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전과 하인
게슈탈트 심리치료의 '상전과 하인'
상담심리학의 많은 이론 중에 게슈탈트 심리치료가 있다. 게슈탈트 치료에는 '상전과 하인'이라는 개념이 있는데 상전은 '나에게 명령을 하는 목소리'이고 하인은 '타고난 자신의 욕구에 대한 목소리'다. 상전은 부모님이나 사회적인 규칙, 예의범절 등이 내면화되어 나오는 목소리다. 하인의 목소리는 어떤 것들을 갖고 싶거나 다른 사람을 미워하는 마음일 수도 있고, 편안히 쉬고 싶은 욕구일 수도 있다. 게슈탈트에서는 이런 두 목소리가 공존하고 있으며 함께 조화를 이룰 때 건강하다고 말한다.
심리적인 갈등이 문제가 생기는 경우는 상전의 목소리가 지나치게 힘을 발휘할 때 일어난다. 기독교 집안에서 엄격한 신앙심을 요구받았던 K는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거나 예의에 어긋나거나 싫어하는 마음을 갖는 것조차도 죄책감이 들었다.
하인: 나 저 사람 싫어
상전: 사람을 미워하면 안 되지. 모두 사랑해야지
하인: 드라마 정주행 하고 싶어
상전: 드라마 보는 것은 쓸데없는 짓이야.
하인: 나 이제 좀 쉬고 싶어
상전: 쉬긴 뭘 쉬어 얼마나 했다고.... 더 열심히 해도 모자라. 인생이 만만해?
상전과 하인의 목소리는 누구에게나 듣게 되는 내면의 목소리다. 다만 두 목소리가 서로 협조하지 못하고 한쪽에 기울어지게 되면 어려움이 생긴다. 게슈탈트 심리치료에서는 분열된 목소리로 파편화된 삶을 균형 있게 통합하는 삶으로 이끄는 방법을 안내하고 있다. 자신이 지금 이런 상황이고 이런 것들을 느끼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고 해서 자신의 삶이 통째로 바뀌지는 않겠지만 이러한 알아차림의 과정을 통해 자신을 괴롭히던 내면의 목소리를 잠시 멈추게 할 수 있다.
하인이 말하기를 '나 좀 힘들어'라고 한다면 '지금 힘들구나.... 어떻게 하고 싶으니?'라고 물어봐주면 좋다. 하인이 들려주는 목소리에 관심을 기울이고 어떻게 하고 싶은지 따뜻하게 물어보자. 물어봐주는 내가 있는 것만으로도 하인의 욕구가 거절당하지 않고 존중받게 된다. 이러한 존중은 나에 대한 존중이며 나에 대한 사랑이다. 우리는 살아있는 생명체이다. 살아있기 때문에 당연히 욕구가 있다. 내가 가진 욕구는 당연히 일어날 수 있는 것들임을 스스로 인정해줄 때 나 다운 내가 완성될 수 있다.
자신의 욕구에 제대로 반응하려면 욕구에 대한 알아차림이 필요하다. 어떤 건장한 남자가 어린아이처럼 울고 싶을 때 '남자가 울면 안 되지' '이 정도 가지고 약해지면 남자가 아니지'라는 상전의 목소리로 인해 진정한 욕구가 알아차려지지 않고 인정되지 않는 경우가 있다. '알아차림'은 자신의 내면과 자신의 주변에서 어떤 것들이 일어나고 있는지에 대해 깊은 관심을 보이는 것이다. 내가 무엇을 느끼고 있는지, 내가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내가 지금 무엇을 어떻게 반응하고 있는지에 대해 아는 것이다. 하기 싫은 행동, 하지 말아야 할 행동이 습관처럼 반복되는 이유도 자신의 수정해야 할 행동에 대해 알아차리지 못하는 이유이다. 제대로 알지 못하면 제대로 된 해결책을 시도할 수 없다.
누구나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로부터 좋은 점수의 평가를 받기를 원한다. 이왕이면 좋은 사람으로, 이왕이면 편안한 사람으로, 이왕이면 괜찮은 사람으로 여김을 받음으로써 자기만족을 느끼고 싶어 한다. 가깝게 지내는 친밀한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좋은 사람'의 역할을 잘 해내려는 욕구는 그들과 좀 더 잘 지내고 싶은 관계의 욕구에서 비롯된다. 이러한 욕구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러나 이러한 욕구가 과도하게 되면 오히려 관계를 헤치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주변 사람들로부터 좋은 인상을 남기기 위해 애쓰다 보면 자신의 욕구를 억압하게 되고, 자신의 느낌을 차단하게 된다. 자신이 느끼는 것들에 대해 솔직하게 표현하기보다는 '내가 좀 이해하면 되지' '내가 좀 손해 보면 되지' '내가 좀 참으면 되지'라는 생각을 하며 자신의 욕구를 차단하는데 익숙해진다. 이러한 익숙함이 지속되거나 그 강도가 강해지면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다. 타인을 만나는데 스트레스가 된다는 사실 때문에 약속을 기피하거나 사람들과의 접촉을 최소한으로 하기 위해 자신도 모르게 거짓말을 하게 된다. 이러한 패턴이 계속될수록 자신의 욕구를 제대로 표현할 기회는 멀어지게 된다.
