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가정통지표를 보면 늘 '내성적인 아이'라는 단어가 반복되어 기재되어 있었다. 학년이 바뀌고 학기가 바뀌고 담임선생님이 바뀌어도 모두들 약속이라도 하듯이 '내성적인 아이'라는 글자를 적어 표현했던 모양이다. 거기에 하나 더 붙여지는 단어는 '침착한'이라는 단어로 기억이 난다. 내성적이고 침착한 아이라는 단어가 반복된 걸 보면 무척이나 나는 내성적인 사람이었다. 같은 동네에 큰아버지 댁이 있었는데 집안 행사가 있어서 밥 먹으러 가야 할 때면 창피해서 도무지 가고 싶지 않았고, 같은 또래의 사촌들을 보면 낯설고 어색해서 보고 싶지 않았던 기억이 난다. 엄마와 같이 가면 갈 수 있으련만 엄마는 미리 가서 부엌일을 거들어주어야 했던 모양인지 늘 혼자서 가야만 했다. 혼자서 큰아버지 댁으로 가는 짧은 길이 너무도 길게 느껴졌고 싫었다. 내성적인 성향인 나는 사람들 앞에서 말을 거의 하지 않았으며 드러나는 것을 꺼려했다. 그냥 조용히 내 할 일 하면서 사는 게 속편 했던 거 같다.
조금씩 성장하다 보니 내성적인 모습이 너무도 싫었고 외향적인 친구들을 보면 부러웠다. '어떻게 저렇게 활발하게 말도 잘하고 사교성이 좋을까'하는 생각에 그런 친구들처럼 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내가 가진 내성적인 성격을 당장 없애고 외향적인 성격으로 바꿀 수 있다면 무엇이라도 해볼 수 있을 거 같았다. 중학교를 졸업 후 고등학교에 가면서는 본격적으로 성격 바꾸기 프로젝트에 돌입했다. 나와 친한 사람 중에 외향적인 사람 한 명을 선택해서 그 사람을 따라서 해보려고 시도했던 거 같다. 내가 선택한 사람은 한 살 많은 언니였는데 나름 사교성도 좋아 보이고 사람들로부터 사랑도 받는 듯 보였다. '언니! 나도 언니처럼 성격을 활발하게 바꾸고 싶어'라고 했더니 그 언니가 하는 말이 '그러면 나를 따라다녀'라고 했다. 언니와 나도 나의 내성적인 성격이 고쳐질 줄 알았던 순진한 시간이었다. 그 후 언니를 아무리 쫒아다니고 노력하고 흉내 내도 그다지 효과가 없었다. 오히려 '나는 왜 이럴까'라는 자책과 함께 더욱더 나의 성격에 대한 불만이 쌓일 뿐이었다.
외향적인 성격으로 바뀌기 위해 노력한 걸 보면 외향적인 사람들인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좋은 점들을 나도 누리고 싶었던 모양이다. 사람들과 살갑게 이야기하고 그들에게 관심을 갖고 관계 맺는데 어려움이 없는 그들의 모습이 내심 행복해 보이고 가치 있게 여겨졌다. 내가 가진 성격으로는 그러한 행복을 소유하지 못할 것 같고 사랑과 관심을 받지 못하는 사람이 될까 봐 겁이 났다. 외향적인 사람은 사람들과 쉽게 친해지기 때문에 서로의 웃음을 나누고 재밌고 즐거운 느낌을 주기 때문에 인간관계에 있어서 활력소 역할을 한다. 때문에 어디를 가나 환영을 받고 관심을 받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를 목격한 내성적인 성격의 소유자는 일찌감치 자신의 성격을 고쳐서 외향적인 사람들처럼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게 된다. 이렇게 되면 내가 가진 성격이 마음에 안 들고 불만이 쌓여 남들 앞에 서면 한없이 쪼그라드는 느낌으로 힘들어질 수 있다.
성격에 대한 정의는 학자마다 다르지만 여기에서는 타고난 기질로 이해해주기 바란다. 이러한 성격은 좋고 저러한 성격은 나쁘다의 개념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진짜 저 사람 성격 이상하네' '이런 성격으로 사회생활하기 힘드니까 바꾸세요'라는 말을 쉽게 하기도 하고 듣기도 한다. 성격은 흑백논리처럼 정확히 구분되는 것이 아니고 우리가 이해하기 편하기 위해 구분해놓는 것이다. 내향적 성격과 외향적 성격을 정 반대로 바라보는 것은 어느 한쪽이 고쳐져야만 하고 불리하게 느껴질 수 있다.
