔우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할까. 진정한 마음 짓기는 무엇일까
어릴 적 나는 마당 한 구석에 나만의 텃밭을 가꾸었던 기억이 있다. 봄이 되면 땅에 씨앗을 심고 씨앗에 물을 주고 어떤 때는 비닐을 씌우며 싹 나기만을 기다렸었다. 따뜻한 봄볕, 습기를 머금은 씨앗은 며칠이 지나면 어김없이 싹을 틔웠고 그 과정을 지켜보며 생명의 신비함을 느꼈었다. 싹이 돋은 식물이 잘 자라기를 바라는 마음이 주변에 같이 자라는 자잘한 잡초들은 그때그때 뽑아주었다. 지극정성으로 가꾼 식물이 잘 자라기를 바라는 본능적인 행위였다.
마음이 뿌려져 잘 자라고 꽃이 피어나기 위해서도 마찬가지다. 마음이 잘 자라는지 들여다보고 보살피면서 수분이 부족하진 않는지, 햇볕이 너무 강하진 않는지, 주변에 괴롭히는 잡초들은 없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자연이 그렇듯 마음도 그렇다. 마음을 헤치는 것들을 잘라주고 뽑아주고 제거해주면 마음이 지어지는 데는 웬만큼 조건을 갖춘 셈이다. 마음을 짓기 위해 괴롭히고 방해가 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차리고 제거하기로 마음먹었다면 그다음 단계는 마음먹은 대로 한번 해보는 것이다.
우리는 흔히 '나 상처받았거든'이라는 말을 한다. 마음에 상처를 받았다고는 하는데 얼마만큼 깊게, 얼마만큼 아프게, 어느 부위에 상처를 받은 건지는 알려하지 않는다.
'그까짓 거 가지고 무슨 상처야'
'다들 그렇게 살아 유난 떨지 마'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전혀 상처받을 일이 아닌데 상처받고 힘들어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니 상처받았다고 말하는 사람에게 모질고 차가운 말은 적어도 하지 말자. 상처는 무엇으로든 날 수 있다. 어떤 일이든, 어떤 말이든, 어떤 행위로든 상처는 상처다. 그러니 상처가 상처임을 인정해 주어야 한다.
상처를 받은 사람들은 제각기 자신만의 방법으로 상처를 드러낸다. 어떤 이는 분노로, 어떤 이는 눈물로, 어떤 이는 혼자만의 공간 속으로, 어떤 이는 막무가내로 참는다. 상처를 받은 게 분명한데 '괜찮다'며 아무 일도 일어난 적 없는 사람처럼 묵묵히 삶을 살아내는 사람도 있다. 그런 사람이라고 해서 상처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고 있었던 상처가 아문 것도 아닌데도 말이다.
이별을 경험한 사람에게는 이별이 상처다. 이별 후 찾아오는 극심한 고통을 바로 드러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오히려 바쁜 일로 하루를 꽉 채워서 그 고통을 회피하는 사람이 있다. 이러다 문득 한 달, 몇 개월, 몇 년이 지난 그 어느 즈음, 과거에 지나쳤던 상처의 흔적에 힘들어할 수 있다.
한번 상처가 나면 그 자리는 늘 아린다. 조금만 스쳐도 소스라치게 놀라고, 조금만 건드려져도 통증을 느낀다. 다 나은 거 같은데 그렇지만도 않은가 보다. 잘 아물어서 추후에 아무런 문제가 없는 상처면 다행이지만 제때에 돌봄을 받지 않고 방치된 상처는 염증을 일으킨다. 아물지 않은 상처는 고통뿐이다. 고통을 주는 상처를 없애버리겠다는 명분으로 자신을 해치는 사람들이 있다. 지나친 음주, 충동적인 자해나 자살시도, 문란한 성행활, 도박, 약물투여 등이다. 순간의 위안을 위해 자신의 몸과 마음에 또다시 상처를 주는 것이니 주의해야 한다.
상처가 생기면 자신을 탓하는 사람이 있고 타인을 탓하는 사람이 있다. 억압하고 회피하는 사람은 나중에 한꺼번에 폭발하여 걷잡을 수 없이 치명적인 결과로 치닫는 경우도 있다. 자신을 건강하게 돌볼 수 있는 성숙한 사람은 자신의 상처를 성장의 기회로 삼는다. 상처의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상처에 대한 고통이나 부정적인 느낌을 좀 더 생산적으로 해결하는 것이다.
상처로 인해 마음 짓기가 더딘 상태라면 명심할 부분이 있다. 내게 일어난 일은 이미 과거라는 점이다. 상처로 인한 고통은 늘 옳다. 상처가 되는 그 순간만을 떼어내어버리고 싶지만 안타깝게도 그러수는 없는 일이다. 현재의 나를 과거에 묶어놓고 괴로워하지 말자. 상처가 있었음을 잊어버리라는 것이 아니다. 상처였음을 인정하고 수용해주되 상처로 인해 내 삶을 저당 잡히지 말기를 바란다. 그 사실을 잊어버리는 나에게 수도 없이 되뇌어 주어야 한다.
'아 그 상처는 과거구나'
과거의 상처가 현재의 나를 놓아주지 않는다면 놓아줄 때까지 알려주어야 한다. 과거는 우리를 쉽게 놓아주지 않는다. 하루에 열 번, 수십 번, 백번이라도 얘기해주어야 한다. 내 마음이 제대로 알아들을 때까지.....
마음을 짓는다는 것은 마음에 상처를 돌보는 일이다. 이러한 돌봄이 햇볕이 되고 물이 되고, 거름이 되어 마음이 잘 자랄 수 있는 환경이 되는 것이다. 오늘부터라도 내 마음을 짓기 위한 잔소리부터 시작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