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망'이라는 단어는 읊조리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지 않다. 뭔가 찜찜하고 마주하고 싶지 않다는 느낌이 든다. 그런데 그걸 과감히 하라고 외치고 싶다. 그 외침은 어쩌면 나 자신에게 하고 싶은 말임을 고백한다.
잘했다
수고했다
대단하다
역시 너는 해낼 줄 알았어
너는 늘 정확한 사람이지
이러한 칭찬과 애정이 가득 찬 인사는 언제 들어도 행복하다. 이런 말만 듣고 살 수 있다면 좋겠다. 이런 말을 들으면 나 자신이 왠지 괜찮은 사람 같고 쓸모 있는 사람 같아진다. 뭐든지 잘 해내고 다른 사람을 배려할 줄도 아는 그런 넉넉한 사람처럼 느껴진다. 듣기 좋은 말은 해줘도 좋고 들어도 좋다. 누구 하나 상처 입힐 일도 없어서 더욱 좋다. 기분도 좋아지고 기쁘기까지 하니 그 짜릿한 쾌감을 포기할 수 없다. 이왕이면 이러한 삶이면 좋겠다. 현실이 그렇지 않다는 게 현실이다.
칭찬을 들음과 동시에 한 가지 함정이 생긴다. 내 가치를 누군가 알아주고 인정해주어서 좋지만 앞으로도 그런 식으로 만족시켜줘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조건화가 생긴다.
내가 칭찬을 들으려면 잘해야 하는구나
잘하니까 칭찬을 받는구나
그래서 칭찬과 성과가 융합되기 시작한다. 부담감이 점점 가중되는 이유다. 자신이 싫어하는 사람들에게는 잘해주려는 마음을 거둬들일 수 있다. 신경 쓰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내가 소중히 여기는 사람, 내가 의미 있는 존재라고 느끼는 영향력 있는 사람에게까지 신경 쓰지 않기란 힘들다. 나로 인해 내가 아끼는 누군가가 실망한다면 그 모습을 지켜본다는 것은 고통으로 다가온다. 참 아이러니하게도 나의 욕구를 존중하며 살다 보면 다른 사람의 기대를 저버리는 일이 생긴다. 반대로 다른 사람의 기대대로 살다 보면 내가 자유롭게 삶을 살아갈 수가 없다. 때문에 과감하게 다른 사람을 실망시킬 필요가 있음을 말하는 것이다.
자신에게 너그러운 사람은 자신이 원하는 바에 있어서 좀 더 분명히 알 필요가 있다. 조용히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에 '나는 무엇을 원하지? 무엇을 원하지 않지?'라는 질문을 해봄으로써 가닥을 잡을 수 있다. 분명한 메시지를 자기 스스로에게 전해주고 제대로 선택하고 방향을 잡을 수 있도록 도와주면 좋다. 자신이 원하는 것들에 대해 기준을 세울 때 자칫 잘못하면 타인이 세워둔 기준을 데리고 와서 자신에게 적용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니 그 점을 유의하고 자기 스스로에게 어울리는 기준과 수준을 세워 최선을 다해야 한다. 이러한 태도는 타인이 아닌 나를 소중히 여기는 것이며 내 가치를 인정하고 그 가치대로 뻗어나간다는 의미이다.
