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나'
오빠는 나와 식사를 할 때면 '막내 너는 이런 걸 잘 먹어야 해'라며 잔소리를 하곤 했다. 어른이 되고 더 어른이 되어도 가끔 만날 때마다 식습관을 들먹이며 타박하곤 했다. 회를 먹을 때 깨작깨작 대면 '회를 잘 먹어야 한다.'라고 했고 뭐든 내가 먹는 모습이 마음에 안 들면 '잘 먹어야 한다'라고 잔소리를 했다. 지금은 물론 회도 어느 정도 먹고 있지만 과거에는 이것저것 못 먹는 게 많았던 거 같기도 하다.
오빠가 그런 말을 할 때면 늘 의문이 들었었다. '오빠는 건강을 생각하면서 왜 술, 담배를 하지(지금 오빠는 담배는 끊었다)? 좋은 거 찾아먹기 전에 나쁜 걸 안 먹으면 될 텐데'라는 생각에 오빠의 잔소리는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버린다. 신빙성이 없다. 사람들은 자신을 사랑하는 거 같은데 사랑하지 않는 행동은 여전하다. 몸에 좋은 영양제가 식탁 한편에 종류대로 쌓여가는데 먹지 말아야 할 음식들은 잘도 먹는다. 보상심리일까?
소중한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상대방이 좋아하는 일이 무엇일까?를 생각하기 전에 상대방 입장에서 '내게 이런 행동은 하지 말아 줘'라는 행동을 하지 않는 게 좋다는 말이 있다. 관계를 위한 부분이든 식습관에 대한 부분이든 해야 할 것에 집중하는 게 아니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하지 않는 것이 더 관건이 아닐까?
사람은 평생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깨우치다가 죽게 되는 것 같다. 적어도 내 입장에서는 그렇다. 자신을 알아가기 위해 애쓰고 알아가는 것에 희열을 느끼며 궁극적으로는 자신을 소중히 여기고 사랑하게 될 때 삶은 완성되는 것 같다. 말로는 '내가 소중해'라고 하지만 그 사람이 하는 태도를 보면 소중함에 대한 행동은 1도 없는 경우가 많다. 마음먹는다고 다 진실은 아니기 때문이다. 행동으로 모든 것은 완성된다. 사랑도, 존중도, 우애도 그렇다.
가끔씩 음식을 먹다가 생각을 한다. '과연 나는 이 음식은 나를 사랑해주는 음식일까?' 음식의 종류에 따라 다르겠지만 내가 음식을 섭취했을 때 내 몸에 미치는 영향을 생각해 보는 것이다.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과연 이 사람과의 관계가 나를 소중히 여기는 관계일까?'를 생각해보면 흐릿하나마 답은 나온다. 내가 맺고 있는 관계가 나를 사랑하는 관계가 아니라 나를 헤치는 관계임이 직감적으로 느껴진다면 그 느낌을 느낌으로 끝내지 말고 행동으로 옮겨야 한다.
내가 꾸준히 행동, 실천, 습관에 대한 주제어를 가지고 글을 쓰고 싶어 하는 욕구도 이런 이유에서이다. 마음먹는 건 누구나 하지만 실천하는 건 아무나 못하기 때문이다. 실천이야말로 삶의 완성이다. 깨달음으로 끝나는 삶은 허무하기 그지없다. 그 깨달음으로 당신의 삶이 어떻게 변화되었느냐가 중요하다. 행동 없이 말로만, 생각으로만 떠드는 포부는 망상일 뿐이다.
나: '당신 나 사랑하는 거 맞아?'
너: 응 맞아
나: 그런데 왜 나는 사랑받는다는 느낌이 없지?
너: 나는 한다고 하는데? 못 느끼면 나도 어쩔 수 없지, 당신에게 문제가 있으니까
사랑을 주고 있다고 주장하는 '너'님의 태도에는 당당함이 묻어있다. 나는 너를 위해 이 많은 걸 해주는데 왜 너는 느끼지 못하느냐는 야속함이 묻어있다. 사랑받는 사람이 느끼지 못했다면 사랑하는 이를 위한 사랑이 아니라 자신을 위한 사랑을 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상대방이 알아차릴 수 있게 상대방의 온도로 사랑해주어야 한다.
