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잘하려고 애쓰고 있는 나
인생은 선택(選擇, choice)의 연속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나는 글을 쓸지, 다른 일을 할지 선택해야 했고 결국 글을 쓰기로 선택했다. 무엇을 먹을까를 고민하는 사소한 선택도 있지만 한 사람의 인생을 뒤바꿀만한 중요한 선택을 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자신의 선택에 있어서 확신이 들지 않으면 멘토를 찾는다. 인생선배나 도움을 청할 누군가를 찾아 떠난다. 어떻게 하면 제대로 된 선택, 완벽한 선택을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다가 역술가를 찾아가기도 한다. 또는 타로점을 보기도 하고 그 분야 유능한 전문가들을 검색한다. 좀 더 현명한 선택을 하기 위해 이토록 정성을 쏟는 이유는 분명하다. 자칫하면 후회하게 될까 봐, 돌이키기 힘든 결과를 낳을까 봐 염려가 되는 것이다.
눈을 뜨자마자 고민이 시작된다. 지금 일어날까 말까. 아침밥을 먹을까 말까. 이 옷을 입을까 저 옷을 입을까 등의 고민은 하루의 시작부터 즐비하다. 다른 사람과 같이 점심을 먹으러 가면 점심메뉴를 고르는데도 선택이 필요하다. 한식이든 중식이든 그다지 큰 차이도 없는데도 선택할 시간이 필요하다. 스스로 고를 수 없을 때는 뭘 먹으면 좋을지 옆사람에게 묻는다. 옆사람의 의견도 별반 다르지 않다. 돌아오는 대답은 '글쎄요'이다. 같이 옷을 고르는 친구끼리도 서로 의견을 주고받는다. 이 옷을 사면 나에게 잘 어울릴지, 저 옷을 사야 잘 어울릴지 고민되기도 하고 내가 보는 안목에 자신이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옷 고르는 센스가 부족해서 친구를 데리고 쇼핑을 하는 친구라면 앞으로도 친구 없이 본인의 옷을 사기가 더 어려워질 것이다. 혼자서 옷 고르는 게 영 서툴러졌기 때문이다.
어떻게 하면 후회 없는 선택을 할 수 있나요?
이런 질문에 선뜻 자신 있게 답변을 해주는 사람을 주의해야 한다. 그 누구도 타인의 삶을 대신 선택해줄 수 없고 책임을 져주지 않는다. 오롯이 그 결과는 자신이 떠안아야 하기 때문에 쉽게 결정권을 타인에게 양도해서는 안될 일이다.
다른 사람들이 결정을 해주면 좋은 점이 무엇일까? 내가 수고롭게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 있다. 하지만 좀 더 깊숙이 살펴보면 마음의 짐을 덜기 위함이다. 본인이 알아서 선택했다가 혹여나 실패하게 되면 모든 책임을 스스로 져야 하지만 만약 다른 사람이 대신 선택을 해준 경우라면 남 탓이라도 할 수 있다. 사람들은 자신의 판단력을 신뢰하지 못하는 걸까? 스스로 결정하는 안목을 키워야 다음에 같은 실수를 하지 않게 된다. 자꾸만 다른 사람에게 의존하게 되면 혼자 걸을 수 있는 길도 왠지 두렵고 낯설게 느껴진다. 잘 가고 있는 길임이 분명한데도 혹여나 길을 잘못 들었을까 봐 흠칫 흠칫 놀라거나 주변을 살피며 걷게 된다. 확신에 차있지 않는 걸음걸이는 스텝이 꼬이거나 한눈팔다가 돌부리에 넘어지기 십상이니 조심해야 한다. 스스로 선택한 길을 가야지 그 길이 어떤 길이고 주변에 어떤 것들이 있는지 파악이 된다. 혹시 잘못들 어선 길이라면 돌아가면 그뿐이다. 돌아가는 시간만 조금 더 할애될 뿐이다. 전혀 문제 될 건 없으니 조급증만 버리자.
매년 수능 만점자들을 인터뷰를 하면 같은 이야기가 반복된다. '스스로 공부했어요'. 바로 자기 주도 학습을 했다는 것이다. 스스로 공부를 해보고 부족한 점을 체크하고 그 부분을 좀 더 보완하면서 자신의 실력을 스스로 체크하면서 공부했다는 말이다. 학원이나 과외에 의지하는 실력은 당장은 성과가 높을지 몰라도 대학에 가면 확연히 달라진다. 혼자서 공부를 해본 적이 없는 학생들은 대학교 1학년이 되면 적응하느라고 세월을 보내고 2학년이 되면 자신이 선택한 진로, 학교가 적성에 맞지 않는다는 사실에 방황하는 경우가 많다. 바로 공부하고 싶은 학과를 선택한 게 아니라 점수에 맞는 학과를 선택한 이유이다. 스스로 선택하지 않은 대가는 의외로 혹독하다.
