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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 긍정이 언제나 옳지는 않은 이유

by 한꽂쌤

과거에는 권력과 권위가 앞서는 계급사회로 인해 개인이 자신의 목표를 선택하기 어려운 시대였다. 이러한 분위기는 자신의 행복을 계획하고 이상을 현실화하기 위해 노력하기보다는 주어진 현실에 수긍하며 사회적 분위기에 안주할 수밖에 없었지만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는 무한한 선택의 길이 주어졌다. 오히려 이룰 수 없는 거대한 목표를 세우고 아무런 대안도 없이 '언젠가는 되겠지'라는 무모한 안일함을 조장하고 있을 정도다. 긍정에 대한 많은 책들이 쏟아지고 긍정을 긍정적으로 봐야 할 것만 같은 분위기는 고조되고 있으나 긍정이라는 것만으로 자신이 추구하는 것들을 성취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의문을 가질 필요가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긍정적인 마인드를 가진 사람들을 선호한다. 그런 사람들과 대화를 하다 보면 자신감이 생기고 뭔가 잘될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일이 잘 해결되기 위한 동기부여를 위해 긍정적인 말을 하는 것은 아주 중요하지만 무한 긍정의 오류에 빠지는 경우는 예외다. 무한 긍정이란 극단적으로 낙관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이다. 자연스럽게 찾아오는 감정을 억압하고 거짓 긍정으로 무장시키는 것이다. 이러한 무장 행위는 현실을 제대로 직시하지 못하고 한쪽으로 치우친 시선으로 바라보게 하여 관점이 경직되고 대처능력은 약해질 뿐이다. 피 흘리는 상처를 보고 지혈을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아무렇지도 않아. 이 정도는 별일 아니야'라고 우기며 지혈하거나 상처를 싸매지 않고 방치하는 것과 같다.


『신경 끄기의 기술』의 저자 마크 맨슨(Mark Manson)은 '인생의 모든 가치 있는 것들이 부정적 경험을 극복하는 데서 얻어진다고 말한다. 부정적 상황에 대한 태도가 무시하고, 서둘러 수위를 가라앉히고, 상황을 회피하는 것은 오히려 부작용을 낼 뿐이며 이러한 모든 과정이 결국 고생이라는 것이다. 또한 실패를 부인하는 것도 결국은 실패의 한 종류라고 강조하였다. 긍정에 대한 수많은 학설이 존재하고 긍정을 추앙하는 듯한 사회적 분위기에 대해 전적으로 잘못되었다는 것을 말하고자 함이 아니다. 다만 긍정적인 것에 취해 제대로 봐야 할 것들을 보지 못하고 제대로 느껴야 할 것들을 느끼지 못하고, 제대로 처리해야 할 일들을 방치한 채 더 큰 문제로 남겨두게 될 것에 대한 우려가 있다.


해로운 긍정주의' 자가진단법


1. 진짜 감정을 감춘다.


2. 무시 또는 묵살을 통해 하나 또는 그 이상의 감정을 떨쳐내려 한다.


3. 당신의 감정에 대해 죄책감을 느낀다.


4. 당신의 기분을 나아지게 만드는 글 등을 보며 다른 사람의 경험을 깎아내린다.


5. 특정 상황에 대해 당신이 느끼는 감정을 인정하는 대신 "이 정도로 끝난 게 다행이다" 같은 말들로 상황을 왜곡하려 한다.


6. 상대가 좌절감 등 '긍정적이지 않은' 감정을 표현하면 상대를 비난하거나 부끄럽게 만든다.


7. "뭐 어쩌겠어" 하며 당신을 괴롭히는 문제를 무시한다.


(출처: 사마라 퀸테로, 제이미 롱)


심리학에서는 지나치게 긍정적인 사고를 하는 현상을 지칭하여 '폴리에나(Pollyanna) 현상'이라고 한다. 폴리에나 현상에 대한 유래는 엘리노 포터의 소설 '폴리에나'의 여주인공 이름에서 유래되었다. 낙천적이고 해밝은 성품의 주인공으로 인해 책은 큰 인기를 끌었고 지나치게 낙천적인 사람들을 지칭하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소설 속의 폴리에 나는 긍정적인 아이로 주변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드는 역할을 했지만 심리학에서의 폴리에나 현상은 감당하기 버거운 일에 맞닥뜨려질 때 해결할 대안을 마련하지 않고 '잘 될 거야'라는 안일한 태도를 말한다.


불확실한 미래에 대해 극심한 불안을 느끼거나 두려움과 걱정 때문에 일상생활을 제대로 유지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갑자기 생길지도 모르는 '위험한 상황'으로 인해 자신의 안전함에 빨간불이 들어올지도 모른다는 지나친 예기불안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사람들만이 현실적인 삶을 제대로 영위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무조건적으로 긍정적인 마인드로 살아가는 사람들 또한 현실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한 채 살아간다. 긍정적인 사람들이 긍정적인 사고를 통해 문제를 쉽게 해결하고 성취경험을 많이 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다만 한쪽으로 지나치게 기울어진 사고는 예측을 통해 막을 수 있는 사고를 간과하거나, 삶의 중요한 선택을 단순하게 처리하여 돌이킬 수 없는 후회를 낳기도 한다. 긍정적이라는 것은 현실을 제대로 보고 좋은 점과 나쁜 점을 균형 있게 생각하고 인지하고 행동하는 것이다.


