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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등감을 허(許)하라.

by 한꽂쌤


20세 이상 성인 중 자신에게 장점과 잠재력이 어느 부분에서 발휘되는지 정확히 인식하고 있는 사람은 30%밖에 되지 않는다고 한다. '당신의 장점은 무엇인가요?'라고 묻는다면 말문이 막혀 쉽게 입을 떼지 못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평소에 자신에게 어떠한 장점이 있는지 생각하지 않고 살기 때문이다. 자신에게 장점이 있는지조차 가늠하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글쎄요....'라는 어정쩡한 반응을 보이는 것은 당연하기까지 하다. 자신에게 있는 장점이 없다고 생각하거나 무엇인지 모르겠다고 생각이 되거든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보아도 좋다. 자신이 모르는 것은 남들이 더 잘 파악하고 있을 테니 말이다. 다만 다른 사람이 장점이라고 이야기를 해주어도 극구 사양하며 '나한테 그런 면이 장점일리 없어, 그냥 듣기 좋으라고 해주는 말일 거야'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콤플렉스에 빠져있을 가능성이 있다. 자신만의 콤플렉스 즉, 열등감에 젖어있다는 말이다.


긍정심리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우리의 뇌가 가장 효율적인 상태로 기능을 하기 위해서는 긍정적인 감정의 크기가 부정적인 감정의 크기보다 3배는 더 많아야 한다고 말한다. 이처럼 자신이 뭔가 이루려고 목표를 세웠거나 삶을 지속적으로 성장시키기 위해서는 부정적 감정보다 긍정적 감정의 크기를 더 확장해야 함을 입증한다. 기쁜 일이 없어도 웃다 보면 기뻐지고, 행복한 느낌이 없어도 행복하다는 상상을 하면 행복해진다라는 말도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우리의 느낌을 긍정적으로 바꾸기에는 역부족인 경우가 많다. 가끔은 부정적인 느낌이 우리의 삶에 보탬이 되는 경우가 있음을 인정한다. 그러나 이러한 정서가 과하게 발현되어 지속되는 경우는 긍정적인 정서로 되돌아오기까지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우리의 긍정적 정서를 회복하기 위한 방법은 과연 무엇이냐이다. 어떻게 하면 되느냐에 대한 질문에 속시원한 답변을 기대하는 것은 당연하다. 사람들은 자신의 원함을 행동으로 실현하고자 하는 마음은 간절하다. 그러나 그에 반해 구체적인 실천방법을 어렵고 무겁게 바라보기 때문에 '나는 할 수 없어'라는 부정적 생각에 잠식될 수 있다. 그렇다면 쉽고 간단한 방법이 무엇이 있을까?


인정하는 것이다. 무엇을 인정하란 말인가?라는 물음에 또 답을 해보자. 내가 그동안 했던 것들에 대한 인정이다. 부족했거나 실수했거나 나태했거나 비겁했거나,,,,,그 무엇이어도 좋다. 과거가 내 발목을 붙들고 현재의 발걸음에 걸림돌이 되게끔 지켜만 보고 있어서는 안 될 일이다. 과거를 곱씹으며 후회를 한다고 한들 바꿀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바꿀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끊임없이 과거를 회상하며 반추하라고 강조하고 싶지만 절대 그럴 리가 없기 때문에 단호하게 멈추라고 말하려는 것이다. 과거에 고착된 생각은 현재에 집중하는 데에 있어서 방해물이 된다.


나는 다양한 업무로 인해 순간순간 처리해야 할 일들을 잊고 자책하는 마음이 생겼을 때 즉시 대안을 마련한다. 스마트폰 스케줄러를 계속 확인하는 것도 기억의 한계를 돕기위해 사용하는 방법이다. 나의 경우 당일에 해야 할 일, 며칠 내로 해야 할 일을 작은 쪽지에 적어 집안 자주 다니는 문 앞, 화장실 문 입구에 붙여놓는 편이다. 지저분하게 느끼는 사람들은 사용하기 주저할 수도 있겠지만 업무를 효율적으로 해나가기 위한 방법이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만족하면서 사용하고 있다. 아주 사소하게 실천하는 예로는 도서관에서 빌린 책을 반납해야 하는 경우에 책을 다 읽고 나면 바로 현관 앞에 두고 나갈 때마다 반납해야 하는 책이라는 사실을 기억한다. 그러다 보면 기한안에 시간을 내어 반납할 수 있게 되고 기한을 어길까 봐 신경 쓰는 에너지를 줄일 수 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실수를 반복하는 습관이나 대인관계에 있어서의 소통방법이 있다면 그 대안을 즉시 찾아서 적용해야 한다. 습관이든 소통방법이든 그대로 두면 더 큰 덩어리가 되어 나를 짓누르게 되기 때문이다. 과거에 저지른 실수를 자책하는 시간은 줄이거나 없애고, 거기에서 확보된 시간은 대안을 마련하는 데 사용하면 좋다. '조금 더 있다가'의 유혹에 빠지지 않는 방법은 가능한 한 빨리 대안을 마련하고 가능한 한 빨리 실행에 옮기면 더욱 좋다.


