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마음짓기 02화

사랑을 미루다.

우리 모두는 받아들여지길 원한다.

by 한꽂쌤

온 세상에서 여러분 같은 사람은 단 한명도 없어요

그래서 나는 그냥 지금 이대로의 여러분이 좋아요

- Fred Rogers -



어디 미룰 게 없어서 사랑을 미룰까. 의아하다. 사랑에는 조건이 달면 안 된다고 한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해줘'라고 말하며 나를 판단하고 나를 평가하지 말아 달라고 요구한다. 내 모습 이대로 나를 사랑해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그런 일은 좀처럼 일어나지 않기 때문에 사랑 때문에 상처받고 힘들어하는 거 아닐까. 드라마나 영화에 등장하는 연애스토리를 보면 진실로 사랑하는 줄 알았는데 나중에 보니 조건을 보고 사랑했다는 사실에 실망하는 전개가 자주 등장하는 것처럼 말이다. 조건을 전제로 하는 사랑은 서글프다.


그러나 어찌 보면 조건을 보고 사랑하는 건 나에게도 마찬가지다. 좀 더 내가 나아지면 사랑해주겠노라고 사랑을 미룬다. 조건부 사랑을 하는 데에는 남에게나 나 자신에게나 별반 다를 바 없어 보인다. 내가 나릉 향해하는 사랑만이라도 조건 없이 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무엇 때문에 이 또한 어려운 걸까. 사랑은 조건이 갖추어져야 오는 것은 아니다. 그저 사랑하기로 마음먹으면 되는 일이다. 이렇게 단순한데 이토록 안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누구나 자신에게 거는 기대가 있다. 어느 정도는 배워야지. 어느 정도는 그 위치까지 올라가야지. 어느 정도는 벌어야지. 어느 정도는 살을 빼야지. 어느 정도는 갖춰야지. 어느 정도의 마술에 걸려 사랑을 미룬다. 그때까지만 기다려줘. 그 조건만 네가 갖추면 사랑해줄게라며 자신을 미뤄놓는다. 이 모든 것이 이뤄지면 사랑하다가는 죽을 때까지 하지 못하고 끝내게 될 것이다.


3포 시대라는 말이 등장한 시절이 있었다. 그러다 5포 시대로 늘더니 7포 시대가 등장했고 결국 9포 시대가 되었다. 9포란 연애, 결혼, 출산+취업, 주택+인간관계, 희망+건강, 외모를 포기하는 이 시대의 젊은이들을 향한 비애를 표현한 말이다. 나이가 들수록 얻어지고 성취되는 것들이 많아져야 하는데 갈수록 포기해야 할 것들이 많아지는 인생을 살아가는 삶은 오죽 답답할까 싶다. 소크라테스는 '나에게 들리는 것과 보이는 것이 사랑스러워야 한다. 그 모든 것들이 나에게 사랑을 주고 있음을 지각할 때 사람은 행복해진다'라고 말했다. 그런데 들리고 보이는 것이 사랑을 주기는커녕 결핍과 박탈감만 준다면 사랑으로 뜨거워야 할 마음은 싸늘하게 식어버릴 것이다.


구색이 갖춰지지 않은 나이기에 사랑하기를 미루고 있다면 언제쯤 사랑해줄 만한 사람으로 완성이 될까. 사람들은 '잘난 척하는 사람'을 재수 없다고 표현한다. 겸손하지 못하고 으스댄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잘나지도 않았는데 잘난 척하는 사람이라면 재수 없기도 하겠지만 자긍심이 높은 사람을 보면서도 같은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점검되지 않은 자신만의 습관은 아닌지 의심스럽다.


대학생인 A는 잘 나가는 동기가 거슬린다고 하였다. 공부도 과에서 탑이고 과제 준비나 발표에 있어서도 늘 똑 부러지게 잘한다고 하였다. 가끔은 그 동기도 자신이 잘났다는 사실을 인지한 듯 자랑하는 모습을 보여서 친한 듯 하지만 마음이 편하지만은 않다고 한다. 자세한 스토리는 다 듣지는 못했지만 그 동기는 나름대로 자신이 잘하고 있다는 생각에 늘 당당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이 하는 일에 자신감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당당해져도 되지 않을까요?'라는 나의 반응에 사뭇 놀라는 눈치다. 일부러 자신을 낮춰서 겸손이라는 테두리에 갇혀 자신의 가치를 낮게 보이려고 애쓸 필요가 있을까 싶다.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다른 사람이 자신을 사랑하는 모습도 못마땅하게 보일 수 있다. 자신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기 때문에 타인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는 것처럼.


