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속삭 글쓰기

- 드러난 상처는 더이상 고통을 주지 않는다 -

by 한꽂쌤

마음 속삭 글쓰기


- 드러난 상처는 더 이상 고통을 주지 않는다 -


힘들 때 위로받는 경로는 다양하다. 어떤 이는 좋아하는 음악으로, 어떤 이는 미술작품을 그리며, 어떤 이는 아름다운 춤사위로 위로를 얻는다. 어떤 이는 위로를 받기 위해 사람을 만나고 어떤 이는 위로하는 시간을 갖기 위해 혼자만의 공간으로 찾아든다. 다양한 위로가 있겠지만 글쓰기를 통한 위로, 자그맣게 속삭이는 글쓰기로 마음을 위로할 수 있다. ‘속삭대다’라는 뜻은 ‘나지막한 목소리로 가만가만 자꾸 이야기하다’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자주 만나는 어릴 적 친구와 속삭이듯 글을 쓰며 자신과 속삭이듯 글을 써보자. 작고 귀여운 목소리에 간질거릴지, 작은 웃음이 피어날지, 그것도 아니면 작은 눈물이 나려나?


위로하는 글쓰기


위로를 필요로 하는 사람을 사람이 직접 위로할 수 있다면 가장 좋겠지만 몇 가지 조건이 따른다. 사람이 없으면 안 된다는 것이고, 위로의 능력을 가진 사람이어야 한다. 자칫 잘못하면 오히려 상처를 주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누구나 경험했을 것이다. 나를 위로한답시고 해주는 말 때문에 오히려 상처가 덧나던 그때가 분명 있었을 것이다. 친정엄마가 몇 해 전 돌아가시신 후 친한 이들이 나를 위로하기 위해 모였다. 그들은 나를 위로하기 위해 ‘많이 슬프겠지만 몸 건강 해치면 안 돼’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 거야’ ‘우리 나이가 부모님을 보내드릴 나이야. 너만 이런 일 겪는 건 아니니까 잘 털고 일어나’라는 말을 열심히 하며 위로라는 걸 해주기 바빴다. 그때 나는 전혀 그런 말들이 위로가 되지 않아서 참을 수가 없었다. 오랜 침묵을 지킨 후 내가 그들에게 한 말은 ‘난 지금 아무 말도 듣고 싶지 않아’였다. 어떠한 말도 듣고 싶지 않은 나를 위해 누군가 이렇게 열심을 내어 위로를 한다면 얼마나 빗나간 소모전인가. 나를 위로하는 ‘마음 속삭 글쓰기’는 내가 스스로 내게 하는 것이기 때문에 위험하지 않다. 내가 위로를 받고 싶은 만큼만 위로를 받을 수 있고, 내가 원하는 언어로 위로를 받을 수 있다. 내가 원하는 방법으로 나를 위로할 수 있다는 건 정말 멋진 자가 치유방법이다.


나에게 ‘미안해’ 속삭이기


아이가 보통 3~4살쯤 되면 슬슬 사회생활을 시작한다. 어린이집, 유치원을 다니게 되면서 또래 친구들과의 사귐이 시작되는 것이다. 같은 공간에서 여러 명의 또래 아이들이 머물게 되면 장난감을 서로 갖겠다고 싸우거나 좋아하는 친구랑 놀겠다고 떼를 쓰기도 한다. 그럴 때 교사나 어른들은 화해의 방법을 교육한다. “○○아 미안해”, “○○아 다음부터는 친하게 지내자”라고 말하게 시킨다. 좀 더 자라서 초등학교에 다니기 시작하면서는 화해의 방법이 조금 달라진다. 바로 반성문을 쓰는 것이다. 반성문을 써서 앞으로는 다시 잘못된 행동을 하지 않겠다고 다짐을 하거나 친구에게 미안하다고 의미의 사과편지를 쓰기도 한다. 이 또한 반강제적이다. 싫어도 해야 한다. 다행스러운 건지 모르겠지만 우리는 사과하기 싫어도 ‘미안한 척’ ‘용서를 구하는 척’을 잘하는지 모르겠다. 타인과의 관계에서 다툼을 해결하기 위한 방법은 이렇게 학습의 기회가 있다. 아이가 싫어하든 좋아하든 상관없이 집요한 어른들에 의해 아이들은 사과의 행동, 예의에 맞는 반응을 익히게 된다. 그러나 신기하다. 내가 나와 화해하는 법은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는다. 어린이집을 가도, 유치원을 가도, 그리고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가도 가르쳐 주지 않는다. 그 후 대학을 가면 배우던가? 아니면 대학원을 가서 배우던가? 아니다. 우리는 그 누구로부터도 나와 화해하는 법을 배워보지 못했다. 그래서 늘 이 모양이다. 본 바도 없고 들은 바도 없기 때문에 이 모양이다. 혹시 나만 안 배운 걸까?


