흩어진 나를 소환하는 날

by 고래 아저씨

달력을 한 장 남겨둔 이맘때가 되면, 약속이라도 한 듯 휴대폰 알림이 잦아진다. 연말이라는 이름 아래 우리는 참으로 분주하게 모인다. 매일 얼굴을 맞대는 회사의 팀 동료들, 업무로 알게 되었지만 이제는 제법 편해진 타 부서 사람들, 퇴근 후 맥주 한 잔을 기울이던 동네 주민들, 그리고 청춘의 한 페이지를 공유했던 대학 동기들까지. 그뿐인가. 예전 회사에서 동고동락했던 옛 동료들과의 자리는 이제 단순한 '전 직장 동료'라는 명함을 넘어, 함께 나이 들어가는 '친구'라는 이름으로 채워진다. 일 년 내내 안부조차 묻기 어려웠던 드문드문한 인연들도 이 시기에는 기어코 술잔을 부딪히게 만든다. 우리는 그렇게 서로의 안녕을 확인하고 지난 일 년의 시간을 술잔에 털어 넣는다.


당신은 술을 마신 다음 날, 어제의 나를 떠올려본 적이 있는가. 숙취보다 더 지끈거리는 두통은 때때로 어젯밤 나의 행동과 말들이 남긴 잔상 때문일지도 모른다. 가끔은 전날의 내가 낯설고 부끄럽다. 내가 뱉었던 호기로운 말들과 과장된 몸짓들이 떠오르면 이불 속으로 숨고 싶어지기도 한다.

누구나 한 번쯤 그런 생각을 하지 않을까. 그 소란스러운 자리 한가운데서 웃고 떠들던 그 모습이 과연 진정한 나일까, 아니면 사회적 관계를 위해 만들어낸 가식적인 또 다른 자아일까.

매번 다짐한다. "술은 적게, 적게 마시자." 그러나 술이란 녀석은 참으로 묘하다. 한 잔 두 잔 들어가다 보면, 내면 깊숙한 곳에 흩어져 있던 나의 파편들을 하나둘 소환해낸다. 문제는 그 소환 의식의 끝에 어떤 모습의 내가 튀어나올지 알 수 없다는 점이다. 마치 동전 뽑기 기계 앞에 선 아이처럼, 어떤 '나'가 나올지 가늠할 수 없는 불안과 기대가 공존한다. 그것은 때론 솔직함이라는 이름의 무례함이 되기도 하고, 평소 억눌러왔던 감정의 해방이 되기도 한다.

"삶이란 진정한 나를 찾아가는 여행이다."


어디선가 들었던 이 문장이 묵직하게 다가온다. 우리는 수십 년의 세월 동안 끊임없이 자기 자신을 찾아 헤맨다. 어쩌면 술자리에서의 그 낯선 모습조차 나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만나는 무수한 자아 중 하나일지 모른다. 그 모든 조각들을 마주하고 인정하는 것, 그것이 자신을 찾는 여정이 아닐까.

한 해의 마지막을 수많은 관계 속에서 정리하며, 나는 또다시 내년을 기약한다. 습관처럼 내뱉는 다짐들이 줄을 잇는다. 내년엔 책장에 꽂힌 책들을 좀 더 읽어야지, 묵직해진 뱃살을 조금이라도 들어가게 해야지, 운동화 끈을 더 자주 조여 매야지. 그리고 내년엔, 정말로 술을 조금만 마셔야지. 일기를 쓰고, 꾸준히 글을 써서 세상에 내보여야지.

이런 다짐들은 단순한 목표 설정을 넘어선다. 이것은 결국 더 나은 나, 진정한 나를 찾아가려는 몸부림이자 삶의 의미를 구하는 기도와도 같다.

그 여정의 끝이 어디인지는 미리 알고 싶지 않다. 정해진 답을 향해가는 지루한 행군이 아니라, 불확실함 속에서 나를 발견해가는 과정을 온전히 즐길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바랄 뿐이다. 비록 그 과정에서 가끔은 비틀거리고, 이불을 걷어차며 후회하는 밤이 있을지라도 말이다.

렇게 우리는 또 한 번, 술잔을 비우며 나를 채워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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