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쩔 수 없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스트레스에 대한 현명한 대처
요즘은 일상용어가 되어버릴 정도로 흔히 내뱉게 되는 말이 있다면 '아! 스트레스받아' '아! 열 받아' '아! 미치겠네' 등으로 자신의 힘듦을 표현한다. 힘듦의 크기와는 상관없이 시도 때도 없이 튀어나오는 말들은 다시 자신의 삶 속에 침투하여 스트레스에 불을 붙이는 역할을 하게 된다.
스트레스는 원래 '팽팽하게 죄다'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라틴어인 '스트링 게르(Stringer)'인데 처음에 물리학 영역에서 학문적으로 적용되다가 17세기 즈음에 이르러 '어려움에 처하거나 곤란한 일, 고생'의 의미로 사용되어졌다고 한다. 20세기에 들어 인체와의 연관성 연구가 활발해지면서 스트레스에 대한 개념이 일상 속으로 스며들게 되었다. 결국 스트레스는 외부 자극과 변화에 대한 신체적, 정신적, 행동적인 반응으로 볼 수 있다. 스트레스의 원인을 보면 실직, 취약한 경제력, 실패 경험, 결혼, 이혼, 사별, 생로병사, 조직생활, 규칙, 형식이나 절차 등으로 인해 발생할 수 있다.
결국 스트레스는 어려움에 처하여 긴장상태에 높아진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자신에게 닥친 어려움에 있어서 긴장상태가 높다면 스트레스가 높다고 볼 수 있다. 자신이 그 일을 감당할 수 있다면 다행이지만 감당할 수 없을 것만 같은 두려움이 엄습하면 상황은 달라진다.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이 자신에게 없을 것이라는 생각에 사로잡히게 되어 원만한 일상생활에 균열이 생기게 마련이다.
스트레스는 다양한 사람들에게 같은 수준으로 오지 않는다. 외향적인 사람은 새로운 사람들을 대면하는 데 있어서 어려움을 느끼지 않고 오히려 호기심을 가지는 반면, 내향적인 사람은 피하고 싶은 대상이 된다. 남들 앞에서 강연하는 것에 보람을 느끼는 사람에게는 새로운 도전거리이지만 남들 앞에 서기를 원치 않고 조용히 지내고 싶은 사람에게는 스트레스로 온다. 스트레스는 한 사람의 유전적인 기질과 환경적으로 형성된 성격적인 부분의 영향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스트레스의 원인이 외부환경에 있는 경우 예를 들어 대인관계,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나타나는 신체적인 노화현상, 사회적 구조로 인한 원인은 외적 요소이다. 외적요소 이외에 자기 스스로 만든 스트레스도 있다. 예를 들면 '다른 사람 눈치보기' '다른 사람의 평가에 연연하기' '실수하면 사람들이 나를 용서하지 않을 거야'라는 등의 사고는 자기 스스로 억제함으로써 스트레스에 취약하게 만드는 원인이 된다. 외부환경으로 인한 것들은 통제하기 어렵지만 내부적 요인으로 인한 것들은 자기 스스로 조율하거나 합리적으로 선택할 수 있다.
스트레스가 주는 해로움은 자각하기 빠르지만 이로움에 대한 자각은 느린 편이다. 적당한 스트레스는 우리가 해야 할 일을 성취하게 하고, 타인과의 관계에서 실수하지 않게 돕는 역할을 하며 삶을 낭비하지 않도록 만드는 기폭제 역할을 하기도 한다. 학생이 공부에 대한 스트레스가 없다면 마땅히 해야 할 과업을 마치지 못할 것이며, 한 가정의 가장이 경제력에 대한 스트레스가 없다면 그 가정은 위험에 처할 수도 있다. 자녀를 양육하는 기혼 여성이 육아 스트레스를 받음으로 인해 자녀의 안위가 확보가 되는 것이며 한 기업의 총수가 경영에 대한 스트레스를 받음으로 인해 건실한 기업을 유지할 수 있게끔 고군분투하게 된다.
