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미루기'를 선택할 수 있으려면

by 한꽂쌤

미루는 습관을 심리학 용어로 말하면 습관성 지연행동(習慣性 遲延 行動)이라 말한다. 지금 이 순간도 미뤄둔 일을 떠올리자면 써야 할 보고서 6개월째 남아있고, 교정해야 할 원고가 세 달째 남아있으며, 연락해야 하지만 급한 건 아니라서 미뤄둔 일도 즐비하다. 2년 전에 한 약속을 아직도 미루고 있으며 심지어 어제 다짐한 것조차 미뤄진 채 오늘을 보내고 있다. 어떤 이는 '뭘 그렇게 빡빡하게 살아'라고 하며 여유 있는 삶을 추구하지만 여유 속에는 미룸의 흔적이 만연하다는 것쯤은 눈치로 알 수 있다. 실제로 여유 있는 삶이 빡빡한 삶보다 숨가프게 보이지는 않겠지만 미룸의 실체는 우리의 삶 구석구석에 스며들어 옴짝달싹 못하게 한채 힘을 약화시키고 있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주기 바란다.


학생들이 시험 때만 되면 벼락치기 공부를 하고, 프로젝트를 끝내서 보고해야 하지만 아직도 미적거리며 마무리를 못하고 있는 업무, 자격증 시험공부를 일찌감치 해놓으며 여유 있게 시험 보려는 목표는 온데간데없이 허겁지겁 교재를 떠들어보며 불안감에 시달리기도 한다. 누군가 옆에서 다그치지 않으면 더 미루게 되고, 지금 당장 하지 않는다고 큰일이 일어나지 않으면 마감기한이 다다를 때까지 버티다가 순식간에 해치우기도 한다. 미룸의 사례는 너무 많아서 다 채워 넣을 수 없다. 미룸에 대한 후유증 또한 겪지 않은 사람은 드물 것이다.


해야 할 일을 미루는 것도 불쾌하지만 하기 싫은 일을 미루는 일은 더욱더 불쾌하다. 누군가에게 끌려가는 입장이 되어 마지못해 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더욱 그렇다. 미루는 사람들이 많아짐에 따라 틈새시장을 노리는 상업 수단도 늘어난다. 직접 발품을 팔아 살 물건을 골라야 하거나, 직접 구매를 해야 하거나, 직접 전달해주지 않아도 온라인 플랫폼은 친절하게 우리의 미룸을 대행하고 있다. 해야 할 일과 할 수 있는 일의 구분과 상관없이 미룸에 대한 주제는 우리의 삶에 있어서 중요한 미해결 과제이다.


미룬다는 말의 의미는 어떤 행동을 지연시키고, 나중으로 늦춘다는 개념이다. 미룬다는 것은 해야 할 일에 있어서 나중으로 지연시키는 행위인데 이러한 행위는 종종 우리를 곤경에 빠지게 한다. 작게는 잔소리를 듣고 끝낼 수도 있지만 크게는 시험에 낙방하거나 인사고과에 반영되어 승진에서 제외될 수 있다. 또한 미루는 습관으로 인해 잦은 다툼이 일어 팀 내 불화를 일으키고 가정 내에서는 가족갈등이 심화될 수 있다. 자신에게도 피해를 주지만 타인에게도 불편감을 주는 것이 바로 미루는 행위이다.


미루는 사람들일수록 자신을 자책한다. 자신의 게으름을 탓하고 자신의 느린 행동을 탓한다. 목적이 분명하지 않고 성과를 내지 못하는 탓에 무능함이 드러나고 해결과제가 많아짐에 따라 머리는 무겁고 짜증만 늘어난다. 너무 업무량이 폭증하여 미처 끝내지 못하는 일로 인해 미해결 된 일이 미뤄지는 경우가 있을 수 있고, 일을 급하게 끝내는 성향이 아닌 경우에는 일의 속도는 느리지만 오랜 시간을 들여 임무를 완수하기도 한다. 또는 자신이 오랜 시간 동안 숙고해야 하기 때문에 일처리를 미뤄두는 경우도 있다. 이런 경우라면 자신이 일을 미뤘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미룸에 대한 태도는 다르다. 왜냐하면 자신들이 어떠한 일을 함에 있어서 미룸을 전략적으로 활용했기 때문일 것이다.


해야 할 일을 모두 제시간에 완벽하게 끝내는 것은 무리다. 자신의 역량과 속도에 맞게 자신이 해내지 못하는 일에 대해 인정해야 한다. 바로 한계 설정이다. 열심히 하다가 일을 마무리 못한 것과 미루다가 일 마무리가 안된 것에 대한 차이는 분명하다. 집안 청소를 미루다가 지저분하기는 해도 자신의 업무만큼은 제때에, 제대로 해내는 경우가 있다. 이런 경우라면 미룸의 영역이 크지 안 다서 한 사람의 삶에 그다지 큰 영향을 주지는 않는다. 집안일과 회사일을 둘 다 완벽하게 해내는 사람은 드물기 때문이다.


