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어나지 않았으면 좋을 일들, 겪지 말았어야 할 경험들은 누구나 자신에게 상처와 아쉬움으로 남는다.
내가 그때 그러한 선택을 하지 않았더라면.....
내가 그때 그곳에 가지만 않았더라면......
내가 그때 그런 말을 하지 않았더라면.....
'만약 그랬더라면'의 생각은 한없이 자신을 무기력하게 하고 후회와 자책감에 빠져들게 한다.. 생각하고 또 생각해봐도 억울하고 속상할 때 참을 수 없는 분노도 있을 것이며, 어찌할 수 없었던 자신의 태도에 대한 뉘우침으로 우울감에 휩싸일 수도 있다.
하루가 같은 하루인 듯 하지만 우리는 하루에 약 150번의 선택을 하고 작고 사소한 선택까지 모두 포함하면 성인 기준으로 약 35,000번의 의사결정을 하고 있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하루에만 수백, 수만 번의 선택을 하며 살아가고 있다는 것인데 그 많은 것들을 전부 기억을 하지 못할 뿐이다. 하루 동안 이렇게 많은 선택의 기로에 서고 결정을 하는 과정에서 반드시 의식적으로 하는 것만은 아니다.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어떠한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삶의 방향은 달라질 수밖에 없다. 한순간의 선택이든 오래 고민하고 내린 선택이든 상관없이 우리는 불완전한 인간이기 때문에 잘못된 선택을 하는 실수를 범한다. 작은 실수는 잠시 동안 자신을 괴롭히지만 너무나도 기막힌 현실에 부닥치게 되면 도대체 무엇 때문에 이지경까지 몰고 가게 되었을까에 대한 회의와 뼈저린 반성이 일어나기 마련이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자신의 과거를 다시 평가하고 혹여나 잘못된 점은 없는지 되짚어보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반성이 끊임없이 지속되어 자신의 삶을 황폐하게 하고 옴짝달싹 할 수 없게 만드는 경우는 위험하다. '만약 내가 그때 그러한 선택을 했더라면 달라졌을 텐데'라는 사고는 지난 기억 속의 자신의 행동을 어리석게 느껴지게 하고 그러한 자신을 용서하지 못하게 하는 역할을 한다. 이러한 패턴은 과거의 자기가 현실의 자기를 끊임없이 벌을 주는 것과 같다.
내가 그때 그 남자와 헤어지지 않고 결혼했더라면 지금의 결혼생활보다는 더 나았을 텐데
내가 그때 그 사람을 만나지 않았다면 속임수에 넘어가 내 모든 것을 탕진하지는 않았을 텐데
내가 그때 용기를 내서 그곳에 갔더라면 지금의 나와는 다른 모습으로 살고 있을 텐데
내가 그때 조금만 참았더라면 내 소중한 사람을 잃고 슬퍼하지 않았을 텐데
이렇게 과거를 후회하는 내적 언어가 되살아나는 시기는 현재의 자기 모습에 만족감이 없거나 불행하게 여겨지는 경우이다. 이러한 불행감을 인정하기에는 스스로 감당할 수 없는 감정이기 때문에 과거로 도망가서 뭔가 해결책의 실마리라도 찾겠다는 마음에서 비롯된다. 결국은 지금 자신에게 벌어진 불편한 현실이 해결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그 이유이다. 결론적으로 지금 자신이 마주하고 있는 고통의 무게를 스스로 질 수 없고 해결할 수 없을 것이라는 믿음 때문에 차라리 현실과는 동떨어진 과거의 그때로 돌아가 머물러 잠시나마 편안하기를 원하는 마음이다.
현실을 인정하려 하지 않을뿐더러 인정하고 싶지 않음이 간절하기 때문에 가상의 세계를 그리게 되는데 그 안에 안주하려는 모습은 더욱더 현실을 부정하게 만든다. 그때 그런 선택을 하지 않았다면 지금 자신은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은 것들을 성취했을 것이며, 멋있는 사람이 되었을 것이라며 스스로를 위로하려는 시도이지만 이러한 위로는 가짜 위로일 뿐이다. 과거로 돌아가 현명한 선택을 했다면 자신의 삶은 지금보다는 나았을 것이며 운 좋으면 지금보다 더 많은 능력을 갖추었을 것이라는 생각은 착각이며 책임을 부정하는 태도이다. 과거의 그때로 돌아가 그때와는 다른 선택을 했다면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을 누릴 수 있을 수도 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가설이다.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는 것을 참이라 여기며 그때이기를 바라는 것은 부질없다.
심리상담을 하다 보면 사람들은 '그때 이 사실을 알았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라고 아쉬움을 표현하는 말을 자주 한다. 그때 정신을 차리고 부모님 말을 들었더라면, 일에만 몰두하지 않고 가족들과 시간을 더 보냈더라면, 남편(아내)의 마음을 좀 더 일찍 알아주었더라면, 좀 더 젊었을 때 해보고 싶은 거, 내가 하고 싶은 거 하고 살았더라면 좋았을 텐데 지금은 후회한다고 말한다. 이러한 생각은 현존하는 자신의 삶을 한없이 무기력하고 우울하게 한다.