다른 사람에게는 '나를 있는 그대로 사랑해주세요'라고 기대하면서 정작 자신은 조건부 사랑을 한다. '나의 진짜 모습을 알면 아마도 실망해서 떠나겠지?'라는 생각에 두렵기까지 하다. 온전한 사랑을 받지도, 주지도 못한 상태에 머물게 되는 것이다. 나를 아무런 조건 없이 사랑해주는 사람을 만나도 끊임없이 의심한다. '정말일까'


우리는 그동안 사랑 때문에 많은 상처를 받았다. 사랑했던 가족들로부터 비난을 받았고 사랑했던 친구가 떠나버렸다. 나만 사랑해주겠다고 했던 연인은 이유도 말해주지 않은 채 나를 버렸고 너를 사랑하니까 이런 말도 해주는 거야라는 핑계로 어설픈 충고를 들어야 했다. 이 모든 것들이 사랑의 이름으로 빚어진 일이기에 '사랑은 다 이런 거야'라는 믿음이 자리 잡은 건 아닐까. 사랑은 정말 상처만 주는 걸까. 사랑 입장에서는 억울하다 하소연할 듯싶다. '내가 뭘 어쨌길래 그대로의 사랑을 인정해주지 않는 걸까?' 답답해하지 않을까. 사랑은 누구에도 상처도 아니고 아픔도 아닌데도 말이다.


사랑을 미루는 사람들은 자신을 다그치는 경우가 많다.


좀 더 잘해야지

좀 더 완벽해야지

더 열심히 했었어야지


이런 말을 끊임없이 자신에게 쏘아댄다. 무슨 일을 맞거나 새로운 것에 도전해야 할 때마다 다그치는 내적 언어는 덩달아 힘을 얻는다. 부정적인 내적 언어가 강해질수록 의기소침해지고 자신감 없어지는 자신이 된다. 이러한 반복 사고는 '더 노력하면 뭘 해 어차피 잘하지도 못할걸'이라는 부정적인 결과를 상상하게 된다. 이 상상은 사실처럼 인식이 되어 그 무엇도 시도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으로 귀결된다. 생각도 습관이다.


내 안에는 나를 다그치는 목소리와 사랑하는 목소리가 끊임없이 충돌한다. 충돌은 사람을 지치게 하고 포기하게 한다. 이 목소리가 점점 힘을 갖게 되고 이대로 내버려 둔다면 나 자신을 사랑하는 일은 멀어진다. 누군가 나에게 진심 어린 목소리로 격려를 해주어도 힘을 내지 못하고, 나를 진심으로 사랑한다고 말해주어도 의심하게 된다. 외부에서 오는 좋은 것들을 선물로 받지 못하고 거절하게 된다.


어떻게 하면 사랑을 미루지 않고 지금 당장 할 수 있을까. 같은 말이 또 반복되지만 답은 같다. '지금 내게 일어난 일을 그대로 봐주는 것'이다. 어떤 계획을 세울 때 잘 해내지 못할까 봐 걱정부터 앞선다면 '괜찮아 그렇수 있어. 누구나 도전은 두려운 거야. 너는 그냥 네가 하고 싶은 대로 그만큼 해도 돼'라며 자신에게 일어난 감정을 허용해주어야 한다. 내가 나를 그대로 봐줄 수 있을 때 다른 사람에게 관대해질 수 있다. 사랑하는 사람이 사랑하는 이에게 말을 걸듯 내게도 그런 말을 해주자. 가끔은 일부러 내 머리를 쓰다듬기도 하고 두 팔을 포개어 안아주기도 하자. 한 번은 뺨을 부드럽게 어루만져 주어도 좋다. 이 한 번의 어루만짐이 사랑하기의 시작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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