내가 상담심리를 공부하는 오랜 세월 동안 늘 마음 한편에 부담처럼 자리 잡은 부분이 바로 자녀양육이었다. 아이들이 어릴 때 대학원을 다니고 공부에 매진해야 했기 때문에 나의 가치를 위해서는 계속 공부를 해야 하지만 어린아이들은 발달단계에 맞는 돌봄이 필요하기 때문에 여간 고민거리가 아니었다. 친구들은 자녀들의 학습과 진로를 위해 애쓰는 동안 나는 내 진로를 잡고 나아가야 하는 상황이어서 '내가 이렇게 사는 게 맞나?'라는 의문점이 끝없이 몰려왔다. 내 가치는 내가 시작한 공부를 성실하게 해 나가는 것이었으나 현실적으로는 어려운 일이었다. 가끔 상담심리 관련 카페에 접속해서 보면 어린아이를 둔 엄마들이 상담심리를 공부하기 시작하면서 고민거리를 올리기도 한다. 질문은 '아이가 어린데 지금 공부하는 게 맞나요?'라는 문제다. 아이도 중요하고 자신의 미래도 중요하기 때문에 고민 고민하다가 질문을 올린 모양이다. 댓글을 보니 의견이 분분하다. 지금 공부하지 않으면 영영 못한다고 말하는 사람, 어린아이들 양육이 더 중요하다고 말하는 사람 등 의견은 다양하게 달렸다. 결국 둘 다 맞다. 지금 해도 좋고 나중에 해도 좋다. 두 가지 의견을 두고 선택하기 힘들다는 얘기는 둘 다 선택이 맞다는 말이니 걱정하지 말고 한 가지를 선택한 후에 최선을 다해 나아가면 된다. 어느 한쪽을 선택했을 때 '혹시나 잘못 들어선 길이면 어떡하지?'라는 두려움이 둘 다 선택하지 못하게 만드는 경우가 많다. 그러니 어떤 선택을 하든 완벽하지 않기 때문에 고민이 생겼다면 그중에 하나를 선택해도 무리는 없다.
상담심리 분야의 공부를 오랫동안 해오는 동안 아이들이 성장했다. 지금 드는 생각은 '내가 만약 공부를 안 했다면 아이들을 얼마나 괴롭혔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다행히도 가족들은 내가 공부하는 동안 잘 버텨주었다. 아이들과 남편 또한 공부하는 내내 자신들의 일을 묵묵히 해냈고 어려움이 있는 순간 함께 고민하며 주변 동기들에게 자문을 구하며 이겨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실패한 선택은 없는 것 같다. 다만 실패했다고 생각하는 순간 실패라는 이름이 붙여질 뿐이다. 그저 가야 할 여러 길 중에 하나였을 뿐인데 우리는 많은 선택지를 두고 불안해한다.
모든 사람들의 기대에 부응할 수는 없다. 내가 완벽한 엄마를 포기했듯이 무언가를 감수해야 한다. 포기라는 단어는 실패라는 의미가 아니다. 포기라는 단어를 써야지만 그 의미가 전달될 듯하여 사용한 단어이니 이해해 주기 바란다. 아무것도 감수하지 않고 무언가를 만족시킬 수는 없다. 다른 사람의 기대를 내려놓지 않으면 나의 기대에 부응하기 힘들다. 다른 사람의 실망에 지나치게 두려워하지는 말자.
이제 다른 시점으로 가볼까 한다. 바로 나 자신이 나 스스로를 실망시킬 용기이다. 나를 내가 실망시키는 방법을 생각하다 보면 아주 재밌는 생각이 떠오른다. 나의 경우 지나치게 경직된 부분들이 있는데 그 부분을 공략해보면 이렇다.
약속시간 늦게 나가기(무슨 일이 있어도 시간을 지켜야 한다는 조급함)
보고서 늦게 제출하기(기한이 많이 남았음에도 미리 제출해야 하는제출해야하는 습관을 유지하기 위해 초조함)
강의 내용 엮을 때 완벽하지 않아도 멈추기(강의를 제대로 하지 못할까 봐 불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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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밖에도 무수히 많지만 우선 세 가지를 살펴보면 다른 사람들에게 실망시키지 않으려는 마음이 엿보인다. 다른 사람들에게 칭찬받으려는 마음 또한 가득 차 있다. 약속 잘 지키는 신뢰 로운 사람, 보고서 기한을 넘기지 않는 믿을만한 사람, 강의를 멋지게 해내는 유능한 사람으로 비치고 싶은 내면의 욕망이 채워져야 한다는 생각이 있음을 인정하게 된다.
사람들은 흔히 변화하고 싶어 하지만 절망하는데도 익숙하다. 변화하기 위해 사는 것처럼 보이지만 절망하기 위해 사는 것처럼 보여지기도 한다. 나 자신과 다른 사람을 실망시키지 않으려고 애쓰다가는 절망만 맛보게 될 것이다. 이제부터는 반대로 생각하고 행동해볼 일이다. '이렇게 하지 않아도 큰 일어나지 않아' '좀 부족해서 다른 사람이 실망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나를 통째로 부정하지는 않을 거야'라는 말을 중얼거려보자. 어차피 사람은 완벽하지 않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