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저녁의 미열
직장 생활 18년 차에 접어들었지만, 여전히 일요일 저녁은 묘하게 서늘하다. 일주일의 시작인 월요일을 목전에 두고 마음 한구석이 찹찹해지는 것은 어쩔 도리가 없다. 아마도 지난 12월의 길고도 짧았던 연휴 잔치와 매주 하루 이틀씩 더 쉬었던 달콤함이 남긴 금단 현상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단순히 휴식의 부재 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
일요일 저녁은 우울함이라고 정의하기엔 조금 애매하고, 그렇다고 평온하다고 하기엔 가슴 한켠이 뻐근한 기분이다. 굳이 비유하자면 학창 시절 개학을 앞두고 방학이 며칠 남지 않았을 때 느꼈던 그 막막함과 꼭 닮았다. 마치 방학 숙제를 다 끝내지 못한 채 일기장 날씨 칸을 채우느라 머리를 쥐어뜯던 그날 밤의 공기 같다. 다시 시작될 수업에 대한 부담감인지, 아니면 끝나버린 자유에 대한 아쉬움인지 모를 그 미열 같은 감정이 직장인이 된 지금도 여전하다.
어른이 되면 월요병 쯤이야 아메리카노 한 잔으로 가볍게 넘길 줄 알았다. 하지만 18년이라는 세월은 내게 내성보다는 체념을 가르쳐준 것 같다. 일요일 저녁 8시가 넘어가면 예능 프로그램의 웃음소리도 점점 멀게만 느껴지고 나와 다른 세계임을 자각하게 된다. 내일 아침 처리해야할 일들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미간이 찌푸려지는 걸 보니, 나는 아직도 덜 자란 어른임이 분명하다.
그 묘한 패배감을 숨겨보려는 듯 습관처럼 넷플릭스를 마주한다. 순위권 안에 들어와 있는 <연의 편지>라는 제목의 애니메이션이 눈에 들어왔다. 네이버 웹툰 원작이라는 내용을 얼핏 보았다. 한국 애니메이션이라니, 괜히 응원하고 싶은 마음에 클릭했다. 도피하듯 들어간 그곳에서 나는 뜻밖에 꽤 근사한 세계를 만났다. 이 작품은 네이버 웹툰 원작의 청춘 애니메이션이다. 대략적인 줄거리는 새 학교로 전학 온 소녀 '소리'가 누가 보냈는지 모를 의문의 편지들을 연이어 발견하면서 시작된다. 새 친구 '동순'과 함께 편지를 보낸 주인공을 찾아 나서는 여정이 펼쳐진다. 편지 속 따뜻한 말들과 그것을 찾아가는 두 청춘의 우정이 풋풋하다 못해 시리도록 찬란하다.
특히 편지를 쓴 주인공의 시선은 참으로 매력적이다. 낯선 전학생에게 새 학교와 친구들을 소개하는 방식이 예사롭지 않다. 그는 단순히 "여기는 학교고, 쟤는 내 친구야"라고 말하지 않는다. 공간과 사람을 설명하는 편지 속 언어에는 따뜻한 온기가 묻어있다. 반 친구들 한 명 한 명의 특징을 세심하게 관찰하고, 무심코 지나칠 법한 교실 구석이나 옥상 계단 같은 공간들에 숨결을 불어넣는다.
편지 쓴 이의 눈을 통하면 평범한 학교는 비밀스러운 아지트가 되고, 낡은 동네 골목은 추억이 깃든 보물창고가 된다. 단순한 물리적 공간이 어떻게 한 사람의 우주가 되고 '나만의 공간'으로 변모할 수 있는지를 편지는 조용히 보여준다. 편지를 찾아가는 청춘들의 여정을 따라 화면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래, 언젠가 학창시절의 공간을 찾아가 본적이 있었다. 그때 기억 속의 공간은 어른이 된 시각으로는 찾기 힘들어졌던 기억을 가지고서...