당신이 지금까지 살면서 자신에게 미안했던 적이 있었는지 기억해 보자. 지금 이렇게 묻는 내가 어색하기 그지없는 걸 보니 이 작업이 많이 어색하고 낯간지러운 일이 될 듯싶다. 그래도 해보자. 좀 간질거리면 어떠한가. 조용한 시간을 내어 자신에게 집중하고 종이와 펜을 꺼내 보자. ‘내가 나를 대함에 있어서 가장 미안했던 일이 무엇이 있었을까?’라고 물어보자. 나를 함부로 대하거나 무시했거나 미안하게 대했던 적을 떠올려 보자. 나를 제대로 봐주지 못했던 것에 대해, 나를 막 야단치고 닦달했던 때를 생각해보자. 진심으로 나 자신에게 용서를 구하는 글을 써보는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 함부로 대하지 않겠다고 다짐까지 해주면 더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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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고마워’ 속삭이기


치유적 글쓰기에 대한 주제의 단골 메뉴가 바로 ‘일기 쓰기’이다. 하루를 살아내기가 버겁고 기가 털려서, 아무런 힘을 낼 수 없을 때를 대비하여 비타민 음료수 같은 비법으로 등장한 글쓰기 방법이다. 비슷한 이름으로는 감사일기, 긍정 일기, 다짐 일기, 명언 일기, 사랑일기, 꿈 일기 등 다양한 이름으로 써지고 있지만 어찌 보면 자신에게 ‘으쌰 으쌰’ ‘아자아자’ 해 보자는 메시지를 심어주는 기능으로 사용된다다. 내부의 고갈된 힘을 채우기 위한 전략적인 글쓰기 방법일 수 있겠다. 그러나 내 내면에 없는 것들을 끄집어내거나, 외부의 힘을 내부로 집어넣는 것보다 선행되어야 하는 과정이 있다. ‘내 안에 있는 것들에 대한 예의’를 먼저 차리는 단계를 먼저 거쳐야 한다. 나는 지금도 충분히 잘하고 있는 것들이 있고, 열심히 해내고 있고, 지금 이 세상에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 것만으로도 기특하다고 생각한다. 지금의 나에게 ‘더 열심히 하자’고 하고 싶지 않다. 그저 나는 나에게 자그맣게 속삭여주고 싶다. ‘네가 있어서 좋다’고, ‘너 진짜 괜찮은 아이’라고 말해주고 싶다. 그뿐이다.


가만 보면 내(당신) 안에 좋은 것들이 많다. 어쩌면 이미 충분하다. 다만 언제부턴가가 자꾸만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거나, 비교됨으로 인해 내가 가진 것들을 제대로 볼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있어서 아직도 몰랐을 뿐이다. 이젠 더 이상 몰랐다고 변명하지 말자. 이제는 나의 변명의 커튼을 젖히고 내 안에 보물상자를 열어 본래부터 있었던 좋은 것들을 소환하자. 이미 잘하고 있는 것들을 불러보자. 나에게 진심으로 고맙다고 말해본 적이 있는가? 없다면 지금 생각해보아도 좋다. 잠시 눈을 감고 천천히 내게 고마운 것들을 떠올려 보자. 부드러운 목소리로 깨워보자. “○○야. 너무 고마워. 너도 힘들었을 텐데 잘 견뎌주어서 고마워. 네가 견뎌주어서 나는 ~점이 좋았어, 다 네 덕분이야. 네가 그렇게 버텨주지 않았다면 난 정말 오늘 ~했을 거야”라고 말이다. 돌이켜 보면 나에게도 기특한 면이 있게 마련이다. 남들이 몰라주면 어떠한가. 내가 인정해주면 그뿐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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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은 말 다 해도 좋아’ 속삭이기