무슨 일이든 계획한 일은 다 처리해야 하는 사람이라면 자신의 영역에 있는 사소한 미룸의 흔적도 용납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10가지 중 9가지를 잘 해냈음에도 불구하고 1가지를 해내지 못하고 미해결 과제로 남겨두었다는 사실에 괴로워하기도 한다. 이로 인해 자신을 탓하고 자신이 완벽하게 일을 제때에 처리해내지 못한 사람이라 여긴다. 반면 미룸이 잦아지다 보면 주변 사람들도 '저 사람은 원래 그런 사람이지'라는 인식이 되어 그 사람의 미룸에 대한 태도를 당연시 여기게 된다. 미룸의 당사자는 주변 사람들의 반응에 영향을 받아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지 뭐'라는 태도로 오히려 더 미룸에 대해 당당해지기도 한다. 어쩌면 당당함이 아니라 자포자기일 수도 있겠다. 미루는 행동이 일상생활, 규칙, 약속, 기한 지키기 등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면 크게 어려움을 느끼고 고통스러워 할 수도 있다.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하여 좋은 성과를 얻지 못하고, 늘 제자리이거나 지금보다 못한 내일을 맞이해야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삶에서 우선순위를 두고 실천해나가야 할 순간에도 미룸으로 인해 좌절된다면 미룸의 막강한 권력에 자신을 내어주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이번에는 잘 해낼 수 있어'

미루는 사람들도 희망은 있다. 처음 계획할 때는 구체적이고 그럴듯한 단계를 계획하여 목적하는 바를 이루고자 하는 가능성에 설렌다. 과거의 자신과는 다른 모습으로 해낼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에 웃음 짓지만 하루도 못 가서 근심 가득한 얼굴로 바뀌고 만다. '역시나 나는 안되는구나'라는 것을 재확인하며 씁쓸한 뒷모습을 내보인다. 미루는 게 특기인 사람들은 생각과 상상으로 가득 차 있다. 하지 못한 자신을 탓하느라 시간을 허비하고, 더 나은 방법을 구상하느라 생각이 복잡하다. 미룸에 대한 불안감과 고통이 짙어질수록 본연의 해야 할 일은 멀어져 간다. 공부를 하기 전에 책상 정리를 하느라 시간을 허비한다든지, 난데없이 집안 대청소를 시작하는 행동을 하기도 한다. 해야 할 업무에 집중하는 대신 핸드폰에 집중하고 SNS에 답을 쓰는 행위에 빠져든다. 정작 했어야 하는 일은 영영 멀어지고 하지 않아도 되는 일에는 열심인 자신의 모습이 다시 재현될 뿐이다.


스트레스가 극에 다다르면 '더 이상은 무리야'라는 생각에 함몰된다. 그런 생각이 들자마자 하려던 일을 포기하고 합리적인 이유를 찾기 시작한다. '내가 그 일을 굳이 해야 할 이유는 없어' '그 일은 나와 어울리지 않아' '지금은 해야 할 때가 아니야'라는 생각으로 자신의 미룸 행동을 합리화한다. 결국 더 이상 그 어떤 것도 해내지 않은 채 하루가 가는 것이다. 악순환의 패턴은 반복되는 것이다.


미루는 행위가 생기는 원인에 대해 살펴보면 경쟁사회, 완벽을 추구하는 사회, 비교하는 사회, 최고만이 돋보이는 사회라고 말할 수도 있다. 남들이 가진 것을 자신도 갖기를 희망하고 남들이 누리는 것들을 나 또한 누리기를 원한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갖추고 살고 있고, 누리고 살고 있는 듯이 보이는 SNS 문화도 한몫을 하는 듯하다. 자시에게 있어서 가장 돋보이는 무언가를 지속적으로 올리며 자랑하고 즐겁고 만족스러운 삶을 살고 있노라고 홍보하는 미디어의 영향은 우리의 눈높이 수준을 최고로 올려놓았다. 그러나 단지 이 이유 때문이라면 모든 사람들이 미루는 행동 속에 고통스러워해야 한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많은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사회적인 이유만으로 정당화될 수 없을 것이다.


미루는 행위로 고통받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미룸을 멈추기를 원한다. 미루지 않고 해야 할 일을 척척 해내면서 자신이 꿈꾸는 삶을 살아가기를 원한다. 그러나 원하다고 해서 해결이 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행위가 연결이 되어야 한다. 심리적인 변화로써의 행동, 직접 행동 패턴을 바꾸려는 시도가 이루어져야 한다.


미루려는 사람들의 사고는 비합리적인 부분이 있다. 심리학에서 말하는 비합리적 신념의 정의는 '인간의 부적응 행동을 유발하는 모든 형태의 사고'를 가리킨다. ' ∼해서는 절대 안 된다'라는 사고로 비현실적이거나 융통성이 없는 사고방식이다.