노자는 '기분이 우울하다면 과거에 살고 있는 것이고, 불안하다면 미래에 살고 있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현재에 머물고 있으며 과거의 시간에 머문 듯 생각하고 행동한다면 그 어떤 것도 내 것으로 누릴 수 없게 된다. 과거와 미래는 내가 어찌할 수 없는 통제권 밖의 영역임을 인정해야 한다. 오로지 내가 머문 곳은 지금-여기, 현재이다. 후회는 특별한 사람만이 하는 것은 아니다. 누구나 후회하는 순간이 찾아오게 마련이다. 그러나 과거에 했던 후회를 지금도 반복할 필요는 없다. 후회 없는 삶을 누리기 위해 교육을 받고 책을 읽고 강연을 듣곤 하더라도 후회는 있다. 인생이란 게 어디 마음먹은 대로만 되는 여정은 아니기 때문이다.
지나친 후회는 몸과 마음에 해롭다. 올바르게 보는 눈을 흐리게 하고, 만족과 감사를 모르는 불평만 늘어간다. 결국 삶이 비관적이 되고 더 나아가 살 가치가 없는 자신임을 증명이라도 하듯 깊은 고통의 삶을 살아갈 수도 있다. 과거 속에 다시 돌아갈 수 있다면 얼마든지 후회해도 좋다. 그러나 그럴 수 없다면 과감하게 '했더라면'의 삶을 멈춰야 한다.
지나간 과거에 있어서 자신이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다. 통제권 밖의 영역이다. 과거로 돌아가 그때와는 다른 선택을 할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지에 대해 백 번, 천 번을 생각한다 한들 지금 나에게 어떠한 변화를 줄 수 있는가? 후회했던 과거가 다시 후회 전의 상황으로 되돌아갈 수는 없다. 과거는 과거일 뿐이다. 과거는 과거 영역으로 남겨두자. 과거보다는 조금 더 나은 현재를 채우고 나서야 자신이 원하는 미래를 꿈꿀 자격이 주어진다.
아들러(Adler)의 개인심리학적 상담기법 중에 '단추(버튼) 누르기(pushing the button)' 방법이 있다. 단추 누리기 방법은 자신이 선택한 경험으로 일어난 감정을 스스로 창조해 낼 수 있고 선택할 수 있으며, 책임감 있게 자신의 감정을 선택할 수 있는 사람은 바로 자신임을 경험하게 하는 방법이다.
순서
1. 눈을 감고 단추 누르는 것을 상상한다. 오른손에는 행복 단추, 왼손에는 우울 단추가 있다.
2. 자신의 인생에서 긍정적 경험을 상상한 후 좋은 감정(행복감)을 경험한다.
3. 부정적 경험(불행한, 굴욕, 실패)을 상상한 후 좋지 않은 감정(우울감)을 경험한다.
4. 다시 긍정적 경험을 상상하고 좋은 감정(행복감)을 다시 경험한다.
5. 오른손 단추는 긍정적 경험(행복한), 왼손 버튼은 나쁜 경험(우울감)인데 단추는 자신이 자유자재로 선택할 수 있다.
우리는 누구나 자신의 감정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존재이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실존주의 철학자 롤로 메이(Rollo May)는 인간은 삶이 지속되는 동안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이기 때문에 불안을 피할 수 없으며, 인간은 위협에 반응할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닌 존재라고 하였다. 과거를 통해 삶의 방향을 한 층 더 성장시킬 수 있는 방법은 분명히 있다. 과거를 거울삼아 지혜로운 선택을 위해 노력하고, 후회보다는 감사하며 생산적인 미래를 꿈꾸는 것이다. 후회하는 시간을 줄이고 더 나은 기회를 잡기 위한 발판으로 삼으면 좋다. 과거는 내가 할 수 없는 일로 채워져 있지만 현재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널려있다. 할 수 있는 일이 보이지 않는다면 아직도 과거에 머물고 있지는 않는지 돌아보자.
내가 남긴 발자국은 결국 내 것이다. 내가 남긴 발자국임을 부인하는 대신 인정하자. 삶은 지금보다 나아질 때도 있고, 또 어쩌면 나빠질 때도 있다. 자신의 삶이 늘 해피앤딩이기를 바라기 전에 지금 자신이 어떤 선택을 할 수 있고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살펴볼 일이다. 실체 없는 괴물과의 싸움을 중단하고 자신의 소중한 가치를 낭비하지 말아야 한다. 변화가 불가능한 과거에서 벗어 나와 머물러야 할 곳은 변화 가능한 '지금 이 순간의 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