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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장하려는 자와 의존하려는 자

by 한꽂쌤

희생적이고 헌신적인 사람들은 주변 사람이나 사회로부터 칭찬을 받는다. 어려운 사람들을 돌보고 부족한 것을 채워주는 등 상대방이 필요로 하는 그 어떤 것들을 제공해주려는 사람은 타인을 배려하는 '마음이 따뜻한 사람'으로 평가받는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희생정신'이나 '헌신'이라는 단어는 어쩌면 누군가에게는 의존성을 불러일으키는 즉, 조장하는 행위일 수도 있다. 인간은 누구나 성장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삶을 겪게 된다. 이러한 삶이 '좋다 나쁘다'의 의미로 해석되거나 '겪어야 한다. 겪지 말아야 한다'의 의미로 해석하자는 말은 아니다. 삶 자체가 원래 그런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떤 일을 함에 있어서 어려워하는 사람이나 상황을 보면 가만히 있지 못하고 도와줘야만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 있다. 의존적 성향을 지닌 사람들이 보이면 그 사람들의 필요성을 재빨리 간파하여 문제를 신속하게 해결해주고 필요를 제공해주는 조장자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다.


누구나 사람은 독립적인 존재이다. 그러나 독립적인 존재로서의 인정이 되지 않고 누군가에 의해 지속적으로 방해를 받게 되면 자신도 모르게 의존적 성향(의존자)으로 바뀌게 되는 경우가 있다. 왜냐하면 우선은 편하기 때문이다. 힘들게 뭔가를 하지 않아도 되고 해결하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되기에 쉽게 상대방에게 의존이 된다. 아마 의존적 성향을 지닌 사람들도 처음부터 그렇지는 않았을 수도 있다. 한두 번 조장자들의 재빠른 헌신을 누리다 보니 자신이 독립된 존재이며 책임질 수 있는 힘이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에 무뎌지게 될 수 있다. 사람은 누구나 새로운 도전을 통해 실패와 좌절을 느끼면서 조금씩 성장하게 되며 경험을 통해 학습한다. 그러나 조장자가 나타나 의존자 앞의 장애물을 신속히 제거해 버리면 그 사람은 더 이상 애써 무언가를 할 필요성을 잊게 된다.


사람은 태어나면서 불완전한 존재로 태어난다. 생후 1년 동안은 걷지도 못하는 미숙한 상태이기 때문에 부모의 도움이 필요하고 성인이 되기 전까지는 보호를 받을 필요가 있다. 그러나 각 발달단계에는 단계에 맞는 능력이 분명히 존재한다. 완벽하지는 않더라도 스스로 할 수 있는 수준의 능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조장자는 그 모습을 지켜보는 것을 견디지 못한다. 뭔가 힘들어하는 기색이 보이거나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이 포착되면 즉시 출격할 준비를 한다. 기꺼이 의존자의 과제를 대신해주게 되는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열등한 기능이 있다. 그러한 열등 기능을 받아들이고 성장의 밑거름으로 삼아 성숙해질 수 있다. 자신에게 닥친 어떠한 문제를 스스로 해결해 감으로써 유능감을 얻기를 원한다. 거기에서 오는 기쁨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을 주지 않고 재빨리 해결사를 자처하는 사람이 조장자이다. 이러한 조장자의 역할은 의존자에게는 필요악이 된다. 도전하려는 마음, 해결하려는 용기, 미래에 대한 계획, 행동에 대한 책임감이 조장자에 의해 제거된다. 조장자는 자신이 괜찮은 사람으로 생각되기를 소망한다. 이러한 소망은 끊임없이 의존자를 생산해내게 되는데 스스로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벌어질 수 있다.


◾조장자의 착각이 있다.

첫째, 자신의 행위 즉, 타인에게 베푸는 행위가 타인에게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착각은 자신을 당당하고 의기양양하게 만들어 조장자의 유능감을 고양시킨다. 이럴 때 느끼는 유능감은 가짜 유능감이다.


둘째, 상대방도 자신에게 도움받기를 원한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착각은 상대방이 자신에게 부탁하지도 않은 일을 기꺼이 해주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이러한 생각은 타인에게 있는 자율권을 침해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으로 인해 의존자가 더 나은 삶을 살게 된 것이라 여기게 된다.