무한 긍정의 오류는 마땅히 경험해야 할 실제 감정을 느끼지 못하도록 철저히 고립시키는 데 있다. 사람은 누구나 불완전한 존재이며 불안한 존재임을 인정하는 것이 오히려 긍정적인 사람의 태도라 할 수 있다. 일방적인 긍정성은 우리의 몸과 마음이 제대로 기능하는 데 방해가 된다. 우리가 마땅히 자각해야 할 감정이 제대로 느껴짐을 거부당한다면 거부당한 느낌은 차곡차곡 쌓일 수밖에 없다. 간혹 어떤 사람들은 '그땐 기분 나빴는데 그냥 시간을 두고 참다 보니 다 잊어버렸어'라고 말을 하지만 감정은 그렇게 쉽게 잊힌 채로 가만있지 않는다. 해소되지 않는 감정은 끊임없이 튀어나올 때를 기다리며 내면에 저장되다가 지속적으로 외면당하다 보면 결국은 신체적으로 드러내어 숨겨진 감정이 살아있음을 증명한다. 심리적인 것과 신체적인 증상과 연결이 되어 있기 때문이다. 받아들여지지 않는 감정이 표현될 방법을 몸으로 찾은 것이다.


긍정적인 것만 좋은 것이라 여기며 환영받는 대신 부정적인 것은 나쁜 것이라 여기는 테마가 형성된 데에는 사회적 분위기의 영향이 크다. 긍정적인 것만이 모든 것을 손쉽게 해결해 줄 것이라는 마법을 내세우는 수많은 책과 매스컴, 다양한 소셜미디어에서 드러나는 수많은 사람들의 완벽한 모습들은 끊임없이 자신을 별 볼 일 없고 초라한 존재로 만든다. 완벽한 행복을 누리며 살고 있다는 것을 뽐내는 사람이나 그러한 사람과 자신을 비교하며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는 사람 모두가 불행할 뿐이다.


자신이 완전하지 않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연약하고 흠이 있는 사람임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다면 자신에게 찾아오는 다양한 감정들을 느끼고 표현하기에 자유로워질 수 있다. 조금이라도 기분이 나쁘거나 부정적인 사고를 하게 되면 모든 일이 잘못될 것만 같은 부정적인 생각이 들게 마련이다. 그러나 이러한 부정적인 생각이 든 자신이 큰 잘못이라도 한 것처럼 재빨리 없애려 하다가는 제대로 된 삶의 만족감을 느끼는데 어려움이 생기기도 한다. 미래를 낙관적으로 보고 '모든 것이 잘 될 거야'라는 신념만을 추구하게 된다면 머지않아 좌절을 맛보거나 자책하게 될 뿐이다. 삶을 사는 데 있어서 '반드시 잘 돼야 한다' '미래는 늘 행복한 것들만 있어야 한다'라는 사고는 우리의 삶의 속성과는 역행하는 사고이다.


부정적인 감정에 마주하는 것이 즐겁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부정적 감정을 외면하려 한다면 결코 해결될 수 없는 감정이다. 부정적인 감정이 들면 즉시 처단해야 된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자신의 감정이 부정적으로 흐른다면 부정적인 감정을 마음 깊은 곳으로 밀어 넣지 말고 받아 들여야 한다. 부정적인 감정에 대해 인정함으로써 자연스럽게 흘려보내는 자세가 필요하다. 긍정적인 사고나 감정이 우리의 삶에서 중요하지만 우리의 삶이 늘 즐겁고, 화창한 날씨만을 보장해주지는 않는다. 부정적 사고나 감정은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일부임을 받아들여야 한다.


진정한 긍정성이란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며 지금 이 순간 자신이 해야 할 것들이 무엇인지 합리적으로 인지하는 능력이다. 두려운 생각이 들면 '이 상황에 두려운 생각이 드는 건 당연한 거야'라는 사실을 알아차리는 자세가 필요하다. 무엇인가 잘못될 것만 같은 부정적인 생각에 사로잡힌다면 피하지 말고 받아들이자. 그렇다고 해서 지나치게 그 생각에 빠져들라는 말은 결코 아니다. 누군가가 어떤 상황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에 고통스러워한다면 '괜찮아. 다 잘될 거야'라는 말 대신 '정말 힘들어 보이는데 내가 도와줄 수 있는 부분이 있다면 말해줘'라고 말해주자. 우리에게 찾아오는 모든 감정들은 소중하다. 긍정적이어야 한다고 강요하지도 말고, 부정적이니 얼른 없애버려야 한다고 초조해 하지도 말자. 찾아올만한 타당한 이유가 있으니 함부로 무시하거나 억압하지 말고 기꺼이 맞아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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