스트레스를 적절히 활용하는 사람은 오히려 삶을 효율적으로 이끌어갈 수 있는 반면 부적절한 사용으로 인해 고통받는 사람들은 삶이 고단하다. 만성 스트레스로 이어지면 호르몬 변화, 신체적 질병이 동반될 수 있는데 스트레스가 심할수록 몸도 상대적으로 긴장상태가 지속되어 균형을 잃게 된다. 마땅히 써야 할 곳에 쓰지 못한 에너지로 인해 별 일도 아닌데 과민하게 되고 작은 문턱도 넘기 버거운 상태가 될 수 있다. 스트레스가 지속되면 일상생활에서 잦은 실수를 반복하게 되고, 자신감이 결여되며 기억력이 감퇴된다. 알 수 없는 두통, 위염, 장염, 만성피로, 우울감, 무기력증이 자주 발생하여 마음의 스트레스가 몸까지 위협하게 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하루하루 별 탈 없이 무난하게 흘러가기를 기대한다. 그러나 어찌 된 일이지 크고 작은 사건, 사고가 일어나게 마련이고 예기치 못한 문제들이 눈앞에 펼쳐지곤 한다. 내가 바라던 현실대로 되어가지 않고 뜻밖의 현실에 맞닥뜨리게 되면 누구나 당황하고 두려움에 움찔하게 되는데 스트레스에 특히 취약함을 가진 사람은 힘든 여정이 아닐 수 없다.
요즘 부쩍 해야 할 일을 미루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큰 일이든 작은 일이든 상관없이 할 수 있는 일인데도 불구하고 미루게 된다고 호소한다. 이러한 이유 중에 하나는 스트레스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계획은 구체적이고 그럴듯하게 세웠지만 한 발자국도 떼어내지 못한 채 제자리걸음이 반복되고 있다면 마음과 몸의 건강은 위협받는다. 자신이 잘 알지 못하는 미지의 세계에 대한 두려움은 누구나 갖고 있다. 그러나 그러한 두려움을 피하고 경험하지 않기 위해 도망가는데 급급하다면 삶의 질은 보장될 수 없다. 새롭게 시작되는 일, 새롭게 만나는 사람, 새로운 환경은 우리에게 두려움을 주지만 그것만 주지는 않는다는 것을 경험을 통해 알 수 있을 것이다. 어차피 그러한 도전은 스트레스를 동반한다. '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라는 말까지는 아니더라도 '피할 수 없다면 맞닥뜨려라'라는 말은 가능하다. 맞닥뜨림을 통해 실체를 알게 되고 '내가 생각했던 것만큼 겁나는 일은 아니었어'라는 새로운 경험이 쌓이게 된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뿐더러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
스트레스는 피하고 두려워할 대상이 아니다. 매 순간, 날마다 찾아오는 조금은 불편한 친구이지만 잘 사귀어 놓으면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경험도 분명히 주게 된다. 이 세상은 스트레스 없이 완전무결하게 평화롭고 안전한 곳이 절대 아니다. '스트레스를 받지 말아야지'가 아니라 '스트레스를 잘 맞이해야지'로 사고의 전환이 필요하다. 더불어 잘 이겨낸 스트레스로 인해 '스트레스를 잘 맞이해서 버티고 나면 어떤 좋은 일이 생길까?'에 대한 기대감을 갖는 것도 좋다. 어쩔 수 없이 스트레스를 받아야 한다면 좀 더 능률적으로 대처하는 편이 낫다. 매사에 남의 탓을 하고, 조건을 탓하고, 환경을 탓하는 사람들은 스트레스가 주는 이로움을 경험하지 못하고 계속 제자리에서 불평불만이 가득한 삶을 살다가 갈 뿐이다.
이왕이면 사람들은 스트레스 없이 살고 싶어 한다. 스트레스 없는 곳에서 아무 걱정 없이 살고 싶어 한다. 그러나 스트레스는 우리의 삶이 지속되는 동안에는 어쩔 수 없이 공존하기에 우리의 곁에 두어야 한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사람이 아무리 노력을 해도 어찌할 수 없는 것들이 있다면 수용하는 태도야 말로 현명하게 대처하는 방법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