셋째, 다른 사람에게 선의를 베풀지 않으면 자신이 나쁜 사람이 되는 것이라 생각한다. 이러한 착각은 자신의 죄책감을 덜어주어 '나는 꽤나 좋은 사람이야'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조장적 행동을 열심히 하게 된다. 타인에게 도움을 줄 때만 자신이 가치 있는 사람으로 여겨지기 때문에 조장적 행동을 그만두기란 쉽지 않다.


◾의존자의 착각이 있다.

첫째, '내가 받는 것은 당연해'라는 태도를 취한다. 의존 성향이 강한 사람의 경우 조장자가 자신에게 필요한 부분을 채우고 도움을 주는 행위를 당연하게 여긴다. 이러한 도움을 습관적으로 받아온 경우 만성화되어서 의존자 역시 자신의 태도가 건강하지 않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한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타인의 베풂을 자신의 권리로 생각하여 베풀지 않는 태도를 비난하게 된다.


둘째, 조장자가 자신에게 도움을 주려할 때 거절하는 것에 죄책감을 느낀다. 충분히 자기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조장자가 그 일을 해주려고 할 때 과감히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니 사양합니다'라고 표현해도 되는데 차마 미안해서 입이 떨어지지 않는 경우이다. 이러한 마음은 조장자와 의존자 양쪽 모두 병들게 한다.


셋째, 조장자에게 도움을 받지 못하면 자신은 아무것도 해내지 못할 것이라는 인지적 왜곡이 일어난다. 이러한 인지왜곡은 개인으로 하여금 불안감을 조성하고 삶을 무기력하게 만든다.


다른 사람을 끊임없이 챙기고 베푸는 것을 멈출 때 자신이 뭔가 무가치한 사람처럼 여겨지는 경우라면 자신이 조장 자일 가능성이 높다. 아이가 어릴 때는 양육자가 물심양면으로 돌보는 것이 필요한 행위이지만 한 사람의 인생은 그 사람의 선택적 삶에 의해 방향성이 갖춰지는 것이다. 그 방향성이 다소 불안정하고 실패할 확률이 높더라도 자신이 선택했다면 책임 또한 져야 하는 것이 성숙한 사람의 태도이다. 누군가가 잘 해내지 못하는 일이거나, 힘겨워서 비틀거리는 상황이 발생하더라도 함부로 도와주는 행위는 지양해야 한다.


사람은 누구나 스스로 역경을 헤쳐나갈 때 느끼는 카타르시스가 있다.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자만이 자신의 삶에 있어서 의미를 찾고, 의미를 찾아낼 수 있다. 지금 당장은 힘들지라도 조금만 골목길을 돌아 걷다 보면 길이 보이게 된다는 사실을 터득하게 된다. 이러한 버팀의 과정이 생략되는 경우 조금만 고된 일이 닥쳐도 쉽게 포기하고 빨리 좌절하게 된다. 더 심각해진 경우는 '왜 나에게만 이런 일이 생기는 거야' '왜 아무도 나를 도와주지 않는 거야'라는 타인과 환경을 탓하는 비관적 삶의 태도를 갖게 될 뿐이다. 조장자에 의해 버팀의 과정을 상실한 의존자는 스스로 자신의 유능감을 찾을 기회를 박탈당한다. 의존자의 힘든 모습을 지켜보지 못하고 대신해주거나 너무 일찍 도움을 주려는 조장자는, 의존자에게 있어서 주체적으로 살 수 있는 학습의 기회를 박탈하는 주범이 된다. 도움을 주려는 선한 의도가 오히려 독이 되는 경우이다.


어떻게 하면 이런 패턴을 그만둘 수 있을까? 조장자와 의존자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 조장자의 역할에 익숙한 사람의 경우 자기 돌봄의 시간을 늘려야 한다. 자신만의 시간을 충분히 갖고, 자신으로서의 존재감을 확인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 자신이 좋아하는 장소에 가서 주변에서 들려오는 소리, 자신을 향해 쏟아지는 햇볕, 지나가는 바람소리에 집중하며 오롯이 자기로서의 존재감을 확인하는 시간을 갖기를 추천한다. 다른 사람을 바라보느라 할애했던 많은 시간을 줄이고 줄인 시간만큼 자신과 자신을 둘러싼 그 무엇에 집중해보자. 혼자서 덩그러니 고립된 삶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과 자신의 내면과의 존재론적 만남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말을 하는 것이다.


