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동만이 살길이다.

-살아있음의 축복 '움직임'

by 한꽂쌤

살아있는 것들은 모두 움직인다. 움직임이 없다면 죽은 것이다.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이 정말 축복받은 것이구나라는 걸 뼈저리게 느꼈던 순간은 친정엄마가 요양병원에 머물게 되면서부터다. 엄마의 병실에는 모두 8분의 어르신들이 계셨는데 남의 도움 없이 움직일 수 있는 분, 남의 도움을 받고 움직이시는 분으로 나뉘었다. 누워있는 상태에서 스스로 조금이라도 움직일 수 있는 분, 점점 움직이지 못하시는 분, 앞으로 움직이지 못할 분, 아무런 움직이 없어서 수시로 몸의 위치를 바꾸어주어야 하는 분들인 것이다. 그때 깨달았다. 살아있다는 건, 생명이 있다는 건 움직이는 거구나, 움직이는 게 행복이구나, 움직일 수 있다는 게 축복이군나.


매사에 이유가 많은 성격의 나는 상담을 공부하게 되면서 이유가 점점 사라지고 있다. 이유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음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원인을 몰라도 습관 하나 바꾸면 변화가 시작되고 마음의 힘듦이 회복되기 시작하는 경우가 전혀 이상하지 않음을 안다. 내게는 축복이다. 오늘도 나는 순간순간 이유와 변명이 목구멍까지 차오른다. 내가 --을 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 스스로 장황한 설명을 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그러나 그런 설명은 전혀 영양가가 없다. 생명력을 상실한 언어를 굳이 하면서까지 내 소중한 칼로리를 소모하고 싶지 않다. 덕분에 나는 아주 단순한 원리로 그냥 이렇게 앉아 글을 쓰고 있지 않은가? 내가 원하는 글쓰기를 하고 있지 않은가? 작가가 되고 싶으면 글을 써야지. 책을 출간하고 싶으면 글을 써야지, 한 문장이라도, 한 단락이라도 써야지 않을까? 그래서 그냥 이렇게 쓰는 것이다.


무기력을 호소하는 사람이 있다고 치자. 그 사람의 고민을 들어주면서 그를 어떻게 도와야 그의 무기력을 회복시킬 수 있을까? 무기력의 원인을 끝없이 탐색하고 그가 무기력한 이유를 함께 탐색하는 방법이 있다. 그가 무기력함으로 인해 받고 있는 영향을 살피고 그가 무기력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공감해주는 방법도 있다. 그러나 그래서... 어쩌라고...

가장 사이다 같은 해결방법은 작은 행동변화를 시도하는 것이다. 아주 작은 선택을 스스로 하고, 선택한 것을 실천해 보는 것이다. 흔히 하루 30분 쬐기를 목표로 했다고 한다면 무기력증에 시달리는 사람은 외부로 나가는 거 자체를 싫어한다. 30분 햇볕 쬐는 행동이 자신에게 도움이 된다는 걸 이 사람이 모르겠는가? 가만히 있는 행동으로 인해 자신의 무기력감과 우울감이 가중된다는 사실을 모르겠는가? 본인 스스로 너무나도 잘 아는 사실이지만 행동으로 옮기기 너무 힘들다는 것에 동의한다. 30분 나가는 게 그렇게 어렵나?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결코 쉽지 않다. 이 경우 행동을 아주 작은 단위로 쪼개면 좋다. 현관문을 열고 나가기가 주저된다면 거실에서 100보 걷기를 한다든지, 100 보도 힘들다면 10보 걷기를 하는 것도 좋다. 자신이 생각했을 때 '그 정도는 껌이다'라는 수준까지 작게 조각낸 행동부터 시작해야 가볍게 실천할 수 있다.


나는 상담사이고 마음을 공부했고 마음을 사랑하는 사람이고 과거에도 그렇고 앞으로도 마음을 업으로 하며 살다 죽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 누구보다 행동을 좋아하고 행동이 주는 힘을 찬양한다. 왜냐면 생각만으로는 나의 그 어떤 것도 나를 움직이게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