대안을 마련하고 실천에 옮기는 것조차 힘든 경우라면 실수를 반복하고 있는 자신에 대해 아직도 '형편없는 사람'으로 내몰고 있느라 감정 소모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스스로 자신을 허(許) 해야 한다. '나는 절대 그래서는 안돼'라는 당위적 사고가 무의식적으로 강하게 자리 잡고 있지는 않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하수 있는 존재이다. 이 말은 완벽하지 않는 미완의 존재라는 말과 같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하고 또 실수를 하고 또 실수를 하는 존재이다.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나를 용서해야 한다. 그런 다음 그렇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 차분하게 고민한 후 대안을 마련해 보자. 자신을 자책하고 비난하는데 습관이 된 경우에는 그 순간 심호흡을 하고 '멈춤'을 외쳐야 한다. 이제 그만 나를 비난하는 자세를 멈추고 다시 자신에게 기회를 주는 자세로 새로고침 해보자.


개인 심리학자 아들러(Alfred Adler)는 열등감(inferiority feeling)이라는 용어를 도입하여 감정적으로 무능해진 사람들을 좀 더 성숙하고 사회적으로 유능한 방향으로 인도하기 위한 심리치료기법을 개발하였다. 그는 개인적으로 태어났을 때부터 병약했고 4세까지 구루병을 앓았으며 5세 때는 폐렴으로 죽을고 비를 넘겼다고 한다. 그는 자신의 병약한 몸에 대해 열등감을 느꼈으나 이에 굴하지 않고 공부에 매진한 덕분에 결국 의사가 되었으며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열등감의 개념을 도입해 개인심리학을 완성하였다.


사람들은 누구나 열등감을 갖게 마련이다. 신체적인 조건에서 느끼는 열등감, 어릴 때 양육자의 양육태도로 인해 생긴 열등감이 있다. 이러한 영향은 한 개인이 자신의 능력을 과소평가하게 되어 열등감(무기력감)과 무가치감을 느끼게 한다. 이러한 열등감을 가진 사람은 다른 사람을 짓밟고 그 우위에 서려고 하다가는 더 극심한 열등감 콤플렉스의 덫에 걸리고 만다. 열등감을 스스로 인정하고 자아실현의 발판의 기회로 삼게 된다면 오히려 건강한 삶으로 가기 위한 디딤돌 역할을 하게 된다.


우리 모두에게 있는 열등감이라면 그 열등감을 없애기 위해 자신을 탓하거나 타인을 탓하느라 불필요한 감정을 희생시킬 필요는 없다. 자신에게 있는 열등감을 허(許)하고 그 이후에 '그렇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하는 편이 현명하다. 내가 반복하는 실수를 허하고, 계획만 하고 실천하지 못하는 나를 허(許) 해야 한다. 조건은 '진심으로'이다. 형식적으로 허(許)하고 수용하는 척을 한다면 스스로 다시 올무에 걸리게 된다. 끝없는 되풀이 현상을 반복하게 된다는 말이다. 정확히, 진심으로 '나의 나됨'을 허락하고 용서하고 나면 그다음 어디로 가야 할지 문이 보인다. 보이지 않는다고 낙심하고 있는 당신이라면 문을 찾기 위해 의지를 사용해보면 어떨까. 가만히 앉아서 문이 열리고 저절로 길이 열리게 되는 일은 결코 없을 테니 말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서 그 문으로 진입이 가능할까에 대한 예시를 들어보도록 하겠다.


첫째,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해서 이러한 열등감을 극복했는지 모델링한다. 직접 똑같은 상황을 경험할 수는 없지만 우리는 얼마든지 간접경험을 통해 나의 경험에 대입해볼 수 있다. 돈들이지 않고 돈 이상의 가치를 얻어낼 수 있는 가성비 높은 방법이 아닐 수 없다.