의존자의 입장에서 생각해볼거리는 무엇일까. 그동안 받아온 도움과 배려의 손길에 익숙해진 경우 단번에 끊어버리게 되면 불안할 수 있다. '이렇게 안 살아봤는데 내가 스스로 잘할 수 있을까'라는 두려움이 엄습해 올 수 있다. 술이나 담배를 끊으면 금단 현상이 오듯이 관계에 있어서도 금단현상이 오게 마련이다. 상대방이 베푸는 선한 의도를 '내가 거절해도 될까?' '나로 인해 상대방이 곤란해지지 않을까'하는 걱정이 일어날 수도 있다. 이럴 때는 '내가 좀 더 해보고 나서 잘 못할 거 같으면 도움을 청할게요'라고 말해도 좋다. 더 용기가 생긴다면 '스스로 해보겠다. 도움은 감사하지만 마음만 받겠다'라며 정중히 거절해도 좋다. 이러한 표현을 하지 않고 질질 끌려가다가는 스스로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고 말 것이다. '지금은 싫다'라는 의미의 말이 입 밖으로 튀어나오기까지는 어려울 수 있다. 하지만 한 번만 용기 내어 표현해보기를 바란다. 한 번만 시도해보면 두 번째, 세 번째는 훨씬 더 수월할 것이라 장담한다.


사람은 누구나 선택할 자유가 있다. 그 선택이 옳다 그르다는 별개의 문제다. 각자 자신이 원하는 대로 선택하고 선택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 자신의 선택에 대한 평가를 꾸준히 함으로써 다시 선택을 할 때가 오면 이전과는 좀 더 나은 선택을 하게 된다. 지금 당장 완벽한 선택을 할 필요도 없고 그렇게 될 리도 만무한 일이다.


실존주의 철학자들은 자유와 선택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 선택해야 하는 인간의 삶은 좋거나 즐거운 것만은 아니다. 선택은 두렵고 불안한 그 무엇이기 때문이다. 선택을 두려워하게 되면 타인에게 선택권을 줘버리게 되고 그렇게 되면 당사자는 결과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되는 이로움이 있다. 바로 책임회피이다. 자신 스스스로가 책임 질 마음가짐을 단단히 장착한다면 우리가 누릴 수 있는 자유는 셀 수없이 많다. 책임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잠시 내려놓고 '책임질 수 있는 나'가 될 수 있음을 기꺼이 믿고 선택하기 바란다.


결혼 후 큰 아이를 낳고, 익숙하지 않은 육아 때문에 고민할 때가 있었다. 아무리 책을 보고 고민을 해도 해소되지 않는 육아정보를 얻기 위해 육아 경험이 있는 지인들에게 자주 자문을 구했다.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저럴 때는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에 대해 물으면 하나같이 다른 답변이 돌아왔다. 아이러니하게도 다양한 정보를 얻으면 얻을수록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할지에 대한 판단이 생기기는커녕 오히려 미궁 속으로 빠졌다. 결국 많은 정보가 혼란을 주게 된 셈이다. 내가 낳은 아이는 그들이 키웠던 그들의 자녀와는 다른 아이였던 것이다.


조장자는 상대방에게 도움을 주려는 생각이 들게 되면 '내가 이런 부분에서 도움을 주고 싶은데 당신은 어때요?'라고 물어보자. 의존자는 조장자가 건네주는 돌봄의 손길에 '이번에는 제가 한 번 해보고 정 못하겠으면 도움 요청드릴게요'라고 표현해보자. 이러한 자기표현은 상대방에 대한 진정한 돌봄이며 배려이다. 너무 빠른 배려의 손길로 인해 상대방이 스스로 해낼 수 있는 시간을 기다려주지 못하는 조장자는 '잠깐 멈춤'을 해보자. 자기 혼자 뭔가 해내는 데 불안한 의존자는 자신이 할 수 있는 만큼의 최소한의 것들을 정해서 '한번 해볼까'라는 작은 용기를 내보자.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해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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