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몸이 좋지 않았다. 해야 할 일을 미루지 않고, 원하면 언제든지 몸을 일으켜 세워서 의자에 앉혀, 내가 하려던 일을 할 수 있는 날들을 보내다가 몸이 아픔으로 인해 그럴 수 없는 며칠을 보내고 나니 상황이 달라졌다. 몸이 허락해주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한낮 나약하기 그지없는 자그마한 생명체에 불과한 존재였다. 그동안 몸이 내게 해주었던 많은 것들을 새삼 느껴보는 시간이었다.
신체화(somatization, 身體化)라는 심리 용어가 있다. 심리상태에 따라 신체적인 증상이 나타나는 과정을 일컫는 용어인데 마음이 몸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긴장할 때 장염에 걸리거나 소화장애를 겪기도 하는데 이러한 경우가 심리적인 부분이 신체적인 부분으로 옮겨간 예이다. 할 일은 태산인데 몸에 탈이 나서 목표를 제대로 이행하지 못하는 경우 '하필이면 이때 몸이 아파서...'라며 몸을 탓하게 된다. 몸의 주인이 몸을 탓을 할 때에도 몸은 묵묵히 회복을 위해 안간힘을 쓴다. 필요하면 열을 뿜기도 하고 필요하면 배설을 하기도 한다. 몸은 말없이 자신의 주인을 위해 할 일을 한다.
사람의 심리를 다루는 일을 하다 보니 몸에 대한 소중함을 망각하고 살게 되었다. 마음을 돌보는데 시간과 에너지를 쏟는 동안 방치되고 된 몸이 얼마나 힘들었을지 반성하게 된다. 몸은 마음이 머무는 공간이다. 마음이 어땠는지, 마음이 얼마만큼 아팠는지 몸은 모든 것을 기억하고 있다. 몸과 마음은 분리된 것이 아니라 연결되었기 때문이다.
마음도 체해요
위염은 소화가 잘 안 되고 상복부가 불편한 상태를 말한다. 쉽게 말해서 '체했다'라고 일컫게 되는데 이러한 증상이 생기는 이유는 다양하다. 다양한 자극이나 손상으로 인해 위가 쓰리기도 하고 통증이 있거나 구토 증상이 나타나기도 한다. 이렇게 되면 음식을 제대로 먹기도 힘들지만 소화시키기도 힘들게 된다. 위염을 일으키는 이유 중에 심리적인 이유도 한몫을 한다. 불안하고 긴장된 느낌에 지속적으로 노출될 때 위염이 발생하게 되어 만성적으로 발전하기도 한다. 그래서 매번 병원 진료 시 자주 듣는 말은 '스트레스받지 마시고 마음을 편하게 먹어야 합니다'라는 말이다.
어릴 때부터 가부장적인 아버지 밑에서 자란 고등학생 A양은 만성위염에 시달리고 있다. 병원에 가서 위내시경을 하고 약 처방을 받아먹고 있지만 좋아지는가 싶다가도 다시 재발하여 만성이 되었다. 자신의 의견을 자유롭게 말할 수 없고 무섭고 두려운 아버지의 말을 거역하기 어려운 집안 분위기 때문에 눈치껏 행동해야 했다. 하기 싫은 일도 아버지가 말하면 군소리 없이 들어야 했고 조금이라도 자신의 의견을 표현을 하면 부모 말에 토를 단다며 타박당하기 일쑤였다. 어차피 말을 해도 좋은 말을 듣지 못할 바에야 아무런 말을 하지 않는 편이 낫다고 결론을 내린 A양은 자신의 감정을 꾸역꾸역 삼키며 위염의 고통과 마주해야 했다.
몸에 대한 돌봄은 애착 손상의 회복이다.
애착(attachment)은 볼비(Bowlby)가 처음 제안한 개념이다. 애착 형성에 있어서 어린아이는 자신을 돌보는 주양육자와의 관계의 질이 매우 중요하다는 의미이다. 생후 1년 동안 주양육자와 긴밀한 애착관계를 형성한 유아는 세상을 탐색하는 안전 기지로 애착 대상을 활용한다. 애착은 가장 가까운 사람과 형성된 강력하고 지속적인 정서적 유대감이다. 애착이 손상될 경우 이를 회복하기 위해 애착 대상을 찾기 위한 노력을 하게 되고 안정감을 회복하기 위한 노력은 지속된다.
사람들은 애착의 결핍을 채우기 위해 사람을 만나고, 일을 하기도 하고 물질과 돈을 소유하기도 한다. 사람을 통해 애착을 회복하려다가 상처를 입고, 물질의 소유를 통해 결핍된 애착을 채우기 위해 노력하다가 부질없다는 공허감에 허탈해지기도 한다. 애착에 대한 결핍은 모성 결핍과도 같다. 아기가 태어나는 순간 엄마의 손길은 아기의 온몸을 접촉하고 따뜻함으로 채운다. 배고픈 아기를 먹이고, 축축해진 기저귀를 갈고, 칭얼거리는 아기를 보듬고 토닥인다. 아기의 온몸에 세겨진 엄마의 온기는 아기가 자라고 어른으로 성장하고 삶을 살아가는 동안 안전 기지 역할을 제공한다. 몸에 대한 돌봄은 결국 안전 기지를 확보하고 애착을 회복하는 돌봄의 과정과도 같다.
마음이 불안하면 몸은 쪼그라든다. 마음에 두려움이 생기면 몸은 딱딱하게 굳는다. 마음이 우울하면 몸은 중심을 잡지 못하고 한없이 늘어진다.
마음의 온도가 내려가 냉랭해질 때 온도를 올리기 위한 위로가 절실하다. 위로는 사람과의 관계를 통해, 격려의 말을 통해, 따뜻한 눈빛을 통해 이루어진다. 위로를 통한 접촉은 상처받은 삶을 회복할 수 있는 엄마의 품처럼 포근하다.
마음의 상처가 생기면 상처가 아물도록 돌보아야 한다. 몸의 돌봄을 통해 상처는 회복될 수 있다. 몸은 우리의 모든 삶의 기억의 저장소이다. 내가 힘들 때 제일 먼저 알아봐 준 것도 몸이다. 내가 위험함에 처했을 때 가장 먼저 신호를 보내주는 것도 몸이다. 몸은 늘 내 편이 되어 나의 갈길을 비춰주는 안내등의 역할을 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둔감해진 몸의 감각으로 인해 몸이 얼마나 고통스러워하는지 모르고 산다. 늘 자신을 지켜줄 거라는 착각 속에 몸이 싫어하는 습관을 계속하고 몸이 싫어하는 음식을 먹으며 몸이 싫어하는 공간에 머문다. 몸을 홀대하는 시간의 어느 즈음에 몸의 역습이 시작될지 모른다. 몸이 마음에 반기를 들기 전에 자신의 호흡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온 몸의 감각에 집중해보자. 몸의 감각에 귀를 기울이는 순간 삶의 감각도 되돌아올 것이다. 당신의 삶에서 무엇이 감동스러운지, 무엇을 할 때 심장이 먹먹해지는지, 무엇을 할 때 가슴이 벅차올라 호흡이 가빠지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