나: 너를 소중하게 여기고 아껴주고 싶어
내 안의 나: 그래 고마워,,, 그렇다면 나를 위해 초콜릿은 먹지 말아 줘. 너무 달아서 힘들. 자꾸 살도 찌고 있고... 내 모습이 흉하게 바뀌고 있어
나: 응 알았어
내 안의 나: 고마워
<얼마 지나지 않아>
내 안의 나: 초콜릿 안 먹기로 했잖아
나: 아... 내가 그랬었지. 미안해 이번만 먹고 안 먹을게
내 안의 나: 믿을 사람 하나 없네...ㅜㅜㅜㅜ
말로는 정크푸트를 먹지 말아야겠다고 하지만 행동은 먹는다. 말로는 운동을 해야지 하지만 절대 하지 않는다. 말로는 책을 읽어야지 하지만 절대 책을 읽지 않는다. 말로는 정신건강을 돌보기 위해 명상을 하기로 하지만 절대 하지 않는다. 이처럼 우리들은 말로 내뱉기는 잘하지만, 마음먹기는 잘하지만 행동으로 까기 가는 데는 도통 진도가 나가질 않는다. 어찌해야 할까?
요새는 집에서 온라인으로 일을 많이 처리한다. 강의도 온라인, 상담도 온라인으로 하고 업무도 대부분 집에서 하고 있다. 간혹 대면으로 나가서 해야 하는 상담이 있지만 그 시간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일처리가 컴퓨터로 진행되고 있다. 집에 머무는 시간이 많다고 해서 시간이 남아도는 것은 아니다. 아침부터 글 쓰는 시간을 정해두고 시작하고 있는데 시작을 하기로 맘먹고 실행한다는 건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알람이 울리고 눈을 떠서 몸을 일으키고 침대에서 내려오기까지 온갖 잡생각이 많다. 내가 이일을 해야 하나?라는 의문을 하기 시작해서 삶의 회의까지 몰려올 때가 많다. '내가 왜 이렇게 살지?'까지 가면 순간 멈춘다.
'아 내가 지금 해야 할 일을 하기 싫어서 하지 말아야 할 명목을 찾고 있구나'
이러한 알아차림이 일어나는 일도 아주 중요하다. 그러나 이 정도는 누구나 하고 있다. 아침 글쓰기가 행동으로 옮겨지기 위해서는 알아차림으로는 약하다. 무조건 몸을 일으켜 세워야 하는 단순 행동의 힘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글을 쓰는 게 힘든 게 아니라 몸을 침대에서 내려오게 하는 것이 관건인 셈이다.
원하는 목표를 이루는데 더딤을 느끼는 당신이라면 이거 하나만 명심해보면 어떨까? 가장 작은 발걸음이 어디서부터 인지를 가늠해보는 것이다. 아침 글쓰기를 목표로 했는데 지켜지지 않았다면 '알람 듣고 바로 침대에서 내려오기'를 세부목표로 삼아보자. '정크푸드를 먹지 말아야지'가 목표라면 정크푸드를 먹게 되는 가장 첫 시발점을 찾아야 한다. 예를 들어 스트레스를 받을 때 먹게 되는지, 배고플 때 먹게 되는지, 일하다가 무심코 옆에 있는 간식을 먹게 되는지, 회식이 많아서 먹게 되는지 등 다양한 원인을 세세하게 찾아보아야 한다. 덩어리가 클수록 버겁고 무거워진다.
자신이 들 수 있는 만큼의 무게가 어느 정도인지 구체적으로 저울에 달아보자. 그래야 어깨에 지고 갈 수 있다. 무게를 재지 않고 지려다가는 허리에 무리가 가게 되어 '너무 힘들잖아'라는 생각에 압도된다. 그러한 생각이 엄습해오면 자기 합리화를 하기 시작한다. '이건 너무 무거워서 내가 못하는 거야' ' 이걸 했다가는 내가 다치고 말 거야' '건강이 최고니까 이렇게 무거운 건 들지 말자' 등 다양한 내적 언어가 자신을 집어 삼기 게 된다.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은 자신이 안다. 사랑하는 이에게 어떤 사랑을 받고 싶은지 구체적으로 나열이 되는 것처럼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도 반드시 알 수 있다. 지금 이 순간 '나를 사랑하는 방법이 뭐가 있을까?'가 떠오른다면 당신은 그동안 자신을 방치한 것이다. 찐 사랑이 아니가 겉 사랑만 하면서 가짜 사랑놀이에 빠진 것이다. 지금이라도 자신에 물어야 한다.
'내가 너를 위해 무엇을 해주면 너는 좋아하겠니?
이것이야 말로 '나와 내 안의 내'가 서로를 알아볼 수 있는 첫걸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