사람이 어떤 사건에 대한 자연스러운 반응을 참거나 회피하려고 할 때 우리의 몸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스트레스로 작용한다. 몸이 말을 한다면 ‘정말 어이가 없다’라고 할 것이다. 정작 몸의 주인이 전혀 인식하지 못하다가 한참 후에야 ‘아 내가 그때 그렇게 힘들었구나’라고 뒷북을 때리는 격이기 때문이다. 아마 이러한 알아차림이 되었을 즈음 사건 당사자의 몸과 마음은 심한 상처로 후유증을 앓고 있을 때쯤일 것이다. 그러나 참지 않고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부정적 감정을 적나라하게 드러낼 수도 없는 노릇이다. 아무리 표현이 대세라지만 무분별한 시도는 안 하니만 못한 결과를 초래하기에 조심해야 한다. 이럴 때 스스로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이 있는데 ‘하고 싶은 말 다 해도 좋아’ 속삭이기를 추천한다.

하고 싶은 말을 다 하며 사는 사람은 없다. 그래서도 안될 일이다. 그러나 하고 싶은 말을 해야 한다면 현명한 방법으로 최대의 효과를 얻어내야 한다. 내 안에서 일어나는 자연스러운 부정적 감정을 매 번 교양 있게 표현하려다가는 ‘화병’에 걸릴 뿐이다. 치유적 글쓰기를 통해 화병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내 안의 정서를 다른 내가 바라봐주는 작업이 필요하다. 다른 내가 되어 나를 바라보면서 ‘아 그때 내가 그런 생각을 했었지. 그래서 그렇게 힘들었겠네’라고 스스로 인식하는 것이다. 이 단계를 지나면 마음속에서 생겨나는 언어를 글로 써보는 것이다. 내가 나에게 나지막이 속삭이듯 내가 그때 하고 싶었던 말, 내가 상대에게 하고 싶었던 말, 그때 느꼈던 감정 등을 글로 적어보는 것이다. 종이에 적어도 좋고 우드락에 적어도 좋다. 종이나 우드락에 하고 싶은 말을 다 적고 나면 잘게 찢어도 좋다. 잘게 찢은 조각들을 풀이나 종이 본드를 사용하여 어떤 모양으로든 자유롭게 만들어본 후 제목 붙이기를 해봐도 좋다. 글을 쓰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결과물로 만들어져서 새로운 이름이 붙여지는 과정을 통해 그때의 감정이 정화되는 경험을 할 수 있다.


'마음 속삭 글쓰기'를 하려면 조건이 있다. 그냥 마음 가는 대로 써야 한다. 문장이 이상해도, 단어가 이상해도 신경 쓰지 말자. 이 글은 나만 볼 것이다. 다른 사람 눈치 보거나 신경 쓰며 쓰는 글쓰기가 아니다. 친한 친구에게 한바탕 정신없이 떠들고 나면 속이 후련하듯 그렇게 편하게 맘껏 휘갈겨도 좋다. 마음에 상처가 되는 사건을 경험하게 되면 미해결 과제가 되어 오랫동안 그 사람의 생각을 지배한다. 해소되지 않으면 고착되어 몸과 마음에 흔적을 남긴다. 흔히 말하는 우울증도 그러한 흔적 중의 하나이다. 우리의 감정을 회피하지 말고 표현할 수 있는 글쓰기를 통해 해결해보자. 마음의 상처를 남에게 드러내기란 쉽지 않다. 용기 있게 친구에게 털어놓거나 심리상담을 받을 수도 있다. 더 용기를 낸다면 병원에 가기도 하고 어떤 사람들은 역술가에게 찾아가기도 한다. 이 모든 효과는 남들에게는 털어놓지 못했던 자기 안의 깊숙한 언어들을 속 시원히 풀어냈다는 것인데 이런 방법과 유사한 효과를 얻을 수 있는 방법이 마음 속삭 글쓰기인 것이다. 남에게 보이기 위한 글쓰기는 전문작가들도 머리 아파한다. 그러나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않는 자기에게 속삭이는 글쓰기는 자신의 생각을 그대로 옮기는 과정을 통해 자신의 위치를 정확히 볼 수 있다. 내 마음과 내 상황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 새로운 시력을 갖게 된다. 나를 내가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는 이 좋은 기회를 당신만은 꽉 잡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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