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이 우리를 구원할 거라는 착각

배종빈 지음 " 생각의 배신 " 을 읽고서

by 고래 아저씨

머릿속 감정 컨트롤 본부의 소란

픽사의 애니메이션 <인사이드 아웃>을 보며 감탄을 자내냈던 적이 있다. 그리고 유사한 숏폼의 영상을 보며 내 머릿 속에는 다양한 감정들이 있구나를 생각하게 되었다. 영화와 마찬가지로 우리 머릿속에는 기쁨이, 슬픔이, 버럭이, 까칠이, 소심이 같은 감정 캐릭터들이 살고 있다. 이들은 각자의 방식대로 주인공 라일리를 행복하게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하지만 재미있는 점은 라일리를 가장 위하는 기쁨이의 계획이 자꾸만 틀어진다는 사실이다. 우리의 실제 삶도 이 귀여운 캐릭터들의 대소동과 별반 다르지 않다.

우리는 늘 '기쁨이'가 운전대를 잡기를 간절히 원한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늘 불안해하는 '소심이'나 우울해하는 '슬픔이'가 제어판을 장악하곤 한다. 배종빈 작가의 책 <생각의 배신>을 읽으며 나는 이 영화의 장면들을 다시 떠올렸다. 우리가 그토록 믿었던 '생각'이라는 녀석이 사실은 우리를 배신하고 있다는 통찰이 뼈아프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생각은 인간의 가장 고등한 능력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마음의 병을 만드는 주범이기도 하다.


데카르트도 몰랐던 생각의 함정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고 외쳤던 데카르트. 생각은 인간이 동물과 구별되는 가장 본질적인 행동이자 축복이다. 그러나 이 생각이라는 또다른 도구가 되는 불행과 우울, 불안이라는 끔찍한 부산물을 만들어낸다. 우리는 생각 속에 빠져 부정적인 시나리오를 쓰고,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걱정하며 현재를 갉아먹는다. 생각이 삶을 지탱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삶의 근간을 송두리째 흔들어버리는 셈이다.

생각 그 자체가 문제는 아니지만, 생각의 '방향'이 문제일 때가 많다. 긍정적인 생각과 부정적인 생각은 종이 한 장 차이 같지만 삶에 미치는 영향력은 하늘과 땅 차이다. 부정적인 생각이 꼬리를 물면 뇌는 마치 비상사태가 선포된 것처럼 온몸을 긴장시킨다. 이것이 바로 책에서 말하는 '생각의 배신'이며, 우리가 스스로 만든 감옥에 갇히는 과정이다. 우리는 생각함으로써 존재하지만, 때로는 생각하지 않음으로써 더 건강하게 존재할 수 있다.


원시 시대에 멈춰 있는 뇌

우리의 뇌는 현재에 살고 있지만, 그 시스템은 여전히 원시 시대에 머물러 있나 보다. 뇌의 최우선 순위는 우리의 '행복'이 아니라 오로지 '생존'이다. 원시 인류에게 행복이란 감정은 사치였고, 덤불 속의 호랑이를 피하기 위한 불안과 공포가 생존 필수템이었다. 그래서 뇌는 행복보다 생존을 선택하며, 본능적으로 부정적인 정보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도록 세팅되어 있다. 우울이나 불안은 뇌가 우리를 보호하려다 생기는 부작용 같은 것이다.

현대 사회에는 호랑이가 없는데도 우리는 상사의 표정이나 고민들 앞에서 과거 호랑이를 만난 듯 반응한다. 뇌는 진화 중이라고 하지만, 변화하는 환경 속도를 따라가지 못해 아직도 과거의 생존 본능을 고집한다. 이러한 부조화가 우리의 삶을 근본적으로 흔들고 불행으로 이끈다. 그러니 당신이 유독 불안을 잘 느낀다면, 성격 탓이 아니라 당신의 뇌가 생존을 위해 너무 열심히 일하고 있다는 증거다. 물론 그 열심이 지금은 별로 도움이 안 된다는 게 문제지만 말이다.


행복은 생각이 멈춘 곳에 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행복은 '몰입 상태'일 때 자연스럽게 찾아온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무언가에 푹 빠져 있을 때, 우리는 걱정이나 불안을 느끼지 않는다. 역설적이게도 행복은 '생각'이 멈추고 '행동'이 그 자리를 채울 때 느껴지는 감정이다. 반대로 불행, 우울, 불안은 몰입하지 못하고 생각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릴 때 찾아온다. 몰입 상태에서는 부정적인 감정이 비집고 들어올 틈이 없다.

