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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지켜줄 사람은 나 자신이다.

by 한꽂쌤

인간관계를 맺다 보면 상처를 주기도 하고 상처를 받기도 한다. 상처를 주는 것에 비해 상처를 받는 경우가 더 많게 느껴지는 것은 비단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매일 만나게 되는 다양한 사람들 틈에서 '절대로 상처받지 않겠다'라는 각오를 해보지만 좀처럼 그 각오는 이뤄지기 어렵다. 내 의도와는 달리 흐르는 게 인간관계이기 때문이다. 어떤 상처는 금세 아물 수 있어서 상처 밴드를 붙이지 않고서도 지나칠 수 있는 상처가 있는가 하면 살갗이 쓰라리고 조심스럽게 여 매지 않으면 더 고통을 느낄 수 있기 때문에 상처 밴드로 단단히 동여매야 하는 경우도 있다. 조금 더 깊은 상처라면 혼자서 치료하기 어려워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경우도 있다. 그 다른 사람은 나의 상처를 돌봐줄 수 있는 주변의 사람이거나 상처에 대해 잘 아는 전문가일 수도 있겠다.


다른 사람들이나 외부 환경으로부터 예기치 않게 받게 되는 상처는 당사자를 당혹스럽게 한다. 어디서 온 거지? 누가 나를 이렇게 아프게 한 거지? 왜 내가 상처를 받아야 하지?라는 의문을 갖게 할 뿐 아니라 상처 본연의 고통으로 인해 몸부림치게 된다.


"사람들 앞에서는 밝은 척을 해요. 상처받는 말을 들어도 쿨한 척 넘어가다가 집에 와서는 두고두고 화가 나요"


사람들 앞에서 당당히 내 감정을 표현하지 못하고 상처받은 경험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있을법한 이야기다. 유치원 때 상처받은 이야기, 초등학교 때 상처받은 이야기, 그리고 그 후 두고두고 잊지 못할 다양한 상처에 대한 주제는 어른이 된 지금도 마치 어제의 이야기처럼 생생하게 떠오른다. 그때 받은 상처에 대한 이야기는 그 어느 때보다 힘 있고 뜨겁고 강렬하다. 아무리 인간이 관계중심이라지만 관계 속에서 사는 동안은 만만치 않은 삶이다. 싫어도 맞닥뜨려야 하는 사람이 있고, 갑자기 엮이는 인간관계도 있다. 예상했던 관계이든 그렇지 않은 관계이든 다른 사람으로부터 들은 말이나 행동, 표정으로 인해 상처를 받을 수 있다.


회사일을 마치고 나면 아르바이트를 하며 열심히 살고 있는 그녀에게 남자 친구가 무심코 말을 던진다.


"왜 그렇게 악착같이 일해. 너무 그러면 매력 없어. 좀 여유 있게 살아"


그동안 학자금 대출을 갚기 위해 열심히 벌며 노력해온 그녀를 가장 가까이서 이해해줄 줄 알았던 남자 친구의 말은 그녀에게 상처가 되었지만 그 말을 들은 그 순간은 웬일인지 어떤 말도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서운하다고 말하면 남자 친구랑 관계가 소원해질 거 같았기 때문에 그저 쓴웃음만 지었던 기억을 떠올리며 자신을 한심하다고 탓하고 있다. '왜 그때 서운하다고 말하지 못했을까?' '이렇게 사는 내가 정말 너무 억척스러워서 매력이 없는 건가?'라는 생각에 남자 친구를 원망했다가 자신을 원망했다가 마음이 갈피를 잡지 못하고 혼란스러워하고 있다. 상처를 준 남자 친구에게 당당히 자신이 느꼈던 감정을 내비치지 못한 자신이 한없이 못나게 보였다고 한다.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다 보면 의도치 않게 벌어지는 일들이 많다. 서로에게 무심코 건네는 말, 위로라고 생각하며 이야기했는데 오히려 화만 돋우는 말, 신경 써서 해준 말인데 간섭하는 듯 들리는 말, 신경 쓸 일도 아닌 거 아는데도 불구하고 좀처럼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 잔상들은 상처로 남는다. 굳이 나를 지목해서 한 말도 아닌데, 일부러 상처받으라고 한 말도 아닌데도 나한테 하는 말 같고, 내 자존심을 건드는 말로 느껴져 상처로 박힌다.


흔히 우리는 타인이 자신에게 상처를 입힌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내가 받지 않았어도 되는, 내 것이 아닌, 아무런 의미 없이 허공에 떠돌다가 떨어져도 무방한 것들에 지나치게 의미를 부여하고 있지는 않는가? 상대방은 별 뜻 없이 한 말을 스스로 상처라 여기며 상처받은 가슴을 부여잡고 상처로 고통스러워하며 살고 있지는 않는가? 맞다면 상처 주는 주범은 타인이 아니라 나 자신이다.


사람들로부터 상처를 자주 받고,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신경 쓰이고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면 다른 사람들과의 만남을 피하고, 사람들을 단절할 일이 아니라 자신 먼저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내가 어떤 생각을 하며 사는 사람인지, 내가 보는 외부 세상은 어떤 세상인지 자세히 보아야 할 일이다. 내 것이 아닌 것을 내 것 인양 여기며 스스로 상처받는 일은 바람직하지 않다.


세상이 위험하다고 느끼거나, 사람들을 신뢰할 수 없다고 느끼는 사람들은 외로울 수밖에 없다. 자신이 정해놓은 틀로 인해 세상은 위험하게 흘러갈 것이며 사람들은 늘 나를 실망시킬 테니까. 나를 향한 외부로부터의 상처를 누가 막아줄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조금이라도 덜 상처를 받고, 덜 고통스러울 수 있을까? 과연 그러한 방법은 어떤 것이 있으며 내가 그것을 통해 나를 지켜낼 수 있을까에 대한 의문이 생긴다.


'내가 못나서 사람들이 나를 무시하는 거야', '내가 뭐 늘 그렇지. 이렇게 될 줄 알았어', '노력해도 안될게 뻔해, 그동안 늘 나의 노력은 실패했어'라는 말로 자신을 벌주는 대신 '나는 늘 노력하고 있어, 이 정도여도 훌륭히 잘 해냈어' '그동안 힘들어서 그만두고 싶었지만 잘하고 있어. 그래도 이렇게 포기하지 않고 하고 있잖아' ' 모두 다 내가 잘못한 것만 있는 건 아니잖아. 그래도 내가 잘하는 부분도 있어'라는 말을 해보자.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며 살 수밖에 없다면 그 관계 속에서 나를 보호할 수 있는 보호 기제를 마련해두어야 한다. 다른 사람들이 나에게 불친절하고 퉁명스럽게 대하더라도 적어도 나만은 나 스스로에게 친절하고 따뜻해야 한다. 완벽하게 상처를 차단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다만 받은 상처를 치유하고 받지 않아도 되는 상처를 구분하여 스스로를 지켜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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