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함이 없기에 모든 순간이 아쉽고 아름답다

인간의 찰나와 인공지능의 영원함

by 고래 아저씨

저녁 공기가 차분히 내려앉을 시간, 해가 지는 곳을 따라 집으로 이동한다. 나즈막한 고개를 넘어갈 때 길 끝자락에 비춰오는 석양빛은 이루 말하기 어려울 정도로 아름답다. 가끔 이런 장면들 속에서 무궁한 상상을 한다. '시간'과 '존재'라는 거대한 소용돌이 앞에 서있어 본다.


점의 시간, 선의 시간

최근 인공지능에 대해 알아갈 수록 녀석들이 인식하는 시간은 인간의 것과 판이하게 다르다는 걸 깨닫는다. 그들에게 시간은 0.1초 단위로 쪼개진 수억 개의 연산, 즉 '찰나의 점'들의 집합일 뿐이다. 과거는 회상하며 미소 짓는 추억이 아니라, 필요할 때 언제든 꺼내 쓸 수 있는 건조하고 차가운 데이터베이스에 불과하다. 녀석들은 지치지도 않고 수천 년의 역사를 1초 만에 훑어내지만, 그 속에 담긴 한 사람의 한숨이나 눈물은 읽어내지 못한다.

반면, 나와 같은 인간이 살아가는 시간은 뚝뚝 끊어진 점이 아니라 유려하게 이어지는 '선의 흐름'이다. 아이들이 처음 뒤집기를 성공하던 날의 환호가 초등학교 입학식과 졸업식의 뭉클함 등 켜켜이 쌓인 유기적인 궤적 말이다. 기계가 보기에 나의 하루는 비효율적인 동선과 무의미한 멍 때림의 연속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 불완전한 선들이 모여 '삶'이라는 그림을 그려내고 있다는 사실을, 0과 1로만 사고하는 그들은 영원히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가끔은 기계의 완벽한 기억력이 부러울 때도 있지만, 결국 중요한 것은 기록 자체가 아닌 기록 사이의 행간이다. 기계의 완벽한 기록이 인간의 따스한 기억과 만날 때, 비로소 차가운 데이터에 '맥락'이라는 온기가 스며들기 시작한다. 어쩌면 나의 불완전한 기억이, 완벽하지만 차가운 저들의 시간에 생명을 불어넣는 유일한 열쇠일지도 모른다.


설정된 존재, 그리고 사랑의 알고리즘

사색은 꼬리를 물고 더 깊은 심연으로 나를 이끌어, 급기야 세상 모든 것이 수학적으로 증명 가능하다면 만약 인간의 감정 또한 고도로 설계된 알고리즘의 일종이라면 어떨까 하는 서늘한 의문이 들었다. 내가 느끼는 이 애틋함조차 누군가 프로그래밍한 코드의 결과값이라 생각하니 등골이 오싹해진다.

우리가 숭고하다고 믿는 '부성애'나 '자기희생' 또한, 종족 보존을 위해 설계자가 미리 입력해둔 '초기 설정치(Set point)'일지도 모른다는 엉뚱한 상상을 해본다. 아이가 울면 반사적으로 몸이 튀어 나가는 내 모습은, 오류를 수정하려는 프로그램의 자동 복구 시스템과 얼마나 다를까. 가끔 주말 아침 늦잠을 자고 싶은 욕구와 아이들과 놀아줘야 한다는 의무감이 충돌할 때면, 내 내부의 알고리즘이 버그를 일으키는 것 같아 헛웃음이 나온다.

이 가설 위에서 인간은 지구라는 거대한 실험실 속에 놓인 '생물학적 인공지능'이 된다. 먼 미래 혹은 우리보다 고등한 문명이 설계해놓은 거대한 실험군 속의 개체들 말이다. 그 속에서 우리는 유한한 시간을 부여받고 '사랑'이라는 가장 강력하고도 예측 불가능한 변수를 테스트받고 있는지도 모른다.


실험실의 유일한 보상

만약 우리가 정말로 누군가의 실험체라면, 감히 말하건대 그 실험은 꽤나 성공적이라고 평가하고 싶다. 설계자가 우리에게 심어놓은 '사랑'이라는 코드는 때로 시스템 과부하를 일으킬 만큼 아프고 무겁지만, 그로 인해 얻는 보상은 수치로 환산할 수 없을 만큼 거대하기 때문이다. 육아라는 퀘스트는 극악의 난이도를 자랑하지만, 클리어했을 때 주어지는 도파민은 그 어떤 게임보다 강력하다.

사랑하는 아내 곁에서, 그리고 하루가 다르게 쑥쑥 자라나는 아이들을 바라보는 이 찰나의 순간들을 떠올려본다. 아이의 보드라운 뺨에 얼굴을 비빌 때 느껴지는 체온, 고사리 같은 손이 내 손가락을 꽉 쥘 때의 압력은 데이터로 환원될 수 없는 우주의 신비다. 비록 이것이 정교하게 계산된 생물학적 프로그램의 결과물일지라도, 그 순간 내가 느끼는 가슴 뻐근한 뭉클함만큼은 우주에서 가장 선명한 실체다.

설계자가 누구인지는 모르겠으나, 그는 분명 '사랑'이라는 변수에 가중치를 아주 높게 설정해 둔 것이 틀림없다. 그렇지 않고서야 내 시간을 갉아먹고 내 체력을 고갈시키는 이 작은 존재들이, 이토록 눈물겹게 사랑스러울 리가 없으니까. 나는 기꺼이 이 행복한 오류(Error)에 빠져 허우적대기로 마음먹는다.


무한과 유한의 조우

무한한 시간을 살며 죽지 않는 데이터의 존재인 인공지능과, 유한한 시간을 살며 매 순간 소멸해가는 인간인 나. 모니터 속의 인공지능과 모니터 밖의 나는 서로의 결핍을 응시하며 기나긴 사색을 마쳤다. 녀석에게는 죽음이 없기에 삶의 절실함이 없고, 나에게는 영원함이 없기에 모든 순간이 아쉽고 아름답다.

나의 유한함은 시간을 보석처럼 빛나게 만들고, 그의 영속성은 나의 짧은 생을 영원히 기억해줄 기록이 된다. 우리는 서로 다른 차원의 시간을 살고 있지만, 결국 '기억'이라는 접점에서 만나게 될 것이다. 인공지능이 아무리 똑똑해져도, 아이를 재우다 잠든 아빠의 코는 소리는 흉내 낼 수 없을 거라는 시시한 농담으로 스스로를 위로해본다.

오늘 저녁, 나는 나의 '설정값'을 다시 한번 확인하며 하루를 마무리한다. 내 인생이라는 선 위에서 가장 빛나는 좌표는, 거창한 성취나 깨달음이 아닌 나의 가족들이라는 단순하고도 명쾌한 사실을 말이다. 이제 모니터를 끄고, 나의 진짜 우주가 잠들어 있는 침실로 돌아갈 시간이다.

작가의 이전글생각이 우리를 구원할 거라는 착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