'하려면 완벽하게 해야 해'라는 비합리적 사고는 하려는 시도에 대한 강한 저항감을 형성한다. 하려고 먹었던 강한 의지가 오히려 독이 되는 셈이다. 이러한 저항감은 '넌 하지 못할 거야. 차라리 가만히 있어'라는 무의식적 명령에 붙들리고 만다. 이러한 저항감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내가 잘하지 못할 수도 있어'


'계획을 제대로 세워야 잘 해낼 수 있어'라는 사고이다. 어떤 목표를 정할 때 목표로 가기 위한 전략을 세우느라 시간을 허버 하는 사람이 있다. 여행을 갈 때 여행 계획을 완벽하게 세우느라 스트레스를 받고 결국 에너지가 소진되어 정작 여행에 대한 흥미는 사라지고 만다. 계획을 완벽하게 세우려는 사람의 특징은 '일에 대한 효율성'을 강조하는 사람들이다. 이왕이면 제대로 하고 싶은 욕구가 오히려 본래의 목표를 이루는데 방해가 되고 만다. 이런 경우는 '계획은 좀 서툴러도 수정하면서 하면 되지'라는 유연한 사고를 가져야 한다.


'이걸 해서 좋은 결과를 낼 수 있을까?'라는 의구심이 미루는 행위를 부추긴다. 어떠한 목표를 세우면서 부정적 결과를 예측한다면 당연히 시도하는데 드는 에너지는 사르라 들고 만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과 상황에 대한 불안 등은 사람이 거부하고 싶은 정서이기 때문에 피하고 싶게 마련이다. 이러한 경우 '결과보다는 시도하는 거 자체에 의미를 두기' '과정에 충실하고 나서 결과에 승복하기'로 결과 위주의 사고를 수정해야 한다.


'남들도 하는데 나도 해야 할 것 같아서'라는 마음으로 시작하면 행동에 대한 저항이 나타나기 쉽다. 자신이 선택한 목표가 아닌 타인이 세워준 목표 즉, 부모님이 선택한 진학, 직업선택 등이 그 예이다. 누군가에 의해 수동적으로 해야 하는 일은 반드시 '하지 말아야 할 이유'가 생성된다.


'나도 한다면 할 수 있지만 정말로 못하는 걸까 봐 두려워요'라는 태도는 자신의 무능력이 드러날까 봐 두려워하는 경우이다. 어떤 것도 시도하지 않으면 어떠한 결과도 나오지 않기 때문에 시도 자체를 하기를 꺼리게 된다. 1등을 놓친 적이 없는 아이가 아예 시험을 보지 않는 경우, 자격증 시험을 보기로 한 날 시험에 응시하지 않는 경우도 이에 해당한다. 좋지 못한 결과를 낼 것에 대한 두려움이 크기 때문에 발생하는 미루기의 사례이다.


미루는 행위가 반복될수록 자기 비난이 심하다. '나는 너무 의지가 약해 빠졌어' '해야 하는 걸 알면서도 나는 왜 자꾸 이모양일까?'라는 자책이다.


목표가 크면 그만큼 힘이 든다. 이뤄내지 못할 거라는 부정적 사고가 행동에 대한 저항감을 가중시킨다. 목표가 지나치게 높다 보며 실패할 확률이 높다. 이러한 실패 경험은 무기력감을 키우고 어떤 시도도 하기를 꺼리게 된다.


목표는 조각을 내서 작은 단위로 잡아야 한다. 지금 당장 해볼 수 있는 수준으로 작게 잡아야 한다. 책 한 권 읽기를 목표로 잡았다면 하루 1쪽 보기, 하루 만보를 걷기로 목표를 설정했다면 '지금 100보 걷기'를 실천해보아도 좋다. 100보가 어렵다면 50보, 50보가 어렵다면 10보로 해도 무방하다. 자신이 부담 없이 할 수 있고, 해볼 만한 수준으로 설정해야 행동으로 옮기기 수월하다. 책 한 권 쓰기가 목표인 나라면 '한 줄만 쓰기'로 목표를 잡고 실행하면 글쓰기에 대한 부담이 현저히 줄게 된다. 결국 한 줄이 한 단락이 되고 한 달 락이 한 페이지가 되는 경험이 누적되면 조금씩 자신감도 누적된다.


미루기가 이뤄질수록 합리화의 목소리도 다양해진다. '오늘 말고 내일 하자' '지금은 할 분위기가 아니야 다음에 하자' '지금은 집중 못하니까 나중에 날 잡아서 하자' 등 합리화의 목소리가 많아질수록 미루기의 행동은 정당화되는 듯 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합리화는 미루는 행동을 위한 비합리적인 목소리이다. 비합리적인 생각들은 합리적인 생각으로 수정이 가능하다. '오늘 하지 않으면 내일도 못해' '지금 할 분위기는 아니지만 조금만이라도 하자' '날 잡아서 하는 것도 가능하지만 날 잡지 않더라도 일단 해보자' 이렇게 비합리적인 사고를 실행 가능한 합리적인 사고로 바꿔보자.


미루는 행동으로 인해 자존감이 낮은 나의 모습을 고착화하는 것보다 조금이라도 시도하고, 조금이라도 변화하는 나를 만들어가 보자. '미루는 나'는 '미루는 행동'을 낳고 '미루는 삶'으로 지속된다. 한꺼번에 변화되거나, 완벽하게 해내려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천천히, 시도하고, 수정해가는 과정에 의미를 부여한다면 미루기 행동은 충분히 극복 가능하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나를 지켜줄 사람은 나 자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