애니메이션을 보다가 문득 검은 화면에 비친 내 얼굴을 보았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사람들과의 관계를 지극히 건조하게 정의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직장 동료는 그저 '직장 동료'일 뿐이었고, 그들은 내 인생이라는 연극의 스쳐 지나가는 단역 배우 혹은 배경이었을 뿐이다. 이해집단 속의 이해관계자, 딱 거기까지가 내가 그들에게 허락한 역할이었다. 물론 친한 몇몇을 제외하고는
같은 공간의 김 사원이 점심 메뉴를 고를 때 왜 항상 선택을 피하는지, 누군가 특정시간이 되면 왜 회사 주변을 방황하는지 궁금해하지 않았다. 그 사람은 어떤 취향을 좋아하는지, 어떤 농담에 웃음을 터뜨리는지, 당황스러운 상황에서 귀가 빨개지는지 아니면 목소리가 커지는지, 나는 전혀 생각하지 않고 관찰의 결과만을 단순히 짚어 넘길 뿐이었다. 그저 내 업무에 방해가 되지 않으면 '좋은 사람', 나를 귀찮게 하면 '피곤한 사람'이라는 납작한 프레임에 가둬두고 판단했을 뿐이다.
사람을 깊이 들여다보는 일은 내 친한 주변사람들이면 족하다고 합리화했다. 하지만 사실은 게을렀던 것이다. 타인을 입체적으로 바라보려는 노력을 포기한 채, 내 시각이라는 좁은 감옥 속에 그들을 가두고 멋대로 재단하고 있었다. 내가 그들을 배경으로 만들었기에, 나의 직장 생활 또한 무채색 배경이 되어버린 것은 아니었을까.
사람뿐만이 아니다. 장소에 대한 태도 또한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매일 같은 사무실, 같은 복도, 같은 엘리베이터라는 공간에 머무르고 또 지나친다. 하지만 그 속에서 나만의 해석과 의미를 찾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18년 동안 수많은 건물을 드나들었지만, 그 공간들은 내게 그저 '출근해서 버티다 퇴근하는 곳' 이상의 의미를 갖지 못했다.
몇 년을 같은 공간에서 이동하고 같은 책상에 앉아 있었지만, 나는 그곳을 그저 물리적인 좌표로만 인식했다. 창가 틈새로 들어오는 오후 햇살의 각도가 계절마다 어떻게 변하는지, 탕비실 구석에 놓인 화분이 언제 새 잎을 틔우는지 무관심했다. 공간이 내게 건네는 말들을 나는 이어폰을 꽂은 채 철저히 무시하며 지나쳤던 것이다.
항상 그 자리에 있는 사람과 공간이라고 해서, 그 의미조차 고정된 것은 아닐 텐데 말이다. 나는 그 속에서 새로운 의미를 발굴하기보다, 내 삶과 시간을 그저 흘려보내려 했던 것 같다. '존버(존중하며 버티기)'가 직장인의 미덕이라지만, 버티는 것과 무심한 것은 엄연히 다르다. 나는 버티는 척하며 실은 내 삶의 소중한 시간들을 '빨리감기' 버튼을 누르듯 삭제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출근 길 아침 공기가 여간 차가운 것이 아니다. 뺨을 스치는 냉기에 정신이 번쩍 든다. 어제의 공간과 오늘의 공간이 물리적으로는 같을지라도, 아침 공기가 매일 바뀌듯 우리가 마주하는 매 순간은 결코 같지 않다. 어제와 똑같은 책상이고 똑같은 모니터라도, 오늘의 나는 어제와 다른 호흡으로 그 앞에 앉아 있다.
매 순간이 미세하게 바뀌고 있음을 인지하고 살 수 있는 여유를 갖고 싶다. 그것은 대단한 깨달음이나 거창한 명상이 아니다. 그저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친 동료의 달라진 넥타이 무늬를 발견해주는 것, 사무실 창밖으로 보이는 가로수가 어제보다 조금 더 앙상해졌음을 알아채는 것, 그런 사소한 관심이면 충분하다.
어제 우연히 본 애니메이션 한 편 덕분에, 오늘 출근길은 조금 다르게 느껴질 것 같다. 나도 누군가에게 편지를 쓴다는 마음으로, 주변의 사람들과 공간들을 좀 더 주의 깊게 살펴봐야겠다. 혹시 아는가. 무뚝뚝한 상사의 책상 위에서 의외로 귀여운 캐릭터 피규어를 발견하게 될지, 아니면 탕비실 커피 머신 앞에서 평생의 '커피 메이트'를 발견하게 될지.
물론, 월요일의 피곤함이 극적으로 사라지진 않을 것이다. 그래도 적어도 오늘 하루는, 내 주변을 스쳐 가는 모든 것들이 단순한 배경화면이 아니라 살아 숨 쉬는 '이야기'로 다가오길 기대해본다.