사람은 누구나 타고난 기질이 있다. 이러한 기질은 웬만해서는 후천적으로 바뀌기가 어렵다고 한다. 간혹 자신에게 닥친 예기치 못한 사건이나 사고를 당한 경우에는 타고난 기질에 어느 정도 영향을 줄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대부분의 경우 타고난 기질을 가지고 삶을 살아가게 된다. 상담 공부를 하고 상담사의 길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나는 나의 내성적인 성격에 대한 인식이 바뀌었다. 그리고 공부를 하기 전에도 이미 나는 내성적인 성격인 내가 전혀 성격과는 상관없이 얼마든지 다른 사람들과 교류하고 즐기며 하고자 하는 일을 해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람 만나는 것을 꺼려하던 내가 늘 새로운 사람을 만나야 하는 직업을 갖게 되었고 그 일을 무난해 해내는 모습을 보니 나의 고정관념은 조금씩 무너지기 시작했다. 심리학 공부를 하면 할수록 내성적인 성격은 그저 기질일 뿐 그 기질로 인해 한평생을 사는데 전혀 어려움이 없고 거칠 것이 없음을 이해하게 되었다. 방해물이 되는 것은 오히려 내가 나를 싫어하고 바꾸려고 하는 마음이었던 것이다. 말이 없고, 조용하고, 신중하고, 드러내지 않고 없는 듯이 존재했던 내가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늘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며 다양한 교육현장에서 새로운 주제를 가지고 교육하는 모습을 보면 어릴 때 친구들은 깜짝 놀란다. 내성적인 사람의 특성을 상담사로서, 교수자로서의 기능에 접목하여 좀 더 신중하게 듣고, 상대방에게 집중하며, 생각을 깊이 하게 된다. 말을 많이 하는 성향이 아니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함부로 하지 않으며 폭넓은 인간관계를 맺는 대신 소수의 사람들과는 오랫동안 친분을 유지할 수 있다.
내가 가진 성격이 내가 버려야 할 성격이 아니었다. 내게 주어진 소중한 보물 같은 것이었다. 내가 이 세상을 살아가기에 걸림돌이 되라고 허락된 것들이 아니라 충분히 누리고 살 수 있도록 해주는 도구이다. '쓸모없는 성격이니 바꿔버리자'라고 생각했던 마음은 내가 나를 향해 도전장을 내미는 것이란 걸 이제는 안다. 나의 성격이 늘 편하거나, 옳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가끔은 불편하고 답답하기도 하지만 그 이면에 있는 장점은 무궁무진하다. 지금은 나의 성격에 대해 감사한다. 내 성격을 받아들이고 소중히 여기게 되면서부터 나에게 시비 거는 일은 거의 없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성격을 구분 지어놓고 평가하는데 능숙하다. 성격은 그저 이러한 면이 있고 저러한 면이 있는 것뿐이다. 옷장을 열어보면 빨간색, 파란색, 검은색, 흰색 등 다양한 옷이 결려져 있고,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 옷들이 걸려 있듯이 그때그때 필요할 때마다 꺼내 쓰기 편한 대로 꺼내 쓰면 된다. 원색을 좋아하는 사람은 그 색을 통해 자신의 매력을 뽐내면 되고, 파스텔 톤을 선호하는 사람은 파스텔 톤으로 자신의 매력을 뽐내면 된다. 사계절 옷이 충분하지 않아서 더 구비를 해야 할 필요가 있다면 쇼핑을 해서 구비해서 추위와 더위를 대비하면 된다. 자신에게 있는 성격을 받아들이고 장점과 단점이 있다면 그것들을 잘 인식한 다음 자신의 삶 속에 적용하면 된다. 장점만 있는 사람이 없고 단점만 있는 사람은 없다. 상황과 사고에 따라 장점이 단점 되고 단점이 장점이 되는 것뿐이지 않은가. 남들이 가진 장점도 당사자에게 물어보면 단점이라 말하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나에게 있는 것에 감사하고 나에게 있는 것들을 활용하여 내가 원하는 삶을 살 수 있는데 굳이 나에게 싸움을 걸 필요는 없다. 우리가 가진 성격은 조금씩 다를 뿐이다. 내게는 수없이 많은 다양한 성격들이 존재한다. 내가 지금 이 순간 드러내는 성격은 그 많은 성격 중에 하나일 뿐이다. 생각해보면 어릴 때 좋아 보였던 외향적인 모습이 내게도 이미 있었다. 사람들과 이야기하고 사람들과 웃으며 서로에게 관심을 갖고 서로에게 사랑을 주고받을 수 있는 소양이 그때도 존재했고 지금도 존재하고 있다. 우리가 가진 다양한 성격은 그 무엇이든 나를 빛나게 해 줄 수 있기에 한 없이 소중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