과거의 경험을 되짚어보자. 스스로 자신의 욕구와 감정에 따라 표현하고 행동했을 때 갑자기 거절당하거나 무시당한 경험이 있는 경우, '나의 욕구에 맞게 표현하거나 행동하는 것은 위험해'라는 생각이 들게 된다. 자신의 생각을 억압하고 자신의 알아차림을 무디게 하고 거부하고 자신의 깊은 내면에 숨기거나 소외시킨다. 이렇게 숨어버린 욕구는 성숙되지 못하고 억눌린 채로 숨죽여 있다가 어느 날 외부로 드러나게 되면 갈등의 원인이 된다.
자신이 아닌 다른 무언가가 되려고 하면 할수록 삶은 시들해진다. 자신이 원하는 다른 누군가가 되려고 애쓰기보다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인정하고 받아들일 때 삶은 빛을 발한다. 많은 사람들은 누군가가 자신에게 원하거나, 자신에게 요구되는 것을 잘 해내면 자신의 삶이 풍요롭고 인정받고 안정적으로 흘러갈 것이라는 착각 속에 산다. 이러한 삶은 자신을 잃은 채 타인에게 운전대를 넘기며 살기 때문에 충만한 삶의 기쁨을 누릴 수 없다.
자신의 자각 수준을 높일 수 있도록 강압적이고 회피적인 언어를 책임감 있는 언어로 바꿔보자. 타인과 상황의 요구에 집중되어 있는 것에서 자신의 욕구에 집중하게 되고 스스로 선택권을 쥐고 사고하고 행동할 수 있게 돕는 것이다. 그렇다면 다시 상전과 하인의 대화를 통해 적용을 해보자.
하인: 나 저 사람 싫어
상전: 사람을 미워하면 안 되지. 모두 사랑해야지
>>>>나도 사람을 싫어할 수 있지
>>>>내가 모든 사람을 사랑해야 한다고 생각하는구나
하인: 드라마 정주행 하고 싶어
상전: 드라마 보는 것은 쓸데없는 짓이야.
>>>>드라마 정주행을 하고 싶을 정도로 내가 힘이 들었나 보구나
>>>>드라마 정주행이 꼭 쓸데없는 짓은 아니지
하인: 나 이제 좀 쉬고 싶어
상전: 쉬긴 뭘 쉬어 얼마나 했다고.... 더 열심히 해도 모자라. 인생이 만만해?
>>>>나도 좀 쉴 수 있지
>>>>좀 쉰다고 해서 인생이 망하지는 않아
인간의 내면에는 수없이 많은 갈등 요소가 있다. 이러한 양극성 중에는 책임감과 무책임, 강함과 약함, 배려와 이기심, 성숙함과 미성숙 등 다양한다. 심리적으로 건강한 사람은 이러한 양극성을 소외시키지 않는다. 양쪽의 중심을 잡고 균형감을 가지고 살아간다. 어느 한쪽으로 치우쳐서 기울어지지 않고, 자신의 양극성을 명료하게 자각하며 알아차림 한다. 이러한 사람은 자신과 타인과의 관계에서도 솔직하며 실제적인 관계를 유지하며 살 수 있다.
양극성의 일례로 상전과 하인의 개념을 활용했다. 둘 다 통제권을 갖기 위해 싸우며 승리자는 패배자에게 명령을 하고, 권위를 가지고 지시하며 패배자를 야단치고 처벌하려 한다. 승리자와 패배자의 싸움이 끝나지 않는 삶을 살아간다면 지치게 되고 목표를 상실한 채 삶을 살게 된다. 이러한 삶은 끊임없이 자신을 괴롭히고 고문하게 될 수밖에 없다. 우리는 자신이 생각하거나 느끼고 행동하려는 것에 대해 충분히 알아차릴 수 있어야 한다. 자신에게 있는 부정적인 모습에 있어서 인정하기 어렵더라도 자신의 일부임을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자신에게 있는 못마땅한 모습, 부족한 모습, 불완전한 모습 등이 자신의 모습임을 수용할 수 있을 때 비로소 건강한 삶을 살아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