과연 옳은 선택이었을까?
이미 내려진 결과를 반추하다 보면 또다시 미궁 속에 빠진다. 과거는 되돌릴 수 없는데도 불구하고 과거 속에 빠져 현재의 자신을 놓치기 쉽다. 정답인 결정과 오답인 결정은 없다. 어느 쪽이 더 옳았을지를 고민한다 해도 마찬가지다. 결정이라는 것은 눈으로 당장 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수치화되어서 계량화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시간에 비례하지도 않아서 오랫동안 머리를 싸매고 고민한다고 해서 정답에 가까운 답이 얻어지는 것도 아니다. 또한 여러 사람들에게 물어본다고 해서 정답을 얻게 되는 것도 아니다. 이렇듯 선택은 규격화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완벽을 추구하는 것 자체가 무모한 도전이다.
때로는 선택지를 최소한으로 잡는 방법도 현명할 때가 있다. JYP엔터테인먼트의 박진영은 춤 연습 시간을 늘리기 위해 특단의 조치를 취했다고 한다. 계절마다 입을 옷을 딱 두벌을 선택하고, 고무줄 바지를 선택하는 것인데 무엇을 입을지 고민을 하지 않아서 노래와 춤 연습할 시간을 확보할 수 있었다고 한다.
스티브 잡스를 떠올리는 청바지와 터틀넥의 경우를 살펴보자. 뇌과학적 측면에서 해석을 살펴보면, 인간의 뇌는 하루에 내릴 수 있는 결정의 양이 정해져 있다는 것이다. 아침에 일어나는 순간부터 선택의 연속이기 때문에 무슨 옷을 입을지를 고민하는 시간을 아끼게 되면 회사나 고객들을 향한 일에 집중하게 된다는 논리다. 선택해야 하는 고민거리를 없애고 결정의 순간을 더 많이 비축하기 위해서라고 하는 논리가 억지스럽게도 보이지만 그만큼 우리는 선택해야 하는 일에 많은 에너지를 사용하고 있다는 반증이다.
완벽한 선택을 추구하려는 사람은 언제나 최고의 선택이 옳다고 여긴다. 그러나 아쉽게도 자신의 선택이 옳았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선택하지 않은 것들을 모두 체크를 해야 하는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 또한 가능하지 않은 일이다. 완벽한 선택을 추구하려는 사람일수록 '혹시나'하는 불안감이 크게 마련이다. 완벽보다는 최선을 추구하는 사람만이 선택이 주는 만족감을 얻을 수밖에 없다.
나의 선택을 존중되어야 마땅하다. 내가 내려야 할 선택의 권리를 타인이 가져가도록 놓아두지 말자. 내가 스스로 선택하기로 선택해야 남들의 나의 삶에 훈수를 두지 않는다. 사람들은 남의 일에 간섭하기를 좋아하고 영향력을 행사하며 만족감을 얻는다. 그들의 만족감을 충족시키기 위해 소중한 나의 권리를 양보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어떤 결정을 해야 좋을지 심각하게 고민되는 경우가 있다. 결정을 선뜻 못 내릴 정도로 힘든 선택지가 있다는 것은 그 어떤 쪽으로 선택해도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그 결과는 별반 다르지 않기 때문에 마음이 기우는 쪽을 먼저 과감히 선택하고 나서 아쉬움이 남는다면 다른 쪽을 선택하면 좋다. 어느 쪽을 선택한다 해도 아쉬움은 남는 법이다. 한두 번 스스로 선택한 후 선택한 대로 실행한 다음 그 결과를 보면서 자신에게 맞는 맞춤 선택법을 터득하게 된다.
고민 끝에 과감히 선택했다가 낭패를 당한 경우라면 후회가 될 것이다. '그러지 말걸'이라는 말을 되풀이하며 그러한 선택을 한 자신을 탓하고 벌주려고 할 것이다. 후회는 얼마든지 할 수 있다. 왜냐면 사람이니까 그렇다. 사람은 완벽하지 않다는 점을 간과하지 말자. 만약 이번에 내린 선택에 있어서 실수가 있었다면 '다음번엔 그러지 말아야지'라고 다짐하면 된다. 앞으로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면 그야말로 탁월한 선택이다.
어떤 선택이든 사람은 반드시 성장한다. 성공하면 성공한 대로, 아쉬우면 아쉬운 대로 의미가 있다. 자신이 내린 선택이 잘못되었을까 봐 고민된다면 '더 잘하려고 애쓰고 있는 나'임을 인정해주자. 'OO이가 너무 잘하려고 하고 있구나. 그런 모습이면 됐어. 충분해'라고 격려해주자. 충분한 격려와 지지를 받은 자신이라면 용기가 생길 것이다. 스스로 선택하는 용기, 그거면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