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마음짓기 07화

저항, 원하는 거 맞는데 원하지 않는 것도 맞아

'네 마음이 옳아'

by 한꽂쌤

'저항이 없는 곳에 분석도 없다' 심리학의 대가 프로이트가 한 말이다. 정신분석을 받기 위해 찾아온 사람이 정신분석을 받지 않으려 대항하는 반발심을 프로이트가 정의한 것이다. 진실인 듯 모순인 듯 알 수 없는 말 같이 들린다. 분석에 대한 자원이 분석에 저항하게 되는 장애물이 되다니 지극히 역설적이기도 하다.


사람의 성장을 방해하는 저항으로부터 해방감을 맛보기 위해서는 저항의 배후를 살펴보아야 한다. 이런 배후를 드러나게 하려는 것을 감지한 순간 또다시 저항이 올라올 수 있다. 왜냐하면 그다지 유쾌할 것 같지 않은 느낌이 감지되어서다. 저항은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역할을 한다. 고통스러운 느낌, 생각, 행동 등 사람은 누구나 고통을 느끼고 싶지 않다. 이러한 저항은 어떤 일을 할 때도 어떤 사람과의 관계를 맺을 때도 동일하게 나타난다.


저항이라는 것은 자연스럽게 일어난다. 멈춰있던 차가 출발할 때 몸이 뒤로 젖혀지듯, 주행 중인 차가 갑자기 속도를 줄일 때 몸이 앞으로 쏠리는 관성처럼 자연스럽다. 저항은 변화에 대한 반대의견과도 같다.

나는 반댈세

저항이 왜 필요할까. 저항을 하면 무엇이 좋길래 저항은 관성처럼 늘 내 곁에 머무는 걸까. 저항이 오는 이유는 무언가로부터 자신이 희생당한다는 무의식에서 비롯된다. 사람은 무엇을 원하기도 하지만 그 무엇을 원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일부를 희생해야 한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기 때문이다. 사람이 무언가를 하고자 할 때 어떠한 고통 없이 순순히 되기를 바란다. 고통 없이 원하는 것을 얻어기를 바라고 고통 없이 하려던 일이 해결되기를 바란다.


자신이 알든지 모르든지 저항은 한 사람의 삶 깊숙이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사람들은 무언가를 원하면서도 그 원함의 저편에 있는 통증을 위협으로 느낀다. 그래서 자신이 그동안 고수했던 생각이나 행동에 머무르려는 저항을 하게 되는 것이다.


나는 하고 싶지 않아요

저항에는 더 이상 하고 싶지 않은 무의식이 숨어있다. 계획했던 일을 하지 않음으로써 실패 경험이나 좌절 경험을 하지 않아도 되니 쉽게 놔지지가 않는 것이다. 사람은 자신이 무언가를 하고 싶어 하는 욕구가 발생을 하면 그 욕구를 부인함으로써 얻어지는 이익을 알고 있다. 이런 과정이 나름 한 사람의 적응과정이고 고통 없이 살아가는 방법 중 하나였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무언가를 원하지만 한편으로는 원하지 않는 마음이 공존하는 것이다.


저항은 한 가지 모습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말, 신체적 느낌, 습관 등 다양한 모양으로 저항을 드러낸다.

저항의 표현은 의식적이지만 저항의 동기는 무의식이기 때문에 스스로 알아차리기가 힘들다. 자신이 저항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게 흘러가고 있기 때문이다.


저항으로부터 조금이라도 벗어나 원하는 바를 얻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관문이 있다. 바로 관심과 공감이다. 사람은 변화해야 할 이유가 있어야 변화한다. 변화를 위한 에너지와 열정은 심리적 알아차림에서 온다. 객관적이고 논리적인 것으로는 충분치 않다는 말이다. 만약 논리적인 부분을 통해 변화가 가능하다면 살도 빼고 운동도 하고 시험공부도 열심히 할 수 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여전히 자신이 원하는 바를 얻어내지 못하고 익숙한 좌절을 맛보곤 한다.


사람들이 변화를 추구하면서 변화로 이어지지 못하는 이유는 논리만으로는 부족하다. 논리는 타인으로부터 용인되는 그럴듯한 이유를 제시하지만 정서야 말로 변화로 이끌 수 있는 동기가 된다. 정서가 빠져 있다면 당신의 다짐은 그저 '말'로만 남아 어떠한 변화에도 이르지 못할 것이다. 근본적인 힘은 정서로부터 비롯된다. 한 사람의 변화를 이뤄내기 위해서는 그 사람의 밑 마음을 들여다보아야 한다. 그 밑 마음 들여다보기가 공감이다.