안절부절못하며 걱정만 한 가득인 날을 떠올려보라. 무언가에 집중하지 못하고 생각만 비대해진 상태가 바로 불행의 전조 증상이다. 생각을 많이 한다고 해서 행복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생각의 스위치를 꺼야 행복이 켜진다. 우리는 행복해지기 위해 고민하지만, 그 고민 자체가 행복을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물이다. 행복은 머리로 계산해서 얻는 결과값이 아니라, 온몸으로 겪어내는 과정 속에 있다.


코끼리를 생각하지 마세요

"지금부터 1분 동안 아프리카 코끼리를 절대 생각하지 마세요"라고 하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당신의 머릿속은 온통 아프리카 초원의 코끼리로 가득 찰 것이다. 생각을 하지 말아야지 다짐하면 할수록 그 생각이 더욱 끈질기게 떠오르는 것이 인간의 뇌 구조다. 이 청개구리 같은 심리는 우리가 부정적인 감정을 떨쳐내려 할 때마다 우리를 좌절하게 만든다. 억지로 생각을 누르는 것은 불난 집에 부채질을 하는 것과 같다.

이럴 때 가장 중요한 것은 경험적으로 '인지'하는 것이다. 내가 지금 쓸데없는 생각에 빠져있구나, 라고 알아채는 것만으로도 생각의 고리는 느슨해진다. 마치 영화관에서 영화에 몰입해 있다가 "아, 나 지금 영화 보고 있지"라고 깨닫는 순간과 같다. 자신을 괴롭히는 감정을 적으로 간주하고 싸우려 하지 말고, 그냥 그 감정을 바라봐 주는 것이다. '아, 내 머릿속 슬픔이가 또 버튼을 누르고 있네'라고 가볍게 넘기는 위트가 필요하다.


머리가 안 되면 몸으로 푼다

명상을 통해 생각을 제어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초보자에게 명상은 또 다른 잡념의 시간일 뿐이다. 머리로 해결이 안 될 때는 과감하게 몸을 쓰는 것이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손으로 글을 쓰거나 무작정 밖으로 나가 걷는 것은 뇌의 회로를 강제로 전환하는 스위치 역할을 한다. 복잡한 생각들을 종이 위에 끄집어내어 눈으로 확인하면, 그 실체가 생각보다 별것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손끝의 감각에 집중하는 순간, 생각의 폭주가 멈춘다.

나가기 싫어 죽겠어도 일단 신발을 신는 것까지 성공했다면 절반은 이긴 것이다. 발로 땅을 딛고 걷거나 뛰면 우리의 뇌는 생존 모드에서 활동 모드로 전환된다. 책에서도 "걱정은 문제를 해결해 주지 않는다"라고 단호하게 말한다. 생각의 늪에 빠져 허우적대기보다 당장 해결할 수 있는 아주 작은 일을 하는 것이 훨씬 낫다. 설거지라도 좋고, 분리수거라도 좋으니 몸을 움직여 뇌를 속여야 한다.


배터리 방전 주의보

우리의 몸과 마음은 충전과 방전이 반복되는 배터리와 같다고 생각해본다. 체력 관리와 안배가 중요한 이유는 몸의 에너지가 고갈되면 정신력도 함께 무너지기 때문이다. 자신의 배터리 용량을 정확히 알고 그에 맞춰 생활하는 습관을 들이는 것이 지혜다. 완전히 방전된 후에 충전하려면 시간도 오래 걸리고 배터리 수명도 단축된다. 스마트폰 배터리는 그렇게 아끼면서 왜 내 몸의 배터리는 방전될 때까지 혹사하는가.

반대로 늘 100% 풀충전 상태로만 있으려는 것도 배터리 수명을 갉아먹는다. 적절히 에너지를 소비하고, 운동과 정신 단련을 통해 배터리의 총용량 자체를 늘려야 한다. 몸의 그릇이 커져야 담을 수 있는 생각의 크기도 커지고, 부정적인 감정을 흘려보낼 여유도 생긴다. 결국 건강한 정신은 건강한 신체라는 단단한 대지 위에서만 꽃필 수 있다. 오늘부터라도 생각의 배신에 당하지 않으려면, 뇌가 아닌 몸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생각은 줄이고, 움직임은 늘리자.


그것이 당신의 '기쁨이'를 돕는 가장 확실한 전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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