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이 쏟아지는 차창 밖 풍경과, 좁디좁은 내 마음의 거리
아침 수영으로 새벽 운전대를 잡았다. 아직 세상은 짙은 남색 어둠에 잠겨 있고, 가로등마저 드문드문 꺼져 있는 한적한 도로이다. 차창 위로 어렴풋이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내 차의 헤드라이트 불빛과 맞은편에서 달려오는 차들의 불빛이 빗방울에 반사되자, 기묘한 풍경이 펼쳐졌다. 차창에 부딪히며 산산이 부서지는 빗방울들이 마치 어두운 밤하늘에서 쏟아져 내리는 별들처럼 보였다.
어둠 속을 달리는 차 안에서, 나는 잠시 우주를 유영하는 기분에 젖었다. 쏟아지는 유성우 사이를 뚫고 나가는 우주선 조종사라도 된 양, 핸들을 잡은 손끝에 묘한 기분이 전해진다.
사실 나는 스스로 그렇게 감성적인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감성적인 사람들에게 미안할 정도로... 오히려 나의 일상은 낭만보다는 찌질함에 더 가깝다. 아내의 사소한 잔소리에 금세 울컥 화가 치밀어 오르고, 정말 별것도 아닌 일들에 마음이 상해버려 아무것도 하기 싫어질 때가 부지기수다. 내 뜻대로 일이 풀리지 않으면 애꿎은 물건들에 화풀이를 하기도 하고, 타인의 목소리 톤이나 미세한 얼굴 표정 하나를 내 멋대로 해석하며 혼자 삐지고 서운해한다. 시간이 지나면 제 풀에 지쳐 스르르 풀리면서도, 그 순간만큼은 세상에서 제일 억울한 사람이 된다.
"나는 몇 개의 인격을 가진 사람일까?"
좁쌀처럼 작은 마음을 안고 살아가다가도, 가끔 이렇게 거대한 자연을 마주할 때면 나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된다. 차창에 맺히는 빗방울 하나에서 우주의 별을 보고, 그 광활함 앞에서 내 모든 고민이 한없이 작게 느껴지는 순간. 그럴 때면 나는 자연의 경이로움 앞에 겸손해지는, 꽤 괜찮은 철학자가 된 것만 같다.
가끔 밤하늘에 떠 있는 달을 한참이나 올려다보곤 한다. 보름달처럼 꽉 찬 달보다는 초승달이나 그믐달처럼 한쪽으로 치우쳐진 달에 더 눈길이 간다. 빛나는 얇은 부분과 어둠에 잠긴 나머지 원형의 윤곽을 뚫어져라 쳐다본다. 물론 그 안에서 방아를 찧는 토끼를 찾는 순수한 동심 때문은 아니다.
그 한 조각의 빛과 나머지 어둠을 보며, 저 거대한 우주 공간에 덩그러니 떠 있는 '달'이라는 물체를 상상해 본다. 꽉찬 달보다는 개슴츠레한 그 달에 눈이 더 간다. 아니 생각이 더 간다. 칠흑 같은 허공에 매달린 돌덩어리 하나. 그리고 그 달을 바라보고 있는 나. 우리 역시 저 달처럼 한없이 넓은 우주에 떠 있는 아주 작은 존재라는 사실을 떠올려 본다.
수백억 년을 살아왔을 우주의 시간 앞에, 기껏해야 80년 남짓을 살아갈 우리의 시간은 찰나조차 되지 않을 것이다. 머리로는 안다. 그 짧은 생을 살아가며 하루하루를 소중히 여겨야 한다는 것을. 저 광활한 우주에 비하면 내가 겪는 갈등과 분노 따위는 먼지보다 가볍다는 것을.
하지만 막상 삶으로 돌아오면, 나는 다시 좁쌀만 한 우주에 갇힌다. 아내의 말 한마디에 세상이 무너진 듯 심각해지고, 타인의 시선 하나에 우울해하며 하루를 탕진한다. 수백억 년을 사는 우주처럼 웅장하고 의연하게 살고 싶지만, 나의 하루는 고작 몇 시간 전의 기분에 좌우되어 아깝게 흘러가곤 한다.
쏟아지는 별빛 같은 빗방울을 보며 생각한다. 어쩌면 내가 가진 여러 개의 인격, 그 모순적인 모습들이야말로 인간이라는 증거가 아닐까. 우주를 동경하면서도 오늘 저녁 반찬 투정에 목숨을 거는, 그 부조화 속에서 우리는 비로소 살아있음을 느끼는 것일지도 모른다.
비가 그치고 날이 밝으면, 나는 또다시 별것 아닌 일에 화를 내고 서운해할 것이다. 그래도 가끔은, 아주 가끔은 빗방울 속에서 별을 볼 수 있는 눈을 가졌다는 사실에 안도하며 핸들을 고쳐 잡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