둘째, 무작정 감사한다. 처음에는 무작정 감사로 시작하지만 이러한 무작정 감사의 태도는 진정한 감사의 태도로 변화될 것이다. 의심이 간다면 한 번 해보고 이야기하자. 나는 과거에 친정어머님이 요양병원에서 수년 동안 생활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두 다리로 스스로 걷는 것이 이토록 복이구나, 내 두 손으로 숟가락을 들어 음식을 입에 넣는 행위가 이토록 소중한 것이구나, 나 스스로 내 용변을 보고 처리할 수 있는 일이 인간으로서의 수치심을 줄여줄 수 있는 고귀한 행위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이후 가끔 내 두 다리를 쳐다보며 '걸을 수 있게 버텨주어서 다행이다'라며 잠깐이지만 감사를 전하기도 하고, 내 두 손을 보며 '고맙다'며 마음을 전하기도 한다. 이전에는 감사거리가 되지 않던 당연한 몸이 무조건 감사해야 할 중요한 덕목이 된 셈이다.


셋째, 한심한 변화에 도전한다. 하루 만보를 계획했을지라도 한걸음부터 시작하지 않으면 절대 나아갈 수 없다. 한걸음을 무시하면 안 된다. 너무 멀리, 너무 높은 목표를 보고 한숨 쉬기 전에 지금 당장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한걸음을 소중히 여겨보자. 정신과 의사 이두형 님이 사용했던 방법 중 너무 재미있어서 큰 소리로 웃었던 사례가 있다. 다이어트를 해야 하는데 일어나기는 싫고 소파와 일심동체가 되거나 바닥에서 일어나기 힘들 때 첫 번째로 해야 할 행동이 몸을 한번 뒤집는 것이라고 했다. 몸 한번 뒤집는 것이 바로 몸 움직이기의 첫걸음이라는 것이다. 그 상황을 떠올리며 어찌나 우습던지 '바로 이것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행동으로 무언가를 실천해야 함과 동시에 행동하기 싫은 마음이 같이 움직이게 된다. 해야 한다는 건 알지만 하고 싶지 않은 저항감이 오기 때문이다. 익숙한 대로 살고 싶어 하고, 익숙한 대로 생각하고 싶어 하는 본능이 있기 때문인데 그 본능을 이겨내기 위해서는 본능과 싸워서는 안 될 일이다. 어르고 달래서 조금씩 바뀔 수 있는 상태로 바꾸어야 한다. 하기 싫은 마음을 '이 정도면 할만한데?'라는 상태로 본능이 눈치채지 못하게 바꿔치기하는 것이다. 이 정도면 할 수 있는 그 수준을 목표로 삼는다면 한번 도전해볼 만하다. 책 한 권을 다 읽어야지 보다는 한쪽만 읽어야지라는 목표를, 한쪽도 부담스럽다면 한 문장 읽기를 목표로 삼아야 한다. 최대한 자신이 할 수 있는 수준으로 접근한다면 심리적 저항감을 다독이고 행동으로 옮겨가는 횟수가 늘어날 것이다. 이러한 성취경험이 쌓이면 아주 조금씩 유능감이 회복된다.


타인과의 비교를 통해 열등감이 생기는 경우도 있지만 더 심각한 것은 자신 스스로 열등감을 만들어내는 생산자가 되는 것이다. 타인과 비교하며 열등감을 없애기 위해 '비교를 멈추세요'라고 처방을 내려 해결방안을 찾지만 자신 스스로 열등감을 만들어내는데 탁월한 경우는 어찌해야 할까. 이왕 비교를 할 거라면 자신과 자신을 비교하라고 말하고 싶다.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를 비교하면서 어제의 나보다는 나은 오늘의 나가 되기 위한 비교는 언제나 환영이다. 어제는 한걸음 떼었다면 오늘은 한걸음 반을 떼어낸 자신을 칭찬하고 격려하기 바란다.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탓하며 긍정 격하를 일삼는다면 자신을 칭찬하거나 격려해주려 했던 타인의 관심은 철회되고 말 것이다.


열등감 자체가 나쁘거나 해롭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이를 극복하고 노력하는 과정에 있어서 자신과의 화해가 먼저이다. 자신과의 화해 즉, 자신을 허해줌으로써 나를 탓하는 습관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자신을 허(許)해주면 자신을 탓하느라 사용했던 에너지를 자신을 변화시킬 수 있는 에너지로 바꿔서 사용할 수 있다. 하루를 살아가느라 에너지 소진을 힘겨워한 시절이 이전에 또 있었을까을 정도로 힘든 삶을 살고 있는 시대이다. 무방비하게 새어나가는 에너지를 거둬들여 '나의 나됨'을 향한 성장의 에너지로 사용해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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