어떤 사람은 처음부터 변화에 대한 동기가 뚜렷한 사람들이 있다. 이런 경우 지나치게 공감을 사용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동기가 불분명하고 어찌해야 할지 혼란스러워하는 사람들의 경우 더 많은 공감 에너지가 필요하다는 증거이다. 성취지향적이고 과업중심인 이 시대의 사람들은 공감에 대해 망각한다. 자신과 의견이 충돌하면 빨리 충돌을 없애야 한다는 생각에 상대방을 설득하고 이해시키는데 상당한 힘을 소비한다. 쏟아부은 힘에 비해 결과가 좋을 리 없다. 사람들은 쉽게 자신의 생각을 내려놓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애쓴 보람도 없다는 생각에 실망하고 '지나치게 관여하지 말자'라는 방관자적 태도를 갖게 된다. 적절한 거리를 두면서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거리를 유지하며 너무 친밀하지도 않고 너무 멀지도 않은 상태를 찾고 형식적인 인간관계를 맺게 된다.


사람들은 흔히 상대방과 내 생각이 일치해야 자신과 친밀감을 교류할 자격이 있다고 여긴다. 이러한 생각은 비단 상대방에게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친해지고 싶은 대상, 호감을 얻고자 하는 대상이 생기면 자신의 주장을 내려놓고 상대방의 눈치를 보며 행동하게 된다. 그러나 오히려 반대로 해야 할 이유가 있다. 자신과 의견을 달리하고 있는 대상, 상대방을 고쳐주고 싶다는 욕구를 일으키는 대상을 만나면 오히려 공감해주어야 한다. 사람은 논리로 해석되는 존재가 아니다. 마음이 연결되어야 논리도 받아들여진다.


지금 이 순간 저항의 경험을 하고 있는지 살펴보자. 자신이 하려던 일, 친밀한 관계를 맺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저항부터 살펴보자. 우선 계획했던 일에 있어서 저항이 있다면 자신에게 질문을 해야 한다.


'내가 지금 이 일을 하는 게 맞나?'

'지금 해야 할 타이밍인가?'

'아무런 준비 없이 무모하게 시작한 건 아닐까?


중간중간 자신의 저항을 살피는 질문을 통해 저항이 주는 싸인을 알아차려야 한다. 자신이 급했다면 잠시 여유를 갖는 시간을 갖고, 간과했던 감정, 즉 두려움, 불안 등이 있다면 그 감정을 공감해주는 시간을 갖아도 좋다.


'네가 불안하구나. 그래서 지금 이렇게 하기 싫은 거구나'

'네가 하려는 일이 힘들다고 느껴지는구나. 그래서 이렇게 망설이고 있구나'


자신이 원하는 목표가 있다고 해서 너무 서둘러서 달려갈 필요는 없다. 다시 말하지만 그래야 하는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자신이 갈 수 있는 보폭으로 걷고, 자신이 갈 수 있는 만큼만 가다 보면 충분히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다. 자신에게 있는 저항을 기꺼이 관심 갖고 공감하다 보면 저항은 방해물이 아니라 지원군이 될 것이 틀림없다.


<한꽂쌤의 생각>

사람은 누구나 불안한 것 같습니다. 저 역시 무언가를 시작하려 하면 불안하고 실패를 걱정하고 좋지 않은 평가를 받을까 봐 두려움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마음을 애써 외면하는 것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안 순간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했습니다. 나에게 찾아온 감정을 그대로 읽어주고, 인정해줄 때 오히려 불안이나 두려움을 안개 걷히듯 서서히 사라져 감을 느낍니다. 내 안에서 일어나는 저항의 언어를 그대로 입 밖으로 표현해 내는 순간이 나에 대한 공감의 순간입니다. '아 지겹다' '아 힘들다' '아 속상하다' ' 아 하기 싫다' 이렇게 툭 뱉어내고 나서 다시 고쳐 앉습니다. 저항은 당연하기 때문에 인정받아 마땅합니다. 저항을 없앤다는 것은 무모한 싸움인걸 알기에 싸움을 걸을 필요가 없습니다. 저항이 주는 힘을 통해 오늘을 다시 '새로고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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